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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화잇이 논제를 명확히 함

1이 원고는 1890년 배틀크릭에서 개최되었던 목회자 수양회 때에 기록되어 원고 36으로 분류되었고, 1977년 2월 24일과 3월 3일자 리뷰 앤드 헤랄드지에 게재되었다. 요긴하게 규명해 주는 이 설명은 연대순으로 배열된 다음의 18개의 주제들에 대한 서론으로서 적절하다.

2사도 바울은 말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믿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9-11). 외관상 사람의 헌신과 경건과 성화의 부족은 우리의 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데서 온다. 하나님의 사랑은 끊임없이 계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3한 계층의 사람들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교리를 곡해하여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나님의 말씀에 밝혀진 조건과 일치되기를 등한히 한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계명들을 믿고 순종하노라고 주장하면서도 그들에게 새로운 빛,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비췬 귀중한 빛의 광선들과 반대되는 위치에 스스로를 두는 자들 측에도 충분하게 동일한 큰 오류가 있다. 먼저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모든 자들을 위한 놀라운 것들을 하나님의 율법 안에서 보지 못한다. 나중 부류의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 집착하여 더 중한 것, 곧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등한히 한다.

4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 안에 있는 놀라운 것들을 분별하기 위해 이해의 눈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한편으로 종교인들은 일반적으로 율법과 복음을 분리시켰고, 그런가 하면 우리 역시 다른 관점에서 거의 동일한 일을 해 왔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와 그분의 위대한 구속의 계획의 완전한 의미를 백성들 앞에서 지지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비할 데 없는 사랑을 무시해 버리고, 이론과 논리를 도입하여 논쟁적인 설교를 해 왔다.

5개심하지 않은 자들이 단 위에 서서 설교해 왔다. 그들의 마음은 살아있고, 매어달리고, 신뢰하는 믿음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용서받는 감격의 증거를 결코 경험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떻게 모든 죄인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용서에 대해 설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십자가를 쳐다볼 때 그대는 십자가를 지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될 것이다. 세상의 구속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는 세상의 구주를 바라보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희생을 쳐다보고 바라보는 자는 누구든지 마음이 녹아지고 깨어져서 마음과 영혼을 하나님께 바치고자 하지 않겠는가?

6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이 요지(要旨)가 충분히 자리를 잡아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속주로 받아들이면 우리는 그분을 통치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그분을 우리의 왕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계명에 순종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확신하고 완전히 믿고 신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충성을 증거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믿음 안에서 진정한 사슬을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은 역사하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랑으로 역사한다. 그대의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하라. “주님, 나는 주님께서 나의 영혼을 구속하기 위해 돌아가신 것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생명을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주실 정도로 영혼의 가치를 존중하셨다면 나는 거기에 응답하겠습니다. 나의 생명과 그 모든 가능성을 바치고 나의 모든 연약함을 당신의 보호에 맡기는 바입니다.”

7의지는 하나님의 뜻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 일이 이루어질 때 마음과 정신의 밀실을 비추는 빛의 줄기가 어떠한 저항도 받지 않을 것이다. 영혼은 빛을 어둠이라고 부르고 어둠을 빛이라고 부르는 편견으로 가리워지지 않을 것이다. 빛이 심령의 밀실들을 모두 채우게 될 때 하늘에서 오는 빛은 환영을 받는다. 이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선율이 된다.

믿음과 불신

8우리는 어느 정도 진심으로 믿고 있는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이것은 기도를 통해 주님과 함께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회의론으로 교육을 받아 불신을 간직해 왔고, 의심스런 의혹들이 그들의 경험 속에 스며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영으로 각성될 때, 그들은 자신의 불신을 고백하는 것이 마땅히 해야 할 개인적인 의무임을 깨닫는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보내진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마음의 문을 열고 죄악에서 의로움에 이르고 의심에서 믿음에 이르는 길에 믿음으로 스스로를 던진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붙인 불꽃 대신에 그분의 빛을 따르기 위하여 거리낌없이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바친다. 그들이 자신의 헌신을 계속 유지할 때 그들은 증가된 빛을 보게 될 것이며 그 빛은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를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9영혼 속에 자리잡은 불신은 매혹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뿌려온 의심의 씨앗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불신의 뿌리를 뽑아내야 한다. 이들 독초가 뽑혀질 때, 그들은 자양분의 부족으로 말과 행동에 있어서 자라나지 못할 것이다. 영혼은 믿음과 사랑의 귀중한 식물들을 마음의 토양에 심고 거기에서 간수해야 한다.

구원에 대한 잘못된 생각

10세상에서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 것이 죄악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그것은 양심의 순결을 희생시키고 하나님의 은총을 상실하게 하고 그분에게서 영혼을 분리시키고 마침내 하늘 나라를 잃어버리게 한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는 죄와 그분과 정반대의 길을 가는 죄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영혼을 상실하는 대가를 지불하게 했다.

11누가 우리의 구속주께서 당신의 생명을 희생하고 산 모든 인간의 감화력에 대한 책임감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심판의 자리가 마련되고 모든 영혼의 구원과 멸망을 확정하기 위해 책들이 펼쳐질 때에 나타날 광경이 어떠하겠는가? 충성되고 의로운 자들에 대한 상급과 불순종한 자들과 불성실하고 불의한 자들에 대한 형벌을 최종적으로 내리기 위해서는, 인간으로 생활하셨고, 인간을 사랑하셨고, 인간을 위해 생명을 버리신 분의 과오없는 결정이 요구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모든 사람의 행동과 책임을 완전히 평가하도록 위임받으셨다. 다른 사람들의 죄에 동참한 자들과 하나님의 결정에 반대하는 행동을 한 자들에게는 그것이 가장 두렵고 엄숙한 장면이 될 것이다.

