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4절).
1예수께서는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그들 주변에 있는 천연계에서 실례를 자주 듦으로써 당신의 교훈을 흥미롭게 만들고 청중들의 주의를 이끄셨다. 아직 이른 아침이었지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창공으로 점점 높이 떠오르는 광명한 태양은 산골짝과 산의 협곡들 사이에 숨어 있는 어두운 그림자들을 몰아내고 있었다. 동녘 하늘의 노을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채였다. 태양 빛이 그 찬란한 광채를 대지 위에 쏟아 놓고 있었다. 잔잔한 호수의 수면은 황금 빛을 반사하고 장미빛 아침 구름을 잠그고 있었다. 꽃봉오리, 꽃,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 이 모든 것들이 이슬을 머금고 반짝거렸다. 천연계는 새 날의 축복으로 미소 짓고, 새들은 나무 사이에서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구주께서는 앞에 있는 무리들과 떠오르는 태양을 차례로 바라보신 다음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다. 태양이 밤의 어둠을 몰아내고 세상에 생명을 일깨워 줌으로 사랑의 사명을 다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도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나아가 오류와 죄의 암흑 속에 있는 자들에게 하늘의 빛을 널리 비추어 주어야 한다.
2주변의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는 성읍들과 마을들이 찬란한 아침빛을 받아 아주 보기 좋은 모습으로 단정하게 서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것들을 가리키면서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분은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고 부언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농부와 어부였다. 그들의 초라한 집에는 방이 하나밖에 없었으며, 그 방에 있는 등 또한 하나로 등경위에 얹힌 채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치었다. 예수께서는, 이와 똑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3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오는 빛 외에는 그 어떤 빛도 일찌기 타락한 인류에게 비친 적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구주 예수님이 죄로 죽어 가는 세상의 암흑을 비춰 줄 수 있는 유일한 빛이시다.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으로 이런 것이 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한복음 1장 4절).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빛을 전하는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의 생명을 받음으로써였다. 영혼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과, 품성에 나타난 그분의 사랑이 그들을 세상의 빛이 되게 하였던 것이다.
4인간 자체에는 아무런 빛도 없다. 그리스도를 떠나면 우리는 불붙지 않은 심지와 같고 태양을 등진 달과 같다. 우리에게는 세상의 흑암을 비출 수 있는 빛이 한 줄기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의의 태양을 향하고 그리스도와 접촉하게 될 때, 온 심령은 하나님의 임재의 빛으로 작열한다.
5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사람들 사이에 있는 단순한 빛 이상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세상의 빛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너희는 자신을 나에게 바쳤고 나는 너희를 나의 대표자로 세상에 보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당신을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요한복음 17장 18절)다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나타내는 통로이신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오, 그리스도인들 이여, 우리 구주께서는 비록 광명의 대근원 이시지만 인간을 통해 나타나신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라. 하나님의 축복은 인간을 방편으로 하여 주어진다. 그리스도 자신도 인자로서 세상에 오셨다. 신성과 연합한 인간이 인간과 접촉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교회 곧 주님의 제자 각 개인은 모두가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드러내기 위해 하늘이 택한 통로이다. 영광의 천사들은 그대를 통해, 멸망 직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빛과 능력을 전달하고자 기다리고 있다. 인간 대리자가 맡은 사업을 성취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아, 그 때는 세상이 그만큼 허락된 성령의 감화를 강탈당하게 되지 않겠는가!
6그러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빛을 비추기 위하여 분투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셨다. 단지 “빛이 비취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속에 거하시면 그분의 임재의 빛을 감출 수 없다. 만일,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생명의 능력이 그들에게서 떠나갔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에게 비출 빛이 없다면, 그것은 그들이 빛의 근원 되는 분과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7각 시대를 통하여,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베드로전서 1장 11절)은 하나님의 진실한 백성들로 하여금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빛이 되게 하였다. 요셉은 애굽에서 빛을 전달하는 자가 되었다. 그는 순결과 박애와 효도를 통해 우상 숭배자들의 나라에서 그리스도를 나타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허락의 땅으로 가는 동안, 그들 가운데 진실한 마음을 가진 자들은 주변 국가들에게 빛이 되었다.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세상에 알려졌다. 바벨론에서는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통하여, 그리고 바사에서는 모르드개를 통하여 밝은 빛이 왕궁의 흑암 속으로 뚫고 들어갔다. 그와같이,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하늘 가는 길에 빛을 비추는 자들로 세움을 받았다. 그들을 통하여, 아버지의 자비와 선하심이 하나님에 대한 오해의 흑암에 둘러싸여 있는 세상에 밝히 드러난다. 그들의 선한 행실을 봄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찬송을 받고 본이 되기에 합당한 품성을 가지신 하나님이 우주의 보좌 위에 계신 것이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마음속에서 불타는 거룩한 사랑과 생애를 통해 나타나는 그리스도를 닮은 융화의 태도는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그 곳의 탁월함을 깨닫게 한다.
