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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로서의 성경

제 5 장

“그것이 너의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너의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너의 깰 때에 너로 더불어

말하리니”(잠 6:22)

제 1 절

지식·영적 교양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잠 24:4)

1신체는 물론 마음과 영성까지도 살아 움직이는 활동에 의하여 힘을 얻도록 경영하신 것이 하나님의 원칙이다. 즉, 발달은 운동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원칙과 일치하는, 지성과 영성의 발달을 위한 방법들을 성경 가운데 준비하여 주셨다.

2성경에는 사람들이 현세에서도 적합하고 내세에서도 적합한 자가 되기 위하여 깨달아야 할 모든 원칙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원칙들은 누구에게나 이해될 수 있는 평이한 것들이다. 누구나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단 한 절을 읽을지라도 거기서 유익한 사상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따금 하는 연구나 단편적인 연구로서는 성경의 가장 귀중한 교훈을 배울 수가 없다. 성경을 급히 또는 부주의하게 읽는 사람에게는 성경의 큰 진리 체계가 깨우쳐지지 않는다. 진리의 보화는 대부분 표면 아래 깊이 파묻혀져 있으므로, 열심 있는 탐구와 끊임없는 노력으로써만 이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진리들을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사 28:10)씩 찾아내어 모음으로써 하나로 크게 만들어야 한다.

3이렇게 찾아지고 모아진 진리는 서로 완전하게 조화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4복음은 서로 부족한 것을 보완하고 있으며, 모든 예언들은 서로 다른 예언들을 설명하고, 모든 진리들은 다른 어떤 진리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유대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은 복음서에 명백하게 제시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원칙들은 각각 그 나름의 의의와 기능을 가진다. 그리하여, 이 완전한 진리는 구성이나 그 시행에 있어서 창시자이신 하나님을 증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의 구성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지혜에 의해서만 생각되고 만들어질 수 있다.

4사람이 여러 모양의 부분적인 진리들을 찾고 그 관계를 연구할 때에 인간의 지성은 그 기능이 최고도로 신장된다. 지능의 계발 없이는 누구도 이러한 연구에 종사할 수 없다.

5성경 연구에 있어서 지적(知的)인 활동은 진리를 찾아 모으는 일뿐만 아니라 제시된 주제를 파악하는 노력도 포함한다. 일상의 평범한 일에만 마음을 쓰게 되면 지능이 계발되지 못하고 떨어진다. 숭고하고 원대한 진리를 터득하기 위하여 지능을 활용하지 않으면 결국 그 지능은 성장력을 상실하고 만다. 지능의 퇴화를 막고 그 발달을 촉진하는 일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성경은 지적 훈련의 자료로서 그 어떤 책, 아니 다른 모든 책들을 합친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 그것이 가지는 주제의 위대성과 단순하나 위엄 있는 말씀, 그리고 비유의 아름다움은 다른 것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일, 즉 사람의 사상을 일깨우고 향상시키는 일을 한다. 다른 어떤 연구도 성경의 훌륭한 진리를 즐거운 마음으로 터득하려고 하는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지적 능력은 가져다 줄 수가 없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더불어 접촉될 때, 우리의 지능은 비로소 신장되고 높아진다.

6영성의 발달에 있어서도 성경이 끼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사람은 하나님과 더불어 사귀도록 창조되었으므로 그분과 교제를 함으로써만 참된 생활과 발전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만 최고의 기쁨을 찾을 수 있으며, 다른 것에서는 갈망을 진정시키고 심령의 주림과 목마름을 채울 수 없다. 신실하고, 가르침을 받으려는 정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그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사람은 말씀의 창시자이신 하나님과 접촉하게 되며, 스스로 거부하지 않는 한 무한한 발전의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7성경은 광범위한 문체와 논제를 가지고 있어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이끌며 각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성경의 페이지들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 가장 진실한 생애를 산 사람들의 전기, 그리고 국가를 통치하고 가족을 다스리는 원칙들, 곧 사람의 지혜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탁월한 원칙들을 볼 수 있다. 성경에는 가장 심오한 철학, 가장 아름답고 숭고하고 감격적이며 참으로 감상적인 시가 담겨 있다. 이것만 생각해도 성경의 내용들이 어떤 인간의 저서보다도 탁월한 가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숭고한 중심 사상과 관련하여 생각하면, 성경은 더 넓고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생각으로 성경을 대할 때, 성경의 모든 주제들은 새로운 의미를 제시해 준다. 가장 단순하게 말하여진 진리 가운데, 하늘처럼 높고 영원한 사물을 깨닫게 하는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8성경 전체 가운데 논의된 중심 주제는 구속의 경륜이며, 이 구속의 경륜은 사람의 심령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는 일이다. 에덴에서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희망에 대한 첫 암시에서부터 요한계시록에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계 22:4)고 기록된 마지막 영광스런 약속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각 권 각 면에서 우리는 인류를 향상시키는 훌륭한 주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고전 15:57)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된다.

9이러한 사상을 파악한 사람의 눈앞에는 연구의 무한한 분야들이 전개되어 있다. 그러한 사람은 모든 하나님의 말씀의 보고를 여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

10구속의 과학은 과학 중의 과학이다. 이 과학은 천사들과 타락하지 아니한 다른 세계의 백성들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서, 구주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영세 전부터 감취었”(롬 16:25)던 목적을 연구하는 학문이며, 하나님께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무궁한 세월을 두고 연구해야 할 학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한 번 해볼 만한 최고의 학문인 것이다. 이 학문은 다른 어떤 학문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소생케 하고 심령을 고상하게 한다.

11“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지혜는 지혜 얻은 자의 생명을 보존함이니라”(전 7:12).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고 하셨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12모든 세계를 존재하도록 불러내신 창조력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고 생명을 낳게 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명령은 하나의 약속이다. 의지로써 이에 동의하고 심령이 이를 받아들이면, 이로 인해 무한하신 그분의 생명이 우리에게 이르러 오게 된다. 이와 같은 일들로 사람의 품성이 변화되고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다시 창조되는 것이다.

13이와 같이 나누어진 생명은 또한 같은 방법으로 나누어지고 유지된다. 사람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마 4:4)아야 한다.

14지성과 영성의 발달은 급양(給養)되는 것, 다시 말해 무엇을 먹느냐에 달려 있다. 어떤 급양을 받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속한 것이다. 우리의 사고력(思考力)을 관장하고 우리의 품성을 꼴지어 갈 주제들을 선택하는 일은 각 사람의 능력에 속하는 개인의 일들이다. 성경을 늘 가까이 할 특권이 부여된 각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 기록하였”(호 8:12)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고 말씀하신다.

15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를 당하더라도 그가 원하는 동반자와 같이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성경의 각 페이지에서, 그는 인류의 가장 고상하고 훌륭한 사람들과 더불어 교제하며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말씀하시는 영원한 음성을 들을 수가 있다. 그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벧전 1:12) 제목들을 연구하고 명상하며 천사들과 더불어 친교의 경험을 가질 수가 있다. 그는 하늘로부터 오신 교사의 발자국을 좇아서 살며, 오래 전에 예수님께서 산과 들과 바다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신 것과 같은 말씀을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은 세상에 있으나 하늘의 분위기 속에서 살며, 슬픔과 유혹에 처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성결을 사모하는 마음을 나눠 주고,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더욱 밀접하게 교제를 나누면서 마치 옛적에 하나님과 함께 동행한 사람들처럼 더욱 더 영원한 세계에 가까이 이르러 살다가, 하늘 문이 열릴 때에 그리로 들어갈 수 있는 이들이다. 그때, 순례자의 생활은 끝이 나고,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나그네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들에게 인사하는 목소리는, 땅 위에 살 때에 보이지는 아니하였으나 동행한 거룩한 이들의 소리로, 이제 여기서는 누구의 소리인지 능히 분별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분과 교제하며 살아온 이들은 하늘 본향에서 그분과의 교제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제 2 절

과학과 성경

“이것들 증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욥 12:9)

16천연계라는 책과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은 둘 다 같은 창조주의 마음을 담고 있으므로 서로 일치할 수밖에 없다. 그것들은 서로 다른 방법들과 다른 언어들을 가지고 동일한 큰 진리들을 증거한다. 과학은 끊임없이 새로운 경이적인 것들을 발견하고 있다. 과학의 탐구로 발견되는 것은 그것이 바르게 이해되는 한 거룩한 계시인 성경과 조금도 모순되지 않는다. 천연계의 책과 성경은 서로 빛을 비추고 있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하여 일하시는 법칙들을 우리에게 다소 가르침으로 그분을 알게 해 준다.

17그러나, 천연계에서 관찰되는 여러 가지 사실들에서 잘못 끌어낸 주론들은 과학과 성경이 상충되는 것으로 생각케 하였다. 또 이 둘의 조화를 도모하는 중에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훼손하고 파괴시키는 성경 해석 방법이 받아들여져 왔다. 창조에 관한 모세의 기록을 글자 그대로 해석한 것과 지질학과는 모순되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지질학은 지구가 혼돈된 상태로부터 진화하는 데 수백만 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주장한다. 이 과학의 상상적인 가설에 성경의 사실을 맞추기 위해, 창조의 기간은 수천 년 또는 수백만 년이라는 실로 어마어마하고 막연한 기간이 있었다고 추정되었다.

18이런 결론은 전혀 부당한 것이다. 성경의 기록은 그 자체와 천연계의 가르침에 일치되는 것이다. 창조에 사용된 첫째 날에 대하여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5)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동일한 내용이 창조 주간의 제 6일까지 각각 말해졌다. 이 기간 중의 하루도 오늘날과 같이 아침 저녁이 있는 하루였다는 사실이 영감 된 말씀에 기록되어 있다. 창조 사업 자체에 대해서는 하늘로부터 온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 33:9)라는 증언이 있다. 이처럼 무수한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하나님에게 있어서 땅을 혼돈한 상태로부터 진화케 하는데 과연 얼마의 세월이 필요하였겠는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설명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왜곡해야만 할까?

19땅 속에서 발견된 유물들이, 고대에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큰 사람과 동물과 식물이 살았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이 유물들은 모세의 기록 이전 시대에 동물과 식물이 생존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는 이런 것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주고 있다. 노아의 홍수 이전에는 식물과 동물의 생장이 후대의 것보다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났었다. 훙수 때에 지구의 표면은 파괴되어 현저한 변화가 생겼다. 지각이 다시 형성되는 과정에서, 그 시대 이전에 생존하였던 동식물이 화석으로 많이 보존되었다. 광대한 삼림은 홍수 때에 땅 속에 파묻혔다가 후에 석탄으로 변하여 광대한 석탄층을 형성하였고, 석유의 공급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의 생활에 편리와 안락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 말씀의 진실성을 무언 중에 입증하는 증거가 되고 있다.

20창조 사업의 최고의 영광인 사람을 미생물에서 연체 동물, 연체 동물에서 다시 사족 동물로 진화된 것으로 보는 것은 지구의 진화에 관한 학설과 유사한 것이다.

