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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가장 크냐”*

제 48 장

1가버나움으로 돌아가실 때 예수께서는 백성들을 가르치던 잘 알려진 장소로 발길을 돌리지 아니하시고 함께 임시로 그의 가정이 될 집을 조용히 찾으셨다. 갈릴리에서 더 머무르시는 동안 그가 목적하신 바는 무리를 위하여 일하시는 것보다는 오히려 제자들을 가르치시는 것이었다.

2갈릴리 지방을 여행하실 때 그리스도께서는 다시금 당신 앞에 놓인 사건들에 대하여 제자들의 마음을 준비시키려고 힘쓰셨다. 그는 제자들에게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죽임을 당하고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아직도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큰 슬픔의 그림자가 그들 위에 드리웠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경쟁하는 정신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나라에서 누가 가장 크다고 여김을 받을 것인지에 대하여 서로 논쟁을 벌였다. 그들은 이 분쟁을 예수께 숨겨야겠다고 생각하였으므로 다른 때와 같이 그의 곁에 바싹 접근하지 아니하고 뒤쳐져 갔으므로 저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갔을 때에는 예수께서 그들보다 앞서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다 읽으시고 그들에게 권면하고 훈계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는 저들이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이고자 마음문을 열만한 조용한 시간이 이르기까지 기다리셨다.

3그들이 동네에 도착하자 얼마 안되어 성전세를 받는 자가 베드로에게 와서 “너의 선생이 반 세겔(성전세로 바치는 금액 난외주석)을 내지 아니하느냐”고 물었다. 이 세금은 국가의 세금이 아니라 종교적인 기부금으로서 모든 유대인은 성전을 유지하기 위하여 매년 바치도록 되어 있었다. 그 세를 바치지 않겠다고 하면 성전에 대해서 불충실 한다고 간주될 것이었는바 랍비들은 이것을 매우 무거운 죄로 평가하고 있었다. 랍비들이 만든 법에 대한 구주의 태도와 인습의 옹호자들에 대한 솔직한 책망은 그가 성전의 봉사를 전복시키려고 한다는 비난을 할 구실을 주었다. 이제 예수의 원수들은 그에 대해 의혹을 품게 할 기회를 포착했다. 세금 징수자가 쾌히 그 일에 협력하였다.

4베드로는 세금 받는 자의 질문 가운데서 성전에 대한 그리스도의 충성에 관계되는 은근한 암시를 알아차렸다. 그는 선생의 명예를 수호하기 위한 열성으로 주님과 상의도 하지 않고 예수께서 세를 바칠 것이라고 성급하게 대답해 버렸다.

5그러나 베드로는 질문한 자의 목적을 일부밖에는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 당시에는 세금 내는 것을 면제받는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 약간 있었다. 성소 봉사를 위하여 구별되었던 모세 당시의 레위인들은 백성들 가운데서 기업을 받지 못하였다. “레위는 그 형제 중에 분깃이 없으며 기업이 없고…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신 10:9)고 주께서 말씀하셨다. 그리스도 당시에도 여전히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성전을 위하여 특별히 헌신한 자로서 취급을 받았으며 그들에게는 성전의 유지를 위한 연세(年稅)가 요구되지 않았다. 선지자들도 역시 면제를 받았다. 랍비들은 예수에게 세를 요구함으로써 선지자나 선생으로서의 그의 당연한 권리를 무시하고 일개 평범한 사람을 대하듯이 그를 취급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세금을 거절하면 성전에 대하여 불충(不忠) 한 것으로 해석될 것이요, 반면에 세를 바치면 예수가 선지자가 아니라고 하는 그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여김을 받을 것이었다.

6조금 전만 하더라도 베드로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였으나 이제 그는 그의 선생의 신분을 설명할 기회를 놓쳐 버렸다. 예수께서 세를 바칠 것이라고 수금하는 자에게 대답함으로써 베드로는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유포시키려고 애쓰는 예수에 대한 거짓된 관념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 되었다.

