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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성의 형성

제 7 장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히 8:5)

제 1 절

교육과 품성

“너의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사 33:6)

1참된 교육은 과학적인 지식이나 문학적 재예(才藝)를 경시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식보다도 능력을, 능력보다도 선량을 중요시하며, 지적 재예보다도 품성을 중히 여긴다. 세상은 큰 지식을 가진 사람보다도 고상한 품성을 가진 사람을 더욱 요구하며, 견고한 원칙에 의하여 그 재능이 지배되고 있는 인물들을 요구한다.

2“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잠 4:7),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잠 15:2)라고 하였으며, 참된 교육은 이와 같은 지혜를 나눠 준다. 교육이란 능력이나 재예의 어느 한 부분만을 잘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능력과 모든 분야의 지식이 계발되고 최적화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참된 교육이란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는 사회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일체의 의무를 망라해서 가르치는 것이다.

3품성을 쌓아 올리는 일은 인류에게 맡겨진 일 중 가장 중요한 일로서, 이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의 중요성이 지금처럼 재고되어야 할 시기는 일찍이 없었다. 어떤 이전 세대도 이처럼 중요한 문제에 대처하도록 부름을 받지 않았으며, 또한 청년 남녀들이 오늘날처럼 큰 위기에 직면했던 일도 일찍이 없었다.

4이와 같은 시기에 있어서 행하여지고 있는 교육의 경향은 과연 어떠한가? 교육은 대부분 무슨 동기에 호소하는가? 그것은 이기주의에 호소하고 있다. 오늘날 행하여지고 있는 교육의 대부분은 왜곡된 교육이다. 이기적인 야심, 권세욕, 인류의 권리와 필요를 무시하는 일 등은 세상의 저주가 되는 일로, 참된 교육은 그것을 중화시키는 영향을 발휘한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 대하여 각각 개별적인 경영을 가지고 계신다. 각 사람은 그가 받은 재능을 최대한으로 신장(伸張)시켜야 한다. 그가 받은 재능이 크든지 또는 작든지간에, 그 재능을 계발하는 일에 신실함으로 그는 존경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영 가운데에는 이기적인 경쟁을 할 여지란 있을 수가 없다.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고후 10:12)는 자는 “지혜가 없”(고후 10:12)는 자이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벧전 4:11) 할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 3:23, 24). 이러한 원칙을 실행함으로 행한 봉사와 습득된 교육은 귀중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행하여지고 있는 교육은 이와는 얼마나 크게 다른가? 아주 어린아이의 시절로부터 질투심이 배인 경쟁과 겨루는 일에만 전념하는 교육을 받아 일만 악의 뿌리인 이기심이 길러진다.

5그리하여, 우월하게 되기 위하여 싸우는 일이 생기며, 매우 많은 경우에 있어서 건강을 해하고 유용성(有用性)이 없는 단편적인 지식 위주의 주입식(注入式) 교육이 장려되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경쟁심은 부정직을 낳고, 욕망과 불만을 조장하여 인생을 한층 더 비참하게 만들어, 결국은 사회에 대하여 끊임없는 위험이 되는, 침착하지 못하고 불온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을 세상에 양산(量産)하게 된다.

6위험은 방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위험은 학문의 주제 그 자체에도 있는 것이다.

7인생에 있어서 감수성이 가장 풍부한 청소년의 시기에 젊은이들의 마음은 어떠한 책들에 이끌리고 있는가? 언어와 문학을 연구하는 일에 있어서 청소년들은 과연 어떤 물샘에서 물을 마시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는가? 우리의 젊은이들은 이교 사상(異敎思想)의 우물에서 물을 마시고 부패한 고대 이교에 근원을 둔 물샘에서 물을 마시도록 가르쳐지고 있다. 젊은이들은 도덕적인 원칙에 대하여는 자신이 전혀 관심이 없다고 표명한 저자들에 의하여 저술된 책들에 대하여 연구하라는 강요를 받고 있다.

8많은 현대의 작가들 역시 이와 같은 비판을 받아 마땅한 형편에 있다. 얼마나 많은 아름답고 우아한 말들이 독자들에게 혐오감(嫌惡感)을 일으킬 추악한 정체를 감추고 악한 원칙들을 아름답게 가장하는가?

9그 밖에 많은 소설 작가들은 안락한 궁전에서 향락의 꿈을 가지도록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런 작가들은 부도덕하다고 비난받지 아니할는지는 모르나, 저희들의 저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일은 실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인생의 엄숙한 문제들을 위하여 사용해야 할 귀중한 시간과 정력을 빼앗고 자기 수련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10일반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자연 과학의 연구에도 큰 위험은 있게 된다. 진화론과 이와 유사한 오류가 유치원으로부터 대학에 이르는 각급 학교에서 가르쳐지고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야 할 과학의 연구가 사람의 이론과 가설들로 혼합된 잘못된 이론에 의하여 하나님을 불신하는 일을 조장하고 있다.

11학교에서 하는 성경 공부에서까지도 실로 값으로 말할 수 없는 값진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 진의(眞意)를 빼앗기고 있는 일이 너무나 자주 있다. 분석하고 추측하고 재구성하는 고등 비평의 작업은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라는 믿음을 소멸시키고, 인생을 다스리고 향상케 하며 영감을 주는 능력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빼앗고 있다.

12청소년들이 사회로 진출해서 돈 버는 일에 대한 욕망, 향락과 방종, 허식과 사치, 그리고 과장하는 일, 사기, 도둑, 파멸 등과 같은 죄의 유혹들을 당하게 될 때, 어떠한 가르침들을 그들이 직면하게 될까?

13강신술(降神術)은, 사람은 타락하지 아니한 하나의 신인(神人)이므로 “각 사람의 마음은 스스로 판단할 것이며”, “참된 지식은 사람으로 모든 율법을 초월하게 하”고 “범한 모든 죄는 무죄한 것이니” 대개 “무엇이나 있는 것은 바르고”, “하나님은 정죄하지 아니하시는” 까닭이라고 우리를 미혹한다. 그리고, 가장 추악한 사람이라도 하늘에 가서 높은 대접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은 무슨 일을 하여도 상관이 없으며 좋을 대로 즐겨 살아도 하늘에 갈 수 있다고 선언한다. 이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욕망이야말로 최고의 법이며 방종은 자유이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서만 책임이 있다고 믿게 된다.

14충동이 가장 강하고 자제와 순결이 절실히 요구되는 인생의 초기부터 이런 가르침을 받는다면, 젊은이들은 어떤 곳에서 덕행을 보호할 만한 교훈을 찾을 수가 있겠는가? 무엇으로 소돔과 같이 되어가는 세상을 막을 수가 있겠는가!

15또한, 무정부주의는 모든 법 즉 하나님의 율법뿐만 아니라 인간의 법까지도 폐하여 버리려고 하고 있다. 부와 권력의 집중, 다수를 희생시키고 소수가 부하여지려는 거대한 연합, 이에 맞서는 빈민 계충의 이익과 요구를 옹호하는 집회와 결사들, 불안과 소동, 그리고 유혈의 정신,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그 같은 가르침의 세계적인 조류, 이런 모든 것들은 프랑스를 진동시킨 것과 같은 투쟁으로 전세계를 어지럽게 만드는 일을 조장하고 있다.

16이런 영향들은 오늘날의 청소년들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다. 이러한 격변 가운데에서도 바로 서려면, 저희 젊은이들은 바로 지금 지체 없이 품성의 기초를 쌓아 가는 일을 해야만 한다.

17품성을 쌓는 일에 있어서 그 참된 기초와 모본은 어느 시대나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동일한 것이다. “네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눅 10:27) 하신 하나님의 율법 곧 우리 주 예수님의 생애와 품성에서 나타내신 바 된 품성의 원칙이야말로 단 하나의 견고한 기초이며 더없이 확실한 지표가 되는 것이다.

18“너의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사 33:6) 한 것과 같이, 그 지혜와 지식을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뿐인 것이다.

19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할 것에 대하여,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신 4:6)고 하신 말씀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신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 있어서도 진리인 것이다.

20하나님의 말씀에만 개인의 성실, 가정의 순결, 사회의 행복과 국가의 안정을 위한 방벽이 있다. 혼란과 위험, 그리고 권리를 요구하며 싸우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한 가지 안전하고 확실한 법칙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시 19:8),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시 15:5)라고 성경은 말한다.

제 2 절

교수법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잠 1:4)

21여러 세기를 내려오면서, 교육은 주로 암기 위주로 행하여져 왔다. 암기하는 일에 극도의 부담이 지워지고, 반면에 다른 지적인 능력들은 이와 병행해서 바람직하게 발달하지 못하였다. 학생들은 지식을 두뇌에 축적하기 위하여 힘들게 시간들을 사용하였지만, 실지로 이용할 수 있는 지식이란 별로 없었다. 이와 같이 소화할 수도 없고 실생활에 적용할 수도 없는 지식으로 짐 지워진 두뇌는 활력 있게 자기 탐구적인 노력을 할 수 없게 되어, 자연히 다른 사람의 판단과 지각력에 의존하는 일로 만족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22이러한 암기 위주의 교육 방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인식한 일부의 사람들은 다른 극단적인 방법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은 인간 속에 내재되어 있는 가능성만을 계발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 만족에 빠지게 하고 결국 참된 지식과 능력의 원천으로부터 자기를 끊어 버리게 되었다.