21사람에게 부여된 연구의 기회를 고려해 보라. 사람의 생명은 얼마나 짧은지를, 사람의 활동 범위는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지를, 사람의 시야는 얼마나 한정되어 있는지를, 사람이 내린 결론, 특히 성경 역사 이전으로 간주되어지는 사건들에 대하여 사람이 내린 결론은 얼마나 자주, 얼마나 큰 과오를 반복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과학의 가정적 추론은 얼마나 자주 정정되며 폐기되고 있는지를, 지구의 발달에 관한 가정적 연수가 얼마나 흔히 또 간단히 몇 백만 년씩 가감되는지를, 다른 여러 학자들에 의해 발전된 학설들이 얼마나 서로 모순되고 있는지를, 이 모든 것을 고려해 보고서도, 우리의 혈통을 미생물, 연체 동물, 원숭이로 추적해 갈 수 있는 “특권”을 인하여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창 1:27)니라는 단순하고 장엄하게 선언된 성경의 말씀을 내어 버리는 데 우리가 동의할 수 있을까! 우리는 왕의 궁정에 소중히 보관된, 어떤 족보보다도 더욱 영광스런 족보, 곧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눅 3:38)는 족보를 거부할 수 있을까?

22과학이 밝혀 낸 사실들과 인생의 경험은, 그것이 바르게 이해될 때에는 하나님께서 천연계 가운데서 끊임없이 활동하신다는 성경의 증언과 일치한다.

23느헤미야가 기록한 찬미에서 레위 사람은 노래하기를,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느 9:6)라고 하였다.

24이 지구에 관하여 성경은 창조 사업이 완결되었다고 말한다.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히 4:3).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지금도 당신께서 지으신 만물을 붙드는 일을 하고 있다. 맥박이 뛰고 호흡이 계속되는 것은, 한 번 움직이게 한 기계 조직이 그 고유의 힘에 의하여 활동을 계속하기 때문이 아니다. 호흡 하나하나, 심장의 고동 하나하나는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는,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한 증거이다. 가장 작은 곤충으로부터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은 날마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이 다 주께 … 바라나이다

주께서 주신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시 104:27-30).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

수면에 경계를 그으셨으되

빚과 어두움의 지경까지 한정을 세우셨느니라”(욥 26:7-10).

“그가 꾸짖으신즉 하늘 기둥이 떨며 놀라느니라

그는 권능으로 바다를 흉용케 하시며 …

그 신으로 하늘을 단장하시고

손으로 날랜 뱀을 찌르시나니

이런 것은 그 행사의 시작점이요

우리가 그에게 대하여 들은 것도

심히 세미한 소리뿐이니라

그 큰 능력의 우뢰야 누가 능히 측랑하랴”

(욥 26:11-14).

“여호와의 길은 회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 발의 티끌이로다”(나 1:3).

25온 천연계를 통하여 작용하며 만물을 유지하는 위대한 힘은, 일부의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갓 보편적인 원칙이나 일종의 가동시키는 에너지가 아니다. 하나님은 영이시지만 개체를 가지신 분이시다. 우리가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개체를 가지신 분으로서, 자신을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내셨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시며 “그 본체의 형상이”(히 1:3)신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구주로서 사람의 모양을 가지고 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사람의 모양을 가진 구주로서 승천하셨다. 그분은 사람의 모양을 가진 구주 그대로 하늘 궁정에서 중보하신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인자 같은 이가”(단 7:13) 우리를 위하여 봉사하고 계시는 것이다.

26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기록하는 중에 그리스도에 대하여,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 17)고 밝히 말하였다. 모든 세계를 공간에 달려 있게 하고, 우주 만물을 질서정연하게, 그리고 지치지 않고 활동하도록 붙드는 손은 바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손이다.

27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우리에게 이해될 수 없다.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시 11:4)으되, 하나님께서는 그 영으로서 도처에 두루 계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손으로 만드신 모든 것을 자세히 아시고, 하나하나에 친히 관심을 가지신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

높은 위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시 113:5, 6)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시 139:7, 8; 욥 26:6 참고).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 139:9, 10).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시 139:2-6).

28목적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이 신기하게 들어맞고, 필요를 채울 수 있는 공급이 훌륭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하신 분은 곧 만물의 창조주이셨다. 물질 세계에 있어서, 마음에 심기워진 모든 갈망이 충족되도록 준비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아는 능력과 사랑하는 능력을 갖도록 사람의 심령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분께서는 심령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지 않은 채 버려두는 분이 아니시다. 이 세상에서 죄와 슬픔과 괴로움으로 고생할 때, 실체가 없는 원칙이나, 개성이 없는 실체, 혹은 한갖 추상적 개념들로는 사람의 필요와 열망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다. 동정심도 없고 도움을 구하는 부르짖음을 들을 수도 없는 법칙이나 힘, 사물들을 신뢰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를 붙들어 주실 전능한 손,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영원하신 친구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분의 따뜻한 손을 붙잡고 사랑으로 가득한 그분의 마음을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그렇게 나타내셨다.

29삼라 만상의 신비를 깊이 연구하는 사람은 자기의 무지와 연약함을 가장 크게 인식할 것이다. 그는 도달할 수 없는 깊이와 높이, 벗길 수 없는 비밀, 아직 들어가 본 일이 없는 광대한 진리의 분야가 자기 앞에 전개되어 있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뉴튼처럼 그도 “나는 내 미지의 진리의 대양을 앞에 두고 바닷가에서 조약돌과 조개 껍질을 줍고 있었던 아이처럼 느껴진다”고 기꺼이 말할 것이다.

30과학을 가장 깊이 연구한 사람들도 천연계 가운데 무한한 능력이 작용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이성만으로 볼 때, 천연계의 가르침은 다만 모순과 실망을 줄 뿐이다. 오직 성경의 빛에 비추어 볼 때에야 비로소, 이를 바로 해석할 수 있다. “믿음으로 … 우리가 아나니”(히 11:3).

31“태초에 하나님이”(창 1:1). 열정적인 탐구심을 가진 사람은 방주로 날아간 비둘기처럼, 이 구절로 돌아감으로써만 쉼을 찾을 수 있다. 한없는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위에나 아래나 너머에나 두루 계시면서 만물들이 “선을 기뻐함”(살후 1:11)을 이루도록 일하신다.

32“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롬 1:20). 그러나, 그 만물의 증언은 오직 거룩한 교사의 도움을 받음으로써만 이해될 수 있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11).

33“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 16:13). 태초에 수면에 운행하신 하나님의 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된 말씀,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신 그리스도의 도움을 받음으로써만 과학의 증언은 올바로 해석될 수 있다. 가장 심오한 진리들은 이런 인도를 받음으로써만 깨달을 수 있다.

34전지하신 하나님의 지도 아래서만, 우리는 그분께서 만드신 것들을 연구하는 가운데 그분의 의사에 일치된 생각을 가질 수가 있다.

제 3 절

실업의 원칙과 방법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잠 10:9)

35성경은 모든 정당한 실업 부문에 대하여 요긴한 준비 사항을 말해 주고 있다. 근면, 정직, 검약, 절제, 청렴 같은 원칙은 참된 성공의 비결이다. 잠언에 설명된 이 원칙들은 실제적 지혜의 보고이다. 상인과 장인(匠人), 그리고 실업 부문의 지도자는 자신과 피고용인을 위한 격언으로 잠언에 기록된 현인의 이 같은 말씀보다 더 좋은 것은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36“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잠 22:29).

37“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잠 14:23).

38“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잠 13:4),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잠 23:21).

39“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잠 20:19).

40“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잠 17:27),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잠 20:3).

41“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잠 4:14). “사람이 숯불을 밟고야 어찌 그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잠 6:28).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잠 13:20).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잠 18:24).

42우리가 서로에 대하여 가져야 할 책임의 범위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포함되어 있다.

* *

43성경에 그토록 자주 반복되고 강조되어 있는 경고에 주의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재정적인 파산이나 파멸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인가?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잠 28:20).

44“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잠 13:11).

45“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잠 21:6).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잠 22:7).

46“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잠 11:15).

47“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외로운 자식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대저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너를 대적하사 그 원을 펴시리라”(잠 23:10, 11). “이를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질 뿐이니라”(잠 22:16).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잠 26:27).

48사회의 복리, 곧 세속 단체와 종교 단체의 복리는 모두 이런 원칙들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주는 것은 이런 원칙들이다. 세상 사람들이 신뢰와 협력을 유지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거의 잊혀져가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제시된 그분의 율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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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시 119:72)라는 시편기자의 말은 종교적 견지에서가 아니라 할지라도 역시 진실한 말이다. 이 말씀은 절대적인 진리로서, 실업계에서도 인정받는 진리이다. 돈을 모으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매우 격렬한 경쟁을 하고 있는 이 시대에 있어서도, 사회에 발을 내딛는 청년들에게는 성실, 근면, 절제, 청렴, 절약이 많은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자본이라고 널리 인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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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그러나, 이런 특질의 가치를 깨닫고 그 근원이 성경에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 중에도 그것들이 어떤 원칙에 기초되어 있는지를 깨닫는 사람은 드물다.

51사업의 성실성과 참된 성공의 기초에 놓여 있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만물의 창조주께서는 원 소유주이시다. 우리는 그의 청지기들이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에게서 위탁받은 것이며, 그분의 지시대로 써야 할 것들이다.

52이것은 온 인류에게 지워진 각자의 의무이다. 그것은 인류 활동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관계 있는 것이다. 우리 자신들이 이를 인정하든지 하지 않든지간에,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재능과 설비들을 받아서 그분께서 지정해 주신 일을 하도록 세상에 두어진 청지기인 것이다.

53사람마다 해야 할 “각각(의) 사무”(막 13:34)를 받았는데, 이 사무는 당사자들의 능력에 알맞는 일이며, 자기 자신과 동포에게 최대의 행복을 가져오고, 하나님께 최대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일이다.

54이와 같이, 우리의 사업이나 직업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계획의 일부이며, 우리가 그분의 뜻을 따라서 그 일을 수행하는 한 그 결과에 대해서는 그 분께서 친히 책임을 지실 것이다. “하나님의 동역자”(고전 3:9)로서 우리가 할 일은 그분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염려하며 일할 필요가 조금도 없다. 근면, 충실, 수고, 검약, 사려 같은 것이 요구된다. 모든 재능은 최대한도까지 발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으로 오는 성공적 결과에 의존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라.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시고 기근 가운데서 엘리야를 먹여 살리신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날에도 그와 동일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 하지 말라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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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재물 얻을 능력을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선물에 한 가지 의무를 지우셨다. 우리가 얻는 모든 것들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한 지정된 몫을 요구하신다.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다.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소나 양의 십분 일은 … 여호와의 것이 되리니”(레 27:30, 32). 야곱이 벧엘에서 세운 맹세는 이 의무의 범위를 보여 준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 28:22)하였다.

56“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말 3:10)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것은 무슨 감사하는 마음이나 너그러운 사람에게 하는 호소가 아니다. 이것은 단순히 정직함의 문제이다. 십분의 일은 당신의 것이므로 당신께 돌리라고 명하신다.

57“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 정직이라는 것이 사업 경영에서도 중대한 원칙이라면, 우리들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무, 즉 모든 다른 의무의 기초가 되는 의무를 인정해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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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청지기라는 표현으로 보아, 우리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대해서도 의무를 지고 있다. 세상에 사는 사람마다 구속주이신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사랑에 생명의 선물을 빚지고 있다. 음식, 의복, 주택, 마음, 영혼, 그리고 육체는 다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에게 부과된 감사와 봉사의 의무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인류 동포들에게 연결시키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갈 5:13),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고 하셨다.

