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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바라보라

1갈바리의 십자가를 바라보라. 십자가는 하늘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과 측량할 길이 없는 자비의 영구적인 보증이다. 아, 모든 영혼들이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교회들이 이와 같이 할 때에 저들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것이며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할 것이다. 에브라임은 유다를 시기하지 않을 것이며 유다는 에브라임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 분열은 없어질 것이며 이스라엘의 경내에서는 사납게 싸우는 소리들이 더 이상 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값없이 주신 은혜를 통하여 주님께서 기도하신 바 하늘 아버지와 주님께서 하나이신 것처럼 당신의 제자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하신 그 기도의 응답을 구할 것이다. 화평, 사랑, 자비 및 자선의 정신이 그 영혼의 영구적인 원칙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영혼의 주제가 될 것이며 충성된 증인께서는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는 말씀을 그 이상 더 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될 것이며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고 성령께서는 모든 심령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실 것이며 중생에 이르게 하고 모든 영혼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새로워져서 모든 영혼을 같은 형상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참 포도나무의 산 가지들로서 모두가 살아 있는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 연합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영혼의 심령 가운데 거하셔서 지도하시고 위로하시며 거룩케 하시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연합된 정신을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하므로 남은 교회에게 거룩한 신임장을 수여하였다는 사실을 증거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가 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당신의 독생자를 보내신 사실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2하나님의 백성들이 성령의 연합케 하시는 섭리 가운데 하나가 될 때에 유대 백성의 죄였던 모든 바리새인적 사상과 스스로 의롭다 하는 모든 거짓된 신앙이 저들의 심령에서 추방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당신의 지체가 되는 각 신자에게 새겨질 것이며 당신의 백성은 새 포도즙을 담을 수 있는 새 가죽부대가 될 것이며 새 포도즙은 가죽부대를 찢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세대 동안 숨겨져 있던 신비를 알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골 1:27)실 것이다(28절과 29절도 인용되었음).

3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게 할 수 있는 성령을 인간의 영혼에게 부어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 그러나 저들의 마음이 틀에 박히고 변함이 없는 교리에 사로잡히고 그리스도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유전과 인간의 계명을 따라 행하는 자들에게는 성령을 부어주는 일이 불가능하다. 저들은 교회의 의식들을 준수하는 일에 매우 철저하였으며 형식을 따르는 데 있어서는 엄격하였으나 활력과 신앙적인 헌신이 결핍되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저들을 가죽부대로 사용하는 마른 가죽으로 상징하셨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런 가죽부대에 담을 수 없으므로 저들 마음 속에 간직할 수 없었다. 또한 저들은 주님의 새 포도즙을 담을 수 있는 새 가죽부대가 될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진리와 생명의 교리를 담을 가죽부대를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이 아닌 다른 데서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주님께서는 중생의 체험을 기꺼이 바라는 사람들을 찾으셔야만 하였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새 마음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주님께서는 “새 마음을 너희에게”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시대에 있어서나 오늘날에 있어서 스스로 의롭다 하는 정신은 새 마음을 가질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저들이 구세주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으므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간과해 버리셨다. 저들은 형식과 종교적인 의식에만 집착되어 있었다. 본래 의식적인 봉사 제도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것으로서 생명력과 신령한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저들의 종교적 의식에서 영적 생명력을 상실하였으며 저들은 영적 생명이 완전히 멸절된 이후에 죽은 형식에만 집착되어 있었다. 저들이 하나님의 요구와 계명에서 탈선하였을때 저들이 잃어버린 그 자리를 메꾸기 위하여 저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요구들을 증가시켰으며 하나님께서 본래 요구하신 것보다 더욱 엄격한 요구들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들이 엄격하면 할수록 그 가운데는 사랑이 결핍되었고 하나님의 영께서 나타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백성들에게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7, 23)고 말씀하셨다.

4남은 교회는 유대인들이 경험한 바와 같은 흡사한 경험을 치르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며 일곱 금 촛대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하시는 충성된 증인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전할 엄숙한 기별을 가지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 5)고 말씀하셨다. 교회 안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점점 식어지고 그 대신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끈 솟아 새로운 활동을 일으켜 왔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상실함과 동시에 이웃에 대한 사랑도 아울러 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비록 교회가 에베소 교회가 들은 바 모든 칭찬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할지라도 중대한 경건성이 부족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에 대하여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2-4) 고 말씀하셨다.

5율법주의적 신앙이 이 시대를 위하여 꽤 올바른 신앙처럼 여겨왔다. 그러나 그것은 큰 실수이다.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하신 견책은 저희 첫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적절한 것이다. 냉담하고 율법주의적인 신앙은 사랑이 결여되고 그리스도가 없는 신앙이므로 결코 영혼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수 없다. 자신을 정당화시키려는 정신으로 행한 금식과 기도는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이 되었다. 예배를 위한 엄숙한 집회, 관습적으로 항상 행하는 종교적 의식, 외식적인 겸비, 부과되는 희생제물 등 이러한 모든 것들은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이 각기 자신을 스스로 의롭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를 세상 사람들에게 선포한다. 이러한 일들은 목격자들에게 엄격한 의무들을 주목하게 하며 이런 사람은 하늘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기만에 속하는 일이다. 어떤 행위가 우리들을 천국에 들어갈 입장권을 얻어주는 것이 아니다. 한분의 크신 희생 제물이 되시는 주님께서 믿는 모든 자들을 위하여 충분한 대속제물이 되셨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신자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생명의 샘에서 물을 마시는 자는 왕국의 새 포도즙으로 배부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신자에게 올바른 정신과 동기를 자극시킬 방법이 되며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는 자에게서 모든 선함과 천국에 뜻을 둔 사상이 우러나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의 모든 연약한 것들을 친히 참으심으로 감당하시고 용서하시며 바로잡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늘 아버지이시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이다.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그대들은 변화하게 될 것이며 그대들이 전에 품고 있던 교만심, 허영심, 자존심, 스스로 의롭다 하는 정신 및 불신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대들은 이러한 죄들을 무가치한 멍에처럼 버리게 될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고 온유하며 진실하게 행할 것이다. 그대들은 사랑, 인내, 온유, 양선, 자비 및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야 할 모든 은혜스러운 일들을 행할 것이며 마침내 성화되고 거룩한 백성들과 함께 자리를 같이 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 우리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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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의롭다하심*

