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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하고 애쓰고 노력하라

1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씨름하고 애쓰고 노력하고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앞에 항상 주님을 모셔야 한다. 깨끗한 손으로, 청결한 마음으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길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애써야 한다. 구원하시기에 능하신 분 안에 우리를 위한 도움이 준비되어 있다. 진리와 빛의 영은 그 신비한 역사를 통하여 우리를 소생시키고 새롭게 할 것이다. 우리의 모든 영적 개선은 우리 자신으로부터가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진실한 일꾼은 그를 도와주는 신령한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게으른 자는 하나님의 영의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다.

2우리는 한 길에서 우리의 정력을 쏟고 있다. 우리는 열렬해지기 위해, 회개하기 위해, 모든 더러운 것들로부터 우리의 손을 깨끗하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청결하게 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을 믿고 가장 높은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우리는 찾고 싶으면 찾되, 믿음으로 찾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문이 열리도록 두드려야 한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에 관한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의 행동에 달려 있다고 가르친다. 우리가 멸망을 당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책임이 있게 될 것이다. 만일 준비가 이루어지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영생을 붙들게 될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가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기 위해 성실해야 한다.

3죄의 용서는 회개하고 믿는 자에게 약속되어 있다. 생명의 면류관은 끝까지 충성한 자의 상급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받은 은혜를 통하여 진보함으로써 은혜 안에서 자라날 것이다. 하나님의 날에 흠 없이 나타나고자 한다면,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점없이 우리 자신을 보존하여야 한다. 믿음과 행함은 손을 맞잡고 함께 간다. 그것들은 승리의 사업에 조화를 이루어 활동한다. 믿음이 없는 행함은 죽은 것이며 행함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이다. 행함은 우리를 결코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를 위해 효력을 나타내는 것은 그리스도의 공로이다. 그분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든 불완전한 노력을 하나님께 가납되게 만드실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은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 믿음이 아니다. 구원하는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고 영혼을 정결케하는 믿음이다. 분노와 의심없이 하나님을 향하여 거룩한 손을 드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의 길을 지혜롭게 걸어갈 것이다.

4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용서받고자 한다면, 죄를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하여 먼저 죄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에 대한 확고한 기초를 놓아야 하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러면 그 결과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날 것이다. 사도는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고 말한다.

5믿음과 행함은 우리를 균형지게 유지시켜 주며, 그리스도인의 품성 완성의 사업에서 우리를 성공하게 해 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 가리라”(마 7:21)고 말씀하신다. 세상의 양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도는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고 말했다. 동일한 법칙이 우리의 영적 양식에도 적용된다. 영생의 떡을 원하는 자는 그것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도록 하라.

6우리는 이 지구의 역사에서 중요하고 관심이 집중된 시기에 살고 있다. 우리는 예전에 가졌던 것보다 더 큰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위로부터 오는 힘을 더 굳게 붙잡을 필요가 있다. 사단은 그가 일할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이기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활동하고 있다. 바울은 그의 구원을 이루는 일에 두렵고 떨렸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우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우리 중 누가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는 자로 자처하지 않을까 두려워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기도에 깨어 있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고민스런 노력으로 애써야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부족을 채워 주심

7죄악이나 나태함에 대한 핑계는 없다. 예수님께서는 길을 인도하셨고, 당신의 발자국을 따르도록 우리에게 바라신다. 우리가 미칠 수 있는 범위 안에 구원을 가져다 주기 위해, 그분은 우리들 중 아무도 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시고, 희생을 당하셨다. 우리는 용기를 잃을 필요가 없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신령한 능력을 가져다 주시기 위해 이땅에 오셨다. 그리하여 그분의 은혜를 통하여 우리는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될 수 있게 되었다.

8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이 목적을 위해 노력할 때, 예수님께서는 이 의도와 노력을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봉사로 받으시고 그분 자신의 거룩한 공로로 부족을 채워 주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당신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당신의 아버지의 계명에 충성하지 않는 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믿음에 관하여 많이 듣고 있다. 그러나 행함에 관하여 더 많이 들을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안이하고, 편안하고, 고생 없는 신앙 생애를 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영혼을 속이고 있다.

9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신다.

거짓 성화에 대한 경고

101886년 6월 중순에 개최된 “스웨덴 총회” 보고서 중 일부, 1886년 10월 5일 리뷰 엔드 헤랄드지에 게재됨

11스웨덴 오레브로에서 열린 집회에서 나는 주님의 율법을 위대한 의의 표준으로 제시하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기보다는 의지의 숭배에 근원을 둔 오늘날의 거짓성화에 대하여 우리 백성들을 경고하도록 주님의 영으로 권유를 받았다. 이 오류가 신속하게 세상에 범람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그것에 대해 결정적인 증거를 하도록 부르심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마지막 때에 가장 편만한 기만 중의 하나이며 현대진리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혹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선 믿음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은 미혹당할 것이다. 그 모든 것에서 가장 슬픈 일은 오류로 기만당한 자들 중 진리의 빛을 다시 찾는 자가 너무도 적다는 사실이다.