59바울은 “헬라 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 1:14)고 말하였다. 우리들도 그러하다. 우리의 생애에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받은 축복은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를 빚진 자로 만든다.

60이것은 개인의 방에서는 물론 사무실에서도 통용되는 진리이다. 우리가 다루는 재화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잊는 것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우리는 청지기에 불과하다. 인류의 행복과, 현세와 내세에 대한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는 여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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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너는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 11:24; 전 11:1; 잠 11:25).

62“부자가 되기에 애쓰지 말고 …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잠 23:4, 5).

63“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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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 3:9, 10).

65“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 3:10-12).

66“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에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열매를 맺을지라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 땅에 안전히 거하리라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레 26:3-6).

67“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 1:17).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저를 건지시리로다 여호와께서 저를 보호하사 살게 하시리니 저가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저를 그 원수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시 41:1, 2).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주시리라”(잠 19:17).

68이런 투자를 하는 사람은 이중의 재산을 쌓아 두는 것이다. 아무리 현명하게 증가시켰을지라도 결국은 이 세상에 남겨 두고 갈 수밖에 없는 재산 외에, 영원한 부, 곧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가장 가치 있는 소유물인 품성의 보화들을 쌓고 있는 것이다.

정직한 거래

69“여호와께서 완전한 자의 날을 아시니 저희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저희는 환난 때에 부끄럽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하려니와”(시 37:18, 19).

70“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 그 마음에서 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시 15:2-5),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 그 양식은 공급되고 그 물은 끊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너의 눈은 그 영광 중의 왕을 보며 매우 먼(난외 주) 땅을 목도하겠고”(사 33:15-17).

71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 가운데서 번영하는 인물 하나, 곧 참된 의미에서 성공적인 생애를 살며 천지가 존경하기를 기뻐한 사람을 묘사하셨다. 욥은 자기의 경험을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강장하던 날과 같이 지내었으면

그 때는 하나님의 우정이 내 장막 위에 있었으며

그 때는 전능자가 오히려 나와 함께 계셨으며

나의 자녀들이 나를 둘러 있었으며 …

그 때는 내가 나가서 성문에 이르기도 하며

내 자리를 거리에 베풀기도 하였었느니라

나를 보고 소년들은 숨으며

노인들은 일어나서 서며

방백들은 말을 참고

손으로 입을 가리우며

귀인들은 소리를 금하니 …

귀가 들은 즉 나를 위하여 축복하고

눈이 본즉 나를 위하여 증거하였었나니

이는 내가 부르짖는 번민과

도와 줄 자 없는 고아를 건졌음이라

망하게 된 자도 나를 위하여 복을 빌었으며

과부의 마음이 나로 인하여 기뻐 노래하였었느니라

내가 의로 옷을 삼아 입었으며

나의 공의는 도포와 면류관 같았었느니라

나는 소경의 눈도 되고

절뚝발이의 발도 되고

빈궁한 자의 아비도 되며

생소한 자의 일을 사실하여 주었으며”(욥 29:4-16).

“나그네로 거리에서 자게 하지 아니하고

내가 행인에게 내 문을 열어 주었었노라”(욥 31:32).

“무리는 내 말을 들으며

나의 가르치기를 잠잠히 기다리다가 …

그들이 나의 얼굴 빛을 무색하게 아니하였었느니라

내가 그들의 길을 택하고 으뜸으로 앉았었나니

왕이 군중에 거함도 같았고

애곡하는 자를 위로하는 사람도 같았었느니라”

(욥 29:21-25).

72“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잠 10:22).

73지혜는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잠 8:18)고 선언한다.

74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올바른 원칙에서 떠나면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되는지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물을 위탁받았으면서도 그분의 요구에 무관심한 자들에 대하여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75“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지니라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 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학 1:5-9). “그 때에는 이십 석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석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그릇을 길으려 이른즉 이십 그릇뿐이었느니라”(학 2:16).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요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학 1:9).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말 3:8).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학 1:10).

76“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암 5:11),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공구와 견책을 내리사”(신 28:20). “네 자녀를 다른 민족에게 빼앗기고 종일 생각하고 알아봄으로 눈이 쇠하여지나 네 손에 능이 없을 것이며”(신 28:32).

77“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렘 17:11).

78모든 업무의 회계 곧 모든 매매의 명세는 부정한 것과 결코 타협하지 않고 불의를 눈감아 보내지 않으며 악을 완화시키지 않는, 보이지 않는 감사들인 하나님의 대리자들의 정밀한 조사를 받는다.

79“너는 …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공의를 박멸하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높은 자보다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이 있음이니라”(전 5:8). “악을 행한 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느니라”(욥 34:22).

80“저희 입은 하늘을 대적하고(난외 주) …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시 73:9-11). 하나님께서는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시 50:21)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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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내가 다시 눈을 든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보이더라 …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발하였나니 도적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슥 5:1-4).

82하나님의 율법은 악한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죄를 선언한다. 그 소리를 무시하거나 그 경고를 들리지 않게 하려 해도 소용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 경고는 그를 추적하여 그로 듣게 할 것이다. 그것은 그의 평화를 파괴할 것이다. 이 소리에 주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것이다. 그것은 심판 때에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것이다. 필경에는 끌수 없는 불이 그 혼과 육체를 살라 버리고 만다.

* *

83“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막 8:36,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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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이것은 부모나 교사나 학생이나 노인이나 청년이 나를 물론하고 모든 사람이 숙고해야 할 문제이다. 현세의 짧은 세월에만 국한되고 영원한 미래를 위한 대책을 세우지 않은 여하한 사업 설계나 인생의 계획도 결코 건전하다거나 완전할 수 없다. 청소년들에게 영원을 계산에 넣도록 교육을 시키라. 그들로 하여금 원칙을 택하고 영원한 재산을 구하도록, 다시 말해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는 보물을 자신들을 위해 쌓으며,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 그 불의의 재물들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눅 12:33, 16:9) 영접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라.

85이렇게 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의 생활을 위하여 가능한 최선의 준비를 하는 자들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이 땅에서의 그의 삶이 그것에 의하여 풍부하고 고상하게 되지 않고서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둘 수 없다.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8).

제 4 절

성경의 전기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히 11:33, 34)

86성경 중에 전기가 담겨 있는 부분만큼 교육적으로 더 가치가 있는 부분은 없다. 이 전기들은 있는 그대로의 생애를 기록한 점에서 세상의 다른 모든 전기들과 같지 않다. 사람의 유한한 두뇌를 가지고서는 다른 사람의 행위를 꼭 바르게 해석할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을 읽으시고 동기와 행위의 숨은 원천을 분별하시는 하나님만이 인격과 생애를 절대적으로 진실하고 충실하게 묘사하실 수 있다. 이런 묘사는 다만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찾을 수 있다.

87사람의 행위는 그 사람 됨됨이의 결과라는 것보다 성경에서 더 명백히 가르치는 진리는 없다. 우리의 생애 동안 이루어지는 경험의 대부분은 우리 자신의 사상과 행위의 열매인 것이다.

“까닭 없는 저주는 … 이르지 아니하느니라”(잠 26:2).

88“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 대로 부응을 받을 것임이니라”(사 3:10, 11).

89“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렘 6:19).

90이 진리는 너무나 무서운 것이므로 깊이 명심해야 한다. 모든 행위는 반드시 그 행한 자에게 돌아온다. 자신의 생애를 괴롭히는 불행들은 자신이 뿌린 씨가 맺은 열매임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럴지라도 우리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91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이미 자신의 것이었던 장자의 명분을 얻기 위하여 기만에 호소하였고, 그 결과 형의 증오라는 수확을 거두었다. 그는 이십 년 동안 유랑 생활을 하면서 부당한 취급을 받고 속임을 당했으며, 나중에는 몸의 안전을 위해 도망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의 성격의 악한 면이 그 아들들 속에 나타나게 되었을 때에는 두번째 수확을 거두었다. 이것은 모두 인생에 보응이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92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영원히는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장구히는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나의 지은 그 영과 혼이 내 앞에서 곤비할까 함이니라 그의 탐심의 죄악을 인하여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우고 노하였으나 그가 오히려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행하도다 내가 그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의 슬퍼하는 자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사 57:16-19).

93야곱은 고난 중에 압도당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회개하고 자기 형에게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분노한 에서에게 죽임을 당할 위험을 느꼈을 때에 그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였다.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호 12:4),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창 32:29). 죄 사함을 받은 야곱은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 더 이상 대신 들어앉는 자로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한 왕자로서 일어섰다. 그는 단순히 그의 격노한 형으로부터 구원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구원함을 받았다. 그의 본성에 있던 악의 세력은 깨어지고, 그의 품성은 변화되었다.

94만년에도 빛이 있었다. 야곱은 자기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하나님의 붙드시는 능력 곧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창 48:15, 16)의 능력을 인정하였다.

95야곱의 아들들의 역사 가운데서도 죄는 보응을 가져 오고 회개는 생명에 이르는 의의 열매를 맺는 그 동일한 경험이 되풀이되었다.

96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폐지시키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율법에 위반되는 행동을 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죄의 행위를 원상 복구시키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분은 변화시키신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저주가 복이 되는 것이다.

* *

97야곱의 아들 중에 레위는 매우 잔인하고 복수심이 강한 사람 중 하나였고 세겜 사람들을 속여서 죽이는 일에 가장 죄가 큰 두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 자손들에게 그대로 나타난 레위의 특성은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창 49:7)라는 선고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회개는 개혁을 일으켰고, 다른 지파들의 배도 중에서 하나님께 충성을 지켰으므로, 그 저주는 가장 큰 영광의 증거로 바뀌어졌다.

98“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이며 여호와 앞에서서 그를 섬기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고”(신 10:8).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말 2:5, 6).

99성소의 봉사에 임명된 봉사자들인 레위 지파는 토지의 분깃을 받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들을 위하여 구별하여 놓은 성읍에 모여 살면서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드려진 십일조와 헌물들로 부양되었다. 그들은 백성들의 교사가 되었으며, 모든 제례(祭禮)에 손님으로 초청 받았다.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의 종과 대표자로 존경을 받았다. 전국 백성들이 받은 명령은 “너는 삼가서 네 땅에 거하는 동안에 레위 인을 저버리지말지니라”(신 12:19), “레위는 그 형제 중에 분깃이 없으며 …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신 10:9)고 하는 말씀이었다.

믿음으로 정복함

100우리는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잠 23:7)하다는 진리의 다른 한 실례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나안의 변방에서 정탐꾼들은 그 나라를 정탐하고 와서 보고하였다. 그들은 그 땅을 점령할 때 겪을 고난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 땅의 아름다움과 풍성함을 잊어버렸다. 하늘 높이 솟은 성벽으로 둘린 도성들, 거인 전사들, 철병거들을 보고 그들의 믿음은 위압당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논외로 버려둔 채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민 13:31)고 하는 믿음이 없는 정탐꾼들의 단정을 꼭 같이 되풀이하였다. 그들의 말은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그들은 올라갈 수 없었고, 사막에서 그들의 생애를 소비하였다.