7베드로가 집에 들어갔을 때에 구주께서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아니하시고,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고 물으셨다. “타인에게니이다.”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그때 예수께서는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말씀하셨다. 백성들이 저희 왕을 위하여 납세(納稅)를 하지만 왕의 자녀들은 면세된다. 그와 같이 하나님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백성인 이스라엘은 그에게 드리는 봉사를 유지하기 위한 요구를 받으나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는 이런 의무를 행할 필요가 없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성전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면세된다면 성전이 아버지의 집이 되는 예수에게는 얼마나 더 그러하겠는가!

8예수께서 만일 한 마디의 항의도 없이 성전세를 바치셨더라면 그 주장이 정당하다는 것을 사실상 승인하는 것이 되었을 것이요 따라서 그의 신성도 부인하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요구에 응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하셨으나 그 주장을 하게 된 근본 문제에 대해서는 부인하셨다. 세를 지불하실 돈을 준비하심으로써 그는 자신의 신적인 신분에 대한 증거를 보이셨다. 예수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신 자요 그러므로 그 나라의 일개 시민처럼 세를 내실 의무가 없으시다는 것이 명백하여졌다.

9“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지시하셨다.

10예수께서는 그의 신성을 인성으로 가리우셨지만 이 이적으로써 그는 그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이분이 바로 다윗을 통하여 선언한 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시 50:10-12)고 하신 그분이신 것이 분명하였다.

11예수께서는 당신이 세를 바칠 의무가 없음을 명백히 하시는 한편 그 문제에 대해서 유대인들과 쟁론하시지 아니하였는데 그 까닭은 유대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곡해하고 그 말씀으로 자기를 적대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세를 내지 않으심으로써 저들의 분노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부당한 요구이지만 그 일을 행하신 것이다. 이 교훈은 제자들에게 크게 가치가 있을 것이었다. 오래지 않아 성전 봉사에 대한 저희의 관계에 현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었으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기성 질서에 대해서 쓸데없이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가르치셨다. 가능한 한 그들은 그들의 믿음을 오해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피해야 할 것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의 한가지 원칙이라도 희생시켜서는 안 되지만 어느 때에든지 할 수만 있으면 논쟁을 피해야 한다.

12베드로가 바다로 나가고 그리스도와 제자들만 집에 있을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고 “너희가 노중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예수께서 동석하셔서 질문하실 때에는 저희가 노중에서 다투는 동안에 생각하였던 것과는 사태가 판이하게 되었다. 그들은 부끄러움과 양심의 가책으로 잠잠할 뿐 입을 열지 못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죽으실 것이라고 저들에게 말씀하셨던 바 이제 그들의 이기적 야심은 예수의 이기심 없는 사랑과는 심한 대조가 되었다.

13예수께서 당신이 죽임을 당하셨다가 다시 살아나실 것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그는 그들로 그들의 믿음에 대한 큰 시련에 대하여 담론하게 하려고 힘쓰셨다. 그들이 예수께서 그들에게 알려 주려고 하셨던 것을 쉽게 받아들였다면 그들은 쓰라린 고뇌와 절망을 면했을 것이었다. 예수의 말씀은 예수와 사별하여 낙담하는 시기에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무엇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하여 그토록 똑똑히 말씀하셨는데도 그가 곧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리라는 사실을 말씀하셨을 때에 그들의 마음은 왕국이 건설될 것이라는 소망으로 다시금 불타올랐다. 이것이 그들로 누가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이냐 하는 물음을 일으키게 하였던 것이다. 베드로가 바다에서 돌아왔을 때에 제자들은 그에게 구주께서 하신 질문에 대해서 말하였다. 마침내 한 제자가 감히 예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고 여쭈었다.