8그리하여 사람들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 알고 믿”(요한일서 4장 16절)게 된다. 그리고 한때 죄와 타락에 빠졌던 사람들도 순결해지고 변화되어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유다서 24절)로 나타나게 된다.
9“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구주의 말씀은 그분이 당신을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범 세계적인 사명을 맡기고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 당시에는 이기심과 교만과 편견이 거룩한 말씀의 수호자로 임명 받은 백성들과 지상에 있는 다른 모든 민족들 사이에 견고하고 높은 장벽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이 모든 것을 바꿔 놓기 위해 오셨다. 사람들이 구주의 입술에서 들은 말씀은 그들이 지금껏 제사장이나 랍비에게서 들은 말과 같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벽과 이기심과 민족 차별의 편견을 헐어 버리시고, 모든 인간 가족을 위한 사랑을 가르치신다. 그분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기심 때문에 달라붙어 있던 좁은 범위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모든 경계선과 사회의 모든 인위적 차이를 철폐하신다. 그분은 이방인과 이웃, 친구와 원수를 구별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모든 가난한 사람을 우리의 이웃으로, 세상을 우리의 일터로 여기도록 가르치신다.
10태양 광선이 지구의 가장 먼 구석까지 비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빛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미치도록 계획하신다. 만일, 그리스도의 교회가 우리 주님의 목적을 성취할 것 같으면, 흑암과 죽음의 음침한 그늘에 웅크리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게 될 것이다. 한 곳에 모여서 책임과 십자가 지기를 회피하는 대신, 교인들은 온 세상에 흩어져서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며,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일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천국 복음”은 곧 온 세상에 신속히 전해질 것 이다.
11메소보다미아 평원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이 시대의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부르시는 목적이 성취되려면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한다. 그분께서는 “네게 복을 주니 …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세기 12장 2절)고 말씀하신다. 산상 설교에서도 울려 퍼지고 있는, 복음 선지자를 통한 그리스도의 말씀은 이 마지막 시대에 사는 우리를 위한 것이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이사야 60장 1절). 만일, 주님의 영광이 그대의 심령에 비치고, 그대가 “만 사람에게 뛰어 나고” “온전히 아름다운” 분의 미를 쳐다보고, 그대의 마음이 그분의 영광의 임재 안에서 빛나기만 하면 주께로부터 오는 이 말씀은 그대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된다. 그대는 그리스도와 함께 변화산에서 본 일이 있는가? 그 아래 평지에는 사단에게 사로잡힌 영혼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을 해방시켜 줄 믿음과 기도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12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명상할 뿐 아니라 그분의 탁월함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사야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을 뿐 아니라 그분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다윗은 명상하는 동안 불이 타올라 자신의 혀로 말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명상하는 동안 보고 느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믿음으로 놀라운 구원의 계획 곧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고도 그것에 관하여 이야기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갈바리 십자가에서 죽음을 통해 나타내 보이신 그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그 누가 상상할 수 있으며, 또 이것을 보고 구주의 영광을 찬양하는 말을 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13“그 전에서 모든 것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시편 29편 9절). 이스라엘의 종교 시인은 거문고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사를 나는 묵상하리이다 사람들은 주의 두려운 일의 세력을 말할 것이요 나도 주의 광대하심을 선포하리이다”(시편 145편 5, 6절)고 말한다.
14갈바리의 십자가는 사람들 위에 높이 들려 그들의 마음과 생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모든 영적 기능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는 거룩한 능력으로 충전될 것이다. 그리고 또, 주님을 위한 진실한 사업에 힘을 집중시키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일꾼들은 이 땅을 밝히는 산 대리자로서 세상을 향해 광선을 내뿜을 것이다.
