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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 있는 세속주의

1_________에 있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1868년 6월 12일 나는 세상을 사랑하는 정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정신을 크게 점령한 사실을 보게 되었다. 그대들은 쾌활한 곳에, 즉 세상적 번영에 알맞는 곳에 있다. 이 때문에 그대들은 세상에서 지상의 재물을 모으느라고 정신이 빠져버리는 위험에 끊임없이 봉착해 있다. 그대들의 마음은 그대들의 보물이 있는 곳에 있다. 그대들은 세상으로 더 깊이 뛰어들어가는 시험과 계속 돈을 긁어 모으기만 하는 시험이 있는 곳에 있다. 그대들이 이렇게 몰입되어 있는 한 그대들의 마음들은 참된 경건에 완전히 닫아 버릴 근심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재물의 기만을 깨닫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돈을 벌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이 한 가지 목적에 너무 치중하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영적인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그것을 찾아 구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이익을 사랑하는 마음이 하늘의 보화를 가려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나타내는 열성과 끈기와 진지함에 의해 영생의 상급이 귀하게 여겨지게 된다면 그것은 세상 재물의 절반의 가치로 여기는 일이 없을 것이다. 세상의 재물을 얻기 위해 애쓰는 열렬한 노력과 영성과 하늘의 보물을 얻기 위해 투자하는 보잘것없고, 연약하고, 비능률적인 노력을 비교해 보자. 하늘 성소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밝게 하는 영향을 그토록 경험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우리의 욕구는 그쪽으로 행하지 않는다. 우리의 욕망은 세상 것을 찾으며 영원한 것을 소홀히 하면서 세상적인 추구에 대부분 몰두해 있다. 번영으로 인해 눈이 멀고 영혼은 속임을 당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나 세상의 쓰레기가 그 음성이 들리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2나이 든 T 씨는 세상의 모든 것을 제거하고 그 자신이 하늘을 위해서 익어야 할 때에 세상 사물에 대하여 애정을 갖고 있다. 그는 지금 살아갈 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의 마음은 더 나은 나라에 가 있어야 한다. 그는 세상의 썩어질 것에 대하여 갈수록 흥미를 줄여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영원한 것들이 그의 모든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의 은혜의 기간이 거의 끝나려는 순간이다. 오! 하나님께 자신을 바칠 시간이 거의 없지 않은가! 그의 체력은 고갈되었고, 그의 지력은 와해되었고, 최선을 다한다 해도 그의 섬김은 연약할 뿐인데 만일 마음을 다하여 남김없이 바친다면 그 봉사는 온전히 가납될 것이 아닌가. T 형제여, 그대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기심이 늘고 이 가련한 세상의 보물에 대한 집요하고 열렬한 사랑이 늘었다.

3T 자매도 이 세상을 사랑한다. 그녀는 선천적으로 이기적이다. 그녀는 질병을 많이 앓았다. 하나님께서 이런 고통을 그녀에게 허락하셨다. 그러나 사단이 그녀의 생명을 취하지는 못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의 도가니를 통하여 그녀가 세상 재물에 대한 애착을 느슨하도록 하셨다. 고통을 통하여서만 이 일이 가능하였다. 그녀의 신체 기관은 약물로 인해 중독이 되었다. 약물을 복용하므로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어 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생명을 버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녀의 은혜의 기간과 고통의 기간을 연장하셔서 진리를 통하여 거룩하게 되고 고통의 도가니를 통해 정결하게 되고, 희게 되며, 단련되고, 그녀의 찌꺼기를 버리고 정금보다 더 귀하고, 오빌의 금보다 더 귀하게 되도록 하셨다. 세상을 사랑하는 정신이 너무 뿌리깊게 박혀서 이 형제 자매는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혹심한 시련을 견뎌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그대들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이 부족하다. 그대들은 세상 것에 미쳤다. 세상은 그대들의 마음을 휘어 잡아서 이 세대를 본받게 하였다. 그러나 영적인 것과 하늘의 것은 마음을 변화시키는 데 충분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4_________에 사는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공언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은 왜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가? 그대들은 왜 예기치 않는 일로 쉽게 없어질 수도 있는 이 땅의 재물을 얻기 위해 정신이 없으며 왜 영원불멸의 썩지 않는 하늘의 재물을 소홀히 여기는가?

5나는 U 형제 부인의 형편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바르게 행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 자신과 친구들에게 어려움을 많이 주는 잘못들을 범하였다. 그녀는 말이 많다. 그녀는 하나님의 것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 그녀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고 회개하지 않으면 그녀는 마지막 때의 위험 가운데서 능히 서지 못할 것이다. 마음을 바꾸는 일이 시급하다. 그리하면 혀는 거룩해질 것이다. 반드시 피해야 할 죄의 말을 많이 하고 있다. 그녀는 입술에 엄한 파수꾼을 세우고 입술에 재갈을 먹여서 말로 악을 행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녀는 타인의 잘못을 말하지 말아야 하며, 타인의 결점을 생각지 말고, 타인의 연약함을 찾아내려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대화는 어느 사람이거나 간에 마음을 상하게 한다. 그것은 무익하며 그야말로 악하다. 그것은 악할 뿐이다. 우리의 원수는 그리스도의 공언하는 제자들이 그렇게 할 때에 그가 일할 수 있는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안다.