14구주께서는 제자들을 주위에 모으시고 그들에게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는 제자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엄숙성과 감명적인 것이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식별하신 바를 볼 수 없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왕국의 성질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이 무지가 그들의 다툼의 표면적인 원인이었다. 그러나 참된 원인은 더 깊숙한 곳에 있었다. 왕국의 성질을 설명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얼마 동안은 저희의 분쟁을 진정시킬 수는 있었을 것이나 근본적 원인을 움직이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들이 완전한 지식을 얻은 후였을지라도 우월성에 대한 질문만 나오면 그 다툼은 재연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하여 그리스도께서 떠나신 후에 교회에는 재난이 닥쳐왔을 것이었다. 가장 높은 자리를 탐내는 분쟁은 하늘에서 대쟁투를 발발시키고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오시게 하여 죽게 한 바로 그 정신의 역사(役事)였다. 그리스도의 눈 앞에는 보좌를 두른 모든 천사보다 탁월한 영광을 입고 하나님의 아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아침의 아들” 루스벨의 환상이 떠올랐다. 루스벨은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사 14:12, 14)고 말하였었다. 그리하여 자고심 때문에 하늘 궁정에는 분쟁이 일어나고 많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추방되었다. 루스벨이 진실로 지극히 높은 자와 같이 되기를 바랐다면 하늘에 지정된 자기의 자리를 결코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극히 높은 자의 정신은 이기심 없는 봉사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루스벨이 원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었지 그의 품성은 아니었다. 루스벨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가장 높은 지위를 구하였던 바 그의 정신에 자극되어 움직이는 자마다 그와 같은 일을 행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간과 불화와 분쟁은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지배권은 가장 강한 자의 전리품이 된다. 사단의 왕국은 완력의 왕국이다. 사람마다 다른 사람을 자신의 전진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간주하거나 자신이 더 높은 자리로 오를 수 있는 디딤돌로 생각한다.

15루스벨이 하나님과 동등하게 대우 받을 것을 생각한 반면에 높임을 받은자 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7, 8). 이제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바로 앞에 있었는데 예수의 제자들은 이기심 즉 사단의 왕국의 원칙으로 가득 차서 저희 주님을 동정할 수 없었으며 그들을 위하여 주께서 수욕을 받으실 것을 말씀하셨을 때 그분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16예수께서는 매우 부드러우시나 엄숙한 어조로 옳지 못한 것을 시정하려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하늘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원칙이 무엇인 것과 하늘 조정의 표준에 의하여 평가를 받는 참된 위대함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이셨다. 자만과 높아지는 것을 좋아하는 동기로 움직여지는 자들은 자신을 생각하며, 그들이 받은 선물에 대해 하나님께 어떻게 보답할까를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받을 보수에 대해서 생각하였다. 그들은 사단의 반열에 동참하였으므로 하늘나라에서는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 것이었다.

17명예에 앞서 겸비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침례 요한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천한 지위를 차지하는 교역자를 사람들 앞에서 높은 자리에 채우기 위하여 선택하신다. 가장 어린 아이와 같은 제자가 하나님의 사업에서는 가장 능률적인 사람이다. 하늘의 천사들은 자기를 높이려고 하지 아니하고 영혼을 구원하고자 힘쓰는 자에게 협력할 수 있다. 하늘의 도움의 필요를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자는 그것을 받기 위하여 간구할 것이다. 그리하면 성령께서는 그로 하여금 예수를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심령을 튼튼하고 고상하게 할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와 교통한 후 자신들의 죄 가운데서 멸망해가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일하러 나갈 것이다. 그는 그의 사명을 위하여 기름부음을 받았으므로 많은 식자(識者)와 지적으로 슬기 있는 자들이 실패하는 곳에서 성공할 것이다.

18그러나 사람들이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크신 계획의 성공에 저들이 필수적인 존재라고 생각할 때 주께서는 그들을 제쳐 놓으신다. 그리하여 주께서는 사람들에게 의존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하신다. 그들이 사업에서 제거된다고 하여 그 사업이 중지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욱 큰 권능을 가지고 진전한다.

19예수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나라의 성질에 대해서 교훈을 받는 것으로 넉넉지 아니하였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나라의 원칙에 그들을 일치시켜 줄 마음의 변화였다. 예수께서는 어린아이를 부르시고 그를 제자들 가운데 세우신 후 그 어린이를 자기 팔로 친절하게 안으시면서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말씀하셨다.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함, 자기 부정, 신뢰하는 사랑은 하늘이 가치있게 여기는 속성들이다. 이 속성들이 진정한 위대함의 특성들이다.

