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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계시

1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 사람들에게 나타내셔서 모든 인간의 심령을 당신에게로 이끄시기 위하여 오셨다. 주님께서는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고 말씀하셨다. 구원을 향한 첫 단계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이끄심에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회개의 탄원을 하시며 또한 저들을 용서해 주실 수 있고 저들의 이름 위에 적힌 죄에 대하여 사유의 표를 찍을 수 있기 위하여 거듭거듭 인간에게 기별을 보내신다. 그런데 회개함이 없어서야 될 말인가? 주님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 될 것인가? 주님의 자비의 제의를 어찌 모른 척하며 주님의 사랑을 어찌 냉정하게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만일 인간이 주님의 자비와 사랑을 거부한다면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매개물에서 스스로 절연하게 되는데 오직 하나님께서만 회개한 죄인을 용서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시며 당신의 성령의 탄원을 통하여 인간에게 회개를 호소하신다. 회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당신께서 용서하시는 사람을 먼저 회개케 하신다.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것에 대하여 전정한 회개를 하고 그리스도를 죄인의 구원자이며 대언자로 믿을 때에 가장 큰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사랑의 표현을 통해서 저들을 이끄실 때 비로소 용서의 기쁨과 하나님의 화평을 이해할 수 있다. 만일 저들이 주님의 이끄심에 반응을 보이고 주님의 은혜에 대하여 저희 심령을 복종시킨다면 주님께서는 저들을 단계적으로 이끌어 당신에 대한 충만한 지식을 얻게 하실 것이며 바로 이것이 영생에 이르는 길이다.

2그리스도께서는 죄인에게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나타내심으로써 이스라엘이 회개하여 죄의 사유함을 받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다. 죄인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죄인의 범죄의 고통을 맛보시며 죄의 형벌을 받으시는 것을 바라볼 때, 십자가의 죽음의 두려운 표현으로써 악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심과 타락한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게 될 때,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한 율법을 범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향하여 회개하게 될 것이다. 그는 그의 생애의 중심이 되시는 거룩하신 구세주께서 자기의 대치물이 되셨고 담보물이 되셨으며 대언자가 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활용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한 죄인에게 당신의 자비와 진리를 보여 주시며 당신의 사유하심과 사랑을 베풀어 주실 수 있으시다.

3그러나 사단은 자기가 막을 수만 있다면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라도 단 한 영혼도 죄의 포로가 된 신세를 피할 수 없게 할 것이다. 비록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주심으로 하나의 풍성한 은사로서 온 하늘을 부어주셨고 하늘의 가장 고귀한 은사를 주셨으며 하늘의 보화들을 모두 우리에게 허락하셨으나 원수는 회개한 죄인에게 마치 하나님이 엄격하고 냉혹하며 죄인을 용서해 주기 싫어하는 하나님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때때로 자신의 죄로 절망 가운데 빠진 사람들이 나에게 편지를 써서 보낸다. 저들은 한결같이 “저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상실한 것만 같아서 두려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저와 같은 인간에게도 희망이 있을까요?” 라고 물어왔다. 이러한 불쌍한 영혼들에게 다음과 같은 기별을 보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하늘 아버지께서는 풍성하게 나누어줄 양식을 가지고 계십니다. 일어나서 그대들의 하늘 아버지께로 가십시오.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대들이 아직 먼 거리에 있을 때에 그대들에게 달려가 맞이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에게 당신의 사랑과 동정심을 베푸실 것입니다.”

4원수가 홍수처럼 밀려와 죄에 대한 생각으로 그대들을 삼키려 할 때에 그에게 이렇게 말하라. “나는 나 자신이 죄인임을 잘 알고 있다. 만일 내가 그 사실을 몰랐다면 구세주께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7)고 말씀하셨다. 나는 죄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나아갈 자격을 얻게 되었다. 나는 죄가 많으며 더러워진 인간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굴욕과 죽음을 맛보셨으며 마땅히 내가 받아야 할 저주를 주님께서 없이해 주셨다. 나는 주님께 나왔다. 나는 주님을 믿는다. 나는 주님의 분명한 약속을 주장한다.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신다.(요 3:16)

5통회하는 영혼의 그러한 탄원의 기도가 거절을 당할 것인가?-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으로 인류에게 향한 주님의 무한하신 사랑이 확증되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오는 모든 사람들, 비록 가장 미천한 인간까지라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며 또한 구원하실 수 있으시다.