12한 백성으로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에 대해 잘못된 사상들을 받아들일 때의 위험이 나에게 반복해서 제시되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사단이 이 관점에 대하여 마음을 혼란시키기 위해 특별한 방법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았다. 마치 가인의 제사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율법과 그분과의 관계를 거의 인식하지 못한 채 하나님의 율법이 회중들에게 크게 강조되고 제시되어 왔다. 나는, 구원에 대한 잡다하고 혼란한 사상들 때문에, 그리고 목사들이 잘못된 방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접근하고자 활동해 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믿음으로부터 분리된 것을 보았다. 수년 동안 나의 마음에 강조되어 온 요점은 그리스도의 입혀진 의이다. 나는, 이 문제가 나에게 그처럼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던 때에 그것이 전국을 통하여 우리 교회에서 설교의 주제가 되지 않았음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내가 백성들에게 전한 모든 설교와 대화의 주제로 삼았다.

13내가 15세에서 20세의 시기에 기록한 글들을 살펴보노라면, 동일한 빛 가운데서 그 문제가 제시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엄숙하고 신성한 목회 사업에 임하는 자들은 먼저 실제적인 경건의 산 원칙 안에서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에 대한 교훈을 통하여 준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들은 무엇이 진지하고 산 믿음을 이루는지에 대하여 교육을 받아야 한다.

오직 믿음으로

14구속의 계획과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보냄을 받는다. 사실상 그들이 회개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깨우침을 받을 필요가 있으며, 목사들은 진정한 회개를 설명하는 주제를 더 한층 특별히 강조하기 위하여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침례를 받은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회개하였다는 증거를 보여주어야 한다. 타락한 인간이 자신의 가장 좋은 선행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보다 더욱 열렬하게 강조하고, 보다 빈번하게 되풀이하고,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보다 확실하게 정립시켜 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요점은 없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15이 문제를 연구할 때, 경건의 비밀을 이해해야 할 사람들이 내세우는 주장이 얼마나 사소한 문제에 대한 것인지를 발견하고 우리는 마음이 아프다. 그들은 진리를 믿고 진리를 가르치노라고 공언하는 형제들의 진실한 사상을 너무도 경솔하게 말한다. 그들은 나에게 드러난 바와 같이 진실과는 너무도 멀어져 있다. 원수가 세속적인 것의 먼지와 안개로 그들의 마음을 너무도 엉클어지게 하였으므로 그것이 그들의 믿음과 성격의 한 부분이 된 그들의 이해력 속으로 스며든 것 같다. 그들을 변화시키고 그들의 잘못된 사상을 포기하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새로운 회개뿐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그렇게 되어야 할 것으로 내게 보여진 바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구명 기구에 매달리듯이 믿음의 난파를 면하기 위해 사소한 것들에 매달린다.

16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말하도록 나에게 말씀을 주셨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하여 올바른 이해를 가진 모든 사람들은 논쟁의 정신을 버리고 전심으로 주님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들이 신앙 경험이 분별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들은 설교할 때마다 회중 앞에 이 문제, 곧 진정한 경건의 단순함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안에서 소망과 믿음과 완전한 신뢰의 보증 속으로 들어가고자 갈망하는 주리고 목마른 모든 영혼들의 마음에 새겨질 것이다.

17피조물의 공로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는 일에나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어떤 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을 그 주제가 뚜렷하고 분명하게 밝혀주도록 하자. 믿음과 행함으로 어떤 사람이 구원의 선물을 살 수 있다면 창조주는 피조물에 대하여 의무 아래 놓이게 된다. 여기서 거짓이 진리로 받아들여질 기회가 주어진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행하는 어떤 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그는 자신의 죄 때문에 고해성사를 해야 하는 카톨릭과 동일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구원은 품삯처럼, 일해서 얻을 수 있는 채무의 일부분이 된다. 그러나 만일 자신의 선한 행위 중 어떤 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면, 구원은 오로지 한 사람의 죄인으로서 그가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믿기 때문에 받은 은혜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완전히 값없는 선물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자신의 선한 행실 안에 있는 타락한 인간의 공로로는 자신을 영생으로 이끌 수 없다는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이 모든 논쟁은 끝이 난다.

오로지 은혜로

18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빛은 이 주요한 주제를 나의 마음 속에 있는 어떤 다른 문제보다 중요하게 여기게 한다. 칭의는 오로지 은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어떤 행위로도 얻을 수 없다. 만일 부자가 돈과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들을 주님께 바친다면 그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공을 이루었다는 생각으로 그 헌물을 헛된 것으로 만드는 잘못된 사상이 들어오게 되고, 주님께서는 그 선물 때문에 특별한 호의로써 그를 돌봐주어야 할 책임을 지게 된다는 분명한 내용으로 그 문제가 내 앞에 제시되었다.

