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계의 가르침
제 4 장
“지혜가 온전하신 자의
기묘한 일을 네가 아느냐”(욥 37:16)
제 1 절
천연계의 하나님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합 3:3; 시 104:24)
1모든 피조물에는 하나님께서 치신 인(印)이 보인다. 삼라 만상은 하나님을 증거한다.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주의 경이와 신비를 볼 때에 무한한 능력을 시인할 수밖에 없게 된다. 땅이 풍성한 산물을 내고 해마다 계속하여 태양의 주위를 운행하는 것은 지구의 고유한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유성들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손에 이끌려 하늘의 궤도를 돈다. 만물에는 신비로운 생명이 충만하다. 그것은 곧 무한히 큰 공간에 무수한 세계들을 붙드는 생명이요, 또한 여름날 미풍에 떠다니는 작은 곤충을 살피고 제비가 날게 하고,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모이를 주어 먹이고, 꽃봉오리를 피게 하며 꽃에 열매를 맺게 하는 생명들이다.
2천연계를 유지하는 그 같은 능력이 사람 속에서도 작용하고 있다. 별들과 미생물을 인도하는 위대한 법칙이 사람의 생명을 지배하고 있다. 체내에서 생명의 유동을 조절하고 심장의 작용을 지배하는 법칙은, 심령의 재판권을 가지시고 위대한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의 법칙이다. 모든 생명은 그분에게서 나온다. 생명의 참된 활동 범위는 하나님과 조화를 이룰 때에만 찾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은 그 조건이 동일하니, 곧 그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음으로써 유지되고, 창조주의 뜻과 일치되는 곳에서 행사되는 것이다. 지적, 영적, 육적인 것을 무론하고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것은 자신을 우주의 조화 밖에다 두는 것으로, 불화와 무질서와 파멸을 가져 오게 된다.
3천연계의 교훈을 이렇게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삼라 만상이 빛을 발하고, 세계는 교과서요 인생은 학교가 된다. 사람이 가지는 천연계와 하나님과의 조화,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 그리고 죄의 결과는 마음에 감동을 주고 품성을 형성할 수 있다.
4이런 것들은 우리 자녀들이 배워야 할 교훈이다. 아직 책을 읽는다든지 교실에서 공부할 수 없는 어린이들에게 있어서, 만물은 끝없는 교훈과 기쁨의 원천이 된다. 악과의 접촉으로 완고하여진 일이 없는 어린이들의 마음은 모든 피조물 가운데 두루 행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속히 인식한다. 세상의 소음으로 귀가 어두워지지 아니한 어린이들은, 천연계의 언어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영원한 영적 사물을 회상케 하는 무언의 자연물들을 계속 필요로 하는 어른들에게도 천연계의 가르침은 기쁨과 교훈의 원천이 될 것이다. 마치, 에덴의 부조들이 자연의 책에서 배우고, 모세가 아라비아 평원과 여러 산에서, 소년 예수님이 나사렛 언덕에서 하나님의 필적을 식별한 것처럼 오늘날의 어린이들도 그와 동일한 방법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으로 인해 명백해진다. 높이 자란 삼림의 나무로부터 바위에 붙은 이끼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넓은 대양으로부터 바닷가의 작디작은 조개에 이르기까지, 지상에 있는 만상 위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그 적힌 이름을 볼 수 있다.
5가능한 한 어린이들을 어려서부터 이 훌륭한 교과서 안에 두도록 하자. 어린이로 하여금, 크신 예술가이신 하나님께서 하늘의 이동하는 화폭 위에 그리신 훌륭한 경치를 보게 하고, 땅과 바다의 경이를 알게 하며, 계절의 변화에 따른 신비를 보게 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통하여 창조주를 배우게 해야 한다.
6참된 교육의 기초를 매우 견고하고 확실하게 쌓는 데는 이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비록 어린이라 할지라도, 만상과 접촉하게 될 때 거기서 혼란의 원인을 찾게 될 것이다. 그는 거기에 서로 반대되는 세력이 움직이고 있음을 인정치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점에 있어서 천연계는 해설자를 필요로 한다. 천연계에까지 나타난 이 악의 형상을 봄으로, 우리는 다 함께 이것은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마 13:28) 하는 불행한 교훈을 배우게 된다.
7갈바리에서 비치는 빛에 의해서만 만상의 교훈은 바르게 읽혀진다. 베들레헴 십자가의 이야기를 통하여, 악을 정복하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 일이며, 우리에게 주신 모든 축복은 속죄의 선물임이 명백히 밝혀질 것이다.