6자매들이 함께 모여서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질 때에 사단이 일할 것을 찾기 위해 대개 그 곳에 동참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는 곁에 서서 흥분시키며, 그가 얻을 수 있는 모든 이익을 취한다. 그는 이 모든 만담과 잡담과 비밀을 말하는 것과, 성격을 따지는 것 등이 영혼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키는 일임을 안다. 그것은 영성과 조용한 종교적 영향을 죽이는 것이다. U 자매는 혀로 죄를 많이 짓는다. 그녀는 입의 말로 좋은 영향력을 끼쳐야 하는데, 그녀는 함부로 말하는 일이 잦다. 때때로 그녀의 말은 실지와 다르다. 그녀는 종종 과장한다. 그리고 잘못 말한다. 잘못 말할 의도는 없으나 말을 많이 하고 무익한 것을 말하는 습관이 오랫동안 유지되다 보니 말할 때에 부주의하게 되고 무모한 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떠들 때가 잦다. 이것은 그녀가 끼칠 수 있는 좋은 감화력을 파괴한다. 이 점에 있어서 온전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때이다. 그녀가 이러한 죄악된 언어 생활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은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7그리스도인들은 말조심을 해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친구들의 잘못을 다른 이에게 전해서는 안 된다. 특히 그들 사이에 화합이 잘되지 않음을 서로 알 경우는 더욱 그렇다. 타인이 모르는바 이 친구나 저 친구에 관한 것을 많이 아는 것처럼 암시를 주거나 은근히 상대방을 이끌어 들이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그러한 암시는 발전해서 더 험악한 인상을 주게하며, 결국은 그 사실을 과장하여 터놓고 이야기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런 것 때문에 손해를 당하지 않았는가! 교인들이 모순적이며, 행동에 주의하지 않으므로 교회는 물처럼 약하게 되었다. 그 교회 교인들에 의해 확신이 무너졌지만 잘못한 사람들은 그 실수를 계획하지는 않았다. 대화의 주제를 고르는 데 있어서 지혜가 부족함으로 큰 해를 당하게 된 것이다. 대화는 영적이며 신령한 것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그와 정반대였다. 만일 신자 친구들과의 교류가 주로 정신과 마음을 계발하는 데 집중된다면, 후회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대화를 벅찬 만족감을 가지고 회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귀한 시간을 유치한 것과 헛된 이야기에 허비하고, 시간을 타인의 생활과 성격을 분석하는 일에 사용한다면, 그 친근한 교제는 악의 원천이 될 것이며 그대의 감화력은 사망에서 사망으로 이르는 냄새가 될 것이다.

8나는 그대들의 교회 교인 중에 내게 보인 사람들을 모두 또렷이 기억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많은 사람들이 큰 일들을 해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 대부분 말을 너무 많이 하는 반면 명상과 기도는 거의 안한다. 많은 사람들은 너무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다. 마음은 자기에게 집중되어 있고 타인의 복리를 위하는 일에는 멀다. 사단의 능력이 그대들 위에 크게 역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대들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기를 구하는 자들 가운데 아직도 귀한 빛이 있다. 교만과 세상을 사랑하는 정신은 영성과, 은혜 안에서의 성장을 저해하는 큰 덫이다.

9이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천국이 아니다. 단지 하나님의 일터일 뿐이다. 여기서 우리들은 거룩한 하늘의 흠없는 천사들과 연합하기 위해서 준비되고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고귀하고 이타적인 생각을 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훈련시켜야 한다. 이러한 교육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연마하여 이 땅에서 그분의 성호에 영광이 가도록 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고귀한 자질과 함께 그것들을 관리할 책임도 부여 받았다. 그분께서 계획하지 않으신 길로 이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그분께 배은 망덕을 표하는 비루한 짓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우리 존재의 모든 능력을 요구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능력들을 최고로 계발시키지 않고, 하늘 사물을 명상하기를 즐기도록 마음을 훈련시키지 않고, 바른 행위로 영혼의 힘을 강인하고 고상하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뜻하는 것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10성결을 부르짖는 여인들은 대개 마음을 훈련시키지 못한다. 그들은 마음을 아무데로 가도록 방치한다. 이것은 큰 실수이다. 많은 사람들은 지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생각하도록 마음을 훈련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할 수 없다고 가정한다. 명상과 기도는 은혜 안에 자라감에 있어서 필요하다. 여성들 가운데 안정감이 없는 이유는 정신적 수양이 없고 명상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을 무기력한 상태에 방치하면, 남들에게 생각하는 일을 기대게 되며, 대신 계획하고, 대신 생각하며, 기억하게 함으로 더욱 무능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머리를 씀으로 마음을 훈련시켜야 한다. 그들은 억지로 마음을 쓰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타인에게 생각하는 것과 문제 해결을 의지하고 그들이 생각하기를 꺼려 한다면, 기억력의 감퇴와 앞날을 내다보고 분별하는 무능력의 상태가 계속될 것이다. 정신을 훈련하기 위한 노력을 각자가 다 해야만 한다.