23기억력의 훈련에 의존하고 자주적 사고를 등한시하는 교육은 사람들이 거의 식별하지 못하는 도덕적 문제와 관계가 있다.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자주적인 사고의 능력을 계발하지 못할 때, 학생들은 진리와 오류를 분별하는 일에 있어서 무능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쉽사리 악의 속임수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쉽사리 전통과 관습을 따라 맹목적으로 행하게 된다.

24오류는 위험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체를 그대로 나타내는 일이 거의 없으므로, 별 주의 없이 무관심하게 맞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다. 오류는 진리에 섞이든지 또는 진리에 붙어서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받아들여지게 된다. 선악과를 먹은 것이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의 멸망을 가져왔으며, 선악이 섞인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 오늘날 남녀의 멸망을 초래케 한다. 다른 사람의 판단에 의존하는 사람은 조만간에 과오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25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은 각 개인이 하나님을 의존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각자가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우리의 사고력(思考力)은 우리에게 사용하도록 주어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 능력이 잘 계발되고 다듬어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사 1:18)고 하신다. 하나님께 의존함으로 우리는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사 7:15) 아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26모든 가르침에 있어서 개인 지도는 매우 중요한 원리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에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고 개인적으로 지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열 두 제자를 훈련하실 때에도 개인적인 접촉과 교제를 통해서 가르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한 사람의 청중을 앞에 두고도 당신의 가장 귀한 교훈을 개인적으로 베푸시는 일이 아주 많았다. 감람산에서 있었던 존경받던 랍비와의 심야 토론과 수가의 우물가에서 만난 천한 여인과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이 감동을 받을 만하고, 그들의 생각이 열려 있으며, 진리의 보화를 받아들일 만한 정신이 있음을 그들에게서 보시고 입을 열어 값진 진리를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 번 그리스도를 따라 몰려온 군중들도 그리스도에게는 무분별한 군중으로만 보인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각 사람의 마음에 직접 대화하듯이 말씀하시고 각 사람의 진심에 호소하셨다. 예수님은 청중의 얼굴을 바라보시다가, 말씀하신 그 진리가 그들의 심령에 감응을 일으켜서 얼굴빛이 밝아지고 감동의 빛이 떠오름을 보시게 되면 공명하는 즐거움으로 깊은 감동을 받으시곤 하였다.

27그리스도께서는 각 사람에게 있는 가능성들을 식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겉보기에 기망(期望)이 없어 보이는 일로나 또는 바람직하지 못한 개인의 환경 때문에 사람을 제쳐놓고 돌아서시는 일이 없으셨다. 예수님은 마태를 시장의 세금 받는 곳에서 택하시고, 베드로와 그의 형제들을 고기 잡는 배에서 불러 제자로서 그에게서 배우게 하셨다.

28오늘날 교육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개인적인 관심과 개인적인 배려가 개인의 발달을 위해 필요하다. 겉보기에 유망해 보이지 아니하는 청소년들 중에도 천부적으로 많은 재능을 부여 받았으며 아직 이를 계발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교육자들이 교육적인 이해가 부족한 탓으로 인하여 저들의 재능은 계발되지 아니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겉보기에는 잘 다듬어지지 아니한 돌처럼 덜 매력적으로 보이는 많은 소년과 소녀들에게서도, 믿음의 큰 시련과 억압 속에서라도 능히 견고하게 견디는 귀중한 자질들이 있는 것을 찾아볼 수가 있다. 참된 교육자는 자기에게 맡겨진 학생들이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그가 지도하고 있는 학생들의 가치를 인식해야 한다. 교사는 학생 각 개인에게 개인적인 관심을 갖고 학생의 모든 능력을 신장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는지 모르나, 학생들로 하여금 올바른 원칙들이 이행되도록 모든 노력이 주어지고 격려되어야 한다.

29모든 학생들은 근면의 힘과 필요성을 배워야 한다. 성공의 여부는 천부적 능력이나 재능보다도 이 같은 근면에 훨씬 더 많이 달려 있다. 아무리 훌륭한 재능이 주어졌다 할지라도 이러한 근면이 없으면 별로 쓸모가 없다. 그러나, 보통의 평범한 재능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노력하게 될 때에는 놀랄 만한 일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이다. 놀랄 만한 세상의 업적을 이룩한 천재들도 거의 예외 없이 지칠 줄 모르는 집중적인 이러한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인 것이다.

30청소년들은 적성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저들이 지닌 모든 지체의 기능들을 계발하고 발달시킬 것을 목표로 공부를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저들의 적성에 부합하는 일에만 그들의 연구를 제한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잘못에 주의해야 한다. 천부적인 적성은 평생 동안 이루어야만 하는 교육의 방향을 가리켜 주는 것이며, 그것이 정당한 것이라면 주의 깊게 계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균형진 품성을 건설하는 일과, 모든 일에 효율성을 가져 오는 일은 모든 지체와 기능의 균형지고 충분한 훈련에 의한 고른 발달의 결과에 크게 의존한다는 사실도 또한 기억해야 한다.

31교사는 항상 그의 지도가 단순하고 효율적이게끔 유의해야 한다. 교사는 주로 실례를 들어 가르쳐야 하며, 나이 먹은 학생들을 취급할 경우라 할지라도 설명은 모두 간단하고 명료하게 해야 한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큰 학생이라도 이해력에 있어서는 작은 아이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32교육 사업에 있어서 중요한 일은 열심(熱心)이다. 이 열심의 원리에 대하여는 일찍이 어느 유명한 배우가 한 말 가운데 유용한 교훈이 있다. 한번은 캔터베리의 대주교가 한 배우에게, 무대의 배우는 가상적인 일들을 말하는 일로도 청중으로 매우 깊은 감동을 받게 하는데, 복음을 전하는 목사는 참을 말하면서도 청중을 별로 감동시키지 못하는 일이 많은 것은 무슨 이유이며 어째서 그러냐고 물었다. 그 배우는 대답하기를, “송구한 말씀이오나 용납하신다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이유는 열심의 힘에 있습니다. 무대에 선 우리는 가상적인 일을 마치 진실인 것같이 진지하게 열심히 말하지만, 강단에 서시는 목사님들은 참된 것을 말하면서도 가상적인 것을 말하는 것처럼 말하는 까닭입니다”라고 하였다.

33교사는 교육 사업에 있어서 “참”을 다루게 된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들의 실재(實在)와 중요성을 앎으로 생기는 모든 힘과 열정을 다하여 그것들을 학생들에게 말해야 한다.

34교사마다 자기가 가르치는 내용이 명확한 결과를 이루어 낼 수 있는지의 여부를 늘 확인해야 한다. 어떤 과목을 가르치려고 하기 전에 교사는 확실한 계획을 세우고 그가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교사는 어떤 과목을 가르칠 때에 학생들이 알아야 할 함축된 원리들을 이해하고, 그 진리들을 깨닫고, 그리고 자기들이 배운 것을 명백히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만족해서는 안 된다.

35교육의 큰 목적을 생각할 때, 청소년들은 저들의 가능성이 미치는 한, 높고 깊이 발전하도록 격려 받아야 한다. 그러나, 보다 높은 전문적인 학문의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학생들로 하여금 초등의 기초 학문을 완전히 익히도록 해야 한다. 이 일이 너무 자주 등한시되고 있다. 많은 고등 교육 기관과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 중에는 학문의 일반적인 기초 지식이 크게 결핍된 이들이 많다. 많은 학생들은 간단한 산수(算數)도 할 수 없으면서 고등 수학에 시간을 쏟고 있는 일이 있으며, 웅변술을 습득하기 위하여 발성법을 공부하는 학생들 가운데는 명료하고 감명 있게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 문장의 수사학을 이수한 많은 학생들 가운데에 일반적인 편지의 문장이나 철자법도 바로 쓰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기도 하다.

36학문의 기초 지식을 완전히 익히는 일은 상급 학교 진학에 필요한 조건이 될 뿐만 아니라 학문의 계속성과 보다 깊은 연구를 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시금석이 된다.

37어느 분야의 교육이든지 간에, 단순한 기능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일보다도 더욱 중요한, 학생들이 달성해야만 하는 교육의 목적이 있게 된다. 언어를 예로 들어 보자. 외국어를 습득하는 일보다는 먼저 모국어를, 그것이 현대어든 또는 고어(古語)든 간에 쉽게, 그리고 정확하게 쓰고 말할 줄 알도록 익히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보다 높은 언어 연구의 중요한 일은 문법적인 지식의 교육만으로는 얻어지지 아니한다. 언어 공부는 인생의 행복과 불행에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된다.