8찔레와 가시와 가라지 같은 것들 속에는 해롭게 하고 상하게 하는 악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노래하는 새, 피어나는 꽃봉오리, 비, 햇빛, 여름에 부는 산들바람, 보드라운 이슬, 그리고 숲 속의 참나무로부터 그 나무 뿌리 언저리에 피는 제비꽃에 이르기까지 천연계에서 볼 수 있는 무수한 사물들에는 회복시키는 사랑이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만물은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고 있다.
9“나 여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렘 29:11). 이것이야말로 십자가의 빛에서, 또 천연계의 모든 현상에서 읽을 수 있는 기별이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고, 땅은 하나님의 풍성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제 2 절
생애의 교훈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욥 12:8)
10크신 교사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청중을 천연계의 사물과 접촉하게 해서, 모든 피조물에게 말하고 있는 목소리를 듣게 하셨다. 그들의 마음이 부드러워져 수용적인 태세가 되면, 그들을 도와 눈앞에 펼쳐져 있는 만상의 광경에서 영적 교훈을 찾을 수 있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진리의 교훈을 가르치시면서 즐겨 사용하신 비유들은 그분의 정신이 얼마나 만물이 꺼지는 영향에 대해 열려 있는지, 그리고 그분께서 얼마나 일상의 환경으로부터 영적 교훈을 수집하기를 즐기셨는지 보여 준다.
11예수님께서는 공중의 새, 들의 백합화, 씨를 뿌리는 자와 씨, 목자와 양, 이런 것들을 가지고 불멸의 진리를 설명하셨다. 그분은 또 일상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 즉 청중이 잘 아는 실제적인 경험인 누룩, 감추인 보물, 진주, 고기 잡는 그물, 잃어버린 은전, 탕자, 바위 위와 모래 위에 세운 집 같은 것을 실례로 들어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교훈에는 각 사람의 마음에 흥미를 일으키게 하고 각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리하여, 날마다의 과업은 높은 이상을 잃은 단순한 수고의 되풀이가 아니고, 끊임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을 생각함으로 명랑하고 발전적인 것이 되었다.
12우리도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 천연계에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가 나타남을 보고, 그분을 새와 꽃과 나무에 관련시켜서 생각하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해설자가 되게 하여, 일상을 통해 그분의 교훈을 알도록 자녀들을 가르쳐야 한다.
13이렇게 하여, 모든 피조물과 모든 생활 경험에서 교훈을 배울 때에, 우리는 천연계의 사물과 생활상의 일과를 지배하는 법칙에 의하여 우리도 지배되어야 하며, 또 이 법칙들은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주어진 것이고, 이것을 순종할 때에만 참된 행복과 성공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라.
봉사의 법칙
14하늘과 땅의 모든 사물은 생명의 대 법칙이 곧 봉사의 법칙임을 말하고 있다.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생물의 생명을 위해 봉사하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섬기는 자”(눅 22:27)로 이 세상에 오셨다.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히 1:14)을 받은 것이다. 그와 같은 봉사의 법칙이 천연계의 만물에 쓰여져 있다. 공중에 나는 새, 들에 있는 짐승, 숲 속의 나무들, 잎사귀들, 풀 또는 꽃들, 하늘의 해, 빛나는 별들, 이런 것들은 다 나름대로 봉사를 하고 있다. 대양도 호수도, 시내도 샘물도 다 남에게 주기 위하여 받아들이고 있다.
15천연계의 만물은 각각 이렇게 세상의 생명들에게 봉사하면서 그 자신을 지킨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눅 6:38)라고 하신 말씀은 성경에 쓰인 것에 못지 않게 명백하게 천연계에도 쓰여져 있는 교훈이다.
16산비탈과 평원이 길을 열어 산골 시내를 바다로 흐르게 함으로 얻는 보수는 백 배나 된다. 노래하며 흐르는 시냇물은 아름답고 풍요한 결실을 남기고 간다. 여름 태양 아래 드러난 갈색의 산야에 푸른 빛의 줄기가 시내의 흐름을 표해 주고, 귀한 나무와 새싹과 꽃들은 각각,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에 전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보수를 실증하고 있다.
믿음으로 뿌림
17성장 과정의 변화 가운데는 거의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교훈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귀한 몇 개의 교훈이 씨의 성장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 속에 나타나 있다. 그것은 남녀 노소를 물론하고 누구에게나 교훈을 준다.