11나는 V 형제가 믿음을 더 구해야 할 것을 보았다. 그대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 하나님께 대한 잠잠한 신뢰를 갖지 못했다. 그대는 그대의 마음을 훈련하여 영적인 통로가 되도록 하지 못하였다. 그대는 헛되고 불필요한 이야기에 너무 많이 빠졌으며 그것은 그대의 영혼과 감화력을 망쳤다. 그대는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강인하게 해야 한다. 그대는 쉽게 흥분된다. 그대의 감정은 격하며, 그대의 호, 불호를 심한 말로 표현한다. 그대는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힘을 얻기 위해 더 좋은 믿음이 필요하다. 그대는 그리스도를 배우도록 청함을 받았다. 그분은 온유하고 겸손하시다. 귀한 교훈이 아닌가! 잘만 배우면 전 생애를 바꾸어 놓을 것이다. 경박함과 값싼 대화는 그대의 신앙 발전에 저해 요인이다. 그대는 품성의 완전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대의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라. 그대는 주님을 열렬히 찾아야 하며 진리의 깊은 샘에서 물을 길어 마시고, 그 힘으로 그대의 생애를 성화시키게 해야 한다. 그대의 마음은 너무 세상에 빠져 있다. 그대는 이보다 더 나은 생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대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서둘러서 얼마 남지 않은 은혜의 시간을 잘 활용하라.

12그대의 처는 교만과 이기심으로 가득 찼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품성의 오점을 제거하기 위해서 그녀가 고통의 도가니를 통과하게 하셨다. 그녀는 고난의 불이 헛되이 지펴지지 않도록 매우 주의해야 한다. 그 일은 찌꺼기를 제거하고, 그녀를 더욱 영적으로 만들어서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이르게 해야 한다. 그녀의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은 극복되어야 하며 그녀의 뜻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삼킨 바 되어야 한다.

13나는 세상을 사랑하는 정신이 너무 커서 예수님을 교회 밖으로 내몰아 버린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변화를 바라신다. 그분의 뜻에 온전히 굴복하기를 요구하신다. 신앙적인 주제에 마음을 바치지 않으면, 이 방향으로는 연약하고 나약해질 것이다. 반면 세상 일에 몰두하면 그것은 강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이 방면으로 발달하였고 계속 그 방향으로 마음을 쓰므로 강인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신앙 생애를 사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그들이 성결을 구하는 데 마음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은 정반대 방향으로 훈련되고 말았다. 마음을 영적 지식을 얻는 일과 경건의 비밀을 이해하는 일에 계속 쓰지 않으면 그 방향으로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영원한 사물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섬기는 일이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14마음이 갈라져서 주로 세상 사물에 빠져버리고 하나님의 것에는 거의 관여치 않게 될 때에 영적인 힘은 특별히 자라지 않는다. 세상 일이 마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 능력을 그리로 쏟게 한다. 그리하여 이 방향으로 흥미와 애착을 더 갖게 하는 힘과 능력을 빨아들인다. 그러므로 하나님 쪽으로 가야 할 것은 적어지고 만다. 기도를 통하여 마음을 쓰지 않으면 영혼이 잘될 수가 없다. 가정 기도나 공중 기도로는 불충분하다. 은밀한 기도가 매우 중요하다. 홀로 있을 때에 영혼을 하나님의 감찰하시는 눈길 앞에 있는 그대로 펴놓이고 모든 동기는 점검된다. 은밀한 기도! 얼마나 귀한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혼! 은밀한 기도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만 들리게 해야 한다. 그러한 탄원의 소리를 호기심 많은 사람이 들어서는 안 된다. 은밀한 기도를 통하여 영혼은 주위의 영향과 흥분으로부터 자유롭다. 고요히, 그리고 열렬하게 그 기도는 하나님께 나아갈 것이다. 은밀한 기도는 큰소리를 냄으로 자주 상하게 되고 달콤한 맛을 잃는다. 하나님께 대한 조용하고 침착한 믿음과 신뢰 대신에, 영혼이 낮고 겸손한 음조를 내는 대신에, 목청을 돋구며, 흥분을 장려하게 되면 은밀한 기도는 부드럽게 하는 거룩한 감화력을 잃는다. 감정의 폭풍우와, 억수 같은 말은 은밀하고 참되며 감동적인 기도 시간을 통해 영혼에게 속삭이시는 잔잔하고 작은 음성을 알아듣지 못하게 한다. 은밀한 기도를 제대로 하면 참 좋은 열매를 많이 얻는다. 그러나 가족 전체나 이웃에게 들리도록 하는 기도는 은밀한 기도가 아니다. 은밀한 기도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여서는 거룩한 힘을 얻을 수가 없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그분께로부터 나오는 감화력은 달콤하며 지속적인 것이다. 그분의 귀는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도를 듣기 위해 열려져 있다. 은은하고 단순한 믿음으로 영혼은 하나님과 교통하며 사단의 투쟁을 견디기 위해서 영혼을 강인하게 하며 견고케 하기 위해 거룩한 빛을 모아 들인다. 하나님은 우리의 강한 성채이시다.

