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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에서의 위기*

제 41 장

1백성들이 자기를 왕이라 선언하는 것을 금하셨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생애의 역사에 전환점이 이르렀다는 것을 아셨다. 오늘 예수를 왕으로 추대하기를 원하였던 군중들이 내일은 그에게서 돌아설 것이었다. 이기적인 야심이 실망을 당하게 될 때 그들의 사랑은 증오로, 찬송은 저주로 변할 것이었다. 이것을 아시면서도 예수께서는 위기를 피할 어떤 조치를 강구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어떤 세상적 보수를 바라지 말 것을 밝히셨었다. 제자가 되기를 원하여 나왔던 자에게 예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말씀하셨다. 만일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세상을 함께 섬길 수 있었더라면 군중들은 예수께 충성을 바쳤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와 같은 봉사를 받으실 수 없었다.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은 자들 가운데는 세상적 나라에 대한 희망에서 그에게 이끌렸던 자들이 많이 있었다. 이런 자들은 잘못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되었다. 보리떡의 이적에서 가르치신 깊은 영적 교훈은 이해되지 못하였다. 이 교훈은 명백히 드러나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이 새로운 계시는 그것과 함께 더 심한 시험을 가져올 것이었다.

2보리떡의 이적에 대한 소식은 원근에 퍼져서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이 예수를 보기 위하여 벳새다로 모여 들었다. 무수한 사람들이 육로로 혹은 바다를 건너 찾아 왔다. 전날 밤에 예수를 떠나갔던 사람들이 아직도 그 곳에서 예수를 뵙게 될 것을 기대하면서 돌아왔다. 왜냐하면 예수를 건너편으로 실어다 줄 수 있는 배가 거기에는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찾아보았으나 헛수고였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를 찾으면서 가버나움으로 돌아갔다.

3그 동안에 예수께서는 불과 하루만에 게네사렛에 돌아오셨다. 예수께서 상륙하셨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단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 채로 메고 나아”(막 6:55)왔다.

4잠시 후에 예수께서는 회당에 가셨는데 벳새다에서 온 자들이 거기서 예수를 발견하였다. 그들은 제자들에게서 예수가 어떻게 바다를 건너셨는지를 들었다. 격노한 폭풍, 역풍을 거스려 여러 시간을 소용없이 노를 저었던 일, 물 위를 걸어오시던 그리스도의 모습, 그리하여 겁내던 일, 그의 안심시키는 말씀, 베드로의 모험과 그 결과, 태풍의 잠잠해짐과 배가 뭍에 닿던 일 등이 궁금히 여기는 군중들에게 일일이 자세하게 설명되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것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예수의 주위에 모여서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하고 물었다. 그들은 예수 자신의 입을 통하여 이적에 대한 더욱 자상한 설명을 듣고자 하였다.

5예수께서는 그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고 심하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무슨 가치 있는 동기에서 예수를 찾은 것이 아니라 떡을 얻어 먹고 배가 부른 때문에 예수께 붙음으로써 현세의 이익을 좀더 얻기를 바랐던 것이다. 구주께서는 그들에게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분부하셨다. 단지 물질적인 유익만을 구하지 말라. 금생을 위하여 준비하는 것을 첫째의 노력으로 삼지 말고 영적 양식, 곧 영생하도록 있는 그 지혜 얻기를 힘쓰라. 하나님의 아들만이 이것을 주실 수 있으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이기 때문이다.

6잠깐 동안 청중들의 관심이 일깨워 졌다.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하고 부르짖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 위하여 많은 괴로운 일들을 실행하여왔다. 그들은 더 큰 공로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계율이 있다면 어느 것이든지 듣고자 하였다. 그들의 질문의 뜻은 곧 우리가 하늘에 들어가려면 무엇을 행할까요? 영생을 얻으려면 우리는 어떤 값을 치러야 합니까? 하는 것이었다.

7“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었다. 하늘의 값은 예수이다. 하늘에 들어가는 길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요 1:29)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서이다.