19이 점에 대해서는 거의 분명하게 교육되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요구하는 재물이 당신의 섭리가 알려주고 당신의 사업의 설립이 그것을 요구할 때에 당신께로 돌아올 것을 믿고 사람에게 당신 자신의 재물을 빌려 주셨다. 주님께서는 지성을 주셨다. 그분께서는 세속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건강과 재능을 주셨다. 그분은 땅의 사물들을 창조하셨다. 그분은 그 모든 부(富)를 계발시키고자 당신의 거룩한 능력을 나타내신다. 그것들은 그분 자신의 경작에서 나올 결실들이다. 그분은 태양과 구름과 빗방울을 주셔서 모든 식물을 번성하게 하신다. 그대는 하나님께 고용된 종으로서 경제적인 방법을 따라 그대에게 필요한 대로 사용하고 하나님의 요구와 균형을 이루기 위하여 그분의 수확물을 거두어 들였다. 그대는 다윗처럼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피조물의 공로로 만족이 이루어지면 주님의 소유를 그분께로 되돌려 드릴 수 없다. 그것은 언제나 주님께서 당신의 섭리를 따라 그분께서 지시하는 대로 사용되어야 할 그분 자신의 소유물이었기 때문이다.

상실된 하나님의 은총

20반역과 배신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을 상실하였다. 은총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안에서 주어지지 않으면 인간에게 아무런 가치를 지닐 수 없었으므로 하나님의 은총은 인간의 권리가 아니다. 이 점이 이해되어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업을 진척시키고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고 그분께서 만드신 피조물들을 복되게 하는 데 사용하도록 맡겨준 보화, 곧 하나의 값없는 선물로서 자비하신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그 특권들을 상실했다. 하나님의 피조물이 하나님의 나라의 율법에 순종하기를 거절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에 그는 하나님의 정부에 불충하는 자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로 주신 모든 축복을 완전히 가치없게 만들었다.

21이것이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스스로를 분리시킨 후의 인간의 위치였다. 그 때부터 그는 공기를 호흡하거나 햇빛을 쪼이거나 한 조각의 음식을 먹을만한 더 이상의 자격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멸망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사랑하시므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선물로 주셔서 인간이 지은 범죄의 형벌을 그로 받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보증인과 대리자가 되고자 제안하시므로 인간은 비할 데 없는 은혜를 통하여 또 하나의 다른 시험인 두번째의 은혜의 기간, 곧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지 않도록 경고를 받음으로써 그들의 경험을 가져야 했다. 사람이 햇빛의 선물과 식물(食物)의 선물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형유하는 한 그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인정하고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분에게로 되돌려지는 어떤 것이라도 그것을 주신 그분의 소유에 불과하다.

22인간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였다. 그런데 구속주를 통하여 새롭고 선명한 약속들이 다른 기초 위에서 이루어졌다. 모든 축복은 중보자를 통하여 와야 한다. 이제 모든 인간 가족은 하나님의 손에 전적으로 맡겨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이거나 간에, 그것이 금전의 선물이거나 가옥과 토지의 선물이거나 이성(異性)의 능력과 육체적 능력과 지적 능력이거나 간에,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성실하게 쓰여지도록 현실 생애와 미래의 생애의 축복 가운데서 하나님의 보화로서 우리의 소유로 주어진다. 모든 선물은 십자가로 인쳐져서 예수 그리스도의 상(像)과 표제(表題)를 지니게 된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가장 작은 이득으로부터 가장 큰 축복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하나의 통로, 곧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었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닌 피로 뿌려진 초인간적 중재를 통하여 흘러온다.

23이제 한 영혼도 이미 하나님의 것이 아닌 어떤 것을 그분께 드릴 수는 없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 이 사실을 명심하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유용성에 있어서, 사업에 있어서, 믿음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은, 그리고 하나님이 당신의 손을 언제든지 얹으시고 이것들은 내 것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것 곧 내가 그대들 자신을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세상을 유익되게 하기 위해서 현명하게 사용하도록 내가 그대들에게 위탁한 선물과 축복과 기증물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사람들 앞에 제시해 주어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

24창조는 하나님께 속한다. 주님은 인간을 소홀히 함으로 그의 호흡을 멈추게 하실 수 있다. 사람의 존재와 그의 모든 소유는 하나님의 것이다. 온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다. 사람의 가옥들, 그리고 가치있는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간에 그의 개인적인 획득물은 하나님 자신의 기증물이다. 사람의 마음을 계발시키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나님께로 돌려드리는 것도 모두 그분의 선물이다. 가장 귀중한 헌물들이 하나님의 제단 위에 놓여질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분의 관대하심 때문에 바친 자를 찬양하고 높이고 칭송할 것이다. 왜 그런가?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 인간의 어떤 행위로도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영혼 속에 충만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언제나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들을 하게 하고,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 일을 하게 된다. 그는 언제나 그에게 요구된 의무를 행한 것에 불과하다.

25결코 타락한 적이 없는 하늘의 천사들은 끊임없이 그분의 뜻을 행하고 있다. 그들은 세상에 대해 분주하게 자비의 일을 수행하는 중에 각 시대를 통하여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를 막론한 하나님의 인간 피조물을 보호하고 돌보고 인도하면서 “모든 것이 주의 것이며,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진실되게 말할 수 있다. 인간의 눈으로 천사들의 봉사를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인간의 상상력으로 풍성하고 영광스러운 천사들의 봉사와, 그들이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을 보호하고 인도해 내고 승리하게 하고 사단의 올무로부터 그들을 끌어내기 위하여 치르는 투쟁을 깨닫고 깊이 생각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면 우리의 행동과 신앙적인 정서가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피조물의 공로