38언어의 가장 중요한 요구 조건은 순결하고 친절하고 진실되어야만 하는 것이며, 이는 곧 “속마음이 겉으로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고 하셨으니, 만일 우리의 생각이 어떠하면 표현도 또한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39언어를 배우는 최상의 학교는 가정이다. 그러나, 가정에서 이 일이 매우 등한히 되어 있으므로, 옳은 말의 습관을 기르도록 학생들을 도와야 하는 일이 교사들에게 맡겨져 있는 것이 우리의 형편이다.

40교사들은 가정과 이웃, 그리고 사회에 화(禍)가 되는 악한 말의 습관 곧 훼방하고 말질하며 비열한 비평을 하는 습관을 버리게 하는 일에 크게 이바지해야 한다. 이 일을 위하여 수고를 아껴서는 아니 된다. 이러한 악한 말들은 교양이 부족하고 세련미가 없으며 마음에 참된 선량함이 부족한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러한 일은 이 세상의 참으로 교양 있고 세련된 사람들의 사회를 위해서나 또는 하늘의 거룩한 분들과의 교제를 위해서도 마땅치 않다는 사실을 학생들로 명심 시켜야 한다.

41우리는 식인종이 아직 그 살이 덥고 푸들거리고 있는 희생자의 고기를 먹고 있는 몸서리 치는 광경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욱 무서운 결과는, 진심이 잘못 전하여지고 훼손되는 비판을 받으며 품성을 난도질 당하는 비판을 받음으로부터 오는 고뇌와 파멸이다. 어린이들과 청년들에게 아래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하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잠 18:21).

42성경에는 비방하는 자들을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 “악을 도모하는 자”,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들과 말질하는 자들을 동류로 취급하였다(롬 1:30, 31, 29).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정하심”인 것이다(롬 1:32). 하나님께서 시온의 시민으로 여기시는 사람은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는 자들이다(시 15:2, 3).

43성경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에 가까운 실없는 말이나 지나친 말도 역시 죄로 간주한다. 현대 사회와 실업계에 편만한 허위적인 찬사, 진실한 말을 회피하는 일, 침소 봉대격의 과장, 상거래 상의 거짓말 같은 일을 성경은 죄라고 말한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 5:37).

44“횃불을 던지며 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 자기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하는 자도 그러하니라”(잠 26:18, 19).

45험담이 되는 또 다른 말질은 슬그머니 암시하는 일 곧 교활한 풍자이다. 마음에 담겨진 불순한 생각을 공공연하게 표현할 수 없는 경우 풍자로써 표현하려는 것으로, 청소년들은 이런 행위에 대하여 마치 문둥병자를 피하듯이 피하도록 교육 받아야 한다.

46언어를 사용하는 일에 있어서 노소(老少)를 물론하고 범하기 쉬운 가장 큰 과오는 경솔하고 참을성 없는 말이다. 저희는 “생각 없이 말을 하고는 사실은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라”고 하면 넉넉한 구실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일을 그렇게 가볍게 취급하지 아니한다.

47“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잠 29:20).

48“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잠 25:28).

49조급하고 감정적이며 주의성 없는 말로 인하여, 일순간에 우리는 일생을 두고 후회할지라도 이를 취소할 수 없는 불행한 일을 저지르게 된다. 도움과 치료를 주어야 할 사람들이 냉혹하고 조급한 말을 내뱉음으로 남의 맘을 상하게 하고 친구 사이에 의가 갈리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50“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잠 12:18).

51모든 아동들 속에 계발되고 소중히 여겨져야 할 하나의 특성은 무아의 정신이다. 즉, 자기의 이익을 구하는 일 없이 미덕을 나누어 줄 수 있는 품성이다. 이것은 모든 뛰어난 덕성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성품의 하나가 되며, 모든 참 생애를 위하여 가장 본질적인 자격 중의 하나가 된다.

52아이들은 지도에 있어서 인정(認定)과 위로(慰勞)와 격려(激勵)가 필요하다. 그러나, 칭찬 받기를 좋아하는 정신이 길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어린이로 하여금 특별한 각광(脚光)을 받게 하든지 또는 어린이들의 재치있는 말을 그 당사자가 있는 앞에서 반복하여 칭찬하는 일 등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부모나 교사가 어린이들에 대하여 그들의 품성이 계발돼야만 하는 참된 이상과 그 성취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아이들에게 자족하는 마음을 품게 하거나 또는 그렇게 조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부모나 교사는 청소년들이 그들의 능력이나 또는 능력의 탁월함을 과시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거나 또는 이를 위해 노력을 하도록 조장해서는 아니된다. 자기 자신보다도 더욱 높은 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겸손해질 것이며, 또 표면적인 과시나 위대한 사람 앞에서도 부끄러워하거나 당혹해 하지 아니하는 품위를 갖게 될 것이다.

53품성의 미덕이 발달하는 것은 임의로 사람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법이나 규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품성은 순결하고 고상하고 진실한 풍토에서의 “삶”으로 인해 계발되는 것이다. 순결한 마음과 고상한 품성이 있는 곳에는 항상 순결하고 고상한 말과 행동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54“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잠 22:11).

55언어와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학과의 연구도 그것이 품성을 잘 다듬어 쌓아올리고 튼튼하게 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56이 일은 다른 학과들보다도 역사 공부에 있어서 더욱 그러한 것이 사실이다. 역사는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는 견해를 바탕으로 학생들로 생각하게 하여야 한다.

57너무도 흔히 역사는 군왕들의 흥망, 궁전의 음모, 군대의 승패 같은 일들에 대한 기록들, 즉 야망과 탐욕, 사기와 잔인, 그리고 피 흘림에 대한 이야기로만 가르쳐지고 있다. 그렇게 가르치면, 그 결과는 해로울 수밖에 없다. 역사에 묘사된 마음 아픈 범죄, 악한 일들의 반복, 무법과 잔학 등의 일들은 많은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 악을 수확하도록 하는 씨를 뿌리는 것이다.

58모든 제국들의 흥망을 지배하고 있는 일의 근원을 성경의 빛에 비추어서 배우는 일은 교육에 있어서 아주 유익하다. 청소년들로 하여금 이런 기록들을 배우게 함으로 국가들의 참된 번영이 하늘의 원칙을 받아들이는 일과 관련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 학생들로 위대한 개혁 운동을 배우게 하라. 그리고, 하늘의 원칙들이 비록 경멸과 증오를 받고, 그 원칙의 옹호자들이 옥에 갇히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얼마나 자주 이 같은 희생을 통하여 승리를 얻었는지 보게 하라.

59이런 연구는 사람에게 넓고 포괄적인 인생관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학문의 연구는 청소년들에게 인류 사회의 상호 의존 관계를 이해하게 하며, 우리는 다 하나의 큰 형제 관계로 사회와 국가가 얼마나 밀접히 연결되어 있으며 그 구성원의 어느 누구 하나라도 압제를 받거나 또는 타락을 하게되면 얼마나 널리 모든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게 되는 것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60산수 공부도 실제적이어야 한다. 청소년들로 하여금 산수의 가상적인 이론의 문제들을 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수입과 지출을 정확히 부기(簿記)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일상 생활에서 돈을 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방법을 배우게 해야 한다. 청소년 남녀들로 하여금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나 또는 저희들 자신이 스스로 번 것이나를 막론하고 저들이 얻은 돈으로 자신들의 의복과 책과 그 밖에 필요한 것을 골라서 사는 일들을 배우게 하고 그 비용을 장부에 정리함으로 다른 방법으로는 배울 수 없는 돈의 가치와 돈을 사용하는 방법들을 배우게 해야 한다. 이런 훈련은 한편으로는 남녀 청소년들로 하여금 참된 검약(儉約)과 인색함을 구별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 낭비를 식별해서 배우게 할 것이다. 이런 훈련이 올바르게 지도되면 자선하는 습관도 기르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은 청소년들이 어떤 일로 그들의 감정이 순간적으로 자극되어 일어나는 일시적인 충동에서가 아니라 정규적으로, 그리고 계획적으로 남을 돕는 일을 배우는 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61이렇게 지도함으로 모든 학과의 학습은 인생의 문제 중에 가장 큰 문제인 인생의 훈련, 즉 인생의 책임을 가장 잘 완수하도록 남녀들을 교육하는 품성 교육의 일을 해결하는 일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제 3 절

품 행

“사랑은 … 무례히 행치

아니하고”(고전 13:4, 5)

62예절의 가치는 거의 인식되어 있지 않다. 본심에는 친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나 그 태도가 불친절한 사람이 많이 있다. 성실함과 정직함으로 존경을 받고 있으면서도, 유감스럽게도 온화한 태도가 부족한 사람도 많이 있다. 이 결함은 자신의 행복에도 방해가 되고, 남에게 행한 봉사의 효과도 떨어뜨린다. 인생의 가장 즐겁고 유익한 생활이 단순한 사려(思廬)의 부족으로, 무례한 행동으로 희생되는 일이 많이 있다.