8그러나 사람들은 이 하늘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메시야가 행하시리라고 예언된 바 그 사업을 행하셨으나 그들은 이기적 야심으로 상상하던 만큼 메시야의 사업을 목격하지는 못하였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무리들을 보리떡으로 단 한번 먹이셨으나 모세의 시대에는 이스라엘이 사십 년간이나 만나로 공급을 받았으므로 그들은 메시야에게서 더욱 큰 축복을 기대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불만스러운 마음은 예수께서 저희가 목격하였던 바 그렇게 많은 이적을 행하실 수 있으신데도 어찌하여 당신의 모든 백성에게 건강과 힘과 재물을 주시고 그들을 억압하는 자로부터 해방시키시고 능력과 영예를 주어서 그들을 높이실 수가 없을까 하고 의심을 품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내신 자라 주장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는 것을 거절하신 사실은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였다. 예수께서 거절하신 것은 오해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 자신이 자기 사명의 신성한 성격에 대해서 의심이 있기 때문에 자기 주장을 감히 역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와 같이 그들은 저희 마음을 불신을 향해서 열었으며 사단이 심은 씨는 곡해와 배반 가운데서 그와 같은 종류의 열매를 맺었던 것이다.

9한 랍비는 조롱이 섞인 어조로 묻기를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하였다.

10유대인들은 모세를 만나를 주신 자로 공경함으로 하나님의 도구에 찬양을 돌리고 그 일을 성취하신 하나님은 잊어버렸다. 그들의 조상들은 모세에 대하여 불평하고 그의 거룩한 사명을 의심하고 부인하였다. 그와 같은 정신으로 그 후손들은 하나님의 기별을 그들에게 전하신 분을 거절하였다. 예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만나를 주신 분께서 그들 가운데 서 계셨다. 히브리인들을 광야 가운데서 인도하시고 하늘에서 내리는 떡으로 날마다 그들을 먹이신 분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었다. 그 양식은 하늘에서 오신 참 떡의 한 표상이었다. 참된 만나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충만함에서 흘러나오는 생명력을 주는 성령이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서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요 6:33)고 말씀하셨다.

11예수의 말씀을 듣는 무리 중 어떤 자는 여전히 예수께서 세상의 양식에 대해서 언급하시는 줄로 생각하고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하고 부르짖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고 명백히 말씀하셨다.

12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신 표상은 유대인들이 잘 아는 것이었다. 모세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신 8:3; 렘 15:16)이라고 기록하였다. 랍비들도 떡을 먹는다는 것은 영적 의미로 율법을 연구하고 선행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었으며 메시야가 오시면 이스라엘을 다 먹여 주실 것이라고 흔히 말하고 있었다. 선지자들의 가르침은 보리떡의 이적 가운데 있는 깊은 영적 교훈을 명백히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회당에서 이 교훈을 당신의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공개하시려고 힘쓰셨다. 그들이 만일 성경을 이해했었더라면 예수께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뜻을 이해하였을 것이다. 바로 그 전날에 기진하고 피곤하였던 큰 무리는 예수께서 주신 떡을 먹었던 것이다. 저희가 그 떡을 먹음으로 육체적인 힘과 원기 회복을 얻은 것처럼 영생에 이르는 영적 힘을 그리스도에게서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부언하셨다.

13그들은 성령의 증거와 그들의 심령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한 산 증거가 날마다 그들 앞에 나타났건만 그들은 여전히 다른 표적을 요구하였다. 설혹 표적을 준다 할지라도 그들은 이전과 다름 없이 여전히 믿지 아니할 것이었다. 그들이 이미 보고 들은 것을 통하여서도 확신하지 않는다면 더 기이한 이적을 보일지라도 그것은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불신은 언제든지 의심에 대한 변명을 찾을 것이며 가장 확실한 증거라도 논박할 것이다.

14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이 완고한 심령들에게 호소하셨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예수께서는 믿음으로 자기를 영접한 자는 다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한 사람도 잃어버리는 바 될 수 없다. 장래의 생명에 대해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논쟁할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은 죽음에서 오는 슬픔으로 더 이상 통곡할 필요가 없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15그러나 백성들의 지도자들은 성이나서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하였다. 그들은 예수의 미천한 가문(家門)에 대하여 경멸조로 언급함으로써 편견을 일으키고자 애썼다. 그들은 예수를 갈릴리의 노동자요, 그의 가족은 빈한하고 천한 사람들이라고 경멸하는 암시를 주었다. 그들은 이 불학 무식한 목수의 주장은 거들떠 볼 가치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예수께서 신비로운 탄생을 하셨다는 이유로 그들은 예수가 수상한 태생을 하였다고 암시함으로써 예수의 탄생에 있는 인간적 환경을 그의 경력 중의 한 오점이라고 주장하였다.