15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새벽을 밝히시러 오는 분이 홀연히 오셔서 우리의 자는 것을 보시지 않게 하려고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고대하고 있다. 어느 때를 이야기하고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하늘 구름 가운데 나타나서 잠자는 사람을 발견하시는 때가 아니다. 하늘 성소의 지성소의 봉사를 마치고 돌아오실 때, 즉 그분께서 제사장의 예복을 벗으시고 복음의 옷으로 갈아 입으신 후에 다음과 같은 명령을 말하실 때를 말씀하는 것이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16예수께서 인간을 위해 탄원하기를 그치실 때에 만민의 운명은 영원히 결정된다. 이 때는 그분의 종들과 회계하는 시간이다. 정결과 성결의 준비를 게을리한 사람들에게 태양은 암담함과 흑암 속으로 기울고 다시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준비하여 기다리는 사람들은 주님을 환영하게 될 것이다. 은혜의 기간이 끝난다.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중보가 그친다. 이 때는 만민에게 홀연히 임한다. 진리를 순종함으로 영혼을 성결케 하는 일에 게을리한 사람들은 잠자는 것으로 밝혀질 것이다. 그들은 기다리고 깨어 있는 데 지쳤다. 그리하여 그들은 주인이 오는 것에 대해 무관심해졌다. 그들은 그분의 출현을 갈망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지속적으로 끈기 있는 경성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의 기대는 어그러졌으며, 다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깨어날 시간이 충분히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들은 세상 보물을 얻는 기회를 결코 잃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세상에서 모든 것을 얻는 것이 안전하였다. 이 목표를 따르다 보니 그들은 주인의 돌아옴에 대해 걱정도 안하고 흥미도 잃게 되었다. 그들은 무관심하고 부주의하게 되었다. 주인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이 세상적 이익 속에 파묻힌 동안 하늘 성소에서는 일이 끝났고, 그들은 전혀 예비하지 못한 자들이 되었다.

17그러한 자들이 하늘 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사업이 곧 끝날 것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다르게 행동하였으며, 얼마나 열렬히 깨어 준비하였겠는가!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내다보시고 시효 적절한 경고 속에 깨어 있으라고 명령하셨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오심이 갑작스러움을 분명히 밝히셨다. 그분께서는 시간을 말씀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한 순간이라도 준비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나태한 마음으로 그분이 올 시간을 내다보고 준비를 연기하지 않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너희가 때를 알지 못함이라.” 그러나 불확실성의 예언도, 마지막 때의 홀연히 임함도 우리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열렬히 기다리게 하지 못하고, 우리의 고대하는 주님을 향한 경각심을 자극하지 못하였다. 기다리고 깨어 있는 자가 아님이 판명될 때에 그들은 그들의 신실하지 못함에 대해 결국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될 것이다. 주님이 오시면 그들은 그분을 즉시 맞이하기 위해 준비되어 있는 대신에 세상의 깊은 잠에 빠져서 결국 잃어버림을 당하게 될 것이다.

18조금 전에 언급한 무리와 대조를 이루는 무리가 내 앞에 제시되었다. 그들은 깨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하늘을 향했고 주님의 말씀이 그들의 입에 있었다.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주께서는 아침이 완전히 밝아오기 전에 지체할 것을 암시하신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이 피곤해지거나 열렬한 각성을 늦추게 하지 않으시는데 왜냐하면 아침은 그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곧 밝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자들은 하늘을 바라보는 자로 내 앞에 제시되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되풀이함으로 서로를 격려하였다. “일경과 이경이 지났다. 지금은 삼경에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깨어 있다. 조금만 더 깨어 있으면 된다.” 나는 어떤 이들이 피곤하게 된 것을 보았다. 그들의 눈이 아래로 향하게 되었다. 그들은 세상의 사물에 집착하게 되고 깨어 있는 일에 불충성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일경에 우리 주님을 기다렸으나 우리는 실망하였다. 우리는 이경에는 그분이 확실히 오실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그 시간이 지나도 그분은 오시지 않았다. 우리는 또 실망을 당할 것이다. 우리는 너무 세심할 필요가 없다. 그분께서 다음 시간에도 오시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삼경에 이르렀다. 지금이야말로 세상에서 재물을 모을 때이다. 그래야 궁핍하지 않을 것이 아닌가.” 많은 이들이 이생의 염려에 의해서 멍해지고 재물에 의해 기만을 당하여 깨어 기다리는 위치에서 떠나 졸고 있다.