101그러나, 그 땅을 본 열 둘 중에서 둘만은 그와는 다른 의견을 말하였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 13:30)고 역설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거인이나, 성벽을 두른 성이나, 철병거보다 우세하다고 간주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40 년간의 방랑을 함께 나누었으나 약속된 땅에 들어갔다. 여호와의 군대와 더불어 애굽을 떠날 때에 가졌던 것과 같은 용감한 마음을 가지고, 갈렙은 거인들의 요새를 그의 분깃으로 달라고 하여 받았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냈다. 그의 발로 걸어 다녔던 포도원과 감람나무 숲은 그의 소유가 되었다. 겁장이와 반역자들은 광야에서 멸망했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에스골의 포도를 먹었다.

102옳은 길에서 단 한 번이라 할지라도 이탈하면, 그렇게 하는 사람은 물론 그 영향을 받는 사람들까지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사실만큼 성경이 더 극명하게 보여 주는 진리도 없다. 모본은 기이한 능력을 가졌다. 우리의 본성의 나쁜 성향 쪽으로 모본이 끼쳐지면, 그것은 거의 저항할 수 없게 된다.

103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악덕의 “요새”는 버림받은 죄인이나 비열한 부랑자의 사악한 생활에 있는 것이 아니고, 표면으로는 덕이 있고 존경할 만하고 고상하게 보이지만 생애 가운데 한 가지 죄를 품고 한 가지 악덕에 빠져 있는 사람의 생활이다. 어떤 큰 유혹에 대항하여 남 모르는 싸움을 하며 벼랑 끝에서 떨고 있는 영혼에게는, 그런 모본이 죄를 짓게 하는 가장 강력한 유혹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인생과 진리와 명예에 대한 높은 개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 중 하나를 고의로 범하는 자는 자기가 받은 고상한 은사들을, 죄를 범하게 하는 유혹 거리가 되게 하였다. 천부적 재능, 재주, 동정, 관대하고 친절한 행동까지라도 그같이 영혼을 파멸의 절벽으로 유인하는 사단의 미끼가 될 수 있다.

104하나님께서 단 한 번의 그릇된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 결과를 보여 주는 매우 많은 실례를 주신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세상에 죽음을 들여오고, 에덴을 상실케 하고, 온갖 비애를 가져 온 한 범죄의 슬픈 이야기로부터, 은 30에 영광의 주님을 팔아 버린 사람의 기록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전기는 생명의 길에서 떠나게 하는 곁길들에 경고의 표지로 세운 이런 실례들이 많이있다.

* *

105사람의 연약함과 잘못에 단 한 번 굴복함으로써 생긴 결과, 곧 믿음에서 떠남으로 생기는 결과를 주목하는 데서도 우리는 경고를 받는다.

106엘리야는 단 한 번 믿음의 실패로 필생의 사업을 단축시켰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그가 진 짐은 무거웠었다. 전국적인 우상 숭배에 대한 그의 경고는 충실했었다. 삼 년 반에 걸친 기근 동안에 어떤 회개의 증거가 나타나기를 주목하며 기다리고 있을 때 그의 심려는 깊었었다. 그는 홀로 하나님을 대표하여 갈멜 산에 섰다. 믿음의 힘으로 우상 숭배는 타파되었고, 복된 비는 이스라엘에 퍼부어지기를 기다리던 축복의 소낙비를 증거하였다. 그는 피로로 약해졌을 때 이세벨의 위협을 받고 흘로 광야로 도망하여 그의 생명을 취해 가시도록 기도하였다. 그의 믿음은 약해졌었다. 그가 시작한 사업을 그는 마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다른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도록 하라고 명하셨다.

107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의 진실된 봉사를 주목하셨다. 엘리야는 광야에서 낙담과 고독 속에 죽을 것이 아니었다. 그는 무덤에 내려가지 아니하고,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앞으로 승천할 것이었다.

108이러한 인생 기록들은 모든 인류가 언젠가 깨닫게 될 사실, 곧 죄는 수치와 손실만을 가져 올 뿐이며 불신은 실패를 의미하지만,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가장 깊은 데까지 미치고,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의 양자 됨에 참여하도록 회개하는 영혼을 높인다는 사실을 선포한다.

고난의 훈련

109세상에서 하나님과 인류를 위하여 참된 봉사를 하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슬픔의 학교에서 예비 훈련을 받는다. 책임이 중하면 중할수록, 봉사의 직임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시험은 더욱 더 철저하고 그 단련은 더욱 혹독하다.

110요셉, 모세, 다니엘, 다윗의 경험들을 연구하라. 다윗의 어린 시절과 솔로몬의 생애를 서로 비교하고, 그 결과를 숙고해 보라.

111다윗은 청년 시절 사울과 더불어 친밀히 교제하였다. 그는 궁정에 머물면서 왕가의 사람들과 친분을 맺는 동안, 왕족의 찬란함과 화려함 속에 감추인 염려와 슬픔과 당혹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는 영혼에게 평안을 가져다 주는 데 인간의 영화가 얼마나 무익한지를 보았다. 그리하여, 왕의 궁정에서 목장의 양무리에게로 돌아올 때는 안도감과 기쁨을 느꼈다.

112사울 왕의 질투로 광야로 쫓겨간 도망자 다윗은, 사람에게서 받을 수 있는 모든 도움으로부터 차단되었을 때 하나님을 더욱 온전히 의뢰하였다. 광야 생활의 불안과 불확실함, 계속적인 위험과 빈번히 도망해야 할 필요성, 그리고 그에게로 모여 든 사람들의 특성-“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삼상 22:2)들, 이 모든 것들은 그에게 엄격한 자기 훈련을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경험은 사람을 다루는 능력과, 압제받는 자에 대한 동정과 불의에 대한 증오심을 일깨워 발전시켰다. 기다림과 위험의 여러 해를 통해 다윗은 안위와 지지(支持)와 생명을 하나님 안에서 찾기를 배웠다. 그는, 그분의 능력에 의해서만 그가 왕좌에 나아갈 수 있음과, 그분의 지혜를 구함으로써만 현명한 통치를 할 수 있음을 배웠다. 다윗이, 비록 후년에 큰 죄로 손상을 입히기는 하였으나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삼하 8:15)하였다는 경력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이 고난과 슬픔의 학교에서 받은 훈련 때문이었다.

113솔로몬의 훈련은 다윗이 초년 시절에 경험한 훈련에 비해 부족하였다. 환경과 품성, 그리고 생활에 있어서, 솔로몬은 누구보다도 더 많은 혜택을 받은 듯하였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솔로몬은 고귀한 몸으로 태어나 소년기를 보내고, 성인이 되어 큰 번영과 영광이 약속된 통치자의 지위에 올랐다. 여러 나라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 사람의 지식과 통찰력에 경탄하였다. 그러나, 번영에 대한 교만은 결국 그를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만들었다. 그는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기쁨을 떠나 관능적인 쾌락에서 만족을 찾으려고 돌아섰다. 그는 이 경험을 이렇게 말한다.

114“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 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의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꼬 행한 지 오랜 일일 뿐이리라 …

115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 … 내가 해 아래서 나의 수고한 모든 수고를 한하였노니”(전 2:4-12, 17, 18).

116솔로몬은 자기의 쓰라린 경험을 통하여 세속적 사물에서 인생의 최고의 가치를 찾는 생활이 공허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교의 신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으나, 소위 영혼에게 평안을 준다는 그 신들의 약속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배웠을 뿐이었다.

117만년에, 솔로몬은 이 세상의 터진 웅덩이에서 갈증을 해결하지 못하고 피곤하여, 마침내 생명 샘에서 마시기 위하여 돌아왔다. 그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후세대를 위하여 자기가 헛되이 보낸 세월의 역사를 경고의 교훈과 함께 기록하였다. 그리하여, 비록 그의 백성들이 그가 뿌린 씨로 악의 수확을 거두었으나, 그의 평생 사업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필경에는 고난의 단련이 그를 위하여 효과를 나타낸 것이다.

118그러나, 고난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친 교훈들을 솔로몬이 만일 젊어서 배웠었더라면, 그렇게 훌륭하게 출발한 그의 인생의 대낮이 얼마나 더 영광스러웠었을까!

욥의 시험

119“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롬 8:28) 성경의 전기가 고난의 역할에 대하여 더욱 귀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사 43:12). 우리는 그분이 선하신 것과 그 선하심이 한량없다는 것에 대한 증인들이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 4:9).

120하나님의 나라의 원칙인 무아의 정신은 사단이 미워하는 것이다. 그는 무아의 정신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대쟁투가 시작된 이래, 사단은 하나님의 행위의 원칙들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해 왔을 뿐 아니라, 그분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와 동일한 태도로 대하고 있다. 사단의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사업이요, 또한 그분의 이름을 지닌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121그리스도께서 사람의 형상으로 세상에 오신 것은, 당신의 생애를 통해 친히 이 무아의 정신의 실례를 보이시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이 원칙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나 실제 생활에서 그것을 증명해 보이는 일에 그리스도와 함께 한 동역자들이 되어야 한다. 옳기 때문에 옳은 것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어떠한 희생이나 고난을 치르더라도 진리를 위하여 굳게 서는 것은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의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54:17).

122세상 역사의 아주 초기에 사단의 이 같은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사람의 일생을 적어 놓은 기록이 있다.

123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스의 족장 욥에 대하여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욥 1:8)고 증언하셨다.

124사단은 이 사람에 대하여 경멸적인 비난을 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욥 1:9-11).

125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욥 2:6)고 말씀하셨다.

126이렇게 허락을 받은 사단은 욥의 모든 소유물, 즉 가축들과 양떼들과, 남녀 종들과 자녀들을 쓸어가 버리고,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욥 2:7) 하였다.

127그러고도 욥의 잔에 쓴 성분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역경을 죄의 보응으로 밖에 생각지 않는 그의 친구들은 그의 악행을 비난함으로, 상하고 고뇌하는 그의 영혼을 짓눌렀다.

128하늘과 땅 모두에게 버림받은 듯이 보이는 중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앙과 그가 성실했다는 의식을 굳게 붙잡고 욥은 고뇌와 당혹 가운데서 이렇게 부르짖었다.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주는 나를 음부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가 쉴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욥 10:1, 14:13).

“내가 포학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 응답이 없고

간구할지라도 신원함이 없구나 …

나의 영광을 벗기시며

나의 면류관을 머리에서 취하시고 …

내 친척은 나를 버리며

가까운 친구는 나를 잊었구나 …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대적이 되었구나 …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기라

나를 불쌍히 여기라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욥 19:7-21).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 발견할 곳을 알꼬

그리하면 그 보좌 앞에 나아가서 …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129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니(난외 주)”(욥 23:3-10, 13:15).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욥 19:25-27).

130욥이 믿은 대로 그에게 그렇게 되었다. 그는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말하였다.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는 끈기와 인내로 자신의 품성을 옹호하였고, 그리함으로 그가 대표하고 있던 하나님의 품성을 옹호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욥 42:10-12).

* *

131자기 희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사람들의 기록에 두 사람 구약에 한 사람, 신약에 한 사람의 이름 곧 요나단과 침례 요한의 이름이 있다.