16예수께서는 당신의 탄생의 오묘를 설명하려고 시도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바다를 건너시던 것에 관한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당신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에 대한 질문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그는 자기의 생애의 특징을 이룬 이적에 주의를 환기시키지 아니하셨다. 그는 자원하여 자신의 명성을 거절하고 스스로 종의 모양을 취하셨다. 그러나 그 말씀과 업적은 그의 품성을 드러냈다. 하늘 빛에 마음을 연 자는 모두 그가 “아버지의 독생자”로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요 1:14)심을 깨달았다.

17바리새인들의 편견은 저희의 질문이 나타낸 것 이상으로 뿌리가 깊었다. 그 편견은 저희 마음의 강퍅함에 그 뿌리가 있었다. 예수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과 행동은 그들의 마음속에 반항심을 일으켰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품고 있던 정신이 예수의 정신과 조화를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18“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아버지의 이끄심에 응답하는 자들 외에는 아무도 그리스도께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심령들을 당신께로 이끄시고 계시는 바 그의 이끄심에 저항하는 자들만이 그리스도께 나오기를 거절할 것이다.

19“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는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사 54:13)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언급하셨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성경 말씀을 자신들에게 전용하였다. 하나님이 그들의 교사였다는 것은 그들의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예 수께서는 이 주장이 얼마나 헛된 것임을 보이셨으니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아버지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인류는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를 감당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 배운 자들은 그 아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왔었으며, 그들은 나사렛의 예수에게서 자연과 계시를 통하여 아버지를 선포하신 그분을 인정할 것이었다.

20“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 이 말씀들을 들었던 사랑하는 요한을 통하여 성령께서는 교회에게 이렇게 언명하셨다.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요일 5:11, 12)다. 또 예수께서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한 육체가 되신 것은 우리가 그와 더불어 한 정신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무덤에서 나오게 되는 것은 이러한 결합으로 말미암는 것이니 이는 단지 그리스도의 능력의 나타남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생명이 우리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그 진정한 품성 그대로 보고 그를 마음에 받아들이는 자들은 영생을 얻는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이며, 믿음으로 마음에 성령을 받아들일 때 곧 영생이 시작된다.

21사람들은 그리스도께, 그들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은 만나를 가리키면서 마치 그 양식의 공급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보다 더 큰 이적이나 되는 것처럼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이 오셔서 주시고자 하는 축복에 비교해 볼 때에 그 선물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지를 보여 주셨다. 만나는 세상에서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을 뿐 사망의 접근을 방지하거나 죽지 아니함을 보증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하늘의 떡은 영생에 이르도록 영혼에게 자양분을 공급할 것이다. 구주께서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상징의 말씀에 다른 또 하나의 상징을 첨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죽으심으로써만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으셨다. 다음 말씀에서 그는 자기의 죽음을 구원의 방편으로 지적하셨다. 그는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라고 말씀하신다.

22유대인들은 멸하는 천사가 애굽의 집들을 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 받은 밤을 기념하여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경축하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유월절 양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고 그 표상을 통하여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하여 자신을 바치신 분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표상 그 자체를 가장 중요시하는 반면에 그 의미는 무시하였다. 그들은 주님의 몸을 식별하지 못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유월절 봉사에서 상징된 진리를 말씀으로 가르치셨다. 그러나 그 진리는 여전히 식별되지 못하였다.

23랍비들은 성을 내면서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고 부르짖었다. 그들은 마치 니고데모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요 3:4)라고 물었을 때 그리하였던 것처럼, 예수의 말씀을 문자적인 의미로 이해하는 체하였다. 그들은 어느 정도 예수의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였으나 그것을 기꺼이 시인하려고 하지 않았다. 예수의 말씀을 곡해함으로써 그들은 사람들이 예수께 대하여 편견을 품게 되기를 원하였다.

24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상징적인 표현을 누그러뜨리지 않으셨다. 그는 오히려 더 강력한 말로 그 진리를 반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25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은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신다는 것과 우리가 그 안에서 완전하게 된다는 것을 믿고 그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예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그의 사랑을 바라보고 그의 사랑을 깊이 생각하고 거기서 깊은 감명을 받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양식이 신체에 영향을 주듯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심령에 영향을 끼치셔야만 한다. 음식은 우리가 그것을 먹지 않는 한 또는 그것이 우리 신체의 한 부분을 구성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도 끼칠 수 없다. 그와 같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알지 않는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다. 이론적 지식은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한다. 그리스도를 먹고 그를 마음에 받아들여 그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 되게 하여야 한다. 그의 사랑과 그의 은혜가 우리의 생애에 소화되어야 한다.