6그 때에, 그대들은 어린아이처럼 하나님께 나아갈 것이며 주님의 발 아래 꿇어 엎드려 탄원자로서 그들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내려오시게 하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갈 필요가 없으며 주님을 올라오시게 하기 위하여 땅 속으로 내려갈 필요가 없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다. 그리스도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하셨다. 만일 우리가 허락만 한다면 주님께서는 얼마나 기꺼이 영혼의 성전을 당신의 소유로 삼으시려고 하실 것인가! 주님께서는 마음문 밖에 서서 기다리시며 문을 두드리는 분으로 당신 자신을 상징하셨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들어오시지 않고 계신가? 그 까닭은 죄에 대한 사랑이 마음 문을 닫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완전히 포기하기로 마음 먹자마자, 우리의 범죄를 인정하는 순간에, 인간의 영혼과 구세주 사이에 가로막혀 있던 장벽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 것이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거룩하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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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복과 자복*

7그러나 우리들은 죄를 회개하기 위하여 골방에 들어갈 필요가 없으며 마치 루터가 하나님의 은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행한 것처럼 우리 자신의 죄악을 속죄하기 위하여 우리들 자신에게 고행을 치르게 할 필요가 없다. 다음과 같은 문답의 말씀이 있다.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7, 8).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라고 말하였다.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요일 1:9)신다고 말하였다. 우리가 죄의 사유하심을 받지 못하는 오직 한 가지 이유는 우리의 범죄로 상함을 받으시고 우리의 허물로 찔림을 받으신 주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며 우리에게 죄가 있다는 것과 주님의 자비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혼의 깊은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자복은 무한하신 동정심에 이르는 길을 찾게 될 것이며 주님께서는 상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통회하는 자의 영혼을 구원하신다.

8죄의 자복이 저희 인격의 존엄성을 훼손시키며 저희 동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감소되리라고 상상하는 자들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이러한 모순된 생각을 고집하므로 허물을 발견하고도 자복하지 않으며 오히려 저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행한 잘못된 행실을 묵과해 버린다면 저들은 자신의 생애에 고통을 가중(加重)시키는 것이 되며 다른 사람들의 생애에 어두운 그늘을 던지는 것이 된다. 죄를 자복하는 일은 그대들의 위신을 손상시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거짓된 위신을 떨쳐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거룩하신 바위이신 주님께 떨어져 부서질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대들에게 참되고 신령한 위신을 주실 것이다. 교만, 자존심 및 독선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죄를 자복하지 못하고 허락의 말씀을 주장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하나님께 아무것도 숨기지 말 것이며 그대들의 형제들에게 범한 죄를 자복하는 일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약 5:16). 아직도 많은 죄들이 자복하지 않은 채 마지막 심판의 날을 위하여 죄인에게 맞서고 있다. 오히려 지금 거룩한 희생자께서 그대들을 위하여 대속의 탄원을 하고 계실 때에 그대들에게 맞서고 있는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편이 훨씬 좋을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하여 하나님의 뜻을 받드시 배우도록 해야 한다. 그대들의 영혼의 건강과 다른 사람들의 구원은 그대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따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 5:6, 7). 겸비하고 상한 마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사랑과 갈바리의 십자가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의 참여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을 이행하는 자들은 풍성한 축복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항복을 명함

9우리들은 하나님께 우리들의 심령을 항복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새롭게 하시고 성화하게 하시며 하늘 궁전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들은 어떤 특별한 시기를 위해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들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야 하며 죄의 종이 되기를 거부해야 할 것이다. 그대들은 여러 번에 걸쳐서 매번 조금씩 죄를 버려야 할 것이라고 상상하는가? 아, 그 가증한 죄를 당장 버리도록 하라. 그리스도께서 미워하시는 것들을 미워하고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는 것들을 사랑하라. 주님께서 그대들을 죄에서 정결케 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죽으심과 고난으로써 이미 섭리를 베풀어놓지 않으셨는가? 우리들이 죄인이며 신령하신 바위에 떨어져 부서진다는 의미를 깨닫기 시작할 때에 영원하신 팔이 우리들을 안아 주시며 우리들을 예수님의 마음에 가까이 이끌어주실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우리들은 주님의 사랑에 매혹될 것이며 우리들 자신의 의에 대하여 지긋지긋하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들은 십자가의 바로 밑까지 가까이 갈 필요가 있다. 그곳에서 우리들 자신이 겸비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고상하게 드러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온전하다고 느끼며 상당히 선하며 자기 자신의 상태에 대하여 만족하는 자에게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의는 아무 쓸모 없는 것이 될 것이다. 거룩한 빛과 도우심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 자의 마음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실 자리가 없다.

10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은혜가 있으시며 우리들은 당신의 영과 권능을 큰 분량으로 받을 수 있다. 독선의 찌꺼기를 주워먹지 말고 주님께로 가라. 주님께서는 그대들에게 입힐 가장 좋은 예복을 가지고 계시며 그대들을 받으시기 위하여 팔을 넓게 벌리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더러운 두루마기를 그에게서 벗겨버리고 새옷으로 갈아입히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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