132세자(世子)로 태어난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자기가 제쳐진 바 된 것을 알고는 경쟁자에게 친구로서 가장 친절하게 충실한 태도를 보였다.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윗의 생명을 보호하였고, 자기 아버지의 세력이 쇠하여 가는 음울한 시기 내내 그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아니하다가 결국 그 옆에서 죽었다. 요나단의 이름은 하늘에 소중히 간직되어 있으며, 그의 이름은 이 땅에서 이타적인 사랑의 존재와 힘에 대한 증인으로 서 있다.

133침례 요한이 “메시아”의 선구자로 나타나자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각계 각층의 사람들의 큰 무리가 그를 좇았다. 그러나, 그가 증거해 왔던 분께서 등장하시자 모든 것이 일변하였다. 군중들은 예수님을 따랐으며, 요한의 일은 신속히 그 종말을 고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동요되지 않았다.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고 말하였다.

134시간이 지나가도, 요한이 확신을 가지고 기대하던 왕국은 건설되지 않았다. 헤롯의 지하 감옥에서 신선한 공기와 광야의 자유로부터 차단된 채, 그는 주목하며 기다렸다.

135무력의 시위나 옥문을 깨뜨리는 일은 없었으나, 병자를 고치고 복음을 전파하고 사람들의 심령을 고상하게 하는 일들은 그리스도의 사명을 증거하였다.

136홀로 지하 감옥에서, 그의 선생의 길과 같이, 그의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내다보고 요한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희생에 동참하는 신임(信任)을 받아들였다. 하늘의 천사들은 그가 죽을 때까지 그를 보살폈다. 타락한 세계나 그렇지 않은 세계를 물론하고, 온 우주의 지적 존재들은 모두 그가 무아의 봉사를 옹호하는 것을 목도하였다.

137그 이후 각 시대를 내려오면서, 고통하는 심령들은 요한의 생애의 증거를 생각하면서 어려움을 견디었다. 암흑의 여러 세기를 통해 지하 감옥에서, 단두대에서, 화염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 11:11)라고 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힘을 얻었던 것이다.

* *

138“내가 무슨 말을 더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139“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140“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히 11:32-40).

제 5 절

시와 노래

“나의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시 119:54)

141우리는 사람에게 알려진 가장 오래 되고 가장 숭고한 시적 표현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상의 제일 첫 시인이 시를 짓기 전에, 미디안의 목자는 욥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의 천재 시인들이 쓴 그 어떤 탁월한 작품도 미치지 못하고 필적할 수 없는 장엄한 율조로 이렇게 적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같이 넘쳐 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계한을 정하여 문과 빗장을 베풀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네가 나던 날부터 아침을 명하였었느냐

새벽으로 그 처소를 알게 하여 …

네가 바다 근원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밑으로 걸어다녔었느냐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었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었느냐

땅의 넓이를 네가 측량하였었느냐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광명의 처소는 어느 길로 가며

흑암의 처소는 어디냐 …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

광명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뻗치며

동풍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땅에 흩어지느냐

누가 폭우를 위하여 길을 내었으며

우뢰의 번개 길을 내었으며

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고

황무하고 공허한 토지를 축축하게 하고

연한 풀이 나게 하였느냐.”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네가 열 두 궁성을 때를 따라 이끌어 내겠느냐

북두성과 그 속한 별들을 인도하겠느냐”(욥 38:4-27, 31, 32).

“노래 중의 노래”인 아가서에 나오는 봄철에 대한 묘사 또한 아름답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 2:11-13).

142이에 못지 않은 미문(美文)이, 이스라엘에 대한 발람의 본의 아닌 축복의 예언 중에도 있다.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편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 어찌 꾸짖을꼬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흘로 처할 것이라

그를 열방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이 때에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할진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뇨 하리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 가 말하기를

야곱이여 네 장막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의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가의 백향목들 같도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 하리로다”

(민 23:7-23; 24:4-6, 16-19).

143찬양의 선율은 하늘의 분위기이다. 하늘이 땅과 접촉할 때, 음악과 노래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사 51:3) 있다.

144아름답고 더럽혀지지 않은 갓 지음을 받은 땅 위에서, 하나님께서 미소 지으시며 보시는 중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욥 38:7)다. 이와 같이, 하늘과 공감하는 사람의 마음은 찬미의 곡조로 하나님의 선하심에 응답해 왔다. 인류 역사의 많은 사건들은 노래와 연결되어 있다.

145사람이 부른 노래로써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노래는 홍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터져 나온 영광스러운 감사의 노래였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 무궁하시도다 …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출 15:1, 2, 6-11, 18-21).

146찬양의 노래를 응송(應訟)함으로써 사람들은 큰 축복을 받아 왔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여행 경험을 술회한 짧은 말씀에는 우리가 생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교훈이 담겨 있다.

147“거기서 브엘에 이르니 브엘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라”(민 21:16). “그 때에 이스라엘이 노래하여 가로되”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이 우물은 족장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홀과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

(민 21:17, 18).

148이런 역사가 우리의 영적 경험에 얼마나 자주 반복되었는가! 거룩한 노래로 말미암아 우리 심령에 참회와 믿음, 희망과 사랑과 기쁨의 샘물이 얼마나 자주 터져 나왔는가!

149여호사밧이 인솔하던 이스라엘의 군대는 찬양의 노래와 함께 전진하여 큰 구원을 받았다. 여호사밧은 이미 전투의 위협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다. “큰 무리가 바다 저편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대하 20:2),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이 몇 마온 사람과 함께”(대하 20:1) 온다는 것이었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대하 20:3, 4). 그리고, 여호사밧은 성전 뜰 백성들 앞에 서서 심혼을 쏟으며 기도하고, 이스라엘의 무력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탄원하였다. 그는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0:12)라고 말하였다.

150그 때에, 여호와의 신이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였다.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대하 20:15-17).

151“이에 백성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대하 20:20). 군대의 앞에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허락하신 승리에 대해 하나님을 소리높여 찬양하면서 전진하였다.

152그 후 나흘째 되던 날에, 이스라엘 군대는 원수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을 싣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153흥망 성쇠의 변화 무쌍한 일생을 보내는 동안, 다윗은 노래를 통하여 하늘과 교통을 유지하였다. 아래의 시에 반영된 목동으로서의 그의 경험은 얼마나 감미롭게 묘사되어 있는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1-4).

154성년 시절, 추적을 받고 도망하는 신세가 되어 들의 바위 틈과 굴속에서 피난처를 찾을 때에,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여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거이 부르리이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 63:1-7; 42:11; 27:1).

155다윗이 압살롬의 모반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예루살렘에서 도망할 때에 기록한 글 중에도 그 같은 신뢰감이 나타나 있다. 슬픔과 도주의 피로로 지친 그와 그의 일행은 몇 시간 쉬기 위해 요단 강 가에 머물렀었다. 그러다가, 급히 도망하라는 소리에 그는 정신을 차렸다. 캄캄한 밤에 남녀들, 어린아이들은 깊고 물살이 빠른 강목을 건너야 할 형편이었다. 반역자인 아들이 군대를 몰고 맹렬히 추격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가장 암담한 시련 속에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 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시 3:4-6).

156다윗은 큰 죄를 범한 후에 자책과 자기 혐오로 인한 고뇌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가장 좋은 동무로 알고 그분께로 돌아섰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좆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시 51:1-7).

157다윗은 그의 긴 일생 동안 지상에서 쉴 곳을 찾지 못하였다. 그는 “주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대상 29:15)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한 시내가 있어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시 46:1-3, 4-7, 48:14).

158예수님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에 노래로 유혹에 대항하셨다. 찌르는 듯 날카로운 말을 들을 때, 음울과 불만과 불신과 강압적인 공포로 인하여 주위의 분위기가 무거워질 때, 예수님에게서 자주 믿음과 원기를 주는 거룩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159유월절 만찬을 드시던 그 슬픈 최후의 밤, 바야흐로 배반당하시고 팔려서 죽으러 가시던 그 때에도, 그분은 소리 높여 시편을 읊으셨다.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보존하시나니

내가 낮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시 113:2, 3, 116:1-8).

160지상 최후의 큰 위기의 그늘이 깊어 갈 때에, 하나님의 빛은 가장 밝게 비치고, 희망과 신뢰의 노래는 가장 똑똑하게, 그리고 가장 높은 곡조로 들려 올 것이다.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지어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사 26:1-4).

161“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사 35:10).

162“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은사에 모일 것이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렘 31:12).

노래의 힘

163성경에 기록된 노래의 역사를 보면 음악과 노래의 용도와 유익을 보여 주는 암시로 가득하다. 음악은 자주 나쁜 목적으로 악용되고, 그리하여 사람을 유혹하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의 하나가 된다. 그러나, 음악이 바르게 사용될 때는, 사람의 마음을 고귀한 주제로 돌리고, 영혼에 영감을 불어넣어 그것을 고양시키는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 된다.

164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여행하는 중에 거룩한 노래로 기운을 낸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당신의 백성들에게 그들의 순례자의 생활을 기쁘게 하라고 명하신다. 그분의 말씀을 기억에 새기는 데에는 그것을 노래로 반복하여 부르는 방법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별로 없다. 그런 노래는 기이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거칠고 교양 없는 성질을 진정시키며, 생각에 활기를 불어넣고 동정심을 일깨우고, 행동의 조화를 촉진하며, 용기를 잃게 하고 노력을 약하게 하는 어둡고 불길한 생각을 없애는 힘을 가지고 있다.

165노래는 영적 진리로 마음을 감동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무겁게 짓눌리어 절망에 빠질 것 같은 심령이, 오랫동안 잊고 있던 어린 시절에 부른 노래의 가사에서 하나님의 몇 말씀을 기억하고, 그로 인하여 유혹이 힘을 잃고 삶은 새로운 의미와 목적을 갖고. 용서와 즐거움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나누어지는 실례가 얼마나 많은가!

166교육의 한 방편으로써, 노래의 가치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가정에서 감미롭고 순결한 노래를 부르라. 그리하면, 비난하는 말이 더 적어지고, 쾌활함과 희망과 기쁨의 말이 더욱 많아지게 될 것이다. 학교에 노래가 있게 하라. 그리하면, 학생들은 하나님과 그들의 교사와 또 저희들끼리 더욱 친근해 질 것이다.

167예배의 일부로 노래를 부르는 것은 기도를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배의 행위이다. 사실, 많은 노래는 기도이다. 이 사실을 배워 깨달은 아이는 자기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를 더 깊이 생각하고, 그 가사가 가진 힘으로 인하여 더욱 감동받을 것이다.

168구속주께서 우리를 영광이 넘치는 하나님 나라의 문 어귀로 인도하실 때에, 우리는 보좌를 두른 하늘 합창대의 찬미와 감사의 주제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천사들의 노래의 메아리가 지상의 가정에서 반향될 때, 우리의 마음은 하늘의 가수(歌手)들에게 더 가까이 이끌릴 것이다. 하늘의 교제는 땅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늘 찬미의 기조(基調)를 배운다.

제 6 절

성경의 신비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 … 겠느냐”(욥 11:7)

169인간의 유한한 정신으로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품성이나 그 사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연구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가장 우둔하고 무지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장 열심 있고 교양 있는 사람에게도 거룩하신 하나님은 오묘로 가리워져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구름과 흑암이 그에게 둘렸”지만,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시 97:2). 우리는 한없는 자비가 무한한 능력에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뿐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를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능력만큼 그분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이상의 것에 대해서는 전능하신 손과 사랑으로 충만한 그분의 마음에 의뢰할 뿐이다.