18“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막 4:26-28).
19종자는 그 자체에 싹이 트는 기능 즉 하나님께서 친히 심으신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혼자 내버려 두면 싹을 틔울 힘을 갖지 못한다. 곡물의 생장을 촉진시키는 데에는 사람이 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러나, 어떤 단계를 넘어서면 사람으로서는 그 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한계점에 다다르게 된다. 여기에서 사람은, 전능하신 힘으로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는 일과 기이한 관계를 가지신 하나님께 의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20종자에 생명이 있고 땅에 능력이 있을지라도 만일 거기에 무한한 능력이 밤낮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종자는 수확을 가져 오지 못한다. 메마른 밭이 소낙비로 생기를 회복해야 하며, 햇볕이 온기를 주어야 하고, 땅에 묻힌 씨앗에 전기가 통해져야 하는 것이다. 창조주에 의해서 심어진 생명은 창조주에 의해서만 싹 틔울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종자는 싹이 트고 식물은 생장한다.
21“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눅 8:11).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 돋게 함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리라”(사 61:11). 천연계와 마찬가지로 영적 파종에 있어서도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에게만 있다.
22씨를 뿌리는 일은 믿음으로 하는 일이다. 씨를 뿌리는 사람은 종자가 싹이 트고 자라나는 신비한 힘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로 인해 그 곡식이 무성하게 될 것을 확신한다. 그는 여러 배의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면서 씨를 뿌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모나 교사들은 씨를 뿌릴 때부터 그 수확을 기대하고 수고하는 것이다.
23좋은 종자라도, 일시적으로는 마음 속에 뿌리를 내린 흔적이 없고 사람의 눈에 뜨이지도 않은 채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얼마 후에 하나님의 영이 심령에 활기를 줄 때에, 그 감추어졌던 씨는 싹을 내고 나중에 열매를 맺는 것이다. 우리의 평생 사업은 이것이나 저것 중에 어느 것이 번영할는지 알 수 없다. 이 문제는 우리가 결정할 것이 아니다.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전 11:6). 하나님이 주신 크신 약속에는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 … 이 쉬지 아니하리라”(창 8:22)고 선언되어 있다. 이 약속을 확신하며 농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우리도 이와 같은 확신을 가지고 영적 씨를 뿌리는 일에 노력하고 하나님의 약속에 의뢰해야 할 것이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 55:11).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6).
24종자가 싹이 트는 것은 영적 생명의 시작을 나타내고, 나무의 자라남은 품성의 향상을 표현한다. 자라남이 없는 곳에는 생명이 있을 수 없다. 나무는 자라나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든지 해야 한다. 식물의 생장과 마찬가지로 품성도 사람의 눈에 띄지는 않지만 무언 중에 항상 성장하는 것이다. 비록 우리의 생명이 성장의 각 단계에서 완전하다고 할지라도,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완성될 때에는 그보다 더한 지속적인 성장이 따를 것이다.
25식물은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마련하신 것을 받아서 자라난다. 이와 같이, 영적 성장은 하나님의 힘과 협력함으로 달성되는 것이다. 식물이 흙에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내려야 한다. 마치 식물이 햇빛과 이슬과 비를 받는 것처럼,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언제나 그리스도에게 향해 있으면, 성령은 마치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실”(호 6:3) 것이다. 마치 의로운 해처럼 “치료하는 날개(난외 주)”(말 4:2)를 가지고 우리 위에 떠오를 것이며, 우리는 “백합화같이” 필 것이며 “곡식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같이 꽃이 필”(호 14:5, 7) 것이다.
26밀이 자라나는 것을 보면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막 4:28)이 된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곡식을 가꾸는 목적은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배고픈 자에게 떡이 되고 다음 수확을 위한 종자가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오신 농부 예수님께서도 수확을 기대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애 속에 당신을 재생시키고자 노력하신다. 그것은 그들을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과 생애에 재생케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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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식물이 종자로부터 서서히 자라나는 것은 자녀 교육을 위한 실물 교훈이 된다.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고 한 비유를 주신 분이 작은 종자를 만들고, 거기에다 생명력을 불어넣고, 또 그 생장을 지배하는 법칙을 정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비유로 가르치신 진리를 당신의 생활에서 실현하셨다. 하늘의 주재, 영광의 임금이신 그분께서는 베들레헴에 나셔서 얼마 동안 어머니에게 보호를 받는 무력한 아기로 지내셨다. 어릴 때에 그분께서는 아이처럼 말하고 행동하면서 부모를 공경하셨으며, 유익한 방법으로 부모의 희망을 실행하셨다. 그러나, 지성이 한 번 깨우쳐진 이후로는 계속하여 은혜와 진리에 대한 지식 속에서 자라나셨다.