20예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의 나라는 세속적인 위엄이나 외식으로 특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셨다. 이런 모든 구별이 예수의 발아래서는 잊혀진다. 부자와 가난한 자, 배운 자와 무식한 자가 계급이나 명성에 대한 아무런 생각 없이 한 자리에서 만난다. 모든 사람이 피로 사신바 된 영혼의 자격으로 서로를 대하며, 그들을 속량해서 하나님께 드리신 그리스도를 모두가 다 의뢰한다.

21진실하고 통회하는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귀중하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인을 그들의 계급이나 재산이나 지능적 위대함이 아닌 그리스도와의 하나됨의 여부로 사람들에게 당신의 인을 찍으신다. 영광의 주께서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자들을 만족히 여기신다. “주께서 또 주와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시 18:35) 라고 다윗은 말하였다.

22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사 66:1, 2)리라.

23구주의 말씀은 제자들의 마음속에 자신에 대한 불신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아무도 그 대답 중에 특별히 지적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요한은 한 경우를 들어서 자기의 행동이 옳았었는지 그 여부를 질문하게 되었다. 그는 어린이 같은 마음으로 예수께 그 일을 공개하였다. 그는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고 말하였다.

24이 사람을 제지함으로써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의 주님의 명예를 염두에 두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것을 위하여 시기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저희 잘못을 시인하고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신 예수의 책망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저희는 그리스도와 친숙하다는 것을 보이는 자들은 아무도 배척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품성과 사업에 깊은 감동을 받아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마음문을 연 자들이 많이 있었으므로 동기를 파악할 수 없었던 제자들은 이 사람들을 낙심시키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하였다. 예수께서 친히 육체로 그들 가운데 계시지 아니하고 저희 수중에 사업이 맡겨졌을 때 그들은 편협하고 배타적인 정신에 빠지지 말고 저희 주께서 보이신 바와 같은 원대한 동정을 나타내야 하였다.

25어떤 사람이 모든 일에 우리 개인의 생각이나 의견에 일치하게 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지 못하게 하는 우리의 행위를 정당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위대한 교사이시니 우리는 판단하거나 억제하지 말고 각기 예수의 발 아래 겸손히 앉아서 그에게서 배워야 한다. 하나님께서 기꺼이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만드신 영혼은 누구나 그리스도의 관용하시는 사랑을 드러낼 통로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빛을 지닌 자들을 낙심시킴으로써 하나님께서 세상에 비추시고자 원하셨던 빛줄기를 차단하지 말도록 얼마나 조심하여야 하겠는가!

26그리스도께서 이끌고 계셨던 한 사람에 대하여 한 제자가 보인 가혹함과 냉정함-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적을 행하던 자를 요한이 금한 것과 같은 행동-은 그 발을 돌이키게 하여 원수의 길에 들어서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그 영혼을 잃어버리게 하는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고 말씀하시면서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막 9:43-45)고 부언하셨다.

27왜 그 이상 더 강렬할 수 없는 이토록 중대한 말씀을 하셨을까? 그 까닭은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수의 제자들이 저희의 동료 인간의 구원에 관하여 하늘의 엄위(嚴威)하신 분께서 보이신 것보다 관심을 덜 보여서야 되겠는가? 영혼마다 무한한 값을 치르고 산 바 되었으므로 한 사람이라도 그리스도에게서 떠나가게 하여 그를 위한 구주의 사랑과 치욕과 고뇌가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 죄를 범하는 일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28“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마 18:7)다. 사단의 충동을 받은 세상은 분명히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반대하고, 그들의 믿음을 파괴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름을 취하고도 여전히 이 일을 행하는 것이 드러나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 우리 주께서는 당신을 섬기노라 하면서 당신의 품성을 그릇 나타내는 자들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신다. 따라서 무리들은 기만을 당하고 거짓된 길로 인도된다.