63부모와 교사들은 특히 명랑함과 예절을 갖도록 해야 한다. 명랑한 얼굴, 부드러운 목소리, 예절바른 태도 등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며 자기능력의 요소인 것이다. 어린이들은 명랑하고 쾌활한 태도에 이끌린다. 어린이들에게 친절과 예모를 보이면, 그들도 그 정신을 타인에게와 또 그들끼리 나타내게 될 것이다.

64참된 예절은 단순히 예법을 실행하는 것만으로 배워지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단정한 품행을 지켜야 할 것이며, 원칙을 양보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을 배려하여 일반적으로 인정된 관습을 따를 수도 있다. 그러나, 참된 예절은 세상의 관습을 따르기 위하여 원칙을 희생하도록 조금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계급을 문제삼지 않는다. 그것은 자존심, 즉 사람을 사람의 권위를 가진 자로 존경하고 한 인류라는 대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도록 가르친다.

65단순히 그 태도와 형식에 치중하고 그 방면의 교육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청년들은 세상의 무지와 무거운 짐을 덜기 위해서, 또 날마다의 일상적인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만도 어렵고 마음에 맞지 않는 일로 분투해야 하므로, 세상의 관습에 따라 형식을 배우고 있을 여유가 없는 것이다.

66예법에 크게 치중하는 사람 중에는, 그 인위적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아무리 유익한 것이라 할지라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것은 잘못된 교육이다. 그것은 비평하는 교만과 편협한 배타심을 기르는 것이다.

67참된 예절의 진수는 남을 생각해 주는 마음에 있다. 본질적이고 영속적인 교육은 동정심을 기르고 박애 정신을 조성한다. 소년 소녀들이 그 부모를 공경하게 하고, 부모들의 미덕을 높이 평가하고 그들의 결점을 덮어 주며, 필요할 때 도울 수 있게 하지 못하는 교양, 또는 약한 자와 불행한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갖고 부드럽고 관대하게 도와 주도록 하지 못하고 모든 사람에게 예의바르지 못한 소위 그런 교양은 실패인 것이다.

68참으로 세련된 사상과 태도는 어떤 일정한 규칙을 지킴으로 얻는 것보다도 하늘에서 오신 교사인 예수님의 학교에서 더 잘 배울 수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마음에 충만할 때, 그 품성은 그리스도의 품성과 비슷하게 연마될 것이다. 이 교육은 하늘이 주는 품위와 예절에 대한 관념을 형성한다. 이것은 표면만이 세련된 유행 사회의 교육과는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성품과 우아한 태도를 주는 것이다.

69성경은 예절을 명하고, 참된 예절의 특성인 무아의 정신과 유순한 미덕과 사람의 마음을 끄는 성품에 대한 많은 실례를 보여 준다. 이런 특성들은 다만 그리스도의 품성의 반영에 불과한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참된 유화(柔和)와 예절은 비록 그것이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일일지라도 그 근원은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특성들이 당신의 자녀들에게서 완전히 반영되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기를 원하신다.

70지금까지 기록된 예절에 대한 말씀 중에 가장 귀한 것은 구주께서 주신 귀한 교훈과 사도 바울을 통하여 성령께서 하신 말씀으로써, 이 말씀은 노소를 물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각각 명심하고 잊지 말아야 할 말씀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 … 리라”

(고전 13:4-8).

71마음속에 주의 간직해야 할 또 한 가지 귀한 미덕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참된 숭경심(崇敬心)은 그분의 무한한 위대하심을 깨닫고 그분의 임재하심을 의식함으로 생기는 것이다. 모든 어린이들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대한 관념으로 깊이 감명되어야 한다. 기도와 공중 예배를 드리는 시간과 장소는 거기에 하나님께서 계시므로 거룩한 곳으로 여기도록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태도와 행동에 나타날 때에, 그런 마음을 일으키는 감정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72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를 보이신 장소를 어떻게 여길 것인가에 대하여 기록된 성경 말씀을 배우고 숙고하며 또 자주 반복하는 것은 노소를 물론하고 유익한 일이다.

73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불꽃 속에서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하셨다.

74야곱은 천사들에 대한 꿈을 보고서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창 28:16, 17) 하였다.

75“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합 2:20).

“대저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 위에 크신 왕이시로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시 95:3-6, 100:3, 4).

76하나님의 이름에도 숭경의 뜻을 보여야 한다. 그 이름을 가볍게 생각 없이 입 밖에 내어서는 안 된다. 기도하는 중에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필요 없이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그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시 111:9). 천사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말할 때에 얼굴을 가리운다. 하물며, 타락한 죄인인 우리들은 얼마나 숭경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입술로 말해야 할 것인가!

77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존숭(尊崇)히 여겨야 한다. 성경에 대해 숭경의 뜻을 나타내야 하며, 이를 범속한 일에 사용하거나 조심성 없이 취급해서는 결코 안 된다. 성구를 농담으로 쓴다거나 무슨 약빠른 말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 말씀을 고쳐 쓰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잠 30:5; 시 12:6).

78무엇보다도 어린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참된 경신(敬神)의 마음은 순종함으로써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필요도 없는 것을 하라고 명하지는 않으시니, 그분에게 숭경의 뜻을 표하고 그분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길은 그분이 분부하신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다.

79하나님을 대표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대신으로 행하고 말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목사와 교사와 부모에 대하여 존경을 표해야 한다. 그들에게 갖는 존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존경을 받으시는 것이다.

80하나님께서는 특히 노인에 대하여 존경을 표하라고 명하셨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 16:31). 백발은 싸우고, 승리를 얻고, 무거운 짐을 지고 유혹에 저항한 것을 말해 준다. 그것은 그들의 휴식할 곳에 가까워 가는 피곤한 발을, 또한 오래지 않아 비어질 자리를 뜻한다. 이것을 어린이들에게 생각케 하면, 그들은 예의와 존경으로 노인의 길을 평탄케 할 것이며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레 19:32)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함으로, 그들의 젊은 생애에 은혜와 아름다움을 가져 오게 될 것이다.

81부모와 교사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당신의 대표자로 어린이들 앞에 두신 그 책임과 영광을 더욱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그들이 날마다의 생활에 어린이들과의 접촉을 통하여 나타내는 품성은, 어린이들에게 다음에 기록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악간에 해석하여 줄 것이다.

82“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시 103:13).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사 66:13).

83이런 말씀으로 마음에 사랑과 감사와 신뢰가 일어나는 어린이들, 부모와 교사의 사랑과 정의와 오래 참으심을 인식하여 알게 되는 어린이들, 지상의 보호자에게 가진 신뢰와 복종과 존경심으로 하나님께 대하여도 신뢰하고 복종하며 존경할 줄 아는 어린이들은 행복한 자들이다. 이런 선물을 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주는 자는 어떤 시대에 귀한 것보다도 더욱 귀중한 보배-영원히 계속될 보배를 주는 것이다.

제 4 절

의복과 교육

“아담한 옷을 입으며”,

“왕의 딸이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딤전 2:9; 시 45:13)

84의복에 대한 을바른 원칙을 가르치지 않는 한, 교육은 완성될 수 없다. 흔히 이런 것을 가르치지 않을 때, 교육 활동은 지연되고 그 길을 그르치는 것이다. 의복에 집착하고 유행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은 교사들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경쟁자요 가장 유력한 방해물 가운데 하나이다.

85유행이란 마치 철권을 가지고 지배하는 여주인 같은 것이다. 매우 많은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들의 힘과 시간과 관심은 이 여주인의 요구에 응하기에 여념이 없어져 버린다. 부자들은 언제나 변하고 있는 유행의 스타일에 일치하는 일에 최고가 되려고 열망하고 있으며, 중류 이하의 사람들은 자기들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기준에 접근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금전과 힘에는 한계가 있고, 상류 계급의 모양을 내려는 욕망은 크므로 그 부담은 거의 질 수 없을 만큼 커진다.

86많은 사람들이, 그 의복이 아무리 잘 맞고 아름다울지라도 한번 유행이 지난 것이면 다시 만들든지 버리고 마는 것이다. 가족들의 숙명은 끝없는 수고가 된다. 그 집에는 자녀를 교육할 시간도 없고,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할 시간도 없으며, 어린이들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들을 통하여 그분을 알도록 인도할 시간도 없어진다.

87그 곳에는 자선에 쓸 시간도, 돈도 없다. 그 가정의 식사는 흔히 제한 받는다. 그 식사는 잘못 선택되고 성급히 조리되어서, 몸의 요구에는 부분적으로만 응한다. 그 결과 병이 생기고, 부절제한 생활로 인도하는 그릇된 식사 습관이 생기게 된다.

88허식에 대한 욕망은 사치를 낳고, 많은 청년들로부터 고상한 생애에 대한 포부를 없앤다. 그들은 교육을 원하는 대신, 의복에 대한 욕망을 만족시키는 돈을 벌기 위해 어린 나이부터 무슨 직업에 종사하게 된다. 또한, 이런 욕망으로 인해 많은 젊은 여성들이 미혹되어 파멸에 빠진다.

