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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청*

제 34 장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이 안위의 말씀은 예수께서 그를 따르던 군중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구주께서는 사람이 오직 당신을 힘입음으로써만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었다. 예수께서는 하늘의 사물에 대한 지식이 주어진 바 된 자들로서 당신의 제자들에 대하여 말씀하셨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어떤 사람도 당신의 보호와 사랑에서 자신이 끊어졌다고 생각하도록 버려 두지 않으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예수께 나올 수 있다.

2종교적 형식에 지나친 주의를 하던 서기관들과 랍비들은 의식적(儀式的)인 참회로서는 채울 수 없는 부족감을 느꼈다. 세리들과 죄인들은 육욕적이며 세속적인 것에 만족하는 체할 수는 있었으나 그들의 마음에는 불신과 공포가 있었다. 예수께서는 마음 상한자와 근심하는 자들, 희망이 시들어진 자들, 세속적인 기쁨으로 영혼의 갈망을 가라 앉히려고 힘쓰는 자들을 보시면서 내 안에서 모두 쉼을 얻으라고 초청하셨다.

3예수께서는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

4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으로 각 사람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모든 사람은 알거나 모르거나 간에 피곤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께서만 제거할 수 있는 짐에 억눌려 있다. 우리가 진 가장 무거운 짐은 곧 죄의 짐이다. 우리가 이 짐을 지도록 그대로 버려진 바 된다면 그것은 우리를 눌러 박살을 낼 것이다. 그러나 죄가 없으신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지셨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고단한 어깨에서 짐을 가져가실 것이다. 그리고 쉼을 주실 것이다. 그는 염려와 슬픔의 짐도 지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근심을 당신께 벗어 놓으라고 초청하신다. 이는 예수께서 우리를 기억하여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5우리 인류의 맏형님께서는 영원한 보좌 곁에 계신다. 그는 구주가 되시는 당신께 얼굴을 돌이키는 각 사람을 바라보신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약점과 필요가 무엇이며 어디에 시험을 대항할 힘이 있는지를 경험을 통하여 아시는 바 이는 그가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는 없으시다. 예수께서는 무서워 떠는 하나님의 자녀인 그대를 지켜보신다. 그대는 시험을 당하고 있는가? 그가 구원하실 것이다. 그대는 연약한가? 그가 힘을 주실 것이다. 그대는 무지한가? 그가 깨우쳐 주실 것이다. 그대는 상처를 입었는가? 예수께서 고쳐 주실 것이다. 주께서는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며 또한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 147:4, 3)신다. 그의 초청의 말씀은 “내게로 오라”는 것이다. 걱정과 시련이 어느 정도이든지 간에 그대의 사정을 주님 앞에 내어 놓으라. 그대의 마음에 참을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며 곤경과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자신이 약하고 무력하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그대는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더욱 강하여질 것이다. 그대의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그것을 짐지시는 그리스도에게 맡김으로써 더욱 편안한 안식의 축복을 얻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쉼에는 조건들이 붙어 있으나 이 조건들은 명백히 설명되어 있다. 그 조건들은 모든 사람이 응할 수 있는 조건들이다. 그는 당신의 쉼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6예수께서는 “나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신다. 멍에는 봉사의 도구이다. 일하는 가축에게는 멍에를 메우는데 이 멍에는 가축이 효과적으로 일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기구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은 실례를 들어 생명이 계속하는 동안 우리는 봉사를 위하여 부름을 입었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예수의 동역자가 되기 위하여 그의 멍에를 메어야 한다.

7봉사를 위해 메는 멍에는 곧 하나님의 율법이다. 에덴에서 계시되었고 시내산에서 선포되었으며 새 언약에서는 마음에 기록된 사랑의 대 강령, 이것이 일하는 인간을 하나님의 뜻에 연결시킨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성향을 좇아 우리의 의지가 인도하는대로 가도록 방임된다면 우리는 사단의 반열에 빠져서 그의 속성을 소유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는 높고 고상하고 향상시키는 당신의 뜻으로 우리를 제어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봉사의 책임을 끈기 있고 현명하게 감당하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인성을 쓰시고 봉사의 멍에를 메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요 6:38)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그의 영광을 위한 열성과 타락한 인류를 위한 그 사랑이 예수로 하여금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시게 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예수의 생애를 지배하고 있었던 힘이었다. 예수께서는 이 원칙을 채택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신다.