19지쳤지만 신실하게 깨어 기다리는 자들을 주시하기 위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천사들이 내게 보였다. 그들도 너무 시련을 받지 않도록 하며, 그들의 형제들이 깨어 기다리는 일에서 이탈하여서 세상의 염려로 취하고 세상의 번영에 의해 눈멀게 됨으로 인해 이중으로 심하게 된 고생과 난관에 의해 좌절하지 않도록 보살피고 있다. 이 하늘 천사들은 한때 깨어 기다렸던 사람들이 그들의 나태와 불신실로 인해 깨어 기다리는 일을 고수하려고 끈질기게 노력하고 열렬히 애쓰는 사람들의 시련과 부담을 크게 늘였다는 점에 대해 몹시 섭섭해한다.

20나는 세상의 근심에 씌여 있는 애착과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세상의 재물을 늘여 가면서 우리는 구주께서 명령하신 깨어 기다리는 위치를 지키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보았다. 천사는 말하였다. “그들은 세상하나만 얻을 수 있다. 하늘 보화를 얻으려는 그들은 세상의 것을 희생해야 한다. 그들은 두 세계를 다 얻을 수 없다.” 나는 사단의 속이는 덫을 빠져나오기 위해서 깨어 기다리는 일에 신실한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 그는 깨어 기다려야 할 사람들을 세상을 향해 한 발 전진하도록 유도하라. 그들은 앞으로 전진할 의향은 없지만 그 한 발을 뗀 만큼 예수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 발을 떼기가 쉬워진다. 그리하여 한발 한발 세상을 향해 가게 된다. 결국은 그들과 세상의 차이는 신앙 고백 즉 명목만 남게 된다. 그들은 그들의 거룩하며 고유한 성격을 잃어버리고, 결국에는 그들과 그들 주위에 있는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차이점이라는 것은 그들이 신앙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점밖에 없을 것이다.

21과거에 삼경 사경이 여러 번 지나갔다. 그렇다고 해서 경성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아, 아니다! 끊임없는 경성이 더 많이 필요된다. 왜냐하면 지금은 일경이 지나기 전보다 훨씬 시간이 적게 남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처음보다 기다리는 기간이 틀림없이 줄어들었다. 만일 그 때에 우리가 물러서지 않는 태도로 깨어 있었다면 이경에는 두 배로 경성함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경이 지나갔기 때문에 우리는 삼경에 이르렀다. 지금 우리가 경성함을 조금 늦춘다는 구실은 있을 수 없다. 삼경은 삼중의 열성을 요구한다. 못 참는 것은 여태까지의 우리의 모든 열렬하고 끈질긴 경성을 무효화시키는 것이다. 어두움의 긴 밤은 괴롭히는 것이지만, 자비 때문에 아침이 연기되었다. 왜냐하면 주인이 오신다면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그분의 뜻 때문에 이토록 오래 지체되는 것이다. 그러나 신실한 자들에게 오는 아침과, 불신실한 자들에게 다가오는 밤은 거의 다 이르렀다. 깨어 기다림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고유한 특성 곧 세상과 분리된 것을 나타내야 한다. 우리가 깨어 있는 것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서 참으로 순례자며 나그네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차이는 너무 명백하기 때문에 잘못 알아볼 도리가 없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보화를 얻기 위해 열성을 내고 야망을 품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을 본받지 않고 그들의 깨어 기다리는 열렬한 모습으로 그들이 변화를 받은 사실을 보여 준다. 그들의 집은 이 세상에 있지 않고, 그들은 더 나은 나라 곧 천국을 찾는 자임을 보여 준다.

22나의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이 말의 의미를 온전히 간파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지 않기를 바란다. 갈릴리 사람들이 가능하다면 승천하시는 구주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단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때에 구주의 떠나심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라고 보내심을 입은 흰옷을 입은 두 천사가 그들 곁에 서서 물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23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하늘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을 고대하기를 바라신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잡다한 일에 쏠리지만 우리의 관심은 하늘에 있어야 한다. 우리의 믿음은 하늘 보화의 영광스런 신비를 향해 계속 치달아야 하고 하늘 성소로부터 나오는 귀하고 거룩한 빛이 마치 예수님의 얼굴에 비추이듯 우리의 마음에서도 빛나도록 해야 한다. 기롱하는 자들은 깨어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너희들은 실망을 당하지 않았느냐. 자, 이제 우리와 같이 살자. 그러면 세상적으로 번영할 수 있다. 이익을 얻고, 돈을 모으고 세상에서 이름을 날리자.” 기다리는 사람들은 위를 쳐다보면서 대답한다. “우리는 깨어 기다리고 있다.” 세상의 쾌락과 세상의 명예와 재리의 유혹에서부터 돌이켜 그들은 그 위치에 있음을 보여 준다. 그들은 바라봄으로 강해진다. 그들은 게으름과 이기심과 안락을 사랑하는 정신을 극복한다. 고난의 불이 당겨질 때 기다리는 시간은 더 길게 느껴진다. 때때로 그들은 슬퍼하고, 그리하여 믿음은 흔들린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정신을 집중한다. 공포와 의심을 극복한다. 그들은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대적들에게 말한다. “나는 깨어 기다리노라. 나는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노라. 나는 환난과 고난과 곤핍 중에서라도 기뻐하리라.”