26그러나 이런 상징도 신자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갖는 특권을 나타낼 수 없다. 예수께서는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아버지를 믿는 믿음으로 사신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내어 맡기셨으므로 그의 생애에는 아버지께서만 나타나셨다. 그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그를 에워싼 악에 의해 더럽힘을 받지 않으시고 세상을 사셨다. 이와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이기신 것처럼 이겨야 한다.

27그대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인가? 그렇다면 영적 생애에 관하여 쓰여진 모든 기록은 그대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며 이 모든 것은 그대 자신을 예수께 연합시킴으로써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대의 열성은 시들어지고 그대의 처음 사랑은 식어가는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사랑을 다시 받아들여라.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셔라. 그리하면 그대는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하나가 될 것이다.

28불신하는 유대인들은 구주의 말씀 가운데서 문자적인 의미 이외의 다른 뜻은 보려고 하지 않았다. 의문의 율법상 피를 먹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므로 그들은 이제 그리스도의 말씀을 신성을 모독하는 말로 해석하고 저희끼리 이에 대해서 논란하였다. 심지어는 대부분의 제자들까지도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고 말하였다.

29구주께서는 그들에게 대답하시면서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

30세상에 생명을 주는 그리스도의 생명은 그의 말씀 가운데 있다. 예수께서 질병을 고치시고 사귀를 내어 쫓으신 것은 그의 말씀으로 하신 것이었으며, 말씀으로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고 죽은 자를 일으키셨으며 사람들은 그의 말씀에 능력이 있음을 증언하였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와 교사들을 통하여 옛적에 말씀하신 것처럼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셨다. 온 성경은 그리스도를 나타낸 것이며 구주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의 믿음을 말씀위에 고정시키기를 원하셨다. 육체로 계신 예수께서 물러가실 때 그 말씀은 그들의 능력의 원천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의 주와 같이 그들도”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마 4:4)었다.

31우리의 육체의 생명이 음식에 의하여 유지되는 것처럼 우리의 영적 생명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지된다. 그리고 사람마다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생명을 얻어야 한다. 자양분을 위하여 스스로 먹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우리도 그 말씀을 우리 각자를 위하여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단지 다른 사람의 지식을 중개로 하여서만 말씀을 얻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깊은 주의를 가지고 성경을 연구하여야 한다. 우리는 한 구절을 취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 구절 가운데 넣어 주신 사상을 확인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시켜야 한다. 우리는 그 사상이 우리의 것이 되어 주께서 말씀하신 바를 알 때까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32예수께서는 당신의 허락과 경고 가운데서 나를 생각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내가 저를 믿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경험은 나의 경험이 되어야 한다. 기도와 허락, 교훈과 경고는 나의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이와 같이 진리의 원칙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소화시킬 때에 그 원칙은 자신의 일부가 되고 생명의 원동력이 된다. 심령에 받아들인 하나님의 말씀은 사상을 형성하고 품성을 발달시킨다.

33믿음의 눈으로 예수를 항상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주리고 목마른 백성들에게 가장 귀중한 계시를 나타내실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개인의 구주이심을 알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살 때에 그들은 그 말씀이 영이요 생명임을 발견할 것이다. 이 말씀은 본성적이며 땅에 속한 성정을 멸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 생명을 준다. 성령께서는 보혜사로 심령에 임하신다.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제자 안에서 재창조되고 제자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사랑이 증오를 대신하고 마음은 신령한 모습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곧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을 먹는 것이다.