28부모와 교사들은, 청소년들이 뜰의 나무들처럼 인생의 각 단계마다 자연히 꽃을 피우고 그 시절에 알맞는 아름다움을 나타낼 수 있도록 그들의 성벽을 좋은 쪽으로 이끌어 나가고자 하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
29어린이들은 어린이답게 단순하게 교육해야 한다. 그들은 응당 작고 유익한 의무를 이행하고 그들 나이에 알맞는 즐거움과 경험을 갖는 것으로 만족하도록 교육되어져야 한다. 어린 시절은 비유 속에 나오는 싹과 같다. 싹은 그 자체의 특유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에게 나이보다 더 성숙하기를 강요하지 말며, 할 수 있는 한 그들이 어린 시절에 가지는 신선함과 아름다운 덕을 길이 간직하도록 해주어야 할 것이다. 어린이의 생활이 조용하고 단순할수록, 부자연한 자극에서 떠나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질수록 그 지력과 체력과 신령적 힘은 더욱 순조롭게 발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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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그리스도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이적 중에는 수확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이 설명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천연계의 장막을 젖히시고, 우리들의 유익을 위하여, 언제나 꾸준히 발휘되고 있는 창조력을 나타내 보이셨다. 떡을 여러 배로 더하게 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땅에 뿌려진 종자를 번식케 하는 일에 날마다 이적을 행하신다. 그분께서 이 세상의 전답에서 수확을 거두시며 무수한 사람들을 늘 먹이시는 일은 일종의 이적이다. 사람들은 곡식을 보호하고 떡을 준비하는 일에 그분과 협력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요구에 응하는 사람들은 그들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힘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일들을 자연의 힘이나 사람이 취한 방법의 효과로 돌리며, 그분의 선물을 이기적인 용도를 위해 악용하여 축복 대신에 저주를 받는 일이 많이 있다. 하나님은 이런 모든 것들을 고치고자 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둔한 감각이 깨우쳐져서 당신의 자비하신 은혜를 깨닫게 됨으로, 주시는 선물이 당신의 뜻대로 우리에게 축복이 되기를 원하신다.
31종자에 생명을 주는 것은 생명을 나눠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곡식을 먹는 중에 그 생명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것을 깨닫기를 바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받는 일에까지라도, 거기에 하나님의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더욱 더 당신과 밀접한 교제를 나누기를 바라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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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천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법칙을 보면, 원인에 결과가 따른다는 것이 불변의 진리이다. 곡식을 거둔다는 것은 먼저 종자를 뿌렸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허식은 허용되지 않는다. 사람은 혹 동료를 속이고 자기가 한 적이 없는 어떤 봉사 행위에 대하여 찬사와 보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천연계에는 속임수가 있을 수 없다. 불충실한 농부에게는 그 수확이 그의 잘못을 대변한다. 크게 볼 때, 이 사실은 신령적 세계에서도 진리로 나타난다. 악이 성공하는 것은 외양뿐이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학교에 무단 결석하는 아이, 학업을 게을리 하는 소년, 주인에게 유익을 끼치지 못하는 점원이나 하인, 어떤 사업이나 직무 수행에 있어서 자기의 책임에 대하여 성실하지 못한 자, 이런 사람들은 그 잘못이 덮여 있는 동안에는 자신들이 잘 하고 있다고 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인생의 수확은 품성이며, 이 품성이 현세와 내세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33수확은 뿌려진 씨를 거두는 것이다. 씨마다 “그 종류대로” 열매를 맺는다. 우리가 가진 품성의 특징도 이와 같다. 이기심, 자애심, 자부심, 그리고 방종은 번식한다. 이것들은 결국 불행과 파멸을 가져다 준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 사랑과 동정과 친절은 축복이라는 열매를 맺고, 불멸의 수확을 가져 온다.
34수확할 때에, 씨앗은 여러 배가 된다. 한 알의 밀알은 여러 번 거듭 뿌려지는 중에 번식하여, 드디어 온 땅을 황금의 이삭으로 덮어 버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단지 한 사람의 일생, 또는 한 가지 행위의 영향력도 널리 퍼질 수 있다.