170하나님의 말씀은 그 저자이신 그분의 품성과 같아서, 유한한 인간으로서는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성경이 당신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그 책 가운데 나타내셨다. 하나님의 존재, 그분의 품성, 그리고 그분의 말씀의 진실성은 우리의 이성에 호소하는 증언에 의해 확증되며, 이런 증언은 많이 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의문의 여지를 완전히 없애지 않으셨다. 믿음은 실연(實演)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라 증거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의심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의심의 여지가 있으나, 진리를 알고자 갈망하는 자는 신앙을 가지기에 충분한 근거를 발견할 것이다.

171우리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깨달을 수 없다고 해서 그분의 말씀을 의심할 이유가 조금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깨달을 수 없는 천연계의 경이적인 것들에 항상 둘러싸여 있다. 그렇다면, 영적 세계에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오묘한 것이 있다고 하여 놀랄 것인가? 문제는 오로지 사람의 마음이 우둔하고 좁은 데 있는 것이다.

172성경의 오묘함은 그 자체를 반대하는 논증 거리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말씀이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만일, 성경에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만 기록되었든지, 또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존엄하심이 유한한 사람의 마음으로 파악될 수 있다면, 그것은 오늘날처럼 신성에 대한 명료한 증거를 갖지 못하였을 것이다. 성경의 위대한 주제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믿음을 고무시킬 것이다.

173성경은 가장 교양 있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매혹시켜 온 그런 단순하면서도 인간의 욕구에 적합하게 들어맞는 방법으로 진리를 나타내는 한편, 비천하고 교양이 없는 사람에게는 인생의 행로를 명백하게 밝혀 준다. “이 길의 행인은 우매하나 실로치 아니할 것이며(난외 주)”(사 35:8). 그러므로, 어린 아이라도 그 길을 잘못 들 이유가 없다. 떨면서 조심스럽게 길을 찾는 사람 중 한 사람도 그 깨끗하고 거룩한 빛 가운데로 걸어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가장 단순하게 진술된 진리의 말씀은 인간의 이해력을 무한히 초월한 고귀하고 원대한 주제들, 하나님의 영광이 감추어져 있는 오묘들 그것을 탐구하는 사람의 마음을 압도하지만, 진지하게 진리를 찾는 자들에게 경외심과 믿음을 고무시키는 오묘들을 포함하고 있다. 성경을 상고하면 할수록 그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이 깊어지고, 사람의 이성은 하나님의 장엄한 계시에 머리를 숙인다.

174하나님께서는 열심히 찾는 자에게 언제나 그 말씀의 진리들을 나타내 보이고자 하신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인 반면에,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신 29:29)한 것이다. 성경의 어떤 부분은 이해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은 성경의 가장 중요한 여러 진리를 소홀히 하도록 이끌었다. 성경의 오묘들은 하나님께서 진리를 감추어 두고자 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우둔함과 무지로 인하여 그것을 깨달아 자기의 것으로 삼을 수 없는 데서 온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여야 할 것이다. 그 제한은 하나님의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능력에 있다. 깨달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여 자주 지나쳐 버리는 성경의 바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깨닫기를 원하신다. “모든 성경은” 우리로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시려고 “하나님의 감동으로”(딤후 3:16, 17) 주신 것이다.

175사람의 두뇌로서는 성경의 한 진리나 한 허락이라도 속속들이 규명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이런 관점에서 말씀의 영광을 파악하고, 다른 사람은 저런 관점에서 말씀의 영광을 발견하지만, 우리는 그저 희미한 빛을 발견할 뿐이다. 그 충만한 광휘는 우리가 볼 수 없다.

176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나 있는 위대한 것들을 숙고할 때에, 우리는 눈 아래로 깊고 넓게 전개된 원천을 볼 수 있다. 그 넓이와 깊이는 우리의 지식을 초월한다. 이를 주시하면 할수록 시야는 넓어져서, 눈앞에는 끝없는 바다가 한없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177이런 연구는 사람에게 생기를 주는 능력이 있다. 두뇌와 정신이 새 힘과 새 생명을 얻는다.

178이러한 경험은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최대의 증거가 된다. 우리는 육신의 양식으로 떡을 섭취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심령의 양식으로 받는다. 떡은 우리 체력의 필요를 채운다. 우리는 그것이 피와 뼈가 되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이같은 시험을 성경에도 적용할 수 있다. 성경의 원칙이 실지로 품성의 요소가 될 때에 그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그 생애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가?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많은 사람들은 말씀의 능력으로 죄된 습관의 사슬을 끊어 버렸다. 그들은 이기심을 버렸다. 하나님을 모독하던 자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주정뱅이가 술을 삼가게 되고, 방탕한 자가 순결하여졌다. 사단의 형상을 지녔던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된 바 되었다. 이 변화는 그 자체가 이적 중의 이적이다. 말씀으로 말미암아 오는 변화는 말씀의 가장 깊은 오묘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성경에 언명된대로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7)고 하신 대로 믿을 수 있을 뿐이다.

179이 오묘에 대한 지식은 모든 다른 오묘를 푸는 비결을 제공한다. 그것은 사람에게 우주의 보고 즉, 무한하게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

180또한, 이 발전은 하나님의 품성 곧 기록된 말씀의 영광과 오묘가 우리에게 항상 나타남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진리의 발견도, 더 이상의 지식도, 더 이상의 발전도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존재가 되지 못하며, 사람의 진보는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자. 그분께서 무한하시고 그분 안에 모든 지혜의 보배가 있는 까닭에, 영원토록 끊임없이 탐구하고 계속하여 배울지라도 그분의 지혜, 자비심, 그 능력의 부요함을 결코 다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제 7 절

역사와 예언

“예로부터 고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사 45:21)

181성경은 인류가 가진 가장 오래 되고 가장 포괄적인 역사이다. 그것은 영원한 진리의 원천으로부터 흘러나온 신선한 역사의 물줄기로서,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손은 그 순결성을 보존하였다. 성경은 사람이 아무리 꿰뚫어 보려해도 알 수 없는 먼 과거를 비추어 준다. 땅에 기초를 놓고 하늘을 펴신 능력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만, 우리는 국가들의 기원에 대하여 믿을 만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의 자부심이나 편견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인류 역사의 기록은 성경에만 있는 것이다.

182인류 역사의 기록들을 보면, 모든 민족의 발전과 제국들의 흥망은 마치 사람들의 의지나 무용(武勇)에 좌우되는 것처럼 보인다. 여러 가지 사건들은 대부분이 사람의 능력, 야심, 혹은 변덕에 의하여 꼴 지어지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휘장이 열려 있어서, 거기에서 우리는 무대의 상부와 배후는 물론 자비가 충만한 하나님의 대리자들이 인간의 이해 관계와 권력과 욕망 등 일체의 승부에서 묵묵히 인내하며 그분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183성경은 참된 역사 철학을 보여 준다. 사도 바울이 아데네의 현인들에게 말한 유례 없이 아름답고 친절한 말 중에는, 인류의 창조와 모든 민족의 분포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제시되어 있다. 즉,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행 17:26, 27)라고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언약의 줄로”(겔 20:37) 들어올 수 있다고 언명하셨다.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의 목적은, 지상에 사람을 살게 하여 그 존재가 자신에게와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되고 창조주에게 영광을 돌리도록 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원하면 자신을 이 목적에 부합하도록 할 수 있다. 성경에는 이런 사람들에 대하여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고 기록되어 있다.

184하나님께서는 국가나 개인이 나를 물론하고 모든 참된 번영의 기초가 되는 원칙을 율법 가운데 나타내 보이셨다.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이는 너희에게 허사가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신 4:6, 32:47)라고 하였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증된 축복은, 그와 동일한 조건과 동일한 정도로 천하의 모든 국가와 모든 개인에게도 보증 되었다.

185지상의 모든 통치자들이 행사하는 권력은 다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며, 그 성공 여부는 받은 권력의 사용 방법 여하에 따라 좌우된다. 거룩하신 순찰자께서는 각 사람에게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사 45:5)라고 하셨다. 옛적 느부갓네살에게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속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속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단 4:27)라고 한 말씀은 각 사람에게 있어서 일생의 교훈이 된다.

186이런 것들을 이해하는 것, 곧 “의는 나라도 영화롭게 하고”(잠 14:34),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잠 16:12) 서며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잠 20:28)다는 것을 이해하고,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단 2:21)는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이런 원칙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역사의 철학을 이해하는 일이다.

187하나님의 말씀에만 이 사실이 명백히 제시되어 있다. 거기에는 국민의 힘이란 개인의 경우와 같이 그들을 무적으로 만드는 것처럼 보이는 기회나 시설에 달린 것도 아니고, 그들이 자랑하는 거대함에 있는 것도 아님이 설명되어 있다. 국민의 힘이란 그들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려는 충실함에 의하여 측정되는 것이다.

188이 진리는 고대 바벨론의 역사에서 실증되었다. 큰 나무의 표상 아래 국가통치의 참 목적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보여졌다. 그 나무의 “고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식물이 될 만하고”(단 4:11, 12), 들짐승이 그 그늘에서 살며 공중에 나는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었다고 하였다. 이 묘사는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통치, 즉 국민을 보호하고 굳게 서게 하는 통치의 성격을 표현한 것이다.

189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이 이 목적을 성취하도록 높이셨다. 그 나라는 번영하였고, 드디어 그 부와 권력이 후세에도 따를 나라가 없을 만큼 강대해졌는데, 그것은 영감에 의해 나타난 표상 즉 “금머리”(단 2:38)로 성경에 적절하게 표현되었다.

190그러나, 느부갓네살 왕은 자기를 높이신 능력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단 4:30)라고 말하였다.

191바벨론은 백성의 보호자가 되는 대신에 교만하고 잔인한 압제자가 되었다. 이스라엘 통치자들의 잔혹함과 탐욕을 묘사하는 영감의 말씀은 바벨론의 몰락과 창세 이래 많은 나라들의 몰락의 참된 원인을 밝혀 주고 있다.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겔 34:3, 4).

192바벨론의 통치자에게 거룩한 순찰자의 선고가 내려졌다.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단 4:31).

“처녀 딸 바벨론이여 내려 티끌에 앉으라 …

보좌가 없어졌으니 땅에 앉으라 …

딸 갈대아여 잠잠히 앉으라

흑암으로 들어가라

네가 다시는 열국의 주모라 칭함을 받지 못하리라”

(사 47:1-5 ).

“많은 물가에 거하여 재물이 많은 자여

네 탐남의 한정, 네 결국이 이르렀도다”(렘 51:13).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가 된 바벨론이

하나님께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같이 되리니”(사 13:19).

193“내가 또 그것으로 고슴도치의 굴혈과 물 웅덩이가 되게 하고 또 멸망의 비로 소제하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14:23).

194활동 무대에 등장했던 각 나라들은 “순찰자”요 “거룩한 자”이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지 하지 않는지를 보이기 위하여 지상의 각 자리를 차지하도록 허락된 것이다. 예언은 세계의 대제국들 곧 바벨론, 메데·바사, 헬라, 그리고 로마의 흥망을 묘사하였다. 약소국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각 나라들에서도 역사는 반복되었다. 나라마다 그 시험 기간이 있었고, 모두 시험에 떨어졌고, 그 영광은 쇠하였고 권력이 떠났으며, 그 자리는 다른 나라에 의해 차지당하였다.