89많은 가정이 재정의 과도한 부담을 안고 있다. 아버지는 그 처자의 요구에 응할 수 없으므로 부정직한 일에 유혹되고, 필경에는 불명예와 파멸에 이르고야 만다.

90예배하는 날이나 행사에 있어서도, 유행의 지배를 면할 수는 없다. 그보다도, 예배하는 날과 행사는 유행의 위력을 더욱 크게 보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교회는 허식의 전람회장이 되고, 유행은 설교보다 앞서 연구의 재료가 된다. 유행의 풍습을 좇아갈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에 가까이 갈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안식일을 하는 일 없이 보내고, 청소년들은 타락한 교제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91소녀들은 학교에서, 자기들에게 맞지도 않고 편하지도 않은 옷을 입음으로 연구나 휴식에 방해가 된다. 그들의 마음은 이미 다른 생각으로 지배되어 있으므로, 교사들은 그들의 관심을 일으키기에 수고를 한다.

92유행의 마력을 타파하는 데는 자연과 접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교사들은 흔히 발견할 수 있다. 학생들로 하여금 시내와 호수와 바다에서 즐거움을 맛보게 하고, 산에 오르고 낙조를 바라보게 하며, 나무 숲과 들의 보고를 탐색케 하며, 그들로 하여금 야채와 화초를 기르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도록 하면, 유행을 따라서 옷에다 리본이나 주름잡힌 도련을 다는 일을 무의미한 것으로 보게 될 것이다.

93청소년들에게, 식사와 마찬가지로 의복에 있어서도 단순한 생활이야말로 고상한 사고를 갖는 데 절대로 요긴한 것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그들로 하여금, 배워야 할 일이 얼마나 많으며, 평생 사업의 준비에 있어서 청년 시절이 얼마나 귀중한 시기인가를 깨닫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자연의 책에, 또는 고상한 생애를 보낸 사람들의 기록 중에 큰 보배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그들이 인식하게 해야 한다.

94그들의 생각을 그들이 구원할 수 있는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향하게 해야한다. 그들이 허식에 낭비하는 금액만큼, 주린 자를 먹이고 벗은 자를 입히고 불행한 자를 위로할 비용이 줄어든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95그들은 합당치도 않고 편리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름답지도 않은 유행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인생의 광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거나 지성을 위축시키고 건강을 해치며 행복을 파괴하는 일을 할 여유가 없다.

96동시에, 청소년들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전 3:11) 하신 자연의 공과를 배워야 한다. 그 밖의 모든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옷에 있어서도 우리의 창조주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의 특권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입는 의복이 말쑥하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일뿐만 아니라 몸에 잘 맞고 어울리는 것이 되기를 원하신다.

97복장에 의하여 그 사람의 인격이 판단된다. 세련된 취미와 교양이 넘치는 지성은 단순하고 적합한 복장을 선택하는 데서 나타난다. 청초하고 질소한 의복이 겸손한 태도와 연합되면, 젊은 여성을 품위 있는 분위기로 두를 것이요, 그 분위기는 허다한 위험에서 그를 지키는 데 매우 도움이 될 것이다.

98복장의 기교에는 당연히 자기 의복을 자기 손으로 만드는 능력까지 포함되어 있음을 소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이 능력은 모든 소녀들이 가져야 할 희망이다. 이것은 소녀들이 놓칠 수 없는 유용한 자립의 수단이 될 것이다.

* *

99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고 그것을 소망하는 것은 옳은 일이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제일 먼저 최상의 미, 즉 영원한 미를 사랑하고 찾아 구하기를 희망하신다. 사람이 만든 아무리 훌륭한 작품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극히 값진 것으로 보시는 아름다운 품성과 비교될 만한 것은 없다.

100청소년들과 어린이들에게 하늘의 베틀로 짠 고귀한 옷 즉 지상의 모든 거룩한 자들이 입을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계 19:8)를 자신들을 위하여 택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리스도의 흠 없는 품성인 이 옷은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옷을 받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받아 이 세상에서 입을 것이다.

101어린이들에게, 그들이 마음을 열고 순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남을 도울 때 그 자신들은 그리스도의 품성의 아름다운 옷을 입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이 옷은 그들을 이 세상에서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할 것이며, 내세에서는 왕이신 그리스도의 궁전에 들어갈 자격이 될 것이다.

102그 허락은,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계 3:4)하였다.

제 5 절

안식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 31:13)

103교육의 한 방편으로서 안식일의 가치는 측량할 수 없이 큰 것이다. 어느것이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당신께서 영광으로 풍성하게 하시고 모양을 변화시켜 우리에게 도로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십일조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상징하는, 하늘에 있는 성전의 모형인 성소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일에 완전히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시간도 당신의 성호와 인을 찍으셔서 우리에게 되돌려 주시는 것이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니 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 31:13),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11) 하셨다. 안식일은 창조와 구속의 능력의 표징으로써 하나님을 생명과 지식의 근원으로 가리키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창조되던 당시의 영광을 회상케 하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우리를 재창조하시고자 하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104안식일과 가정은 에덴에서 같이 제정되었는데, 하나님의 목적에서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날에는 여느 날과는 달리 특별한 에덴의 생활을 재현할 수 있는 것이다. 가족들이 아버지를 가정의 제사장으로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자녀들의 교사와 친구로 하여, 일하고 연구하고 휴양하면서 함께 교제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죄악의 결과로 생활 형태는 변천되었고, 이 교제는 대부분 소멸되어 버렸다. 아버지는 일주일 내내 자녀들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그는 자녀들과 동무하거나 가르칠 기회를 거의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노동을 제한하셨다. 그분께서는 안식일에 당신의 자비하신 손을 펼치셨다. 당신의 날에 가족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고 자연을 묵상하며 또 서로가 교제할 기회를 가지도록 하신 것이다.

105안식일은 창조력의 기념일이므로, 그 날은 다른 어떤 날보다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들을 통하여 그분을 아는 날이 되어야 한다. 어린이들의 마음 속에 안식일에 대한 생각과 천연계의 아름다운 사물들이 연결되어져야 한다. 안식일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들을 건너고 호숫가를 따라서, 혹은 작은 나무숲을 통하여 예배당으로 가신 것처럼 그렇게 예배하러 가는 가족은 행복할 것이다. 만물이라는 펼쳐진 책으로부터 실례를 끌어내어 성경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신선하고 깨끗한 공기 속에서 푸른 나무 아래 모여 하늘 아버지를 배우고 찬미하는 부모는 행복할 것이다.

106이런 교제를 함으로, 부모는 결코 끊을 수 없는 줄로 자녀들의 마음을 붙들고, 또 하나님께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이다.

107지적 훈련의 수단으로서도 안식일은 무한한 가치를 가진다. 안식일학교의 교과는 그날 아침에 황급히 교과의 성구를 한 번 보는 그런 방법으로 해서는 안 된다. 안식일 오후에 그 다음 주일 공부할 과정을 주의 깊게 연구하고 또 그 주일 날마다 이것을 복습하며 실례를 들어 설명하는 방법으로 공부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공과는 기억에 남아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 보물이 될 것이다.

108설교를 들을 때에 부모와 자녀들은 그 인용 문구와 성구를, 또 할 수 있으면 그 사상의 계통까지도 필기 해 와서 집에서 한 번 복습하여 보도록 한다. 이것은 설교를 듣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피로해지는 타성에 빠지지 않게 하고 주의력과 일관된 사상을 갖는 습관을 기르게 할 것이다.

109이렇게 암시받은 문제를 묵상함으로, 지금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보물이 학생들 앞에 놓여진다. 그들은 다음의 성구에 묘사된 경험이 사실인 것을 그들 자신의 생활에서 입증해 보일 것이다.

110“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렘 15:16).

111“주의 율례를 묵상하리이다.”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시 119:48; 19:10, 11).

제 6 절

믿음과 기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히 11:1; 막 11:24)

112믿음이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아신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자신의 길을 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길을 택하게 된다. 믿음은 우리의 무지 대신에 하나님의 지혜를, 우리의 약한 것 대신에 하나님의 힘을, 우리의 죄된 것 대신에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받아들이게 한다. 우리 생명, 우리 자신은 이미 하나님의 것이 된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축복을 받아들인다. 진실, 성실, 순결은 인생의 성공 비결이다. 이런 원칙들을 소유하게 하는 것이 곧 믿음이다.

113선한 의욕과 포부는 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믿음으로 얻는 생명만이 참된 성장과 실력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114어떻게 믿음을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명백해져야 한다. 하나님의 허락에는 어디에나 조건이 있다. 우리가 만일 자원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행한다면, 하나님의 모든 힘은 우리의 것이 된다. 하나님의 허락 자체에는 무엇이거나 허락하신다는 선물이 포함되어 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눅 8:11) 도토리나무는 도토리 속에 포함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선물은 그 허락 가운데 확실히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 허락을 받아들일 때, 그 선물은 우리의 소유가 된다.

