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마태복음 5장 34절).
1이 명령이 주어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2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받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피로 사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다.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이 십자가의 인이 찍힌 채,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귀한 피의 대가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그 피가 하나님의 생명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말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마치 무슨 권리를 가진 것처럼 맹세할 수 없다.
3유대인들은 세째 계명을 하나님의 이름을 불경스럽게 사용하는 것을 금하는 계명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다른 맹세들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는 맹세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그들은 모세를 통하여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맹세로 인한 책임을 면하기 위하여 많은 계책을 고안해 냈다. 그들은 불경한 일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물론, 법률을 기술적으로 피하여 어떻게든 감출 수만 있으면 거짓 맹세 또한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4예수께서는 그들의 행동을 정죄하시고, 맹세하는 그들의 습관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일이라고 주장하셨다. 그러나 우리의 구주께서는, 말하는 것이 진실이며 오직 진실만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엄숙하게 부르는 법정에서의 선서는 금하지 않으셨다. 예수님 자신이 산헤드린 회에서 재판을 받으실 때 맹세하고 증언하기를 거절하지 않으셨다. 대제사장이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했을 때, 예수께서는 “네가 말하였느니라”(마태복음 26장 63, 64절)고 대답하셨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산상 설교에서 법정에서의 선서를 정죄하셨더라면, 재판을 받으실 때 대제사장을 책망하시고, 당신을 따르는 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분 자신의 교훈을 강조하셨을 것이다.
5아무 두려움도 없이 동료 인간들을 속이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도 창조주께 거짓말 하는 것이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배우기도 하지만 또 하나님의 영을 통해 늘 깨우침을 받고 있다. 선서할 때, 그들은 단순히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한다는 것과 또 거짓 증언을 하게 되면 마음을 읽으시고 정확한 사실을 아시는 그분께 하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이 죄에 따르는 두려운 심판을 알기에, 그들은 무서워 자제한다.
6맹세를 하고 일관성 있게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있는 것처럼 생활하며, 우리를 상관하시는 분의 눈 앞에 모든 생각이 공개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정한 방법으로 선서하라는 요구를 받게 될 때, 말하는 것이 진실하고 오직 진리만을 이야기 한다는 것을 증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정당한 일이다.
7예수께서는 맹세하는 것이 필요치 않다는 원칙을 세우기 위하여 계속 노력하셨다. 그분은 정확한 진실이 말의 법칙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8이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의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라 할 수 있는 모든 의미 없는 빈말과 어귀들을 정죄한다. 이것은 사교계와 사업계에서 유행하는 가식적인 인사, 진실을 떠난 속임, 아첨하는 말, 과장, 상업상의 속임수 등을 정죄한다. 이것은 또 자신의 본 모습이 아닌 것을 나타내고자 애쓰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진실하다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9그리스도의 이 말씀에 유의하면 악한 추측과 불친절한 비평의 말이 다 점검될 것이다. 타인의 행동과 동기를 비평할 때, 그 누가 정확한 진실만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자만과 감정과 개인적 원한 때문에 얼마나 자주 다른 인상을 받게 되는가! 한 번의 눈짓, 한 마디의 말은 물론 음성의 억양까지도 거짓의 결정적인 방조자가 될 수 있다. 사실이 잘못 진술되어 본의 아닌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참된 것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는 것이다.”
10그리스도인이 하는 모든 것은 햇빛과 같이 투명해야 하다. 진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나, 무수한 형태를 가진 악은 모두 사단에게 속한 것이다. 따라서, 진리의 바른 노선에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떠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악한 자의 권세 아래 내어 맡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확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 쉽거나 용이한 일은 아니다. 진실을 알기 전에는 진실을 말 할 수 없다. 선입 관념과 편견, 불완전한 지식과 오판으로 얼마나 자주 우리와 상관된 문제들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가! 우리의 마음이 진리이신 분의 인도를 끊임없이 받지 않는 한 진리를 말 할 수 없다.
11그리스도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신다. “너희 말은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골로새서 4장 6절).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에베소서 4장 29절). 이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보면, 산상에서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농담, 실없는 소리, 상스러운 대화 등을 정죄한다는 것을 알수있다. 그 말씀은 우리의 말이 진실할 뿐만 아니라 순결하기를 요구한다.