35그리스도께 붓기 위하여 깨뜨린 옥합에 대한 기억은 여러 세기의 긴 세월을 통하여 사랑의 행동을 얼마나 촉진시켰는가? 가난하고 이름없는 과부가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막 12:42)를 드림으로, 얼마나 많은 헌금이 구주의 사업을 위하여 드려졌는가?
생명을 버림으로 생명을 얻음
36씨를 뿌리는 비유의 교훈은 아낌없이 주는 것을 가르친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후 9:6)고 하였다.
37주님께서는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 … 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사 32:20)고 말씀하셨다.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린다는 말은, 우리의 도움이 요구되는 곳이면 어디에나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부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종자를 뿌리는 행위로 그 종자를 여러 배로 늘리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남에게 줌으로 우리는 받을 축복을 더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계속하여 남에게 줄 수 있도록 해 준다.
38그보다도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남에게 이 세상의 은혜를 베풀 때에, 그것을 받는 사람은 감사의 마음으로 문을 열고 영적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며, 그럼으로써 영원한 생명이라는 수확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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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땅에 뿌려진 씨의 비유를 가지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하신 당신의 희생을 나타내 보이셨다. 그분께서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고 하셨다. 씨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희생하심으로써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열매가 맺혀진다. 식물계의 이 법칙을 따라 생각하면, 생명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결과인 것이다.
40그리스도와 동역하는 자로서 열매를 맺는 사람은 누구나 이와 같이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과 이기심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그 생명을 세상이 요구하는 밭고랑에 뿌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 희생의 법칙이야말로 자기 보존의 법칙이다. 농부는 곡식을 뿌리는 방법으로 자기의 곡식을 보존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장차 보존될 생명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드리는 봉사에 값없이 내어 주는 생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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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씨는 죽어서 새 생명으로 싹터 나온다. 여기서 우리는 부활의 교훈을 배운다. 무덤에 뉘어져 썩어질 사람의 육신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고전 15:42, 43)리라.
42교사와 부모들이 이런 교훈을 가르치려고 할 때에는, 실지로 이 일을 체험하게 하는 방법이 좋다. 어린이들에게, 그들 손으로 밭을 마련하게 하고 씨를 뿌리게 한다. 아이들이 일하고 있을 때에, 마음이라는 밭이 있고 거기에 선악의 씨가 뿌려지는 것인데, 식물의 씨를 뿌리기 위해 밭을 잘 준비하듯이 그들의 마음 밭도 진리의 씨를 뿌리기 위해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씨를 땅에 뿌릴 때에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교훈을 가르치고, 싹이 터 나올 때에는 부활의 진리에 대하여 가르친다. 식물이 생장함에 따라, 천연계의 파종과 영적 파종의 상응 관계가 계속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43소년 소녀들도 이 같은 방식으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 밭을 가는 일을 할때부터 교훈을 듣게 될 것이다. 개간하지 않은 땅이 즉시 소출을 내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씨 뿌릴 토지를 마련하고 씨를 뿌리고 곡식을 기르는 데에는 부지런하고 참을성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영적 파종도 이와 꼭 같은 것이다. 마음의 밭이 일궈져야 한다. 흙은 회개함으로 깨어져야 할 것이고, 좋은 곡식을 덮어서 숨막히게 하는 악의 성장은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한 번 가시나무로 덮여졌던 땅이 부지런한 노력으로 회복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과 힘에 의지하여 열심히 노력함으로써만이 마음에 생긴 나쁜 경향을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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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생각이 깊은 일꾼은 밭을 가는 중에 전혀 생각지 못했던 보물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농업이나 원예를 할 때, 그 법칙에 주의하지 않고는 아무도 성공할 수 없다. 각종 식물에 대하여 그 특수성을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토양과 재배법이 요구되기 때문에 각 식물에 적당한 법칙을 따르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이식에 필요한 요령, 즉 모근을 너무 한데 뭉치지 않게 한다든지, 적당한 곳에 묻는다든지, 또는 모를 보호하고 전정하고 물 주며, 밤에는 서리로부터, 낮에는 햇빛으로부터 보호하고, 잡초와 병충해를 막고, 가지를 고르게 하며 바르게 배열하는 데에 주의하는 일들은 모두 품성의 발달을 위하여 중요한 교과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 일 자체가 발달의 수단이 된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들은 조심성, 인내, 세밀하게 살피는 자세, 법칙에 대한 순종 등을 가르치는 데 매우 적절한 훈련이 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을 위해 수고함으로써 생명의 신비로움과 천연계의 아름다움에 끊임없이 접촉할 수 있다. 이것은 부드럽고 세련된 품성과 깨끗하고 상쾌한 정신을 가지게 한다. 또 이렇게 하여 배운 교훈으로 일꾼은 한층 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어루만질 수 있도록 준비되는 것이다.