26피조물의 공로를 열렬하게 옹호하는 사람들 때문에 논쟁이 생기고 각 사람이 주도권을 잡기 위하여 노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언제나 원칙과 품성을 통하여 예수님 안에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잘못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혼돈의 안개 속에 빠져 있다. 그들은 불로 연단한 금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이 필요하며, 그리스도의 순결한 품성의 흰 옷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은 영생의 삯을 얻기 위하여 피조물들의 공로가 전혀 쓸데 없다는 것을 놀라움으로 식별할 수 있는 하늘의 안약이 필요하다. 활동의 열성과 강렬한 애정, 높고 고상한 지력의 성취, 폭넓은 이해, 그리고 우리의 구속주의 발 아래 놓여진 가장 겸손한 자기 비하(自己卑下)가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처음 주신 은혜와 재능보다 조금도 나은 것은 없다. 정해진 의무 외에 더 주어질 수 없으므로 그들이 처음 받았던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향기로운 향의 연기로 위대하신 여호와 앞에 상달되어 향기로운 냄새로 가납되기 전에 세속적인 냄새로부터 정하게 되도록 그리스도의 의의 불 위에 놓여져야 한다.

27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사실 그대로 제시할 수 있을지 묻는 바이다. 주 예수님은 역시 하나님의 선물인 산 믿음으로 인간이 당신의 의를 붙잡을 수 있도록 제시해 줌에 있어서 모든 능력과 모든 은혜와 모든 회개와 모든 성향과 모든 죄의 용서를 주신다. 만일 그대가 사람에게 있는 선하고 거룩하고 고상하고 사랑스런 모든 것을 함께 모아서 그것들이 인간의 영혼의 구원이나 공로에 한 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천사들에게 제시한다면 그 제안은 반역으로 간주되어 배격당할 것이다. 천사들은 그들의 창조주 앞에 서서 그분을 두르고 있는 비길 데 없는 영광을 바라보면서 창세 이후로 굴욕의 생애가 주어진 하나님의 어린 양이 죄 많은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시고, 멸시를 받으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셔야 했던 것을 보고 있다. 어느 누가 그 무한한 희생을 측량할 수 있겠는가!

28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가난을 통하여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고자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어떤 업적도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이다. 다만 그것들이 그리스도의 의 위에 놓여진다는 이유에서만 나의 요구는 가납된다. 용서의 은혜에 공로가 되는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사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이다. “주님, 나의 손에는 가치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주님의 십자가를 붙들 뿐입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것

29인간은 그에게 영광이 주어지는 칭찬받을 만한 어떤 공적을 이룰 수 없다. 사람들은 인간을 영광스럽게 하고 인간을 높이는 습관에 빠져 있다. 나는 그런 사실을 보거나 들을 때 전율하게 된다. 왜냐하면 바로 그런 사람들의 가정 생활과 마음의 내면 상태가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가 적지 않게 내게 계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타락하고 불결하고 부도덕하다. 그러므로 그들의 모든 행위로부터 나오는 것은 그들을 하나님께로 전혀 이끌 수가 없다.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증하기 때문이다. 죄를 포기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회개가 있을 수 없으며, 또한 죄의 악한 요소를 분별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인간의 시력으로는 결코 미칠 수 없는 예리한 지각을 가지고, 더러운 영향력과 불결한 심령과 손 때문에 방해를 받은 인간이 그들의 운명을 영원히 결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죄와 그 치료제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30우리는 진리가 아닌 영혼의 회개에 관하여 전해진 것들을 너무 많이 듣는다. 사람들은 회개가 하늘에 들어가는 길이요 문이라는 것과, 회개에는 그가 용서를 살 수 있는 어떤 보장된 대가가 있다는 것을 상상하면서 인간이 회개하면 용서를 받는다고 생각하도록 교육을 받는다. 사람이 스스로를 회개시킬 수 있는가? 더 이상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다. 눈물과 탄식과 결심,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능력들의 적절한 작용과, 하나님의 소유로 되어 있는 삶을 개선하는 데 있어서 죄로부터의 방향 전환에 불과하다. 인간이 자신의 구원을 얻게 하고, 또한 하나님 앞에 값지고 훌륭한 무엇인가를 바치는 데 있어서 인간에게 있는 공로로는 어떤 것이 있는가? 돈과 집과 땅을 바침으로써 그대 자신을 가납될만한 대열에 둘 수 있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31믿음에 공로를 둘 때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에 위험이 생긴다. 그대가 그리스도의 의를 값없는 선물로 받아들일 때 그대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값없이 의로워진다. 그러면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그것은 지각을 주신 하나님, 마음을 감동시키신 하나님, 갈바리의 십자가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도록 제일 먼저 마음을 끌어주신 하나님께 즐겨 헌신하고 봉사하도록 마음을 묶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한다는 것에 대한 동의이다. 믿음은 지적 능력을 하나님께 바치고 마음과 의지를 하나님께 맡기고 그리스도를 하늘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으로 삼는 것이다.

32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행함의 공로로 의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배우고, 그들의 유일한 소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확고하고 완전한 신뢰로 바라볼 때 자아는 매우 작아지고 예수님은 매우 크게 될 것이다. 영혼과 육신이 죄로 얼룩지고 더럽혀져 마음이 하나님과 멀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선한 행위로 구원을 얻고자 스스로의 제한된 힘으로 투쟁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구원의 어떤 부분을 담당해 주실 것이므로 그들이 나머지 부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현실과 영원을 위한 유일한 소망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사역과 인간의 사역

33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재능과 능력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일하시며 그분이 인간에게 나누어 주신 재능과 함께 협력하신다. 그러므로 인간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사업을 함으로써 승리자가 되어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인간에게 수행할 능력을 주신 사업을 하시겠다고 제안하지 않으신다. 인간이 행할 부분은 인간이 해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동역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온유와 그분의 겸손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제하는 능력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선물을 주시고 인간은 그것들을 받아서 살아있는 대리자로 그리스도의 은혜의 능력을 가지고 활동한다.