12그리스도를 배운 사람들은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에베소서 5장 11절) 것이다. 그들은 생활에서와 마찬가지로 말에 있어서도 단순하고 정직하고 참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입에 거짓말이 없”(요한계시록 14장 5절)는 거룩한 자들과의 교제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마태복음 5장 39절).
13유대인들은 로마 군인들과 접촉함으로써 수시로 울화통이 터지는 일을 경험했다. 로마 군의 부대가 유대와 갈릴리의 여러 지역에 주둔해 있었는데, 이들의 존재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한 국가로써의 자신들의 쇠망을 생각케 했다. 그들은 비통한 마음으로, 나팔을 크게 부는 소리를 듣고, 군인들이 로마의 국기 주위에 도열한 채 그들 국권의 상징에 경례를 하며 경의를 표하는 것을 보았다. 백성들과 군인들 간에 충돌이 빈번하였으며, 이일은 일반의 증오심을 격발시켰다. 로마 관리가 호위병들과 함께 급히 이동할 일이 있을 때는 흔히, 들에서 일하는 유대의 농부들을 붙들어다가 짐을 지워 산을 넘게 하거나 필요한 다른 어떤 봉사를 하도록 강요하였다. 이것은 로마의 법률과 관습에 따라 하는 일이었으므로, 그런 요구에 반항하는 것은 모욕과 학대를 초래할 뿐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로마의 멍에를 벗어 버리고자 하는 열망이 날이 갈수록 더 깊어 갔다. 대담하고 난폭한 갈릴리 사람들은 반항 정신이 특히 강했다. 국경 도시인 가버나움은 로마 수비대의 주둔지였다. 예수께서 가르치고 계시는 동안에도, 일단의 군인들을 본 청중들은 이스라엘의 굴욕을 생각하여 씁쓸해 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로마의 교만을 꺾어 주실 분이기를 바라면서 그분을 열심히 주목하였다.
14예수께서는 슬픈 마음으로, 앞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는 얼굴들을 살펴보신다. 그들의 얼굴에 찍혀 있는 복수의 정신을 주목하시며, 그들이 그들을 탄압하는 자들을 타도할 능력이 나타나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 알아차리신다. 그분은 슬픔에 잠긴 음성으로 그들을 향해, “악한 사람을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고 명령하신다.
15이 말씀은 구약 성경의 교훈을 반복한 데 불과한 것이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지라”(레위기 24장 20절)는 말이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율법의 한 조목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국가적 법령이었다. 어떤 사람도 복수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주님의 말씀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잠언 20장 22절), “그가 내게 행함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 행한 대로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잠언 24장 29절).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 하지 말며”(잠언 24장 17절), “네 원수가 배고파 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 하거든 물을 마시우라”(잠언 25장 21절).
16예수님의 지상 생애는 전부가 이 원칙을 나타내는 생애였다. 우리 구주께서 하늘의 집을 떠나신 것은 원수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가져다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분께서는 비록 요람에서부터 무덤에 이르기까지 중상과 핍박을 쌓일 정도로 많이 받으셨지만 그 때마다 용서와 사랑만을 나타내셨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이사야 50장 6절).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 53장 7절). 당신을 죽게 한 자들을 위한 기도와, 죽어 가는 도둑에게 전한 소망의 기별은 갈바리의 십자가를 통해 각 시대로 전달되고 있다.
17아버지의 임재(臨在)가 그리스도를 두르고 있었으므로, 무한한 사랑이 세상의 축복을 위하여 허락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그분께 닥치지 않았다. 여기에 그분의 위로의 근원이 있었으며, 이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감동되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된다. 이 사람을 겨냥한 강타는, 그를 당신의 임재로 두르고 있는 구주께로 떨어지게 된다. 그에게 닥치는 것은 무엇이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방벽이 되시므로, 그는 악을 대항할 필요가 없다. 주께서 허락하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그를 건드릴 것이 없다. 그리고 주께서 허락하시는 것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로마서 8장 28절)게 된다.