제 3 절
다른 실물 교훈
“지혜 있는 자들은
이 일에 주의하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시 107:43)
45하나님의 치료 능력은 온 천연계에 두루 편만해 있다. 나무가 베어지든지, 사람이 상하고 혹 뼈가 부러졌을 때에는, 즉시로 그 상해의 회복을 위해 치유의 힘이 작용하기 시작한다. 그 치료 작용은 필요가 생기기 전부터 준비되어 있어서, 어떤 부분이 상하면 즉시 일체의 힘이 회복하는 일에 경주되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 세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죄로 인한 어떤 필요가 생기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 구제책을 준비해 두셨다. 유혹에 약한 모든 영혼이 적에게 상함과 해를 받으나, 어디든지 죄가 있는 곳에는 구주께서도 계시는 것이다.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눅 4:18)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다.
46이 일에 우리는 협력해야 한다.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갈 6:1). 여기 “바로잡는다”라고 번역된 말의 어원은 제자리에서 물러난 뼈마디를 바로잡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얼마나 의미 깊은 표현인가! 실수나 죄에 빠진 자는 자기를 둘러싼 일체의 사물과의 정당한 관계로부터 멀어진 것이다. 그는 혹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고 후회의 마음이 가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회복시킬 수는 없다. 그는 혼란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패배감으로 속수 무책에 빠진다. 그는 치료를 받고 회복되어 다시 일으켜져야 할 사람이다. “신령한 너희는 … 그러한 자를 바로잡”으라는 말씀이 있다. 그리스도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사랑만이 치유의 능력을 가진다. 마치 나무의 수액과 체내의 혈액처럼, 속에 사랑이 흐르는 사람만이 상한 심령을 회복시킬 수 있다.
47사랑의 활동은 하늘로부터 온 것이므로 기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분노를 쉬게”(잠 15:1) 하는 유순한 대답, “오래 참고 … 온유”(고전 13:4)하고, “허다한 죄를 덮”(벧전 4:8)는 사랑, 이런 교훈들을 배울 때에, 과연 우리 생애에는 얼마나 큰 치료의 능력이 선물로 주어지게 될 것인가!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바뀌어지고, 지상에 서린 하늘 분위기를 얼마나 미리 맛보게 될 것인가!
48이런 귀한 교훈은 작은 어린이들에게라도 깨닫도록 가르칠 수 있다. 어린이의 마음은 그 감각이 예민하고 쉽게 감명을 받는다. 또한, 우리 어른들이 “어린아이들과 같이”(마 18:3) 되고 예수님의 단순하고 유화하고 온순한 사랑을 배우게 되면, 어린이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사랑으로 행하는 치료의 봉사를 그들에게 가르치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음을 깨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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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하나님의 사업은 가장 큰 것이나 가장 작은 것이나 상관없이 모두 완전하다. 우주 공간의 모든 세계를 달아매시는 하나님의 손은 들꽃 또한 아름답게 피우시는 손인 것이다. 길가에 핀 가장 작고 흔한 꽃을 현미경으로 조사하면서 그 각 부분의 정교한 아름다움과 완전함을 주목하여 보라. 마찬가지로, 아무리 미천한 사람에게서도 참된 미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아무리 평범한 일이라도 그것을 사랑하고 충실히 할 때에는 하나님의 눈앞에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작은 일에 성실하게 주의를 기울임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 되고, 일체를 다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것이다.
50하늘에 빛의 아취를 걸어 놓고 있는 무지개는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창 9:16)의 표이다. 또한, 하늘 위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두른 무지개도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에게 하신 평화의 언약을 상징한다.
51구름 사이에 생기는 무지개가 햇빛과 소나기의 결합으로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보좌 위에 생기는 무지개는 하나님의 은혜와 공의의 결합을 상징한다. 죄를 지었으나 회개하는 사람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살리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욥 33:24)라고 말씀하신다.
52“이는 노아의 흥수에 비하리로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치 않게 하리라 맹세한 것같이 내가 다시는 너를 노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54:9, 10).