15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 헌신하는 모든 인간 대리자들을 참으로 기쁘게 받으신다. 그분께서는 성육신(成肉身)의 사랑의 신비를 이 세상에 알려 주기 위하여 인간이 하늘과 연합하게 하신다. 이것을 이야기하고 기도하고 노래하라. 그분의 영광의 기별을 널리 선포하고, 지경 저편을 향하여 계속 전진하라.
16꾸준히 참아 낸 시련,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은 축복, 용감하게 물리친 유혹, 온유, 친절, 자비, 늘 나타나는 사랑, 이 모든 것들은 생명의 빛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이기적인 마음의 흑암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품성에서 비치는 빛들이다.
율법의 신성성
“내가 …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마태복음 5장 17절).
17시내산의 우뢰와 불꽃 가운데서 율법을 선포하신 분은 그리스도이셨다. 하나님의 영광이 삼키는 불과 같이 산꼭대기에 머물고, 주님의 임재에 산이 진동했다.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땅 위에 부복한 채 두려운 마음으로 율법의 거룩한 교훈을 들었다. 축복의 산에서 있었던 장면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오직 새들의 노래만이 적막을 깨뜨리는 여름의 하늘 아래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나라의 원칙을 설명하셨다. 그러나 이 날에 사랑의 음성으로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분께서는 시내산에서 선포된 율법의 원칙을 설명하고 계셨다.
18율법이 주어졌을 때, 애굽에서의 오랜 속박 때문에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으로 감명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분께서 자신을 그들에게 사랑의 하나님으로 계시하셨다.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취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셨고
그 오른손에는 불같은 율법이 있도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 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신명기 33장 2, 3절).
19하나님께서는 각 시대의 귀중한 유산으로 간직되어 온 이 놀라운 말씀을 통하여 당신의 영광을 모세에게 나타내셨다.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출애굽기 34장 6, 7절).
20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은 사랑의 원칙을 반포한 것, 즉 하늘의 율법을 땅에 계시한 것이었다. 그 율법은 중보자의 손으로 제정되고, 사람의 마음을 그 율법의 원칙과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에 의해 선포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출애굽기 22장 31절)라고 말씀하시면서 율법의 목적을 드러내셨다.
21그러나 이스라엘은 율법의 신성한 특성을 깨닫지 못하였으며, 너무도 자주, 그들이 공언한 순종은 사랑의 통치에 마음을 복종시켰다기보다는 형식과 의식을 따르는 것에 불과했다. 예수께서 당신의 품성과 사업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고 자비롭고 은혜로운 속성을 나타내시고 단순한 의식적 순종의 무가치함을 드러내셨을 때, 유대의 지도자들은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예수께서 율법의 요구를 너무 경하게 여긴다고 생각하였다. 이리하여 그분이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그들의 봉사의 중심이 되는 진리를 제시하셨을 때, 그들은 다만 외적인 것만 보고 그분께서 율법을 파괴하고자 한다고 비난했다.
22그리스도께서는 비록 조용히 말씀하셨으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성과 능력으로 말씀하셨다. 그들은 랍비들의 생명 없는 유전과 부당한 요구의 되풀이려니 하고 들었으나 그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마태복음 7장 29절)에 놀랐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교수 방법과 그리스도의 그것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았다. 그들은 진리의 위엄과 순결과 미가 그 오묘하고 부드러운 감화력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굳게 붙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구주의 거룩한 사랑과 친절이 사람들의 마음을 그분께로 이끌었다. 랍비들은 그분의 가르치심 때문에 그들이 사람들에게 가르친 모든 교훈의 취지가 무시되어 버린 것을 깨달았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교만과 배타주의(排他主義)를 크게 만족시켜 온 격벽(隔壁)을 무너뜨리고 계셨다. 그들은 만일 허락만 하면 그분께서 사람들을 그들에게서 완전히 끌어 갈 것이라고 두려워하였다. 그리하여 단호한 적의(敵意)를 품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어떻게 하면 무리에게서 그분의 인기를 떨어뜨리고 산헤드린 회로 하여금 그분을 정죄하여 죽이도록 할까 하고 기회를 엿보았다.
23산 위에서, 예수께서는 정탐꾼들에게 면밀한 감시를 받으셨다. 그분께서 의의 원칙들을 밝히실 때, 바리새인들은 그분의 가르치심이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주신 계명과 반대된다고 서로 속삭였다. 구주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주신 신앙과 제도에 대한 믿음을 동요케 할 말씀은 전혀 안 하셨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인 그가 백성들에게 전달해 준 거룩한 빛의 모든 광선이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율법을 폐하러 오셨다고 마음속으로 말하지만, 그분께서는 명백한 말씀으로 거룩한 계명에 대한 당신의 태도를 표명하신다. 그분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마태복음 5장 17절)고 말씀하셨다.