29죄로 인도하며 그리스도께 욕을 돌리는 습관이나 행습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버리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 영혼에게 유익이 될 수 없다. 영원한 의의 원칙을 어기는 자에게는 하늘의 축복이 따를 수 없다. 그리고 한 가지 죄라도 마음에 품으면 그것은 품성을 저락시키고 다른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기에 넉넉하다. 몸을 죽음에서 구하기 위하여 발이나 손을 절단하거나 심지어 눈을 빼버리는 일이 있거든 하물며 영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를 버리기 위하여는 얼마나 더 힘써야 할 것인가!

30의문(儀文)의 제사에서는 제물마다에 소금을 쳤다. 향을 피우는 것과 같이 이것은 그리스도의 의만이 그 제사를 하나님께 가납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예수께서는 이 관습에 대하여 언급하시면서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롬 12:1)고자 하는 자들은 다 구원하시는 소금인 우리 구주의 의를 받아야 한다. 그 때에야 그들은 “세상의 소금”이 되어 소금이 방부(防腐)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사람들 중에서 죄악을 방지한다(마 5:13). 그러나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즉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이 경건의 모양만 있다면 선을 위한 능력은 조금도 없게 된다. 그런 생애는 세상에 구원하는 감화를 끼칠 수 없다. 예수께서는 나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그대의 정력과 능력은 그대가 나의 영을 받는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신다.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되려면 그대는 나의 은혜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경쟁심, 이기심, 높은 지위에 대한 욕심 등이 사라질 것이다. 그대는 자신의 부를 구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의 부를 구하는 그런 사랑을 가질 것이다.

31회개하는 죄인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에 그 눈을 고정시키도록 하라. 그는 바라봄으로써 변화를 받게 된다. 그의 공포는 기쁨으로, 의심은 소망으로 변한다. 감사하는 마음이 솟아오른다. 돌 같은 마음이 부수어진다. 사랑의 조수가 심령에 밀려 들어온다. 그리스도가 그 마음에 계셔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신다. 우리가 질고를 아는 자이신 예수께서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일하시면서 멸시와 조롱과 경멸을 받으시고 그의 사명을 성취하시기까지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쫓김을 받으신 모습을 볼 때, 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큰 피땀을 흘리시고 십자가 상에서 고뇌의 죽음을 당하시는 그런 광경을 보고 알게 될 때에 자아는 더 이상 인정받기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를 바라볼 때 우리는 자신의 냉담함과 무기력과 이기심을 수치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며, 그렇게 될 때 주님을 위한 진정한 봉사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를 따라 십자가를 지고 우리가 사랑하는 그분을 위하여 시련이나 치욕이나 박해를 견디기를 기뻐할 것이다.

32“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 15:1). 믿음이 비록 약하고 그의 발걸음이 어린이의 발걸음처럼 흔들거릴지라도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아무도 낮게 평가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받은 모든 것, 그것이 교육이거나 품위이거나 품성의 고상함이거나 그리스도인 훈련이거나 혹은 신앙의 경험이거나 간에 이 모든 것으로 우리보다 적게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 빚지고 있으므로 우리는 우리의 능력의 한도 내에서 그들을 위하여 봉사하여야 한다. 우리가 강하다면 약한자의 손을 붙잡아 주어야 한다. 항상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뵈옵는 영광의 천사들은 하나님의 어린 자녀들을 섬기는 것을 기뻐한다. 좋지 못한 품성의 특성을 가진 두려워하는 영혼들은 특별히 천사의 보호를 받는다. 천사들은 언제나 자기들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있다. 그들은 자아에 맞서 치열한 투쟁을 하며, 매우 절망적인 환경에 처한 자들과 함께 있다. 그리고 이 봉사에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은 협력할 것이다.