195나라들이 하나님의 원칙을 배척하고, 이 배척으로 멸망을 자초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의 지배하시는 목적은 그 나라들의 모든 움직임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나타났다.

196이 교훈은 선지자 에스겔이 갈대아에서 유랑 생활을 보내고 있는 동안에 주신 놀라운 상징적 표현을 통해 가르쳐졌다. 이 이상은 그가 불행한 기억과 고난의 불길한 예감에 짓눌려 있을 때에 주어졌다. 그의 조국은 황폐해졌고, 예루살렘은 주민이 전멸되었으며, 선지자 자신은 야망과 잔혹으로 지배되는 나라의 나그네가 되었다. 그가 도처에서 학정과 부정을 바라보았을 때, 그의 심혼은 고뇌로 인해 주야로 탄식하였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표상은 지상의 통치자들의 권세 위에 있는 권세를 보여 주었다.

197그발 강가에서, 에스겔은 북쪽으로부터 온 듯한 한 폭풍을 보았다.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면에 비취며 그 불 가운데 단쇠 같은 것이 나타”(겔 1:4)났다. 서로 중첩된 많은 바퀴가 네 생물에 의하여 움직여지고 있었다. 그들의 위에 높이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겔 1:26). “그룹들의 날개 밑에 사람의 손 같은 것이 나타났더라”(겔 10:8). 그 바퀴들은 매우 복잡하게 배열되어 있어서 일견 혼란한 듯이 보였으나, 완전히 조화를 이루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룹의 날개 아래 있는 손에 의해 떠받쳐지고 인도되는 하늘의 존재들은 이 바퀴들을 굴리고 있었다. 그 위에 있는 남보석의 보좌에는 영원하신 분께서 좌정하셨고, 보좌 둘레에는 하나님의 자비의 상징인 무지개가 둘려 있었다.

198복잡한 바퀴의 모양을 한 것이 그룹의 날개 아래 있는 손에 의해 인도되는 것처럼, 인간 세계에 일어나는 복잡한 사건들도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이다. 나라들의 불화와 소동 가운데서도, 그룹 위에 좌정하시는 분은 여전히 지상의 모든 사건을 인도하신다.

199차례로 일어나서 할당된 시간과 장소를 차지하고, 스스로 아무 의미도 모르는 진리를 무의식 중에 증거한 각국의 역사는 우리에게 기별을 준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각 나라와 각 개인에게 당신의 큰 계획 중에서 한 자리를 지정하여 주셨다. 오늘날 국가들과 개인들은 실수함이 없으신 분의 손에 있는 다림줄로 측정되고 있다. 사람들은 다 자신의 선택에 의하여 자기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모든 것들을 지배하고 계시는 것이다.

200크신 “자존자”께서 영원한 과거로부터 영원한 미래에 이르기까지 예언의 사슬을 하나씩 연접 시키면서 당신의 말씀 가운데 구획(區劃)해 놓으신 역사는, 시대의 진행 과정에서, 오늘날 우리가 어디에 처해 있는지, 또 장래에 무엇을 예상할 수 있을지를 말하여 준다. 현재까지 일어나리라고 예언된 모든 사건들은 역사의 페이지를 봄으로 그 형적을 찾을 수 있는데, 이로써 우리는 장차 올 모든 사건들도 그 차례대로 성취될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201이 세상의 모든 통치권이 결국은 붕괴된다는 것이 진리의 말씀 중에 명백히 예언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에게 하나님께서 선고를 내리실 때에 주신 예언 중에는 다음과 같은 기별이 있다.

202“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관을 제하며 면류관을 벗길지라 …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겔 21:26, 27).

203이스라엘에서 벗겨진 왕관은 바벨론, 메데·바사, 혤라, 로마의 순으로 계속 넘어갔다.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고 하셨다.

204그 때가 가까이 왔다. 시대의 징조들은 우리가 크고 엄숙한 사건의 문어귀에 와 있는 것을 말하여 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정세는 동요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일어날 사건들에 대한 구주의 예언이 우리의 목전에서 성취되고 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마 24:6, 7) 라.

205현대는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는 시대이다. 통치자나 정치가들, 책임과 권위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 또 모든 계급의 지각 있는 사람들은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들은 국가들 사이의 긴장되고 불안한 관계를 주목하고 있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요소를 점유하고 있는 고조된 긴장감을 보고, 거기에 무슨 결정적 대사건이 일어나려고 한다는 것, 즉 세상이 이제 말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을 인식한다.

206천사들은, 장차의 운명에 대하여 세상이 경고를 다 받을 때까지 투쟁의 바람이 불지 못하도록 억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폭풍이 모여들어 지상에서 폭발하려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 그 바람을 놓으라고 명하실 때에, 세상에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전란의 광경이 전개될 것이다.

207성경, 성경만이 이런 일에 대해 올바르게 관찰할 수 있게 해 준다. 거기에는 세상 역사의 최후에 있을 큰 광경, 즉 이미 그 그늘을 먼저 드리우고 실물이 가까이 오는 소리에 땅을 떨게 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두려움으로 사로잡는 사건들이 나타나 있다.

208“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무하게 하시며 뒤집어엎으시고 그 거민을 흩으시리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그 중에 거하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소고 치는 기쁨이 그치고 즐거워하는 자의 소리가 마치고 수금타는 기쁨이 그쳤으며”(사 24:1-8).

209“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나니 곧 멸망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 씨가 흙덩이 아래서 썩어졌고 창고가 비었고 곳간이 무너졌으니 이는 곡식이 시들었음이로다 생축이 탄식하고 소떼가 민망해 하니 이는 꼴이 없음이라 양떼도 피곤하도다”,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및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인간의 희락이 말랐도다”(욜 1:15-18, 12).

210“내 마음속이 아프고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 네가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렘 4:19, 20).

211“내가 땅을 본즉 …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 그 모든 성읍이 여호와의 앞 그 맹렬한 진노 앞에 무너졌으니”(렘 4:23-26).

212“슬프다 그 날이여 비할 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렘 30:7).

213“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사 26:20).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시 91:9, 10).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발하셨도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네 앞에 모으라 …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

(시 50:1-2, 4-6).

214“딸 시온이여 …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너의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이제 많은 이방이 모여서 너를 쳐 이르기를 시온이 더럽게 되며 그것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노라 하거니와 그들이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하며 그 모략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미 4:10-1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며 찾는 자가 없는 시온이라 한즉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 “내가 포로된 야곱의 장막들을 돌이키고 그 거하는 곳들을 긍휼히 여길 것이라”(렘 30:17, 18).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사 25:9).

215“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사 25:8).

216“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 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사 33:20-22).

217“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사 11:4).

218그 때에 하나님의 목적은 성취되고 그분의 나라의 원칙은 해 아래 모든 사람에 의해 존중될 것이다.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경내에 다시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칭할 것이라”

(사 60:18).

“너는 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 아니할 것이며

공포 그것도 너를 가까이 못할 것이라”

(사 54:14).

219이런 장엄한 광경을 본 선지자들은 거기 함축된 의미를 깨닫고자 열망하였다. 그들은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벧전 1:10-12).

220장차 일어날 일들에 대한 이런 묘사는 바야흐로 그 성취를 보게 될 접경에서 있는 우리들에게 얼마나 중대한 의미와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그 사건들이야말로 인류의 부조들이 에덴을 떠난 이래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목하고 기다리고 사모하며 기도해 온 것이다.

221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최후의 중대한 위기를 앞에 두고서도 마치 홍수 전의 사람들처럼 향락에 열중하여 관능의 욕구를 추구하고 있다. 목전의 사물과 일시적인 일들에 몰두하여, 그들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과 함께 없어질 사물을 위해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부(富)를 희생하고 있다. 그들의 생각은 고상해져야 하고 인생관은 넓어져야 한다. 그들은 세속적 몽상의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야 한다.

222성경의 페이지들에 명백히 설명된 모든 나라들의 흥망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표면적이고 세속적인 영광이 얼마나 가치 없는 것인지를 배워야 한다. 후세에도 그런 예가 없을 만큼 큰 권세와 화려함을 가졌던 바벨론, 당시의 백성들이 견고하며 영속적이라고 생각했던 그 권세와 화려함이 얼마나 철저하게 사라져 버렸는가! “풀의 꽃”과 같이 망하고 말았다. 하나님께 근거를 두지 않는 것은 다 이와 같이 멸망할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목적과 연결되고 그분의 품성을 나타내는 것만이 영존할 수 있다. 우리가 아는 대로, 하나님의 율법만이 유일한 불멸성인 것이다.

223이 위대한 진리야말로 노소를 물론하고 배워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제국의 역사와 장차 올 일들에 대한 계시 중에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는 것을 연구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사물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참된 가치를 평가할 수 있고, 인생의 참된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 수가 있으며, 당면한 사물을 영원한 빛에 비추어 봄으로 그것들을 가장 참되게, 가장 고상하게 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원칙을 배우고, 그 나라의 신민과 시민이 됨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과 더불어 그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224그 날이 가까웠다. 교훈을 배우며 사업을 마치고 품성의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

225“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말이 그의 보는 묵시는 여러 날 후의 일이라 그가 먼 때에 대하여 예언하는 도다 하나니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말이 하나도 다시 더디지 않을지니 나의 한 말이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겔 12:27, 28).

제 8 절

성경의 가르침과 연구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며”(잠 2:2, 4)

226예수님께서는 유년, 소년, 그리고 성년 시절을 통하여 성경을 공부하셨다. 어린 시절에, 그분은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날마다 선지서의 두루마리에 기록된 성경을 배웠다. 젊은 시절에는 이른 아침과 저녁 황혼에 산속에서 또는 숲 속에서 홀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분의 말씀을 연구하면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셨다. 봉사의 생애에 나타난 성경에 대한 그분의 정통한 지식은 그분께서 성경 연구를 얼마나 열심히 하셨는가를 증명한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능력으로도 가능한 방법으로 지식을 습득하셨으므로 그분의 훌륭한 영적·지적 능력은 교육의 한 방편으로서의 성경이 가진 가치를 입증해 준다.

227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주실 때에 어린 아이들을 소흘히 보지 않으셨다. 과연, 사람들이 기록한 글로서 성경의 이야기처럼 어린이들의 마음을 붙잡고 그들의 흥미를 일으키기에 적합한 것을 달리 또 찾을 수 있을까!

228이 쉬운 이야기들 중에는 하나님의 율법의 대원칙이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다. 부모와 교사들은 이처럼 어린이의 이해력에 가장 적합한 예증들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훈계, 즉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신 6:7)라는 말씀을 자녀와 학생들이 매우 어릴 때부터 실행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29어린이들에게 이런 교훈들을 설명하여 기억에 남게 하는 데에는 실물 교훈, 흑판, 지도, 또는 그림 같은 것을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 부모와 교사들은 항상 향상된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성경을 가르치는 데는 가장 새로운 생각과 가장 좋은 방법과 가장 열렬한 노력이 필요하다.