34“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고전 3:9). 마음은 선한 행실로 수확물을 하나님께로 가져갈 수 있도록 일구워지고, 부드러워지고, 갈리워지고, 쓰레질을 당하고, 씨가 뿌려져야 한다. “너희는…하나님의 집이니라”. 그대는 스스로 집을 지을 수 없다. 그대의 외부에 능력자가 계시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능력과 재능에 언제나 협력하여 벽돌 하나 하나를 쌓아올려 교회의 건축을 이루어야 한다. 구속주께서는 당신의 성전 안에서 거처를 발견하셔야 한다. 하나님이 일하시고 인간도 일한다. 하나님의 선물들을 거저 내주기 위해서는 하나님께로부터 그 선물들을 계속해서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계속적으로 받아들이고 계속적으로 채워지는 일이다. 주님께서는 영혼이 당신으로부터 자양분을 받아드려서 당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시 내주도록 섭리하셨다. 이런 유출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신성이 인성으로 들어와야 한다.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고후 6:16).

35영혼의 성전은 신성하고, 거룩하고, 순결하고, 정결해야 한다. 모든 능력이 하나님의 것이 되고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일에 있어서 협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그것을 표현하는 일을 생각과 감정에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과 신령한 행동의 법칙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를 하나님과 함께 하는 동역자로 만든다. 그것은 인간을 신성과 연합시켜 그가 하나님의 사업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간다. 인성은 인성과 접촉한다. 하나님의 능력과 인간의 힘이 결합될 때 완전한 성공이 주어질 것이다. 그리스도의 의가 모든 것을 이루기 때문이다.

초자연적인 사업을 위한 초자연적인 능력

36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성공적인 일꾼이 되는 데 실패하는 이유는 마치 하나님께서 그들을 의지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기 위해 그들을 선택하도록 그들이 하나님께 제안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외면하므로 초자연적인 사업을 하는 일에 실패한다. 그들은 항상 그들 자신의 능력과 그들의 형제들의 능력을 의지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편협해져서 언제나 인간의 제한된 이해력을 따라 판단한다. 그들은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높이 올려져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일할 수 있는 육체, 두뇌의 힘, 시간과 기회를 우리에게 주신다. 그 모든 것은 무거운 책임 완수에 쓰여지도록 요청되고 있다. 인성과 신성의 결합을 통하여 그대들은 영원히 존속할 사업을 완성시킬 수 있다. 사람들이 주님께서 그들 각자의 경우를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하고 그들 스스로의 일을 선택할 때, 그들은 실망을 겪게 될 것이다.

37“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만일 그대들이 빛의 광선에 대하여 문을 닫아버리지 않는다면 그대들의 마음 속에 펼쳐지게 될 진리의 주제가 여기에 있다. 영생은 무한한 선물이다. 영생은 무한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가 일해서 얻을 수 없는 곳에 위치해 있다. 그것은 반드시 선물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의 선물로서 믿음으로 얻어져야 하고, 그 결과로 감사와 찬양이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 확고한 믿음은 어떤 사람을 광신으로 이끌거나 게으른 종으로 활동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대신에 스스로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 미혹하는 사단의 능력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우리 뒤에 호위하려면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 앞에 가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우리는 아무런 효력이 없는 우리에게 있는 어떤 공로 때문에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로서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업을 수행하라. 그리하면 그대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주신 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과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1881년 3월 8일자 “리뷰 앤드 헤랄드”지의 기사

38“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이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39성화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만 얻어진다. 여호와의 율법을 고의적으로 짓밟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성결과 생애의 성화를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나 그분의 율법에 관한 구원의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큰 반역자의 대열에 서 있다. 그는 하늘과 땅에 있는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가 되는 하나님의 율법을 대적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무효화시키려고 애써온 그들의 괴수가 한 것과 동일한 일을 하고 있다. 계명을 어기는 자는 아무도 하늘에 들어가도록 허락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한 때 순결하고 고상한 덮는 그룹이었던 그가 하나님의 정부를 반역하므로 쫓겨났기 때문이다.

40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성화는 다만 독선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구주요 성화시키는 분이라고 담대하게 주장한다. 이 얼마나 큰 기만인가! 아버지의 율법, 그리스도께서 높이고 영광스럽게 하기 위하여 오신 그 율법을 범한 자를 하나님의 아들이 성화시키시겠는가?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었노라”라고 그분은 증언하신다. 하나님은 인간의 불완전한 표준에 맞추시기 위해 그분의 율법을 낮추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없이는 그 거룩한 율법이 요구하는 바에 이를 수 없다.

41“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라”(요일 2: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신성한 율법을 순종하는 일을 면제시켜 주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에게 고통과 경멸과 수치스런 죽음의 삶을 주시지 않으셨다. 사단의 기만적인 힘이 너무 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속죄를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범죄자들에게는 다른 희망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 그는 장래에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자 노력할 수도 잇다. 그러나 그가 과거에 진 빚은 그대로 남아있다. 그래서 율법은 그에게 죽음의 선고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 스스로가 갚을 수 없는 그 빚을 갚아 주시기 위해 오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을 통하여 죄인에게는 또 다른 시험의 기회가 허락되었다.