12성경은 성화를 공언하는 모든 자들의 주장을 시험하는 기준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진리로 거룩하게 되기를 기도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시편기자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시 119:142)라고 선언한다.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계시는 모든 자들은 주의 음성을 들려주는 성경에 대하여 높은 존중심을 나타낼 것이다. 그들에게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게”(딤후 3:16-17)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6).

13우리는 인간의 성화를 판단하기 위해서 어떤 다른 증거가 필요하지 않다. 그들이 하나님의 모든 뜻에 조금이라도 불순종하게 될까 두려워하고, 그분의 음성을 열심히 듣고 있고, 그분의 지혜를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을 그들의 고문으로 삼는다면, 그들이 자신의 뛰어난 선행을 자랑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그들이 그리스도인의 품성의 완전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거룩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더 이상 성경을 연구하지 않아도 된다고 암시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성화가 거짓임을 단정짓는 일에 주저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기 보다는 자신의 이해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일

14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의 거룩한 부부에게 요구하셨던 바로 그것, 곧 하나님의 요구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오늘날에도 요구하신다. 그분의 율법은 모든 세대를 통해서 동일하다. 구약시대에 제시된 의의 위대한 표준은 신약시대에서 낮춰지지 않는다. 복음의 역사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요구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명령을 지킬 수 있는 곳으로 사람들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15영혼을 구원하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많은 사람들이 표현하고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믿으라, 믿으라”는 것이 그들의 외침이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러면 구원을 받으리라 그것만이 그대들이 할 일이다.” 진실한 믿음은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완전히 신뢰하는 한편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히 일치하도록 인도할 것이다.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난다. 사도 요한은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요일 2:4)라고 단언한다.

16느낌이나 감정을 신뢰하는 것은 불안전하며 믿을 수 있는 지침이 아니다. 하나님의 율법만이 거룩함의 올바른 표준이다. 이 율법에 의하여 성품이 판단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구원에 대하여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한다면, 오늘날 성화를 가르치고 있는 자들은 “단지 믿기만 하면 예수님께서 구원해 주시리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동일한 질문을 받으셨을 때,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고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라고 그 사람이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눅 10:25-29)고 말씀하셨다.

17참된 성화는, 모든 계명을 양심적으로 소중히 여기고 모든 재능을 주의깊게 개발하고 신중하게 대화하며 모든 행동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온유함을 드러내므로써 증명될 것이다.

성경에서 떠난 성화

18성화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으로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집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가 제시되고 오류의 본질이 드러나게 되자 한 사람은 몹시 화를 내어 갑자기 일어나 집회 장소를 떠나가 버렸다. 나는 그 후에 그가 그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스톡홀름에서 왔다는 말을 들었다. 또한 목회자 중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그는 죄가 없으며 더 이상 성경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는데, 그 이유는 주님께서 그에게 할 일을 직접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성경의 가르침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그들 자신의 상상력을 따르는 자들에게서, 그들이 미혹당하는 것 외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오류의 유일한 탐지기를 버리고 있으므로 큰 기만자가 그들을 사로잡아 마음대로 끌고가는 일을 무엇이 방어해 주겠는가?

19이 사람은 한 계층을 대표한다. 거짓 성화는 성경에서 바로 떠나가게 한다. 신앙은 우화로 격하된다. 느낌과 감정이 기준이 된다. 성화를 주장하는 자들은 그들이 죄가 없다고 공언하고 자기의 의를 자랑하는 한편,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할 자유가 있다는 것과 율법의 교훈을 순종하는 자들은 은혜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것을 가르친다. 하나님의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보여 주면 그들은 반발하여 분노와 경멸을 나타낸다. 이와 같이 그들의 본성이 드러나는 이유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기”(롬 8:7)기 때문이다.

20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거룩함에 대하여 자랑스럽게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인은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된다. 그는 율법이 요구하는 완전한 의에 비교할 때 자신이 얼마나 죄악적인지 깨닫게 되고 이것이 그를 겸손과 회개에 이르게 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해진다. 그리고 그가 계속해서 하나님과 동행하게 될 때, 그는 하나님의 품성의 거룩함과 그분의 요구의 원대한 본질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결함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되고 끊임없는 회개와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21그리스도의 임재를 끊임없이 느끼는 자는 자신감(自信感)이나 독선에 빠질 수 없다. 선지자나 사도들 중에 거룩함을 자랑했던 자는 아무도 없다. 품성의 완전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들은 스스로가 더욱 무가치하고 의롭지 않게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의 완전을 가장 적게 느끼고 가장 적게 그분께로 눈을 돌리는 자들이 가장 강하게 자신의 완전을 주장하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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