115우리가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믿음은 그 자체가 선물로서, 모든 사람들은 다 어느 정도의 이것을 받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소유로 하기 위하여 믿음을 행사할 때 그 믿음은 자라난다. 믿음을 강하게 하려면 우리는 자주 하나님의 말씀에 접촉해야 한다.

116성경 연구에 있어서, 학생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인식하도록 지도되어야 한다. 창조하실 때에는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 33:9).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롬 4:17), 대개 그분께서 그것들을 부르실 때 그것들은 존재하게 된다.

117비록 자신은 완전히 무력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함으로 전세계의 세력에 대항한 사람들의 예가 많이 있다. 순결한 마음을 가지고 거룩한 일생을 보낸 에녹은 믿음을 굳게 잡고, 부패된 세대에서 의의 승리를 거두었으며, 노아와 그의 가족은 당시의 사람들-가장 뛰어난 지식과 체력을 가졌으면서도 도덕적으로는 가장 타락한 사람들을 대항하였고, 홍해에 이른 이스라엘 자손들은 무력하고 겁 많은 노예 무리일 뿐이었으나 지상 최대국가의 최강 군대를 대항하였고, 하나님께로부터 왕위의 약속을 받은 목동 다윗은 군주의 자리에서 세력을 굳게 잡고 놓지 않는 사울을 대항하였고, 불 속에 들어간 사드락과 그 동료들은 보좌에 앉은 느부갓네살에게, 사자들 사이에 던져진 다니엘은 그 나라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로마 총독까지도 자기들의 의사대로 조종했던 유대인의 제사장과 관원들에게, 처형될 죄인으로 사슬에 매인 바울은 세계 제국의 폭군 네로에게 각각 대항하였던 것이다.

118그런 예들은 성경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 발전의 역사에는 그런 예가 많이 있다. 왈덴스와 위그노 교도, 위클리프와 후스, 제롬과 루터, 틴델과 녹스, 진센도르프와 웨즐리, 또 그 밖의 많은 사람들은 악한 자들의 권력이나 정치에 대항하여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입증했던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의 참된 귀족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세상에서 왕의 정통성을 가진 자들이다. 오늘날 청년들은 실로 이 왕통의 일원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119믿음은 생애의 작은 일에 있어서도 큰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요긴하다. 우리의 일상 생활의 이해 관계와 직업에서 하나님을 영속적으로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힘은 실제로 우리의 힘이 되는 것이다.

120인간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인생의 행로란 누구에게나 미지의 것이다. 경험에 의하여, 이 행로는 누구나 혼자 걸어가는 것이다. 우리의 정신 생활에는 어떤 사람이라도 타인은 완전히 들어올 수 없다. 어린아이가 조만간에 자신의 길을 택하고 인생 문제를 영원히 결정지을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려 할 때, 확실한 안내자요 조력자이신 하나님께 아이의 신뢰를 지향시키는 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인가!

121유혹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순결과 진리에로 지향하도록 영감을 주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인식하는 것보다 더 유력한 것은 없다.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합 1:13)시는 것이다. 이 생각은 부패한 애굽에서 요셉의 방패가 되었다. 유혹의 속삭임에 대한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 39:9). 믿음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모든 사람은 이처럼 보호되는 것이다.

122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는 인식만이, 겁 많은 아이가 갖는, 인생은 무거운 짐이라는 생각과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앨 수 있는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시 34:7)라고 하신 것을 기억에 새기게 해야 한다. 산중의 도시에서 엘리사가 경험한 기이한 이야기-그와 원수의 군대가 대치하고 그를 두른 하늘 천사들의 군대가 친 거대한 포위 태세에 대한-를 읽게 해야 한다. 사형 선고를 받고 투옥된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무장한 수위병과 큰 문들과 쇠로 된 문빗장과 큰 못으로 잠긴 옥문을 지나서 이 하나님의 종을 무사히 인도해 낸 사실을 읽게 하라. 폭풍우에 시달린 병사와 선원들이 노역과 수비와 여러 날 동안의 절식으로 피로할 때에, 심문과 처형을 받기 위해 갇힌 자 바울이 그들을 향하여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행 27:22-24) 하고 용기와 희망에 찬 당당한 말을 하였던 당시의 해상 광경을 읽게 하라. 이 허락을 믿음으로 바울은 그와 같이 있는 자들에게 보장하기를 “너희 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행 27:34) 하였는데, 그대로 되었던 것이다. 배 안에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단 한 사람이 있는 까닭에, 같이 탔던 이교도의 병사와 선원들의 생명도 구조되었던 것이다.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행 27:44).

123이런 일들은 다만 우리가 읽고 기이히 여기도록 하기 위하여 기록된 것이 아니고, 옛날 하나님의 종들이 가졌던 그런 믿음을 오늘날 우리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의 통로가 되는 믿음이 있는 곳에서 옛날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방법으로 일하고 계신다.

124자신감이 없는 자는 자기를 신뢰할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책임을 피하고자 염려하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세상에서 무익한 존재가 되었을 뻔한 사람들이 바울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25비행(非行)에 대하여 성급히 분개하는 어린이들에게 믿음은 값진 교훈을 준다. 악에 대항하고 부정에 보복하려는 성질은 흔히 정의감에 불타는 활발하고 정력적인 기질에서 생기는 것이다. 그런 어린이들에게 정의의 영원한 옹호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가장 사랑하시는 독생자를 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고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는 악행하는 자들을 모두 처벌하실 것이다.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슥 2:8).

126“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 37:5, 6).

127“여호와는 또 압제를 당하는 자의 산성이시요 환난 때의 산성이시로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시 9:9, 10).

128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우리에게 동정심을 나타내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나타내라고 명하신다. 감정적이고 자기 만족에 빠지고 복수심이 강한 자에게,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같이, 털 깎는 자의 앞에 서서 소리 없는 양같이 복수하지 않는 온유하고 겸손한 분을 보게 하라. 우리의 죄로 찔리우고, 우리의 슬픔을 감당하신 예수님을 쳐다보며 참고 견디고 남을 용서하는 것을 배우게 하라.

129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품성의 모든 결함은 보충되고, 모든 더러움은 깨끗해지고, 모든 결점은 교정되며, 모든 미점은 발달될 것이다.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골 2:10).

130기도와 신앙은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이들을 함께 연구할 필요가 있다. 믿음으로 하는 기도에는 하늘로부터 오는 학문이 있다. 인생에서 성공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학문을 이해하여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고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하셨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허락하신 바를 구하고, 또 무엇이나 받을 때에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써야 하는 것이다. 이 조건들이 이행될 때에는, 허락하신 것을 틀림없이 주실 것이다.

131우리는 죄 사함을 위하여 성령을 받고자,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갖고자, 하나님의 일을 위한 지혜와 힘을 얻고자, 그 밖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선물을 얻고자 기도할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받은 줄로 믿어야 하며, 또한 그것을 인하여 감사해야 한다.

132축복의 외면적 증거만을 구할 것이 아니다. 선물은 허락 가운데 있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그분이 수행하실 것과, 이미 받은 선물은 그것이 가장 필요할 때에 활용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우리의 일에 임해야한다.

133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은 전 생애를 통해 하나님께 복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마음은 항상 하나님을 찾아 구하게 될 것이며, 계속적인 필요와 의뢰심이 생길 것이다. 기도는 영혼의 생명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이다. 가족 기도나 공중 기도는 각각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이나, 영적 생활을 유지시키는 것은 하나님과 더불어 은밀히 교제하는 일이다.

134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실 훌륭한 건물의 모형을 본 것은 하나님과 함께 산에 있을 때였다.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산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은밀한 곳에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찬란한 이상을 명상해야 한다. 그렇게함으로 우리는,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 6:16) 하신 하나님의 허락이 성취될 만한 품성의 건물을 형성할 수가 있는 것이다.

135그리스도께서는 홀로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지상 생애에서 힘과 지혜를 공급받으셨다. 청소년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 새벽 미명과 해 지는 황혼에 조용한 시간을 내서 하늘 아버지와 교통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종일 하나님께 향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인생 행로의 발걸음을 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사 41:13)고 하신다. 우리의 자녀들이 인생의 아침에 있어서 이런 교훈을 받을 수 있다면, 그들의 생애는 얼마나 신선하고 능력 있으며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하겠는가!

136이런 교훈을 자기가 실지로 배운 사람만이 남에게 가르칠 수 있다. 많은 부모와 교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노라고 공언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 말씀의 능력을 부인하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들의 성경 가르침은 청소년들에게 큰 감화를 주지 못하는 것이다. 때때로, 청소년들은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느끼고 그리스도의 귀하신 사랑을 깨닫는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품성을 보고, 그리스도께 드리는 봉사에 생애를 바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러나, 한편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존숭한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생애를 본다. 과연 선지자 에스겔의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얼마만큼의 진실인가.

137“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를 의논하며 각각 그 형제로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 보자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 그들이 너를 음악을 잘하며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는 자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준행치 아니하거니와”(겔 33:30-32).