사단의 궤변

42그리스도의 죽음이 율법을 대신하는 은혜를 가져왔다는 것이 사단의 궤변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십계명의 법을 가장 경미한 정도로도 변화시키거나 감소시키지 않았다. 구주의 보혈을 통해 인간에게 주어진 귀중한 은혜는 하나님의 율법을 확립시킨다. 인간의 타락 이래로 하나님의 도덕적인 정부와 그분의 은혜는 분리될 수 없다. 그것들은 모든 시대를 통하여 공존한다.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시 85:10)다.

43우리의 대리자이신 예수님은 범법의 형벌을 인간을 대신해서 받기로 동의하셨다. 그분은 신성을 인성으로 입으시고 인자(人子), 곧 구주요 구속주가 되셨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돌아가신 바로 그 사실이 신성한 율법의 불변성을 나타낸다. 범법자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율법을 폐지하신다면 사람들에게 구원받을 길이 주어지고 그리스도께서도 하늘에 머물러 계시게 될 터이니, 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 은혜를 통하여 율법을 깨트리는 자유를 가르치는 교리는 치명적인 기만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그러므로 알려진 죄 가운데서 사는 동안 아무도 성화될 수 없다.

44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겸비와 고민은 아버지의 율법을 범할 자유를 인류에게 얻어 주기 위해서가 아니고 당신의 보좌에 그리스도와 함께 앉기 위해 겪은 것이었다. 가장 흉악한 죄인이 용서를 받고 순종의 생애를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그분의 공로와 회개와 믿음의 행사를 통해서였다. 죄인은 죄 속에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고 죄로부터 구원을 얻는다.

죄란 무엇인가

45죄인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오고자 하는 욕망을 느끼기 전에 먼저 죄를 깨달아야 한다. “죄는 불법이니라”(요일 3:4).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롬 7:7). 계명이 사울의 양심에 새겨졌을 때 죄는 살아나고 그는 죽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으로 정죄받은 자아를 보게 되었다. 죄인이 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면, 자기의 유죄를 깨달을 수 없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든지 불순종하든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한 성경상 성화를 경험하기란 불가능하다.

46하나님의 율법을 지킨다고 공언하면서 여전히 마음으로는 죄악에 탐닉되어 있는 자들은 참된 증인에 의해 정죄를 받는다. 그들은 진리의 지식에 부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의 거룩한 원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 진리는 그들의 삶을 성화시키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계명을 지킨다고 공언하는 자의 생활이 그의 믿음과 모순되는 것을 눈 멀고, 곤고하고, 가난하고, 벌거벗었다고 선언한다.

47하나님의 율법은 그 모습 그대로 인간을 완전히 반사하여 그에게 정확한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묘사를 외면하고 잊어버릴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율법에 대하여 독설적인 말을 하고, 마치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성품의 결함을 치료하는 것인 양 행동한다. 율법에 의해 정죄의 선고를 받는 또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범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완성할 것이다.

그들이 거절하는 빛에 의해 정죄의 선고를 받음

48온 세상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분의 율법을 범하는 죄를 범하고 있다. 절대 다수가 계속해서 범죄할 것이며, 하나님과 원수가 될 것이므로 어느 누구도 스스로 죄없다 하거나 순종하고 있다고 할 근거가 없다. 피상적인 관찰자에게는 본성적으로 얌전한 사람들, 교육을 받고 세련된 사람들이 생활에 완전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양심에 제시되었을 때 그것을 슬기롭게 받아들여서 성실하게 생활에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늘 나라를 볼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신기로움 때문에 그 진리들에 대해 매력을 갖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 앞에 빛이 주어질 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그것에 의해 정죄의 선고를 받을 것이다.

49이 땅위의 모든 회중 가운데는 구원에 주리고 목말라 하면서 만족을 얻지 못하는 영혼들이 있다. 밤낮으로 그들의 마음은 내가 구원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짐에 눌려 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길을 배우고자 원하면서 인기있는 설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너무도 흔히 그들은 웅변조의 듣기 좋은 열변만을 들을 뿐이다. 종교 집회마다 실망스럽고 슬픈 마음들이 있다. 목사는 회중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다고 설교한다. 그는 말한다. “오늘날은 율법이 인간을 속박하지 않는다. 그대들은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분께서 그대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다. 믿기만 하라” 그리하여 목사는 감정을 그들의 표준으로 삼도록 가르치고 지적(知的)인 믿음을 그들에게 주지 않는다. 그는 매우 진실한 것처럼 공언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번민하는 양심을 거짓 희망으로 진정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당의(糖衣)를 입힌 영적 독소

50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거절하면서도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기 때문에 하늘가는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지도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하늘 대신에 멸망으로 가는 길을 가고 있었다는 것을 마침내 발견할 것이다. 영적인 독소는 성화의 교리로 당의가 입혀져 사람들에게 주어졌다.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신념에 정직하기만 하면 안전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것을 열심히 삼킨다. 그러나 정직이 오류를 진리로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사람이 독을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삼킬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순진이 그 복용의 효능에서 그를 구해내지 못할 것이다.

51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우리의 안내자가 되도록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제자들을 위하여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라고 기도하셨다. 바울은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행 26:9)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신념이 그의 길을 바르게 만들지 못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였을 때 복음이 그를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했다. 그는 변화되었다. 그의 심령 속에 심겨진 진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서의 믿음과 용기를 그에게 주었기 때문에 그는 어떠한 반대에도 요동치 않았고 어떠한 시련에도 위축되지 않았다.