34그리스도께서는 당신과 당신을 따르는 자들과의 관계에 관한 신성하고도 영원한 진리를 말씀하셨다. 그는 당신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품성을 아셨으며 그의 말씀은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당신의 교훈을 믿을 것이요 또한 그대로 행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자는 다 그의 품성에 참여하여 그의 품성과 일치하게 될 것이었다. 이것은 저희가 품은 야심을 포기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 자신을 예수께 완전히 굴복시키는 것을 요구하였다. 그들은 스스로를 희생하는 온유하며 겸손한 마음을 가지라는 요구를 받았다. 만일 저희가 생명의 선물과 하늘의 영광을 받아 누리려고 한다면 저희는 갈보리의 사람 예수가 걸어가신 좁은 길로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35그 시험은 너무나 컸다. 예수를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던 자들의 열정은 식어갔다. 그들은 회당에서 하신 이 설교가 저희의 눈을 뜨게 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가 메시야가 아니라는 솔직한 고백이요 또한 그와 더불어 관계를 맺는다 하여도 지상의 보상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예수의 이적을 행하시는 능력을 환영하였다. 그들은 질병과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열망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의 자아 희생의 생애에 동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오묘한 영적 왕국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전에 예수를 찾았던 성실하지 못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더이상 그를 갈망하지 않게 되었다. 예수께서 만일 당신의 권능과 세력을 로마로부터 자유를 획득하는데 행사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예수와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을 것이었다.

36예수께서는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고 그들에게 명확하게 말씀하시고,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부언하셨다. 만일 저희가 예수께 이끌리지 아니하였다면 그것은 저희 마음이 성령을 향하여 열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저희가 깨닫기를 예수께서는 원하셨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사람이 예수의 영광을 보는 것은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성령을 통하여 심령에 믿음의 불이 켜지기까지는 이 영광은 감추어져 있다.

37제자들은 불신에 대한 공적인 책망을 받음으로 한층 더 예수와 멀어지게 되었다. 그들은 심히 불쾌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구주를 상심하게 하고 바리새인들의 악의를 만족시키기를 바라면서 예수를 등지고 멸시하면서 떠나갔다. 그들은 결정하였다. 곧 정신이 없는 형식, 알맹이 없는 껍질을 취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결정은 그 후 다시는 번복되지 않았는데 이는 그들이 예수와 더 이상 같이 다니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38“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마 3:12)리라. 이 때는 깨끗하게 하는 시기들 중의 하나였다. 진리의 말씀에 의하여 쭉정이는 알곡과 분리되고 있었다. 저들은 너무나 허영심이 많고 독선적이어서 견책을 받을 수가 없었고 겸비의 생애를 감수하기에는 너무나 세상을 사랑하였으므로 대부분 예수에게서 떠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그와 똑같은 일을 행하고 있다.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이 제자들이 시험을 받은 것처럼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시험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진리가 마음속에 들어올 때에 저희 생애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은 자신에게 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극기의 사업을 기꺼이 감당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죄가 발각될 때 그들은 성을 낸다. 그 제자들이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고 투덜거리면서 예수를 떠난 것처럼 그들도 성을 내면서 떠나간다.

39칭찬과 아첨은 저희 귀를 즐겁게 할 것이나 진리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그들은 진리를 들을 수 없다. 군중이 따르고 무리들을 먹여 주고 또 개선의 함성이 들릴 때에는 그들의 음성이 찬양으로 우렁차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의 살피심이 죄를 드러내고 그들에게 그 죄에서 떠나라고 명령할 때 그들은 진리에 등을 돌리고 예수와 더이상 동행하지 않는다.

40이런 불만을 품은 제자들이 그리스도에게서 돌아섰을 때에 한 다른 정신이 그들을 지배하였다. 한때는 그토록 흥미를 느꼈던 예수에게서 그들은 아무런 매력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예수의 원수들을 찾아냈으니 이는 저희가 그 원수들의 정신과 사업에 일치하였던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그릇 해석하고 그 진술을 위증(僞證)하며 그 동기를 비난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대적할 수 있는 재료는 무엇이나 다 수집함으로써 저희의 행동을 지지하였다. 이런 거짓 소문으로 말미암아 분노가 크게 격발 되었으므로 예수의 생명은 위태롭게 되었다.

41나사렛 예수가 스스로 자기는 메시야가 아니라고 자백하였다는 소문이 신속히 퍼졌다. 갈릴리에서의 이와 같은 일반적인 감정의 흐름은 일년전의 유대 지방에서처럼 예수에 대한 반대로 돌아섰다. 이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지극히 슬픈 일이었다. 그들은 저희에게 세속적인 권력을 주는 정복자를 원하였으므로 저희의 구주를 거절하였다. 그들은 썩을 양식은 원하였지만 영생하도록 있을 양식은 원치 아니하였다.