6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감해 주시며 그가 전혀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취급하실 때에 당신의 거룩한 은총 가운데로 그 영혼을 받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의 의의 공로를 통하여 그를 의롭다고 인정하신다. 죄인은 오직 범죄한 세상의 죄를 위하여 희생 제물이 되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대속을 믿음으로써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 아무도 자기 자신의 행위로써 의롭다함을 받을 자가 없다. 죄인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사망과 부활의 공로를 통해서만 죄와 율법의 정죄와 범죄의 형벌에서 구원 받을 수 있다. 믿음이야말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며 신앙이란 믿는 것뿐만 아니라 신뢰하는 것을 포함한다.

7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명목상의 신앙을 가지고는 있으나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구세주의 공로를 차지하시기에 합당하신 주님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이러한 명목상의 신앙에 관하여 야고보는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 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약 2:19, 20)고 말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구세주이심을 인정은 하면서도 동시에 저들은 주님에게서 자신을 멀리하고 저희 죄를 회개하지 않으며 예수님을 저들의 개인적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저들의 신앙은 단순히 정신적인 동의에 그치며 진리를 판단하는 것으로 전부를 삼는다. 그러나 진리를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그 영혼을 성결케 하지 못하고 그 품성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롬 8:29, 30)던 것이다. 부르심과 의롭다 하심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부르심은 죄인을 그리스도에게 이끄는 것이며 성령께서 그 마음에 역사하사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8많은 사람들은 구속 사업의 첫단계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혼돈하고 있다. 회개란 죄인 자신이 스스로 그리스도에게 나올 수 있는 한 가지 일로 여겨왔다. 또한 저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을 얻기 위하여 죄인이 반드시 합당한 자격을 얻어야 하는 줄로 생각하였다. 물론 회개가 용서의 선행 조건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께 가납하심을 받는 유일한 조건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며 죄인은 스스로 회개할 수도 없고 스스로 그리스도에게 나오기 위하여 준비할 수도 없다. 죄인은 회개하지 않는 한 용서함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회개가 죄인 자신이 하는 일이냐 아니면 그리스도의 선물이냐 하는 문제가 결정되어야 한다. 죄인이 그리스도에게 나오기 이전에 그의 마음 속에 자신의 죄에 대한 가책으로 가득 차야만 하는가? 그리스도에게 나오는 제일 첫단계는 하나님의 영의 이끄심을 받는 것이다. 사람이 이 이끄심에 응할 때에 그가 회개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는 것이다.

9죄인은 잃어버린 양으로 상징되었으며 잃어버린 양은 목자가 친히 나아가 찾아가지고 돌아오지 않는 한 결코 제 우리로 찾아 돌아올 수 없다. 사람은 아무도 자기 스스로 회개할 수 없으며 의롭다 하심의 축복을 받을 가치가 없다. 주 예수께서는 계속적으로 죄인의 마음을 감동케 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당신 자신을 바라보도록 주의를 환기시키신다.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영혼을 이끄시고 힘을 주시며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는 회개의 체험을 얻도록 인도하지 않으신다면 단 한 발자국도 신령한 생애로 나아갈 수 없다.

10베드로는 제사장들과 사두개 교인들 앞에서 명확하게 회개가 하나님의 선물인 사실을 증거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행 5:31)고 말하였다. 회개도 사유하심과 의롭다 하심에 못지않은 하나님의 은사이며 그리스도께서 그 영혼에게 은사를 주시지 않는 한 회개의 체험을 맛볼 수 없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에게 이끌리게 되는 것은 그분의 권능과 공덕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통회케 하시는 은혜는 주님께로 말미암아 이르는 것이며 의롭다 하심 역시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믿음의 뜻

11바울은 기록하기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6-10)고 하였다.

12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부주의한 신앙이 아니며 단순한 지적 찬동이 아니다. 믿음이란 마음에 깊이 뿌리가 박히고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삼으며 주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오는 모든 자들을 주님께서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시면서 그대는 구원하시지 않으실 것이라고 믿는 것은 순수한 신앙이 아니다. 다만 그 영혼이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원의 소망으로 붙잡을 때 순수한 믿음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은 그 신앙을 가진 자로 영혼의 모든 애정을 그리스도에게 두게 하며 자신의 지식이 성령의 지배를 받게 하고 자신의 품성이 거룩한 품성을 따라 형성되게 한다. 그의 신앙은 죽은 신앙이 아니며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우심을 바라보게 하고 거룩하신 품성과 동화하게 한다(신 30:11-14 인용되었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신 30:6)이라고 하였다.

13마음에 할례를 베푸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적인 사업은 주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멸망하여 가는 죄인이 “저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러 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7)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주님께서는 저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저는 이 이상 더 구원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죽으셨고 부활하셨으며 또한 지금 저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용서를 받아들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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