52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거절한 데 대해 위로가 되는 어떤 핑계거리를 만들 수가 있다. 그러나 어떤 변명도 심판날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범죄한 영혼들을 범죄의 길에서 강하게 하는 자들은 범해진 율법을 통하여 위대한 입법자를 불원간에 만나게 될 것이다.

53하나님의 복수의 날, 맹렬한 그분의 진노의 날이 다가온다. 누가 주의 오시는 날을 견딜 수 있으리요?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했다. 그러나 그분의 분노의 화살은 신념의 화살이 뚫을 수 없었던 곳을 관통할 것이다. 하나님이 죄인을 처벌하시기 위해 일어설 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 그날에 거짓 목자가 범법자를 보호해 줄 것인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불순종의 길을 간 그가 용서받을 수 있겠는가? 인기나 숫자가 어떤 사람을 무죄로 만들겠는가? 이것들은 부주의하고 무관심한 자들이 스스로 깊이 숙고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1883년에 제시됨)

541883년 11월에 미쉬간주 베틀크릭에서 열린 대총회 회기에 목사들을 대상으로 한 아침 설교. 1892년 판 복음교역자 411-415페이지(영문)와 가려뽑은 기별 제1권 350-354페이지(영문)에 게재됨

55“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56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당신 앞에서 우리의 심령을 겸비하게 가지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는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저버리지 않을 친절하신 하늘 아버지처럼 주님을 신뢰하여야 한다. 우리 중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대로 행하며 믿음으로 행치 않는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은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우리에게 주신 귀중한 허락들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불신하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진심을 보이시는지 아니면 우리를 속이시는지, 의심하는 것을 보이는 것보다 하나님께 더 욕돌리는 것은 없다.

57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로 인해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혹 실수를 범하고 성령을 슬프시게 할 수 있으나 우리가 회개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당신께 나아갈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를 물리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에게는 버려야 할 장애물들이 있다. 그릇된 감정들을 품고 있었고, 교만, 자만심, 조급함, 불평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한다. 죄들은 자복해야만 하며 심령 가운데 은혜의 깊은 역사하심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 연약하다고 느끼고 실망했던 자들이 하나님의 강한 사람들이 될 것이며 주님을 위하여 고귀한 사업을 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고상한 표준을 세우고 일해야 하며 이기적인 동기에 의해서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유일한 소망이신 그리스도의 공로

58우리는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 주님의 의 외에 다른 아무것도, 은혜의 축복 가운데 있는 단 한 가지도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들은 오랫동안 이러한 축복들을 얻으려고 바랐으며 노력하여 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축복들로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도모하려는 사상을 품고 있으므로 축복들을 받지 못하였다. 우리는 예수께서 살아계신 구주이심을 믿음으로 우리 자신만을 돌보지 말아야 할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은혜와 공로가 우리를 구원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소망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선지자를 통하여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 55:7)고 약속하신다. 우리들은 적나라(赤裸裸)한 허락들을 믿어야 하며 감정을 믿음으로 잘못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고 죄를 용서해 주시는 구주로서 예수님의 공로를 의뢰할 때 우리는 우리가 소망하는 모든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59우리는 마치 우리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 것처럼 자신을 바라본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자기 자신을 구원할 아무 능력이 없으므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우리의 소망과 우리의 공의와 우리의 의는 모두 주님 안에 있다. 우리는 마치 우리에게 구주가 계시지 않거나 그분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지 않으시는 분으로 생각하고 낙담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바로 이 순간에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당신의 사업을 수행하고 계시며 우리의 무력한 상태 그대로 당신께 나아와 구원받도록 초청하신다. 우리는 불신으로 인해서 주님께 욕돌리게 된다.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위대하신 사랑에 대한 모든 증거를 주신 주님께 대하여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적으며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시는 주님을 취급하는 우리의 태도를 볼 때에 얼마나 놀라운지 알 수 없다.

60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의 공로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하는 길잡이가 되기를 바라면서 주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믿기도 전에 죄에서 해방되기를 기대하는가? 만약 그대들의 마음 가운데 이러한 투쟁이 있다면 그대들은 아무런 힘도 얻지 못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실망하게 되고 말 것이다.

바라보고 살라

61광야에 있을 때에 주님께서는 배도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독사에게 물리는 것을 허락하셨으며 모세에게 구리뱀을 높은 장대에 매달아 뱀에 물린 사람들이 그 구리뱀을 바라보고 살도록 지시하셨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하늘이 제정해 준 이 치료제에서 아무런 도움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미 죽은 자들과 죽어가고 있는 자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으며 저들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저들의 운명이 틀림없이 종말을 고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저들은 저희 힘이 다 빠지고 눈이 완전히 흐려질 때까지 금방 나을 수 있는 치유제가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의 상처만을 비탄하며 고통과 확실한 죽음에 대하여 슬퍼하고만 있었다.

62“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 15). 만약 그대들이 자신의 죄들을 의식한다면 죄에 대하여 애통하는 일에만 모든 기력을 다 바치지 말고 바라보고 살라.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유일한 구주이시다. 주님의 공로를 의지하는 자는 단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으련만 치유를 받아야 할 수백 수천에 달하는 인류는 주님께서 주신 자비를 거부할 것이다. 그리스도가 없이는 우리들이 얼마나 무력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지를 인식할지라도 우리들은 실망하지 말 것이며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신 구주에게 의뢰해야만 한다. 불쌍하고 죄로 병든, 실망한 영혼들이여, 바라보고 살라.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나오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약속하셨다.