18“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자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19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 들에게, 관헌들의 요구를 거절하는 대신에 그들이 요구한 것 이상을 하라고 명령하셨다. 따라서, 제자들은 의무가 국법이 요구하는 것 이상일지라도 할 수 있는 한 그 모든 것을 이행해야 했다. 율법이 모세를 통해 주어질 당시에는 가난한 자들을 매우 따뜻하게 보살필 것을 요구했다. 가난한 사람이 전당물이나 빚의 담보물로 옷을 줄 때, 채권자는 그것을 받으러 그 집에 들어가도록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그가 받을 담보물을 거리에서 기다려야 했다.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해 질 때는 그 전당물을 그 소유주께 반드시 돌려주어야 했다(신명기 24장 10-13절 참조). 그리스도 당시에는 이 자비의 처사가 거의 무시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비록 법정의 판결이 모세가 인정한 율법 이상의 것을 요구할지라도 거기에 복종할 것을 당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그것이 그들의 의복의 일부를 요구하는 것일지라도 거기에 복종해야 했다. 이에 더하여, 그들은 채권자에게 응당 치러야 할 것을 주는 것은 물론, 필요한 경우에는 법정에서 채권자에게 몰수해 가도록 권한을 부여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어야 했다. 그분께서는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오 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를 동행하라.
20예수께서는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부언하셨다. 동일한 교훈이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다.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신명기 15장 7, 8절). 이 성경 말씀은 구주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분명히 밝혀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동정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렇게 주라고 가르치지 않으시고,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이것은 빌려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선물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누가복음 6장 35절)려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구제로써 자신을 바치는 자는 자기 자신과
그의 굶주린 이웃과 나, 세 사람을 먹이게 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마태복음 5장 44절).
21“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고 한 구주의 교훈이, 복수심이 강한 유대인들에게는 어려운 말이었으므로, 그들은 이에 대하여 불평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보다 더욱 강한 주장을 하셨다.
22“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23이것이 바로 랍비들이 냉혹하고 까다로운 강요의 법전으로 그릇 해석하고 있던 율법의 참 정신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것으로 여기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출생한 특권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용서해 주는 사랑의 정신이란 그들이 저희가 멸시하는 세리와 죄인들보다 더욱 고상한 동기로 행동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는 것임을 지적하셨다.
24그분께서는 “우리 아버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청중들로 하여금 우주의 통치자를 주목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얼마나 극진히 생각하시는지 이해시키려고 하셨다. 그분께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잃어버린 영혼을 돌보고 계신다는 것과,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편 103편 13절)신다는 것을 가르치신다. 성경의 종교 외엔 그 어떤 종교도 하나님에 대한 이 같은 개념을 소개한 일이 없었다. 이교(異敎)는 지존하신 분을 사랑의 대상자로보다 공포의 대상자로, 사랑의 선물을 자녀들에게 쏟아 주시는 아버지로보다는 오히려 제사로써 달래야 할 악독한 신으로 보도록 가르친다.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까지도 하나님에 대한 선지자들의 귀중한 교훈에 너무 눈이 멀어 있어, 아버지로서의 그분의 사랑에 대한 이 계시는 하나의 색다른 주제, 곧 세상에 주어 새로운 선물처럼 되고 말았다.
25유대인들은 주장하기를,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섬기는 사람들, 곧 유대인들 저희가 볼 때 랍비들의 요구에 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그분의 불쾌히 여기심과 저주 아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런 것이 아니고 온 세상이, 다시 말해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다 당신의 사랑의 햇빛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 진리는 누구나 다 천연계를 통해 이미 배웠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시기 때문이다.
26해마다 지구가 풍성한 소산을 내며 태양의 주위를 계속해서 공전하는 것은 고유의 능력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의 손이 유성들을 인도하여 각각 자기 자리를 지키며 질서 있게 운행하게 한다. 여름과 겨울, 파종기와 추수기, 낮과 밤이 질서 있게 계속되는 것은 그분의 능력을 통해서이다. 식물이 잘 자라는 것은, 바꿔 말해 잎이 나고 꽃이 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이다. 우리의 수중에 있는 모든 유익한 것들 곧 햇빛과 소나기, 매 끼의 식사, 매 순간 유지되는 생명은 사랑의 선물이다.
27비록 우리가 사랑스럽지 못하고 호감이 가지 않는 품성을 가진 “피차 미워한 자”였을지라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셨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하셨나니”(디도서 3장 3-5절). 그분의 사랑을 받으면, 우리 또한 같은 모양으로 우리를 기쁘게 하는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가장 허물 많고 죄가 많은 사람에게도 친절과 온유를 나타내게 될 것이다.