230성경에 대한 흥미를 일으키고 그 흥미를 높이는 일은 대체로 예배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조석의 예배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 되어야 한다. 예배 시간에는 염려나 불친절한 생각이 들어서는 안 되며, 예수님과 만나기 위하여, 또 거룩한 천사들을 집에 영접하기 위하여 부모와 자녀들이 모인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예배는 간단하고 활기차고 경우에 맞게 드리되, 때에 따라 형태를 다양하게 한다. 온 가족이 성경연구에 참여하게 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자주 반복하여 배우게 한다. 때때로, 자녀들에게 읽을 성경을 선택하게 하면 그들의 흥미가 더하여질 것이다. 읽은 것에 대하여 어린이들에게 질문하고, 또 그들이 질문을 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의 의미를 깨닫도록 유효한 예증을 말해 주어야 한다. 예배가 길지 않으면 어린이들에게도 기도를 하게 하며, 한 절만이라도 함께 찬미를 하도록 한다.

231예배를 정당한 방법대로 하려면, 그 준비에 마음을 써야 한다. 부모는 날마다 자녀들과 함께 성경을 연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물론, 이를 실행하는 데는 노력과 계획과 어느 정도의 희생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나, 이 노력은 장차 충분히 보상될 것이다.

232하나님께서는 부모들이 당신의 훈계를 가르치기 위한 준비로, 그 훈계를 마음에 잘 간직해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신 6:6, 7)라. 자녀들이 성경에 취미를 갖도록 하려면, 우리 자신이 먼저 성경에 취미를 가져야 한다. 그들이 성경 연구를 즐기게 하려면, 우리들이 먼저 성경 연구를 좋아해야 한다. 우리가 그들에게 주는 훈계는 우리 자신의 모본과 정신이 가진 감화력의 무게만큼 힘을 발휘할 것이다.

233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당신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게 하는 한편, 그를 택하여 큰 나라의 조상이 되게 하셨는데, 그것은 그가 그 자녀들과 권속들을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으로 가르쳐 인도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가르침에 힘이 있게 한 것은 그가 몸소 실행한 생활의 감화였다. 그의 대가족은 천 명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많은 사람이 가장이었다. 그 중에는 이교로부터 새로 개종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런 가족의 지도자로서는 견고한 인물이 필요하였다. 약하고 흔들리는 방법을 가지고는 부족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창 18:19). 그는 또 사람의 마음을 끄는 지혜와 친절함을 가지고 자기의 권위를 행사하였다. 거룩하신 순찰자께서는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감화는 그의 가족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미쳤다. 그가 천막을 쳤던 곳에는 어디에나 그 옆에다가 희생을 드리고 예배하기 위한 제단이 쌓아졌다. 천막을 옮기면서도 제단은 남겨 두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종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을 배운 많은 가나안 사람들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그 제단에 발을 멈추고 여호와께 희생을 드렸던 것이다.

234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이 교사의 생활에서 충실히 반영될 때에, 오늘날에도 옛날 아브라함의 경우와 다름없는 효과를 낼 것이다.

235다른 사람이 성경에 대하여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배웠는지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심판을 받을 때에는 누구나 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 대해 명백히 설명해야 한다. 그러므로, 각자는 진리가 무엇인지 오늘날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연구에 효과를 내려면 학생들의 흥미를 끌어야 한다. 특별히, 기질과 훈련과 생각하는 것이 전혀 다른 소년과 청년들을 대하는 교사에게 있어서 이 점은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이다.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때에는 그들의 마음의 경향과 관심 거리가 무엇인가를 관찰해서, 그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 그들의 흥미를 유도하는 방법이 매우 유익하다. 사람들을 각각 여러 가지 경향을 가진 자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말씀 가운데 각 사람을 위하여 요긴한 교훈을 주셨다. 학생들이, 성경의 교훈이 그들의 생활에 적합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 교사는 그들에게 성경을 충고자로 앙모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236학생들이 성경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매력을 평가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문학적 가치가 있다는 생각 때문에 진정한 가치가 없는 책들과, 불건전하고 자극적인 책들이 많이 권장되고, 또 권장까지는 아니하더라도 적어도 사용하도록 허용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깨끗한 샘물을 자유로이 마실 수 있는데도, 어찌하여 우리의 자녀들에게 그런 더러운 물줄기에서 마시도록 지도해야 한단 말인가? 성경은 풍부하고 힘이 있고 의미가 깊은것이 실로 한이 없다. 청소년들로 하여금 성경의 보물을 사상과 표현의 측면에서 찾아내도록 장려해야 한다.

237이런 귀한 것들에 마음이 이끌릴 때에, 부드럽게 하고 복종케 하는 힘이 그 마음을 감동시킬 것이다. 그들은 친히 당신을 그렇게 나타내신 하나님께 이끌려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사업과 그 방법을 더욱 깊이 알고자 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238성경을 연구하려는 사람은 배우는 자의 정신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알기 위하여 성경의 각 페이지를 연구해야 한다.

239성경에 대한 참된 지식은 말씀을 주시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만 얻을 수 있다. 또한, 이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을 생활에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명하시는 것을 모두 다 순종해야 한다. 그 말씀에 있는 모든 허락을 우리의 것으로 주장해야 한다. 하나님이 명하시는 생애를 그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서 그대로 살아야 한다. 성경을 이처럼 지지할 때만 그 연구가 실효를 거두게 된다.

240성경을 연구하는 데에는 가장 부지런한 노력과 인내성 있는 사고가 요구된다. 마치 광부가 땅 속의 금광을 찾아 파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보물을 열심히 끈기 있게 찾아야 한다.

241매일의 연구에 있어서, 성경을 절절이 배워 가는 방법은 매우 유익하다. 성경을 연구하는 자는 성경의 한 절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그 속에 어떤 사상을 두셨는지 확실히 알기 위하여 모든 생각을 계속 집중하여, 그 사상이 자기의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방법으로, 그 의미가 분명해질 때까지 한 절씩 연구해 가는 것은, 일정한 목적도 없이, 적극적으로 어떤 교훈을 얻으려는 생각도 없이 다만 여러 장의 성경을 통독하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

242지적 무능력과 도덕적 결함의 중요한 원인은 바로 가치 있는 목적을 향한 정신 집중의 결합에 있다. 우리는 인쇄물이 널리 분포되는 것에 자만하고 있다. 서적 자체가 유해한 것은 아니지만, 그 증가는 일종의 적극적인 악이 될 수 있다. 출판사로부터 간단없이 쏟아져 나오는 인쇄물의 대홍수로 인하여, 사람들은 노소를 물론하고 조급하고 피상적인 독서를 하는 습관이 붙어서, 일관성 있고 건전한 사고를 할 마음의 힘을 잃고 있다. 그보다도, 옛적 애굽의 개구리처럼 온 지면에 퍼지고 있는 서적, 잡지들의 대부분은 평범하고 사람을 게으르게 하며, 원기를 없애는 것일 뿐만 아니라 더럽고 타락하게 하는 것들이다. 그 영향은 마음을 마비시키고 무력하게 하여, 영혼이 타락하고 멸망하게 만든다. 게으르고 목적 없는 심혼은 악의 표적이 되기 쉽다. 균은 생명이 없는 병든 조직에 뿌리를 내린다. 게으른 마음은 사단의 일터이다. 높고 고결한 이상에 마음을 지향하여 생애의 고상한 목표, 즉 열중할 수 있는 목표를 가짐으로 악이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게 하라.

243젊은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조심성 있게 연구하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분의 말씀이 사람의 심령에 받아들여지게 될 때 유혹에 대한 유력한 방벽이 될 것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좇아 스스로 삼가서 강포한 자의 길에 행치 아니하였사오며”(시 119:11, 17:4).

244성경은 그 자체의 해설자이다. 성구는 성구끼리 비교되어야 한다. 성경을 연구하는 학생은 성경 구절을 그 전체적인 입장에서 관찰하는 동시에 그 부분적인 관계를 알아내도록 배워야 한다. 그는 성경의 중요한 중심 재목인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근본 목적, 대쟁투의 시작과 구속 사업의 기원에 대한지식을 얻어야 한다. 그는 주권을 다투고 있는 두 가지 원칙의 성질을 이해하고, 역사와 예언의 기록을 통하여 그 큰 종국에 이르기까지 그 원칙들의 활동을 연구해 보아야 한다. 이 투쟁이 인류 역사의 갈피마다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우리의 일상 생활의 모든 행동이 어떻게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정신 중의 하나를 나타내게 되는지, 그리고 자기가 원하거나 원치 않거나 이 대쟁투의 어느 한 편에 스스로 참여하는 자로 결정되어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245성경의 모든 부분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말미암아 기록된 것이며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다. 구약과 신약에 똑같이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구약 성경을 연구해 보면, 이를 주의하지 않고 읽는 사람은 사막밖에 볼 수 없는 곳에서 생명을 주는 샘물이 용솟음쳐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246다니엘서와 관련하여, 요한계시록은 특별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모든 교사들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종 요한에게 알려 주려고 친히 오셨던 복음을 어떻게 하면 가장 밝히 이해하고 남에게 잘 나타낼 수 있을까를 생각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계 1:1). 얼른 보아 신비적인 상징이 사용되었다고 해서 요한계시록의 연구를 단념하여서는 안 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247“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248성경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생기고 그 넓은 범위와 귀한 보물을 깨닫기 시작할 때에, 학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붙잡으려고 열망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장소나 시간에 제한받지 않고 성경을 연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렇게 끊임없이 연구하는 일은 성경에 대한 사랑을 가지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수단 중의 하나가 된다. 학생들로 하여금 언제나 성경을 가지고 다니게 하자. 기회 있는 대로 성구를 읽고, 그것을 명상하라. 길을 갈 때, 정거장에서 기다릴 때, 약속한 사람을 기다릴때, 그 시간을 이용하여, 진리의 보고인 성경에서 어떤 귀중한 생각을 얻도록 하라.

249심령의 큰 원동력은 믿음, 소망, 사랑인데, 올바른 성경 연구는 이런 것들에게 호소하게 된다. 성경의 외면적인 미, 그 비유와 표현의 미는 그 진정한 보화 즉 신성의 미를 나타내기 위한 배경에 불과하다.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의 기록에서, 우리는 그분의 영광의 섬광을 볼 수 있다. “그 전체가 사랑스”(아 5:16)러우신 그리스도에게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난다. 천지에 있는 모든 아름다움은 다 그분에게서 비취는 빛의 몽롱한 반영에 불과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고 말씀하셨다. 성경을 연구하는 학생이 구주를 바라볼 때에, 그의 심령에는 믿음과 동경과 사랑의 신비로운 능력이 생긴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주목하는 삶을 살면, 그가 경모하는 형상에 점점 가까워진다.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빌 3:8-10)노라고 한 사도 바울의 말이 바로 우리 영혼의 말이 될 것이다.

250영감으로 된 말씀으로 말미암아 심령에서 솟아나오는 하늘의 평화와 기쁨의 샘은 위대한 감화의 시내가 되어서, 그 미치는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끼쳐 준다. 오늘날의 청소년들, 성경을 손에 들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가 되게 하고, 또한 그 말씀들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 주는 경로가 되게 한다면, 과연 얼마나 큰 축복의 시내가 세상을 향하여 흐르게 될 것인가? 이 축복의 시내가 사람을 고쳐 주고 안위함을 주는 감화는 실로 측량할 수 없을 것이요, 생명수의 강이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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