24계명을 폐하는 것이 당신의 목적이 아니라고 선언하시는 분은 인류의 창조주이시며 율법의 시여자(施與者)이시다. 천연계 속에 있는 모든 것, 곧 광선에 비치는 티끌로부터 하늘에 있는 세계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다 법칙 아래 있다. 천연계의 질서와 조화는 이 법칙을 순종하는 데 달렸다. 그러므로 지성적 존재의 생애를 주관하는 의의 큰 원칙이 있으며, 우주의 안녕은 이 원칙에 조화를 이루는 데 달렸다. 이 지구가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의 율법이 존재하였다. 천사들이 이 율법의 원칙에 의하여 지배를 받기 때문에, 세상이 하늘과 조화되기 위하여서는 사람도 하늘의 법에 순종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욥기 38장 7절)할 때, 에덴동산에 있는 사람에게 율법의 교훈을 알려 주셨다.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사명은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고 당신의 은혜로 사람들을 돌이켜 율법의 교훈을 따르게 하는 것이었다.
25산 위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오랜 후에 성령의 감동으로 영감의 기록을 남긴 사랑의 제자는 율법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마치 항구적인 의무에 대해 하듯 한다. 그는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한일서 3장 4절)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말한 율법이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요한일서 2장 7절)이라고 분명히 밝힌다. 그는, 창조시에 있었고 시내산에서 다시 언급된 율법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26예수께서는 율법에 대해 언급하면서 “내가 …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여기서 “완전케 한다” 는 말을, 침례 요한에게 “모든 의를 이루기”(마태복음 3장 15절) 위한 당신의 목적을 선언하실 때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셨는데, 그것은 율법이 요구하는 표준을 이루고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하는 본을 보이는 것이다.
27예수님의 사명은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이사야 42장 21절)는 것이었다. 율법의 거룩한 특성을 보여 주고, 그 광범위한 영향력을 제시하며, 그 영원한 의무를 명확히 밝혀 주셔야 했다.
28그리스도의 품성의 신성미를 두고 이야기하자면, 가장 고상하고 온유한 사람도 그분을 희미하게 반사할 뿐이다. 솔로몬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만 사람에 뛰어 난다 …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아가 5장 10-16절)라는 말로 그분에 관하여 기록하였다. 예언적 안목으로 그분을 바라본 다윗은 그분에 대해 “왕은 인생보다 아름”(시편 45편 2절)답다고 말하였다. 아버지의 본체의 분명한 형상이시며,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이시요 극기의 구속주이신 예수님은 지상에서 사랑의 순례자로 지내시는 동안 하나님의 율법의 성격을 생생하게 나타내셨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하늘에서 난 사랑, 곧 그리스도 같은 원칙이 영원히 공정한 율법의 기초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29예수께서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율법에 순종 하심으로써 변경할 수 없는 율법의 성격을 증거하시고, 아담의 모든 자손이 당신의 은혜를 통하여 율법을 완전히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셨다. 산 위에서 그분은 모든 것, 즉 인류와 관계되는 모든 것, 구원의 계획과 관련되는 모든 것이 성취되기 전에는 율법의 가장 작은 일획도 폐하지 않으리라고 언명하셨다. 그분께서는 율법이 결코 폐지될 수 없다고 가르치시며, 또 우리의 시계(視界)를 최대로 넓혀 그 끝을 바라보게 하시고, 그 끝에 이르기 전에는 율법이 그 권위를 계속 보존하게 될 것이라고 확인하심으로써 아무도 율법을 폐지하는 것을 예수님의 사명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하신다. 천지가 존속하는 한, 하나님의 율법의 거룩한 원칙도 남아 있을 것이다. “산들과 같”(시편 36편 6절)은 그분의 의는 계속 축복의 근원으로서 대지에 생기를 주는 시냇물을 흘려 보낼 것이다.
30하나님의 율법은 변경이 필요 없을 만큼 완전하므로, 죄악적인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율법이 요구하는 표준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구속주로 오신 이유였다. 예수님의 사명은 사람들을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로 만들어 하늘의 율법의 원칙과 조화되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죄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받아들일 때, 율법은 높여진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로마서 3장 31절)고 말한다.