24주님의 소원은 우리가 깨어 있어 그분이 오셔서 두드릴 때에 즉시로 문을 열어드리는 것이다. 깨어 기다린 종들에게 축복이 선언된다.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이 마지막때에 우리 가운데 누가 주님께로부터 특별한 영예를 얻겠는가? 깨어있으라. 깨어라. 깨어라. 거의 모두가 깨어 기다리기를 멈추었다. 우리는 그분이 오실 때 곧 열어줄 준비가 되지 않았다. 세상에 대한 사랑이 우리의 생각을 너무 꽉 잡아서 우리는 눈을 위로 향하지 못하고 땅으로 향하였다. 우리는 열성과 진지함으로 다른 일들에 종사하느라 분주하다. 하나님은 망각되었다. 그리고 하늘 보화는 소중히 취급되지 않는다. 우리는 깨어 기다리지 않는다. 세상 애착과 재리의 유혹이 우리의 믿음을 갉아 먹었다. 우리는 구주의 재림을 고대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다. 우리는 불안하며, 하나님께 대한 굳센 신뢰가 너무 부족하다. 많은 사람들은 곤핍을 당할까 겁이 나서 걱정하며, 온갖 머리를 짜내어 계획하고 일한다. 그들은 기도하거나 예배 시간에 참여하거나 할 시간이 없다. 너무 자신을 돌보는 나머지 그들은 하나님께 그들을 돌보실 기회를 전혀 드리지 않는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실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께 전혀 기회를 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서 너무 일을 많이 하며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일은 너무 적게 한다.

25주님께서 오실 때에 자고 있는 것을 보시지 않도록, 깨어 기다리라는 명령을 부여받은 백성들은 세상 애착에 무섭게 빠져 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26나는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하는 사람들이 깨어 기다리지 않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재물을 늘여 가며, 세상에 보물을 쌓고 있다. 그들은 세상 것에는 부해지지만 하나님께는 부요치 않다. 그들은 시간이 촉박함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것과 그리스도가 문앞에 당도한 것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큰 믿음을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영혼을 속이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참으로 마음 속에 가진 믿음에 따라서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동이 그들의 믿음의 성격을 나타내고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오심이 이 세대 안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증거한다. 그들의 행위는 그들의 믿음에 따를 뿐이다. 그들은 세상에 남아 있을 준비만 한다. 그들은 가옥에 가옥을, 전토에 전토를 더하며, 그들은 이 세상의 시민이다.

27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가련한 나사로의 상태가 오히려 이 증언하는 사람들의 상태보다 낫다. 그들이 참된 믿음을 가졌다면, 이 땅에서 보화를 쌓는 대신에 그들은 팔아 치울 것이며 세상의 걸리는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되며, 그들의 보화를 하늘로 옮길 것이다. 그러면 그들의 관심과 마음은 그 곳에 있게 될 것인데,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은 최상의 보물이 있는 곳에 가 있기 때문이다. 진리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이 세상에 있음을 은연 중에 나타내고 있다. 이것 때문에 그들은 걱정과 근심과 수고에 빠져 있다. 재산을 유지하고 늘여 가는 것이 그들의 필생의 연구 과제이다. 그들은 하늘로 너무 적게 전이되었으며, 하늘 보물에는 거의 투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의 마음은 더 나은 본향을 향해 별로 끌리지 않았다. 그들은 이 지상의 사업에 엄청난 투자를 감행하였다. 그리고 이 투자는 자석과 같이 하늘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부터 땅의 썩어 없어질 것으로 그들의 마음을 끌어내린다.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8많은 사람들은 철끈으로 묶인 것처럼 이기심에 둘려 있다. 그것은 “나의 농장”, “나의 물건”, “나의 사업”, “나의 상품”이다. 어려운 사람들의 부탁도 무시된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사모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자기밖에 모른다. 고상하고, 거룩한 것과 그들은 분리되었다. 세상 애착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너무 빠져서 그들은 눈이 멀게 되었다. 그들은 세상에 의해 부패하였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열매는 그들의 말처럼 사랑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들은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한다. 시들 것이라는 하나님의 저주가 그들 위에 임한다. 그들의 가는 길 사방에서 진리의 빛은 비취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가족을 구원하는 일을 훌륭하게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여 주신 자비에 감사하여 그분께 바치는 헌물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짐승처럼 배은 망덕하다. 인간을 위한 희생은 무한하며, 가장 뛰어난 지성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데, 이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이루어진 하늘의 혜택에 참여한 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너무 이기적이어서 하나님을 위해 아무런 희생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은 세상, 세상, 세상에 있다. 시편 49편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엄청난 희생을 모두가 마음에 간직한다면, 아니 어느 정도라도 깨닫는다면 그들은 두려움과 이 고도의 이기심을 가진 것에 대해 책망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네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이기심과 세상 애착 때문에 하나님은 망각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메마름을 느끼고 부르짖는다. “나는 쇠잔하였고 쇠잔하였도다.” 주님께서는 백성에게 스스로를 입증하고 그분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시험할 수단들을 내어 주셨다. 어떤 이들은 세상의 재물을 줄이고 희생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기보다는 하늘 보화를 포기하고 그분을 떠나가시게 하였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희생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세상 애착이 그들의 귀를 막아 버렸고, 그들은 듣지 못하게 되었다.