8세상의 표준에 도달하기 위하여 애씀으로써 근심의 짐에 눌려 상심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세상을 섬기기로 택하였고 세상의 괴로움을 받아들였으며 그 관습을 채택하였다. 이리하여 그들의 품성은 훼손을 당하고 생애는 곤고하게 된다. 그들은 야망을 만족시키고 세속적인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양심을 상하게 하여 가책의 짐을 얹어 짊어진다. 끊임없는 근심은 생명력을 약화시킨다. 우리 주께서는 그들이 이 속박의 멍에를 벗기를 원하신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멍에를 받으라고 그들을 초청하신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그는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저들에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명령하신다. 그리하면 이 세상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시겠다고 허락하셨다. 근심은 눈멀게 하며 장래를 식별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보신다. 예수께서는 모든 곤난마다 위안을 주시는 당신의 길을 예비하셨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허다한 길들을 준비하셨다. 하나님의 사업과 명예를 으뜸으로 삼는 원칙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곤난이 사라진 것과 저희 발 앞에 평탄한 길이 펼쳐진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우리는 예수에게서 온유와 겸손을 배우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학교에 입학하여야 한다. 구속(救贖)은 영혼이 하늘을 위하여 훈련을 받는 과정이다. 이 훈련은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흑암의 임금의 학교에서 얻은 생각, 습관, 행습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에 반대되는 모든 것에서 영혼이 구조되지 않으면 안 된다.

10하나님과 완전히 일치하여 다스려진 그리스도의 마음에는 완전한 평화가 있었다. 예수께서는 칭찬을 받음으로 의기 양양하시거나 비난이나 실망으로 인하여 의기가 소침해지는 일도 결코 없으셨다. 가장 심한 박대와 가장 잔악한 대우를 받으시면서도 여전히 용기는 왕성하셨다. 그러나 예수를 따른다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하나님께 의탁하기를 두려워하므로 불안하고 괴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하지 아니하는바 이는 저희가 그렇게 내어 맡김으로 겪어야 될 결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 굴복을 거절한다면 그들은 결코 평화를 얻을 수 없다.

11불안이 일어나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위로부터 거듭날 때에 예수의 마음, 곧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겸비하게 하도록 이끈 마음과 똑같은 마음이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그 때에야 우리는 가장 높은 지위를 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의 발 아래 앉아서 그를 배우려 할 것이다. 우리의 사업의 가치는, 과시하거나 유명하게되며 자신의 능력으로 활동하고 열성을 내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우리 사업의 가치는 성령의 나누어 주심에 비례한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는 심지(心志)를 더 거룩하게 하여 인내할 수 있게 한다.

12소에 멍에를 메우는 것은 짐을 끌때 소를 도와서 부담을 가볍게 해주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의 멍에도 그러하다.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뜻 안에 흡수되고 또 남을 돕기 위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을 사용할 때에 생애의 짐이 가벼워짐을 깨달을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의 법도 안에서 행하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행하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의 사랑 안에서 그 마음은 평안을 얻는다. 모세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소서하고 기도하였을 때에 주께서는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는 기별이 전하여졌다(출 33:13, 14; 렘 6:16). 다시 그는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사 48:18)라고 말씀하셨다.

13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전적으로 예수의 보호하심에 영혼을 맡기고 또 그의 명령하심에 생애를 맡기는 자들은 평강과 평온함을 얻을 것이다. 예수께서 당신의 임재로서 그들을 기쁘게 하실 때에는 세상의 아무것도 그들을 슬프게 하지 못한다. 완전한 순종에는 완전한 쉼이 있다. 주께서는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 26:3)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생애가 복잡해 보일지 모르나 우리가 슬기로우신 대명장(大名匠)께 우리 자신을 맡긴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광이 될 생애와 품성의 본을 만들어 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광 - 품성 - 을 나타내는 그 품성은 하나님의 낙원에 들어가도록 가납하심을 받을 것이다. 새롭게 함을 입은 자들이 흰옷을 입고 예수와 동행할 것이니 저들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14예수를 힘입어 우리가 안식을 얻는 때에 하늘 나라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와서 나를 배우라’는 주님의 초청에 응답하여 나옴으로 우리는 영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하늘이란 그리스도를 통하여 끊임없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천국의 복락을 오래 누릴수록 더욱더 풍성한 영광이 우리 앞에 열릴 것이며 하나님을 알수록 우리의 행복은 증대할 것이다. 우리가 이생에서 예수와 동행할 때에는 당신의 사랑으로 충만함을 입을 것이요 당신의 임재하심으로 만족을 느낄 것이다. 인성이 감당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우리는 이 땅에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세의 영광에 어찌 비할 수 있겠는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계 7: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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