31새 언약의 약속은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히브리서 10장 16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그분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가리킨 표상적 제도는 폐지되었으나, 십계명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된 의의 원칙은 영원한 보좌와 마찬가지로 변치 않는다. 율법의 한 조목도 폐지되지 않고, 일점 일획도 변경되지 않았다. 에덴동산에서 생애의 큰 법칙으로 인류에게 알려진 그 원칙들은 회복된 낙원에서도 변치 않고 존재할 것이다. 에덴동산이 다시 지상에서 꽃 필 때, 태양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율법을 순종하게 될 것이다.
32“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시편119편 89절) “그 법도는 다 확실하니 영원 무궁히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시편 111편 7, 8절) “내가 전부터 주의 증거를 궁구하므로 주께서 영원히 세우신 것인 줄을 알았나이다”(시편 119편 152절).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마태복음 5장 19절).
33말하자면, 이러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그것은 한 계명이라도 고의적으로 범하는 자는 다른 계명도 신령과 진정으로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야고보서 2장 10절).
34죄를 이루는 것은 큰 불순종의 행위가 아니고 지극히 작은 것에서 하나님이 나타낸 뜻과 충돌을 빚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람이 아직 죄와 교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마음은 섬기는 바에 따라 나누어진다. 거기에는 사실상 하나님을 부인하는 일 곧 하늘 정부의 율법을 반역하는 일이 있다.
35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의 요구에서 떠나 스스로 의무의 표준을 세울 것 같으면, 각 사람의 마음에 따라 여러 가지 표준이 있게 되고, 주권도 주님의 손에서 빼앗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뜻이 최고의 것으로 여겨지고, 높고 거룩한 하나님의 뜻, 곧 피조물을 사랑하시는 그분의 목적은 업신여김을 받고 무시될 것이다.
36사람들이 자기 스스로의 길을 택할 때에는 언제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위치에 이르게 된다. 그들은 하늘나라에서 있을 자리를 얻지 못할 것인데, 그것은 스스로 하늘의 원칙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함으로써,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의 원수인 사단의 편에 가담하고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한 말씀이나 여러 말씀으로 살 것이 아니라 그분의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말씀 하나라도 무시하면 안전할 수 없다. 율법 가운데서 이생과 내세에서 다 같이 사람의 유익과 행복을 위하지 않는 계명은 하나도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함으로써 울타리에 둘려 있는 것처럼 악에서 보호를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 구축해 놓은 이 방호벽을 한 곳이라도 무너뜨리는 자는 그를 보호해 주는 그 능력을 파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원수가 들어와서 황폐케 하고 멸망시킬 길을 열어 놓기 때문이다.
37우리의 첫 조상은 한 가지 점에서 감히 하나님의 뜻을 경시함으로써 이 세상에 재난의 수문을 열어 놓았다. 그러므로 그들의 본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같이 유사한 결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의 각 교훈은 그분의 사랑이 기초가 되어 있기 때문에, 계명을 떠나는 자는 불행과 멸망을 자초하게 된다.
- 1 머리말
- 2 산 위에서
- 3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4절).
- 4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5절).
- 5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마태복음 5장 7절).
- 6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8절).
- 7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태복음 5장 10절).
- 8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11절).
- 9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마태복음 5장 13절).
- 10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4절).
- 11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5장 20절).
- 12 “형제와 화목하고”(마태복음 5장 24절).
- 13 것이 옳으니이까” (마태복음 19장 3절).
- 14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마태복음 5장 34절).
- 15 그가 기뻐 하심은 자애로운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라.”
- 16 같이 되지 말라” (마태복음 6장 5절).
- 17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마태복음 6장 16절).
- 18 땅에 쌓아 두지 말라” (마태복음 6장 19절).
- 19 “염려하지 말라” (마태복음 6장 25절).
- 20 (마태복음 6장 33절).
- 21 (누가복음 11장 2절).
- 22 “나라이 임하옵시며” (마태복음 6장 10절).
- 23 (마태복음 6장 11절).
- 24 있사옵나이다” (마태복음 6장 13절).
- 25 (마태복음 7장 6절).
- 26 길이 협착하여” (마태복음 7장 14절).
- 27 (누가복음 13장 24절).
- 28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마태복음 7장 15절).
- 29 놓은 연고요” (마태복음 7장 2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