42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이었던 자들이 생명이요, 인류의 빛이신 자기에게서 떠나는 것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보셨다. 그의 긍휼하심은 인정을 받지 못하며 사랑은 보답을 보지 못하며 자비는 무시를 당하고 구원은 거절을 당하였다는 자각이 그의 마음을 형언하기 어려운 슬픔으로 충만하게 하였다. 예수로 간고를 많이 겪은자요 질고를 아는 자가 되게 한 것은 이런 사태들이었다.

43예수께서는 자기를 떠나는 자들을 방해하려고 하지도 아니하시고 열 두 제자를 돌아다보시고 “너희도 가려느냐”고 말씀하셨다.

44이에 베드로는 반문하여 대답하기를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하였다.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45“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이스라엘의 교사들은 형식주의의 노예였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항상 다투었다. 예수를 떠난다는 것은 율례와 규례를 고집하는 자들과 자신의 영화를 구하는 야심적인 사람들 가운데로 타락하는 것이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이후에 그들이 그 이전에 산 모든 생애에서보다 더욱 큰 평화와 기쁨을 발견하였다. 죄인들의 친구되시는 예수를 조롱하고 핍박하는 자들에게로 어떻게 돌아갈 수 있겠는가? 제자들은 오랫동안 메시야를 사모하여 왔다. 이제 그가 오셨으니 그의 임재하심에서 떠나서 예수의 생명을 노리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는 이유로 저희를 박해한 자들에게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46“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랑과 자비의 교훈을 떠나서 불신의 흑암과 사악한 세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구주께서 당신의 놀라운 이적을 목도하였던 많은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으실 때에 베드로는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자”라는 말을 함으로써 제자된 믿음을 표시하였다. 영혼의 닻을 잃는다는 생각만 하여도 그들의 마음은 공포와 고통으로 가득 찼다. 구주를 잃는다는 것은 캄캄하고 폭풍우치는 바다에 표류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47예수께서 하신 많은 말씀과 행동은 유한한 인간의 생각에는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언행 하나하나에는 우리를 위한 구속사업에 있어서 명확한 목적이 있었다. 모든 언행은 그에 따르는 결과를 미리 생각하시고 행하여진 것이었다. 우리가 만일, 그분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모두 중요하며 완전하고 그의 사명과 일치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48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하시는 일과 방법은 이해할 수 없으나 사람들을 대하시는 모든 행동의 기저(基底)가 되는 그의 크신 사상을 식별할 수는 있다. 예수께 가까이 나가는 생애를 사는 자는 많은 경건의 오묘를 깨달을 것이다. 그는 품성을 시험하여 그 마음의 목적을 밝히 드러내는 바 그 책망을 주시는 자비를 깨달을 것이다.

49예수께서 당신의 많은 제자들이 돌아선 원인이 된 시험하는 진리를 제시하셨을 때에 그는 당신의 말씀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을 아셨다. 그러나 그는 성취하실 자비의 목적을 가지고 계셨다. 예수께서는 시험이 올 때에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 하나하나가 심한 시련을 당할 것을 미리 보셨다. 겟세마네에서의 예수의 고뇌, 배신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일등은 그들에게 가장 쓰라린 시련이 될 것이었다. 시험을 미리 주지 않으셨다면 단순히 이기적인 동기에서 움직이던 많은 사람들이 제자들과 관련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었다. 저희의 주님이 심판정에서 선고를 받을 때, 예수를 저들의 왕으로 환영하던 군중이 그를 향하여 노성을 발하고 욕설할 때, 조롱하는 군중이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하고 외칠 때, 다시 말하면 저희의 세속적인 야심이 실망을 당하였을 때에 이 이기주의 자들이 예수께 대한 저희의 충성을 포기함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가장 크게 바라던 희망이 소멸됨으로써 슬퍼하고 실망한 제자들에게 가일층 쓰라리고 마음 괴롭히는 슬픔을 안겨 줄 것이었다. 그 어두운 시기에 예수에게서 돌아선 자들의 모본이 다른 사람들까지 데려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친히 임재하심으로써 당신의 참된 제자들의 믿음을 여전히 북돋아 줄 수 있을 동안에 이 위기를 일으키셨던 것이다.

50자기 앞에 기다리고 있는 운명을 다 아신 긍휼 많으신 구주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길을 고르게 하셨고 저희로 가장 극렬한 시험에 대비하게 하셨으며 마지막 시험을 위하여 저들의 힘을 북돋아 주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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