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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칭의이다

1회개한 죄인을 하나님께 가납되게 해주고 그의 칭의를 이루어 주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이다. 그의 생애가 아무리 죄악적이었을지라도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믿으면, 그는 그리스도의 입혀주는 의의 흠 없는 예복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

2범죄와 죄악으로 거의 죽을 지경이 된 죄인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소생함을 입는다. 그는 믿음으로 예수님께서 자기의 구주가 되시고 영원히 살아 계셔서 “그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믿는 자는 그를 위해 이루어진 속죄를 통하여 효능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닫고, 곧 그처럼 무한한 값으로 산 구원의 완성을 깨닫고 그의 영혼이 찬양과 감사로 충만해진다. 그는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며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가 하늘의 베틀로 짜여지고 자기의 순종으로 이루어져서 그분의 이름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회개한 영혼에게 입혀진 것을 깨닫는다.

3죄인이 예수님의 비길 데 없는 매력을 보게 될 때, 죄는 더 이상 그에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만사람에 뛰어난 분, 그 전체가 사랑스런 분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는 그 방대한 계획이 존귀한 목적에 의해서만이 비견될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을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깨닫게 된다.

4우리에게는 살아계신 구주가 있다. 그분은 요셉의 새 무덤 속에 계시지 않고 사망에서 일어나 모든 믿는 영혼을 위한 대리자와 보증인으로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죄인은 예수님의 공로를 통하여 의롭게 된다. 이것은 인간을 위해 지불한 몸값이 완전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은 회개하는 죄인을 아버지께서 받아주신다는 보증이다. 이럴진대 우리가 의심하고 믿고, 믿고 의심하는 모호한 경험을 가져야 할 것인가?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 가납되게 하시는 담보물이다. 우리는 은총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 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어떠한 공로로 인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이신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5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자 지성소에 서 계신다. 그곳에서 그분은 자기의 백성을 매 순간 나타내어 그분 자신 안에서 완성시키는 일을 중단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아버지 앞에 그렇게 제시된다는 이유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자비를 이용하여 부주의하고 무관심하고 방종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는 죄의 봉사자가 아니시다. 오직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 안에 거할 때만 그분 안에서 완전해지고 사랑하는 자녀로 그분께 가납된다.

6우리 자신의 선한 행실로는 결코 완전함을 이룰 수 없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영혼은 자기 자신의 의를 포기한다. 그는 자기 자신이 불완전하고, 자신의 회개가 미흡하고, 자신의 가장 강한 믿음도 연약한데 불과하고, 자기의 가장 값진 희생도 빈약하다는 것을 깨닫고 십자가의 발 아래 겸손하게 엎드린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서 한 음성이 그에게 들려온다. 놀랍게도 그는 “그대는 그분 안에서 완전하다”라는 기별을 듣는다. 이제 그의 영혼은 편히 쉬기만 하면 된다. 더 이상 그는 자기 자신 안에서 가치있는 어떤 것을, 하나님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 공로 있는 어떤 행위를 발견하고자 애쓰지 않아도 된다.

붙잡기 어려운 진리

7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봄으로써 그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발견한다. 왜냐하면 용서라는 글자가 그의 이름 위에 쓰여져 있고 그는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골 2:10)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의심에 익숙해진 인간성 때문에 이 위대한 진리를 붙잡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평화를 영혼에게 가져다 주며 얼마나 생기에 넘치는 삶을 가져다 주는가! 하나님께 가납되기 위한 의를 얻고자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 우리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는 말씀에서 잘못된 곳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광으로 말미암”(고후 3:18)기 때문이다. 그대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보므로 그대의 완전을 찾아야 할 것이다.

8범해진 하나님의 율법 앞에 설 때 죄인은 스스로를 정결하게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는 그분의 무한한 사랑의 대상이 되어 그분의 흠 없는 의의 옷으로 입혀진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기도하셨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요 17:17-22).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5, 26).

9믿는 죄인을 완전하게 하여 그를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하나님께 나타나게 해주는 그런 의의 본질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신다는 하나님의 보증된 말씀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절대적인 신뢰로 그분의 말씀을 의지하고 그분의 가장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하신다.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 줄 믿는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요 16:27).

믿음과 행함의 관계에 대한 주제 발표에서 지도적인 목회자들에게 보내는 권면

101893년 4월 9일 A. T. Jones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 일부분. 1893년 서신 44번. 가려뽑은 기별 제1권(영문) 377-379쪽에 게재.

11저는 한 집회에 참석하였는데 그 집회에 다수의 회중이 참석하였습니다. 꿈 속에서 볼 때 죤즈 형제는 믿음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의 전가(轉嫁)된 의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죤즈 형제는 결국 아무런 효과도 없는 일을 가지고 여러 번 반복했을 따름이며 제시된 이론 가운데는 아무런 조건들이 없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형제가 제시한 방법은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케 하였고 저들은 믿음과 행함에 관하여 올바른 감명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형제에게 편지를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형제는 이 문제를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는 뜻으로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과 거룩하게 됨과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는 데는 엄연한 조건들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형제가 제시한 의미들을 알고 있습니다만 실제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릇된 감명을 주었습니다. 선한 행실로 말미암아 단 한 사람의 영혼도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와 반면에 어떤 영혼도 선한 행실이 전혀 없이 구원받기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 아래 있던 우리를 구원하셨으므로 우리들은 받기 원할 때에 간구해야 하며 발견하고 싶을 때에 찾아야 하며 우리들에게 문이 열리기를 바랄 때에 두드려야 할 것입니다.

12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 나오는 모든 영혼들을 온전히 구원하시기 위하여 기꺼이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께 나오도록 초청하십니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사실에 있어서 죤즈 형제는 이 문제들에 관하여 제가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생각하고 있으나 형제의 표현 방법으로 말미암아 이 문제들을 사람들의 정신이 혼돈되게끔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죤즈 형제가 행함에 관하여 자신의 주장을 과격하게 표현한 이후에 바로 그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될 때 형제의 머리 속에 그 문제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못하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정확한 원칙들을 분명히 설명해 줄 수 없으며 때로는 형제 자신의 원칙과 신앙에도 일치하지 않는 말들을 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13한 젊은이가 질문을 가지고 예수님께 찾아와서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막 10:17)라고 물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그 젊은이는 “어느 계명이오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계명들을 말씀하셨고 또 그 젊은이는 그리스도에게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조건들이 있습니다. 성경 가운데는 조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 19:17, 20, 21, 22)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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