29나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한다는 사람 중에 누가 자신의 풍요함을 희생해 가며 하나님께 헌물을 드리는 자원하는 심령을 가지고 있는지 찾아보았다. 나는 가난한 과부와 같이 궁핍한 중에 동전을 바치는 겸손하고 가난한 이들을 몇몇 볼 수 있었다. 그런 모든 예물은 하나님께 귀한 보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돈을 모으고 재산을 끌어모으는 사람들은 너무 뒤쳐져 있다. 그들은 그들의 능력에 비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챙기며,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궁핍하게 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선뜻 신뢰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한 백성으로서 병약하며 너무 많은 이들이 무덤으로 들어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 가운데 탐욕자들이 있다. 세상에 애착을 두는 사람,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사람이 우리 가운데 있다.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없는 사람,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가난한 사람들이 각박하고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굳은 얼굴과 강퍅한 마음으로, 고생하여 얻는 적은 액수를 아까워하며 노동자들에게 주었다. 바로 그렇게 그들은 그들의 주님을 대접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분의 종들이라고 말한다. 바로 이런 인색한 정신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창고에 바친다. 비유에 나온 사람은 그의 재물을 쌓아 둘 곳이 없었다. 주님께서는 그의 무익한 생애를 단축하셨다. 주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취급하실 것이다. 이 부패한 시대에 세속화되고 이기적으로 되지 않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우리에게 모든 자비를 베푸신 이에게 배은 망덕하는 일이 얼마나 쉬운가. 부지런히 영혼을 보호하는 일에 경성과 많은 기도가 요구된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제 17 호

교회증언

그리스도의 고난

30구원의 가치를 온전히 깨닫기 위해서는 그것의 대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제한된 생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중보의 위대한 사업을 과소 평가한다. 인간의 구원이라는 영광스런 계획은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다. 이 거룩한 계획 속에 타락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놀랍게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을 선물로 내어 주신 행위 속에 나타난 사랑은 거룩한 천사들도 감탄한 것이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구주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분의 본체의 형상이시다. 그분은 거룩한 위엄을 지녔고 완전하고 빼어난 분이시다. 그분은 하나님과 동등하셨다.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심이라.”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31그리스도께서는 죄인 대신 죽기를 동의하셨으며, 사람은 순종의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의 율법의 형벌을 벗어나게 되었다. 그분의 죽음은 율법을 무효화 시키지 않았으며, 율법을 파괴하지도 않았고, 그 거룩한 요구를 약하게 하지도 않았으며, 그 신성한 가치를 손상시키지도 않았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인을 벌하시는 하나님의 율법의 정당성을 선포하였다. 그런 맥락에서 그분은 타락한 인간을 그 저주에서 구원하시려고 그 자신이 율법의 형벌을 당할 것에 동의하셨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하나님의 법의 불변성을 나타낸다. 그분의 죽음은 율법을 중하게 하며 귀하게 하며, 율법은 불변하는 것이라고 인류에게 증거한다. 그분의 입술에서 나온 말씀은 이러하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율법의 요구를 정당화시켰다.

32그리스도 안에서 인간과 하나님은 연합된다. 그분의 사명은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케 하고 유한과 무한을 연합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타락한 인간이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끔 높여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인간이 되시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시련과 슬픔과, 또 인간이 당하게 되는 모든 시험을 이해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천사들은 특정한 시련 속에서 인간이 당하는 바를 공감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취하셔서 내려오시고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신 것은 시험받는 모든 자를 어떻게 구할 것인지를 알기 위함이었다.