별들이 주는 기별
53별들 역시 모든 인간들에게 격려가 되는 기별을 준다. 마음이 몹시 피로할 때, 시련에 무겁게 눌릴 때, 장애물을 이길 수 없는 듯이 생각될 때, 인생의 목적이 달성될 수 없고 그 아름다운 희망이 그림의 떡처럼 허무해지는 그런 처지와 상황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혼란 없는 정숙함으로 각기 길을 달리는 별들의 교훈을 통하여 용기와 불굴의 정신을 가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54“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 이르기를 내 길(난외 주)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송사(난외 주)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 하시나니”(사 40:26-29).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사 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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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종려나무는 사막 한복판에서, 타는 듯이 뜨거운 햇볕과 혹심한 모래 바람을 맞으면서도 청청하고 무성하며 열매를 맺는다. 그 뿌리는 솟는 샘물에서 영양을 흡수한다. 그 초록빛 나는 꼭대기는 멀리 떨어진 폭염의 사막에서도 바라다보인다. 그래서, 죽을 듯이 고생하는 나그네가 그 선선한 그늘과 생명의 물을 찾아서 그들의 피곤한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이다.
56사막에 선 나무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사는 당신의 자녀들이 어떠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지 보여 주는 하나의 상징이다. 죄의 사막에서 불안에 떨며 죽어가는 피곤한 영혼을, 우리는 생명의 물가로 인도해야 한다. 우리는 동료 인간들에게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고 초청하시는 예수님을 나타내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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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여러 나라에 여행과 교통의 공로(公路)가 되고 있는 넓고 깊은 강들은 세계적 복리로 평가되고 있으나, 이 큰 강들이 흐를 수 있도록 한 작은 시내들에 대하여는 어떠한가! 작은 시내들이 없다면 큰 강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큰 강들은 작은 시내들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큰 사업의 지도자로 있는 사람은 마치 성공이 그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존경을 받으나 사실은 그 성공의 이면에는 세상의 이름없는 일꾼들의 신실한 협력이 있었던 것이다. 세상의 근로자들 중 대부분은 그 하는 일에 칭찬이나 인정을 받지 못하는 형편에 있다. 이런 부류의 많은 사람들은 불평으로 가득 차서 살고 있다. 그들은 일생을 허비하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나무 숲과 풀밭을 뚫고 흐르면서 건강과 많은 소출과 아름다움을 가져다 주는 작은 시내는 큰 강과 조금도 다름없이 그 연안에 유익을 주는 것이다. 또한, 작은 시내는 큰 강의 생명을 위해 공헌함으로,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과업을 달성하는 데 도움을 받고 있다.
58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교훈이다. 재능이 극도로 숭배되고, 지위가 지나치게 선망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세상에는 지도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남에게 칭찬을 받지 않으면 일에 흥미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우리는 받은 재능과 기회를 충실히, 그리고 최고도로 이용하고, 하늘이 우리에게 정해 주신 운명에 만족하는 것을 배워야한다.
신뢰의 공과
59“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욥 12:7, 8),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잠 6:6), “공중의 새를 보라”(마 6:26), “까마귀를 생각하라”(눅 12:24).
60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생물들에 대하여 어린이들에게 그저 말해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동물들 자체가 그들의 교사가 되어야 한다. 개미는 꾸준한 노력, 끈기 있게 장애를 극복하는 자세, 장래를 위한 준비에 대하여 가르쳐 준다. 새들은 신뢰에 대하여 아름다운 교훈을 가르쳐주는 교사이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새들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해 주시기는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식물을 모아야 하고, 보금자리를 만들어야 하며, 새끼를 길러야 한다. 그들은 항상 그들을 잡아먹으려는 적에게 갑자기 공격당할 위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새들은 얼마나 즐겁게 일을 하며, 얼마나 충만한 기쁨으로 그들의 섬세한 노래를 부르고 있는가!
61숲 속에 사는 동물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묘사한 시인의 표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높은 산들은 산양을 위함이여
바위는 너구리의 피난처로다”(시 104:18).