33이 작은 자 중 하나가 정복당하여 그대에게 잘못을 행할 때에 그를 회복시키기 위해 힘쓰는 것이 그대가 할 일이다. 그가 먼저 화해하려고 힘쓸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의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34온유한 심령으로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갈 6:1)며 실수한 자에게 가서 “너와 그 사람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그의 실수를 다른 사람들에게 폭로함으로써 그에게 모욕을 주거나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의 죄나 실수를 공개함으로써 그리스도에게 욕을 돌리는 일이 없게 하라. 종종 실수한 자에게 진리를 분명히 말하여 주어야 하며 그로 하여금 자기의 그릇된 것을 깨닫게 하여 고치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대는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하지 말라. 그대의 모든 노력은 그를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 되게 하라. 영혼의 상처를 치료할 때 가장 섬세한 접촉과 가장 세심한 감정이 필요하다. 갈바리에서 고난을 당하신 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사랑만이 여기에서 그 효력을 낼 수 있다. 불쌍히 여기는 동정심으로 형제가 형제를 대우하되 그대가 성공한다면 그대는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여 허다한 죄를 덮”(약 5:20)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35그러나 이렇게 노력하여도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런 때에는 예수께서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의 공동적인 감화는 먼저 간 사람의 감화로는 성공하지 못한 점을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들은 그 사건에 관계가 없으므로 공정하게 행동하기가 더 쉬울 것이며 이 사실은 실수한 자에게 저희의 권면을 더욱 무게 있게 해줄 것이다.

36그래도 그가 저희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래도 안 된다면 그 때 비로소 그 문제를 전체 신자 앞에 내 놓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자로서 교인들은 범죄자가 회복되도록 연합해서 기도하고 사랑의 탄원을 해야한다. 성령께서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그 방황하는 자가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간구할 것이다. 영감을 받아 말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20)고 말한다. 이 합동 제의를 거절하는 자는 자기를 그리스도에게 결합시킨 끈을 끊음으로써 교회의 교제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를 하나님의 자비에서 끊기운 자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의 이전 형제들은 그를 멸시하거나 등한히 하지 말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우리 안으로 인도하시려고 힘쓰고 계시는 잃어버린 양 중의 하나로서 친절과 동정심을 가지고 대하도록 하라.

37실수한 자를 취급함에 대한 그리스도의 교훈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레 19:17)는 교훈을 더 구체적인 형태로 반복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느 한 사람이 그리스도께서 분부하신 의무, 곧 오류와 죄 가운데 빠진 자들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등한히 하면 그는 그 죄에 참여하는 자가된다. 우리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죄악 때문에 마치 우리 자신이 범행한 것과 똑같은 책임을 진다.

38그러나 우리는 잘못을 행한 자 자신에게 그 잘못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그 잘못을 우리들 사이에서 비평이나 비난거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설혹 교회에 제출된 후일지라도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의 실수에 대한 정보는 믿지 않는 세상에게는 다만 장애의 원인이 될 뿐이며, 이런 것들을 깊이 생각함으로써 우리 자신들은 해만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변화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형제의 잘못을 시정하려고 할 때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를 인도하여 될 수 있는 대로 그 자신의 형제들의 비평에서라도 그를 보호해야 하겠거든 하물며 믿지 아니하는 세상의 비난에서 그를 보호해야 함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 아니랴! 우리들 자신에게도 실수가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긍휼과 사유하심이 필요하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우리가 피차간에 대접하라고 그분께서는 분부하신다.

39“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그대는 하늘의 대사로서 행동하고 있으며 그대의 사업의 결과는 영원성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40그러나 우리는 이 큰 책임을 홀로지는 것은 아니다. 신실한 마음으로 말씀을 순종하는 곳에서는 어느 곳이든지 그리스도께서 거기에 함께 계신다. 교회의 회중에만 임재하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그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서는 어느 곳이든지, 그 수가 비록 적을지라도 그 곳에도 계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41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하신 말씀에서 인성으로는 제자들과 연합하여 그들의 시련에 동참하셨으므로 그들의 고난에 동정하셨고, 신성으로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보좌와 연락을 맺고 계심을 제자들에게 상기시키셨다. 얼마나 놀라운 보증인가! 하늘의 천사들은 사람들과 연합하여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는 자에게 동조하고 그를 위하여 활동한다. 그리고 영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함에 있어서 하늘의 모든 능력은 인간의 능력과 연합하기 위하여 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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