138성경을 좋은 도덕적 교훈의 책으로 생각하여 시대의 사조와 세상에서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와 일치할 경우에만 그것을 마음에 두는 것과, 성경을 사실 그대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생명의 말씀으로, 우리의 행위와 언어와 사상을 형성하는 말씀으로 여기는 것과는 별개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이외의 것으로 보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노라고 고백하면서 이를 부인하고 있는 행동은 칭소년들의 회의와 불신을 일으키는 첫째 원인이 된다.

* *

139세계는 일찍이 겪어 본 적이 없는 긴장 속으로 돌입하고 있다. 오락에, 돈 모으는 일에, 권력 다툼에, 생존 경쟁에 몸과 마음과 혼을 몰두케 하는 무서운 세력이 있다. 이 광란하는 세력의 진격 가운데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

140많은 사람들은 기도하는 시간에도 하나님과의 교제로 얻는 참된 축복을 받지 못한다. 그들은 너무 조급하게 한다. 빠른 발걸음으로 급히 그리스도의 사랑 앞에 나가서 잠깐 동안 그 거룩한 경내에서 쉬는 듯하지만 권고를 받고자 기다리지는 않는다. 그들은 거룩한 교사와 함께 머물 여유가 없다. 그리하여, 그들은 짐을 그대로 진 채 일터로 돌아간다.

141이런 일꾼은 힘의 비결을 배우지 않는 한 결코 최상의 성공에 도달할 수 없다. 그들은 지·덕·체의 능력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생각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모시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들은 성령의 힘으로 고상해져야 한다. 이 힘을 얻을 때, 그들에게서는 신선한 생명력이 소생될 것이다. 피로한 몸과 두뇌는 생기를 회복하고, 마음의 무거운 짐은 가벼워질 것이다.

142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잠깐 동안 하나님 앞에서 쉬는 것이 아니고, 친히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교제하는 일이다. 부모와 교사들이 다음과 같이 아가에 묘사된 경험을 자신들의 생애 속에서 배울 때에, 자녀들과 학생들은 행복하게 될 것이다.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이 내 위에 기(旗)로구나”(아 2:3, 4).

제 7 절

평생 사업

“오직 이 한 일만 하여”(빌 3:13)

143어떤 계통의 일에나, 성공을 하려면 일정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일생의 참된 성공을 위해서는 그 노력에 합당한 목표를 마음 속에 굳게 간직해야 한다. 그런 목표가 청소년들 앞에 놓여져 있다. 현 세상에 복음을 전한다는, 하늘이 정해준 목적은 어떤 사람의 마음에도 호소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목적이다. 그리스도의 감동을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 목적을 위한 노력의 문이 열린다.

144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가정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에 대하여 가지신 목적은 우리의 한정된 통찰력으로써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높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옛날에 가장 지체가 낮은 자 가운데서 당신께 충성된 자를 부르셔서 세상의 높은 계급의 사람들 앞에서 당신의 증인이 되게 하셨다. 다니엘이 유대의 가정에서 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께서 하신 일을 연구하고 충성된 봉사에 대하여 배우며 자라나는 오늘날의 많은 청소년들도, 장차 입법 회의와 법정과 궁정에서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증인으로 서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더욱 큰 봉사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을 것이다. 전세계는 복음을 위하여 문을 열어 놓고 있다. 이디오피아는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내어 밀고 있다. 일본, 중국, 인도로부터, 우리 대륙 중의 아직 어두운 지방으로부터, 세계 각지로부터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구하려는, 죄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부르짖음이 들려 온다. 하나님에 대하여, 또한 그리스도안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전혀 듣지도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들은 이 지식을 알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우리들과 같은 자격을 가졌다.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하는 것은 이 지식을 이미 가진 우리들의 책임이요, 또한 우리에게서 이 지식을 나눠가진 우리 어린이들의 책임이기도 한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의 중대한 위기에서 왕후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 4:14)라는 질문은 오늘날 이 중대한 시기에 있어서 모든 가족, 모든 학교, 모든 부모, 모든 교사 또는 복음의 빛을 받은 모든 어린이들에게도 던져졌다.

145복음이 잘 전파되거나 혹은 방해를 받을 때에 생기는 결과에 대해서, 사람들은 이것을 단순히 자기 자신과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로만 생각한다. 이것을 하나님과 관련시키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죄로 인하여 우리의 창조주께서 받으시는 괴로움을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온 하늘은 그리스도의 고뇌를 함께 당하였지만, 그 고뇌는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취하시고 나타나셨을 때에 시작되거나 마쳐진 것이 아니다. 십자가는 죄가 처음으로 생겼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느끼셨던 고통을 우리의 둔한 감각에 나타내 보이고 있다. 사람이 정의에서 떠날 때마다, 잔인한 행동을 할 때마다, 하나님의 이상에 도달하지 못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슬픔을 느끼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난 데 대한 필연적인 결과로 그들의 원수에게 정복되고 잔학한 대접을 받으며 죽음의 재난에 이르렀을 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삿 10:16),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사 63:9)다.

146하나님의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롬 8:26)는 것이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롬 8:22) 때에, 무한하신 하늘 아버지의 마음은 연민으로 고통당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의 큰 수용소로서, 그 비참한 광경은 생각만 해도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 현실을 그대로 인식한다면, 우리의 짐은 너무 무거워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다 느끼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그 결과를 멸하기 위하여 당신의 가장 사랑하는 독생자를 주시고, 그 아들과 더불어 협력하는 길을 통하여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이 비참한 광경에 종지부를 찍고자 하신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147“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하신 말씀은 자기를 좇는 사람들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명령이다. 누구나가 다 말 그대로 목사나 선교사가 되라고 요구하시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 동포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에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는 자가 되라는 의미인 것이다. 위대하거나 평범하거나, 유식하거나 무식하거나, 노소를 물론하고, 이 명령은 모든 사람들에게 내려졌다.

148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자녀들을 세상에서 존경받도록, 명목은 그리스도인이면서 그리스도의 희생 정신은 결여된 생애를 살도록 해서, 진실하신 그리스도께서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하는 판단을 내리시도록 교육할 수 있겠는가?

149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이런 교육을 하고 있다. 그들은 한 편으로는 복음의 정신을 부인하면서, 복음의 은혜는 확보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봉사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곧 그리스도와 함께 받을 영광스러운 자격을 주는 유일한 교육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들은 품격과 품위를 갖추게 할 교육을 거부하고 있다.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부하도록 내버려 두다가, 너무 늦게야 그 일이 자녀들을 하나님과 사람의 원수에게 내어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들은 내세에서 뿐만 아니라 현세에서도 그들의 파멸을 확실하게 했다. 그들은 유혹 앞에 굴복한다. 그들은 자라서 세상의 저주가 되고 부모에게도 슬픔과 욕을 돌린다.

150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릇된 교육 방법으로 인해 곁길로 들어섰다. 인생에는 공부하는 기간과 일하는 기간, 즉 준비와 실행의 기간이 분명히 구별되어 있다는 생각이 너무나 보편화 되어있다. 청소년들은 평생을 위한 준비로 책을 연구하여 지식을 얻기 위해 학교로 간다. 그들은 일상 생활의 여러 가지 책임으로부터 떠나서 공부에 몰두하나, 그 공부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는 수도 있다. 처음에 가졌던 헌신적 정열은 잃어버리고,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야심을 갖게 되는 일이 많다. 졸업에 임해서야 비로소 자신들이 실제의 사회와는 동떨어져 살았다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것만 취급해 왔으므로, 급기야 사회의 치열한 경쟁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순간에 이르러서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들의 정력은 처음에 목적했던 고상한 일에 쓰이는 대신에 단순히 생존 경쟁에만 빼앗긴다. 실망이 거듭되는 동안, 필경에는 생계비를 버는 일까지도 단념해 버리고 수상쩍은 범죄 행위에 빠져 버리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리하여, 세상은 한 사람의 일꾼을 잃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대표자로 향상시켜서 고귀하게 하고자 하셨던 하나의 영혼을 잃게 되는 것이다.

* *

151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차별해서 교육함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부모는 총명하고 유망한 자녀를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최고의 교육을 받게 하려고 한다. 그 반면에, 덜 유망해 보이는 자녀에게는 그런 기회를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범연한 의무를 수행하는 데는 교육이 과히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52그러나, 가족 중에 가장 중요한 책임을 지게 될 자녀를 누가 능히 가려낼 수가 있겠는가? 이 점에서, 사람의 판단력은 얼마나 자주 실패하였는가!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 중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될 자에게 기름을 붓도록 보내심을 받았던 당시의 광경을 기억하라. 훌륭한 용모를 가진 일곱 청년이 그의 앞을 지나갔다. 선지자 사무엘은 얼굴이 아름답고 체격이 잘 발달되고 귀공자 같은 장남을 볼 때에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삼상 16:6) 하고 속으로 외쳤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고 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 일곱 사람 전부에게는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삼상 16:10) 하는 판단이 내려졌다. 그리하여, 다윗이 양무리들 가운데서 불려 왔을 때에야 비로소 선지자 사무엘의 사명은 완수되었다.