63예수님께 나아와 휴식과 평안을 얻으라. 그대들은 지금 바로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사단은 그대들이 무력한 존재이며 축복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유혹한다. 그대들이 무력한 존재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단의 앞에서 예수님만을 쳐다보며 “나에게는 부활하신 구주가 계시다. 주님께서는 결코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 고난을 주지 않으실 것이다.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할 수 있다. 예수님은 나의 의시며 나의 기쁨의 면류관이시다”라고 말하라. 이 세상의 아무도 절망 가운데 있지 않으므로 자신의 경우만은 소망이 없다는 생각을 하지 말 것이다. 그대들은 자신이 죄인이며 타락한 인간임을 깨닫게 될지라도 이것은 다만 그대들에게 구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줄 뿐이다. 만약 그대들에게 자복할 죄가 있다면 시간을 놓치지 말라. 이러한 순간들은 황금과 같은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배부를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아, 얼마나 고귀한 구주이신가! 주님의 크신 팔은 우리를 영접하시기 위하여 활짝 벌려 있으며 주님의 위대하신 사랑의 마음은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신다.

64어떤 사람들은, 저들이 반드시 집행 유예 기간에 머물러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요구할 수 있기 이전에 저들 자신이 개심했다는 사실을 주님께 증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스러운 영혼들은 바로 지금 축복을 주장할 수 있다. 저들은 주님의 은혜 곧 저들의 연약함을 보충해 주실 수 있는 그리스도의 영을 가져야만 하며 그렇게 하지 못할 때에 저들은 그리스도의 품성을 형성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죄 있고 무력하며 의존해야 할 상태 그대로를 가지고 당신께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회개는 하나님의 선물임

65회개는 용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들이 죄를 깨닫게 하고 용서의 필요를 느끼게 하는 것은 성령의 감화로 말미암는 것이다. 통회하는 자만이 용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마음에 회개를 일으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연약함과 약점들을 잘 알고 계시므로 우리들을 분명히 도우실 것이다.

66회개와 자복으로 하나님께 나오고 저희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아직 하나님의 허락들을 마땅히 주장하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 저들은 예수님께서 항상 존재하여 계시는 구주이심을 깨닫지 못하고 저들의 영혼을 주님께 맡기지 않으며 저희 마음 가운데 완전케 하는 은혜의 역사가 시작되도록 의탁하지 않는다. 비록 저들은 생각으로는 자신들을 하나님께 맡겼다고 하면서도 실제에 있어서는 자기를 신뢰하는 경향이 많다. 부분적으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또 다른 부분으로는 저들 자신을 신뢰하는 양심적인 영혼들이 있다. 저들은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받기 위하여 바라보지 않고 다만 시험거리만을 살피며 주님의 가납하심을 받기 위한 의무 수행만을 의존한다. 이러한 종류의 믿음에는 승리가 있을 수 없다. 그러한 자들은 목적이 없는 고달픈 수고만을 할 뿐이다. 저들의 영혼은 계속적으로 속박 가운데 있으며 저들의 무거운 짐을 예수님의 발앞에 내려놓을 때까지 쉼을 얻지 못한다.

67끊임없는 경계와 열렬하고 사랑스러운 헌신을 할 필요가 있기는 하나 이것들은 영혼이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심을 받게 될 때에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거룩한 은총을 얻기 위하여 결단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선한 행실을 전혀 의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가 실수를 저지르고 죄 있는 존재로서 그리스도께 나올 때 우리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쉼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의 공로를 전적으로 믿고 당신께 나오는 모든 자들을 받으실 것이다. 저들의 마음에는 사랑이 용솟음칠 것이다. 거기에는 환상적인 감각이 없을 것이며 다만 영속적이며 평화스러운 신뢰심이 있을 따름이다. 모든 짐은 가볍다. 그리스도께서 메워주시는 멍에는 쉽기 때문이다. 의무는 즐거움이 되고 희생은 유쾌한 것이 될 것이다. 흑암에 싸인듯이 보였던 길은 의의 태양이신 주님께서 비취는 빛으로 말미암아 밝아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빛 가운데서 행하는 생애이다.

엘렌 화잇이 경계를 분명히 함

681885년 7월 31일 매사추세츠 주 월체스터에서 “의의 참된 표준”이라는 제목으로 한 설교의 한 부분임. 1885년 8월 25일자 “리뷰 앤드 헤랄드”지에 게재됨.

69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은 선언된 축복을 받는 조건에 일치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 오늘날 주어져 있다. 그들은 영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에서 세상과 분리되어 있는가? 세속적인 습관과 관습으로부터 나와서 분리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사단은 거짓된 표현을 통하여 우리를 유혹하고 속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보도록 하자. 영원한 유익이 여기에 내포되어 있다. 하나님의 주장이 먼저 와야 하고, 하나님의 요구가 우리의 첫번째 주의를 받아야 한다.

70타락한 아담의 모든 후손은 그리스도의 변화시키는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의 모든 요구에 순종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분의 가장 분명한 말씀의 교훈들에 대해 눈을 감는다. 왜냐하면 그 길에 바로 십자가가 서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십자가를 질 것 같으면, 그들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 이상하게 보여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저하고 의문을 품고 십자가를 피할 어떤 구실을 찾는다. 사단은 언제나 준비해 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그럴듯한 이유를 제시한다. 그리하여 영혼들은 치명적으로 속임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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