62하나님께서는 새들이 깃들고 “나뭇가지 사이에서 소리를 발하는”(시 104:12) 산골짜기로 샘물을 흘려 보내신다. 숲과 산 언덕에 사는 동물들은 다 하나님의 대가족의 일원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신”(시 145:16)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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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알프스의 독수리는 때때로 폭풍우 때문에 산의 협곡 밑까지 깊이 떨어져 들어가는 수가 있다. 폭풍이 몰고 온 구름에 갇힌 이 하늘의 왕자 독수리는 어두운 구름 덩어리로 인하여 자기가 집을 지은, 해가 비치고 있는 산꼭대기로부터 차단된다. 빠져 나가려는 그의 노력은 소용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여기저기로 돌진하며 그 강한 날개로 허공을 치고, 울음 소리로 메아리를 일으킨다. 그러나 필경에는, 승리의 부르짖음과 함께 그 새는 위로 돌진하여 구름을 꿰뚫고 다시 밝은 햇빛이 비치는 곳으로 나와서, 암흑과 폭풍을 멀리 내려다본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고난과 실망과 암흑에 둘러싸일 수가 있다. 허위와 불행과 부정이 우리를 가두곤 한다. 우리가 쫓아 버릴 수 없는 구름들이 있다. 우리는 환경과 싸우지만 헛고생을 한다. 거기서 피할 길은 하나, 오직 한 길만이 존재한다. 안개와 몽롱함이 지상을 덮고 있으나, 그 구름 위에는 하나님의 빛이 비치고 있다. 믿음의 날개를 타고,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햇빛 가운데로 올라갈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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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이렇게 배울 교훈은 많이 있다. 평지나 산허리에 홀로 서서 그 뿌리를 땅속 깊이 박고 굉장한 힘으로 폭풍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나무로부터는 자립 독행하는 것을 배울 것이다. 묘목 때부터 구부러진 채로 있는, 다시 말해 어떤 힘으로도 그 잃어버린 균형을 회복할 수 없게 뒤틀려서 모양 없이 서 있는 나무 줄기에서는 유년기의 감화에 대하여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잡초와 티끌로 가득한, 감탕으로 된 연못에 피는 수련은 그 구멍 난 줄기를 감탕 밑의 깨끗한 모래 속에 깊이 박고 거기서 생명을 빨아 올려서, 향기로운 꽃을 더럽히지 않고 순결한 모습으로 피게 한다. 여기서 우리는 거룩한 생애의 비결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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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그러므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교사와 교과서를 통해서도 여러 가지 일에 대하여 지식을 얻지만, 스스로 교훈을 끌어내고 거기에서 진리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전원에서 일할 때에는, 그들이 심는 곡식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물어 봐야 한다. 그들이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볼 때에는, 하나님께서 숲과 들을 왜 저토록 아름다운 여러 가지 색채로 단장해 놓으셨는지, 왜 모두 거무스름한 갈색 하나로 칠하지 않으셨는지 물어 봐야 한다. 그들이 꽃을 따 모을 때에는,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의 방랑자가 된 꽃들의 아름다움을 우리가 볼 수 있게 하셨는지 생각하게 해야 할 것이다. 천연계 어디에나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깊은 뜻이 나타나 있으며, 우리의 필요와 행복을 위하여 모든 것이 놀랄 만큼 알맞게 지어져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도록 가르쳐야 한다.
66만물 가운데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보는 사람과, 땅의 부요함과 아름다움 가운데서 그분의 필적을 읽는 사람만이 천연계의 사물에서 가장 깊은 교훈을 배우고, 만물이 주는 최고의 봉사를 받을 수 있다. 산과 골짜기, 바다와 강물을 하나님의 뜻의 표현으로, 그리고 창조주의 계시로 보는 사람만이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67성경 기자들은 천연계에서 많은 실례를 인용하였다. 우리는 천연계의 사물을 관찰함으로써 성령의 지도 아래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교훈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천연계는 하나님의 말씀의 보고를 여는 열쇠가 된다.
68성경의 교훈을 말해 주는 사물을 천연계에서 찾고, 천연계로부터 인용한 비유를 성경에서 찾아보도록 어린이들에게 권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또한 삼라 만상과 성경 두 곳 모두에서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진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하신 것들을 일일이 찾아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나무와 덩굴에서, 백합과 장미에서, 또 해와 별에서 그리스도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새들의 노래에서, 나무의 우는 소리에서, 으르렁거리는 뇌성에서, 그리고 바다가 내는 음조 속에서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천연계의 모든 사물은 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주신 귀한 교훈을 반복하여 가르칠 것이다.
69이렇게 그리스도를 익숙히 아는 자에게는, 더 이상 이 지상이 적막하고 황폐한 곳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하늘 아버지의 집이 되면서 일찍이 사람들 속에 계셨던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으로 가득 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