28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분의 품성에 참예하는 자들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세속적 계급도, 혈통(血統)도, 국적도, 종교적 특권도 아니다. 그것은 사랑, 곧 온 인류를 품에 안는 사랑이다. 비록 죄인이라 할지라도 마음이 하나님의 영에 대하여 완전히 닫혀 있지 않으면 친절에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다. 미움에 대해서는 미움을 나타낼지라도, 사랑에 대해서는 사랑을 나타낼 것이다. 그러나 증오에 대하여 사랑을 나타내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감사할 줄을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 친절하게 하고, 보수를 전혀 바라지 않고 선을 행하는 것은 하늘 왕족의 표 곧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들이 그들의 고상한 신분을 알려 주는 분명한 표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5장 48절).
29“그러므로”라는 말은 하나의 결론, 곧 이전까지 진행되어 온 것에서 얻은 결론을 함축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청중에게 하나님의 확실한 자비와 사랑을 설명하시면서, 그러므로 완전하라고 명령하신다. 그분께서는 하늘 아버지께서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누가복음 6장 35절)며, 우리를 높이시기 위하여 자기를 낮추셨으므로 누구나 품성에 있어서 그분과 같이 될 수 있고, 또 사람들과 천사들 앞에 흠이 없이 설 수 있다고 하셨다.
30영생의 조건은 은혜를 통해 에덴동산 시절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그것은 곧 완전한 의, 하나님과의 조화, 그분의 율법의 원칙과의 완전한 일치이다. 구약에 제시된 품성의 표준은 신약에 제시된 것과 동일하다. 이 표준은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명령이나 권고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약속 곧 매우 적극적인 약속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과 같이 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갖추어 놓으셨으며, 또 사악한 의지를 개입시키지 않고 당신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는 모든 자들을 위하여 이 일을 이루실 것이다.
31우리 하나님께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는 지식에 넘치는 이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에 관하여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될 때 그분에 대한 사랑이 움튼다. 그리스도의 매력적인 사랑이 계시되고,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때 우리에게 나타내신 그분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완고한 마음은 녹아지고 부드러워지며, 죄인은 변화를 입고 하늘의 자녀가 된다. 하나님은 강제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사랑은 그분께서 마음에서 죄를 제거하실 때 사용하시는 대리인이다. 사랑으로써, 하나님은 교만을 겸손으로, 적의와 불신을 사랑과 믿음으로 바꾸신다.
32유대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완전에 이르고자 애를 쓰며 피곤해 했지만 결국 실패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의로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이미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그분께서,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소유하게 될 의의 품성을 지적하신다. 산상에서의 설교를 통하여 그분은 의의 결과를 설명하시고, 지금은 또 한 문장으로 다음과 같이 의의 근원과 그 성격을 지적하신다.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같이 완전하라.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에 불과하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를 통해 그분의 나라의 기초가 되는 원칙이 완전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라.
33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태양에서 나오는 빛 줄기처럼, 사랑과 빛과 기쁨이 그분에게서 나와서 모든 피조물에게로 흘러간다. 이것이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본성이다. 그분의 생애 자체가 무아(無我)의, 사랑의 유출(流出)이다.
- 1 머리말
- 2 산 위에서
- 3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4절).
- 4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5절).
- 5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마태복음 5장 7절).
- 6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8절).
- 7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태복음 5장 10절).
- 8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11절).
- 9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마태복음 5장 13절).
- 10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4절).
- 11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5장 20절).
- 12 “형제와 화목하고”(마태복음 5장 24절).
- 13 것이 옳으니이까” (마태복음 19장 3절).
- 14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마태복음 5장 34절).
- 15 그가 기뻐 하심은 자애로운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라.”
- 16 같이 되지 말라” (마태복음 6장 5절).
- 17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마태복음 6장 16절).
- 18 땅에 쌓아 두지 말라” (마태복음 6장 19절).
- 19 “염려하지 말라” (마태복음 6장 25절).
- 20 (마태복음 6장 33절).
- 21 (누가복음 11장 2절).
- 22 “나라이 임하옵시며” (마태복음 6장 10절).
- 23 (마태복음 6장 11절).
- 24 있사옵나이다” (마태복음 6장 13절).
- 25 (마태복음 7장 6절).
- 26 길이 협착하여” (마태복음 7장 14절).
- 27 (누가복음 13장 24절).
- 28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마태복음 7장 15절).
- 29 놓은 연고요” (마태복음 7장 2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