153사무엘이 택하려고 했던 다윗의 형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통치자로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자격을 갖추지 못하였다. 그들은 교만하고 자기 중심적이었다. 그런 자만심을 가진 그들은 자기들이 무시했던, 단순하고 성실한 마음을 가진 겸손한 청년으로서 왕국의 책임을 맡기에 합당한 훈련을 받을 수 있는 다윗에 의해 밀려났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무시당하는 많은 어린이들에게서 그 부모가 매우 유망하다고 생각하는 어린이들보다 훨씬 뛰어난 재능을 찾아보시는 것이다.

154인간의 가능성에 대하여 과연 누가 그 대소를 결정할 수 있겠는가? 사회의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세상에 축복이 되는 활동을 시작하여 왕들도 부러워할 만한 업적을 이룬 일꾼이 얼마나 많은가!

155그러므로, 어린이마다 최고의 봉사를 위하여 교육을 받게 하자.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전 11:6).

156우리에게 배정된 특정의 지위는 각각 우리의 능력에 따라서 결정된 것이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진보를 이룩하거나 같은 일을 동등한 실력으로 해낼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히솝(脣形料 植物)이 히말라야 삼나무처럼 커지거나 감람나무가 당당한 종려나무처럼 높아지기를 기대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는 각각 사람과 하나님의 힘을 결합하여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높이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157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므로 도달할 수 있는 데까지 달하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힘에 의지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참된 성공에 이를 수 있는 길에서 빗나가고 있다. 그들은 더욱 큰 명예와 즐거움을 찾아서 자신에게 적합치 않는 어떤 것을 하려고 한다. 다른 직업에 적합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지적 직업(학문적 소양이 필요한 직업)을 가지려는 야망을 갖는 이가 많다. 농부나 직공, 혹은 간호원으로서 성공할 수도 있었을 사람들이 목사나 변호사, 의사 같은 부적당한 지위를 차지한다. 반면에, 어떤 책임 있는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이 원기와 근면과 인내가 부족한 탓으로 안일한 지위에서 자족하는 수도 있다.

158우리는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전심으로 따라가야 한다. 가장 가까이 놓인 일에 최선을 다하고, 우리의 갈 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 섭리의 지시를 주목하는 것 등은 우리가 직업을 선택하는 데 안전한 지도를 받도록 하는 원칙인 것이다.

159우리의 모본이 되시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그리스도께서는 거의 30 년 동안의 생애를 평범한 기계적 생활로 지내셨으나, 이 기간에 그 분께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업을 연구하고, 당신의 감화가 미칠 수 있는 데까지 많은 사람들을 돕고 가르치셨다.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공생애가 시작되자 병자를 고치시고, 마음 상한 자를 위로하시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기 위하여 나아가셨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160“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 지니라 …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 22:26, 27).

161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충성은 참된 봉사의 원천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동된 사람의 마음에는 그분을 위하여 일하고자 하는 소망이 생긴다. 이 소망을 조성하고 바르게 인도해야 한다. 집안이나 이웃이나 학교에 가난으로 고생하는 무지하고 불운한 사람이 있을 경우에, 그것을 재난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귀한 봉사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162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이 일도 실행하는 중에 기량을 닦게 될 것이다. 인생의 평범한 의무를 다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고통 받는 자에게 봉사하는 훈련을 통하여 실력이 확보되는 것이다. 이것이 없을 때, 아무리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일지라도 무익할 뿐만 아니라 유해하기까지 하다. 사람이 수영을 배우는 것은 땅에서가 아니고 물에서인 것이다.

163일반적으로 매우 경시되는 또 한 가지 의무, 즉 그리스도의 요구에 깨우침을 받은 젊은이들이 명백히 해야 할 한 가지 의무는 교회에 관한 의무이다.

164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고 신성한 것인데, 이는 그리스도는 신랑이요 교회는 신부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머리요 교회는 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관련을 맺는 것은 그리스도의 교회와 관련을 맺는 것을 의미한다.

165교회는 봉사를 위하여 조직된 것이므로 그리스도께 봉사하는 삶의 제 일보는 우선 교회에 연결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 충성하려면 먼저 교회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완수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을 훈련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다. 구세주의 생명으로 고무받은 교회에서는 이것이 직접 외부 세계에 대한 선교 활동을 촉진할 것이다.

166청년들에게는 여러 방면에서 유익한 노력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인 봉사대를 조직하게 하면, 많은 도움을 기대할 수가 있고 또한 장려도 될 것이다. 부모와 교사들은 젊은이들의 일에 관심을 가짐으로, 자신들이 가진 많은 경험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며, 그들이 유익한 곳에서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도와 줄 수도 있다.

167동정심은 친밀하게 알 때 생겨나며, 동정심은 또한 효과적 봉사의 원천이다. 어린이들과 청년들에게 “지경을 넘어” 무수히 많은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과 희생 정신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런 나라들과 그 사람들을 알게 해야 한다. 우리 학교에서는 이 방면의 지식을 많이 제공해야 한다. 학생들로 하여금 역사상의 알렉산더나 나폴레옹의 공훈을 깊이 연구하게 하는 대신에 사도 바울, 마르틴 루터, 모펫, 리빙스턴, 캐리 같은 인물의 일생과, 오늘날 갈수록 분명해지는 선교 활동의 역사에 대하여 연구하게 해야 한다. 학생들의 생애에는 아무 상관도 없고 일단 교실을 나오면 거의 생각도 하지 않는 이름들과 이론들을 나열해서 그들의 기억력에 무거운 짐을 지우지 말고, 모든 나라들을 선교 활동의 대상으로 연구하게 하고 그 나라의 주민들과 그들의 필요를 알도록 하는 것이 좋다.

168끝나가는 복음 사업에 있어서 복음으로 점령해야 할 광대한 지역이 우리 앞에 있으므로,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조력자들을 일반인 중에서 모아야 한다. 밭에서, 포도원에서, 공장에서, 노소를 물론하고 부르심을 받아 구세주의 기별을 전해야 한다. 이들의 대부분은 교육을 별로 받지 못한 자들이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당신의 목적을 성취할 자격이 있다고 보신다. 만일, 그들이 이 일에 마음을 두고 배우기를 계속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위한 일꾼으로서 그를 합당한 자로 만드실 것이다.

169세상의 비참함과 절망의 깊이를 아시는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구제하는 방법도 아신다. 그분께서는 죄와 불행과 고통으로 암흑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영혼들을 도처에서 보신다. 동시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가능성을 보시며, 그들이 도달할 수 있는 높이도 보신다. 비록 사람은 자신에게 주신 은혜를 악용하고, 재능을 낭비하고, 하나님과 같은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어버렸으나, 창조주께서는 인류의 구속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셔야 할 것이다.

170그리스도께서는 무지한 자와 길 잃은 자들을 동정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지상의 험난한 곳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위하여 일할 무거운 짐을 지워 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손이 비록 거칠고 미숙할지라도 동정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 옆에 서서 그들을 도우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불행 중에 은혜를 보고 손실 중에 이익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일하신다.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지나가실 때에, 그들은 고난 중에 특권을, 혼란 중에 질서를, 분명한 실패에서 성공을 찾아보게 될 것이다. 재난은 변장된 축복으로, 저주는 변장된 자비로 보일 것이다. 일반인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은 일꾼들은 구세주께서 전 인류의 슬픔을 당하신 것처럼 그들도 동포의 슬픔을 함께 나눌 때,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고 계심을 보게 될 것이다.

171“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습 1:14). 이 세상은 경고를 받아야 한다.

172완벽하게 준비를 갖춘 무수한 젊은이들과 어른들이 이 일에 헌신해야 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일꾼으로 부르심에 응하였으나, 그 수효는 더욱 증가될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 교육자들은 이런 일꾼들에게 동정과 협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 일꾼의 대오에 참여하기 위해 자기의 지도 아래서 준비하는 청소년들을 격려하고 도와 주어야 한다.

173청소년들에게 이보다 더 큰 유익을 받을 수 있는 다른 분야의 사업은 없다. 전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조력자이다. 그들은 천사들의 협력자들이요, 아니 그보다도 그들은 천사들이 사명을 완수하게 하는 사람의 통로인 것이다. 천사들은 그들의 소리를 통하여 말하고 그들의 손을 통하여 일한다. 그리하여, 일꾼들은 천사들과 협력함으로 그들의 교육과 경험에 유익을 얻는다. 교육의 방법으로서, 어떤 “대학의 과목”이 이와 필적할 수 있겠는가!

174올바르게 훈련된 우리 청소년 일꾼의 군대가 준비된다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사셔서 멀지 않아 오실 구세주의 기별이 얼마나 속히 전세계에 전파될 것인가! 얼마나 속히 우리 자녀들에게 죄의 해와 고통을 가진 이세상의 소유 대신에 그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시 37:29), “그 거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라”(사 33:24),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사 65:19) 라고 한 그 곳을 유업으로 받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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