33그분이 인간이셨을 때에 그분은 아버지의 힘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분께서는 기도 장소를 찾으셨다. 그분은 산 속에서 홀로 아버지와 교통하는 것을 사랑하셨다. 이런 생활을 통해 그분의 거룩한 영혼은 그날의 의무와 시련을 위해 힘을 얻었다. 우리의 구주는 우리의 궁핍과 연약함에 하나가 되셨다. 그리하여 그분은 의무와 시련을 위해 무장된 모습으로 힘차고 신선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당신의 아버지께로부터 새 힘을 구하는 자로서 간구자가 되셨고, 밤에는 탄원자가 되셨다. 그분은 매사에 있어서 우리의 모본이시다. 그분은 우리와 같이 연약하신 형제이시다. 그러나 같은 성정을 갖지는 않으셨다. 흠없는 분으로서 그분의 본성은 악과 상관이 없었다. 그분은 죄악 세상에서 영혼의 투쟁과 고통을 견뎌 내셨다. 그가 인간이셨으므로 기도가 필요하였고, 그 기도는 특권이 되었다.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하늘의 희락을 버리고 냉랭하고 배은 망덕한 세상에서 살 것을 택하신 그분께, 아버지께서 나누어 주시려고 예비하신 그 강하고 거룩한 모든 뒷받침과 위안을 그분은 기도로 요구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아버지와 교통하는 가운데 위안과 기쁨을 발견하셨다. 여기서 그분은 그의 마음을 쪼개는 슬픔을 덜어 놓으실 수 있었다. 그분은 슬픔의 사람이셨고, 비애를 맛보셨다.

34낮 동안에는 인간을 멸망에서 구원하시려고 타인에게 열심히 선을 행하셨다. 병자를 고치고, 애통하는 자를 위로하고, 실망한 자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셨다. 죽은 자를 살리셨다. 낮의 일이 끝나면 밤마다 도시의 소란을 피하여 나아갔고, 한적한 숲속에서 엎드려 아버지께 간구하셨다. 때때로 엎드린 모습 위에 환한 달빛이 비취었다. 그리고 구름과 흑암이 보든 빛을 가려 버렸다. 간구하는 동안에 밤의 이슬과 서리가 그의 머리와 수염에 붙었다. 그분은 자주 철야하며 간구하셨다. 그분은 우리의 모본이시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기억할 수 있다면, 그분을 본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다.

35만일 인간의 구주께서 신적 능력을 소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필요를 느꼈다면, 연약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우리들은 얼마나 더 열렬하고 끊임없는 기도의 필요를 절실히 느껴야 할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가장 심한 시험에 봉착하셨을 때에 그분은 금식하셨다. 그분은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고 열렬한 기도와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굴복함으로 승리자가 되셨다. 이 마지막 시대에 진리를 믿노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어떤 다른 부류의 사람들보다, 기도에 있어서 우리의 위대하신 모본을 따라야 한다.

36“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우리의 식탁에는 건강 식품도 아니며 필요치도 않는 값비싼 음식이 자주 놓인다. 이는 우리가 자기 부정과, 질병 없는 몸과, 건전한 마음보다도 이런 것들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로부터 열렬히 능력을 구하셨다.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께서는 이것을 가장 잘 차려진 식탁에 앉는 것보다 더 낫게 여기셨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악의 세력과 싸우고, 우리에게 할당된 일을 하는 힘을 얻기 위하여 기도가 필수적임을 보여 주는 증거를 주셨다. 우리의 힘은 연약할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은 강하며, 그것을 얻는 모든 사람은 넉넉히 이길 것이다.

37하나님의 아들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엎드려 기도하실 때에, 그분의 영의 고뇌는 땀구멍을 통해 땀이 핏방울처럼 빠져 나가도록 밀어내었다. 여기에서 그분은 엄청난 흑암의 두려움에 둘려 있었다. 세상의 죄가 그분의 위에 있었다. 그분은 아버지의 율법의 범죄자로서 인간 대신 고통을 당하고 계셨다. 여기가 바로 시험의 현장이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빛이 그분의 시야에서 물러가고 그분은 흑암의 권세 속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영혼의 고뇌 속에 그분은 찬 땅에 엎드리셨다. 그분은 아버지의 엄한 시선을 깨달으셨다. 그분은 죄인의 입술에 있는 고통의 잔을 취하여 마시고 그 대신 축복의 잔을 주시려고 마음을 정하셨다. 인간 위에 떨어지기로 되어 있던 진노가 그리스도 위에 내리고 있었다. 그 신비의 잔이 그의 손에서 떨린 것은 바로 이 곳이었다.

38예수께서는 자주 명상과 기도를 위해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로 가셨다. 그들은 모두 이 거룩하고 깊숙한 장소를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유다도 폭도들을 어디로 인도해야 예수를 그들의 손에 넘겨 줄 수 있을지를 알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토록 슬픔에 가득 차서 그 곳을 찾은 적이 없었다. 하나님의 아들을 움츠리게 하고 그의 제자들 앞에서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떨린 음성으로 나오게 된 것은 신체적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39그분은 제자들을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거리에 두시고, 조금 더 나아가사 땅에 얼굴을 대시고 기도하셨다. 그의 영혼은 고뇌하였다. 그분은 간구하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상실된 세상의 죄가 그분 위에 있었고, 그것은 그분을 압도하였다. 그분의 마음을 그토록 날카로운 고뇌로 찢고 이마에서 핏방울 같은 땀이 흘러 창백한 뺨을 타고 흘러 땅에 떨어져서 대지에 스민 것은 죄의 결과에 대한 아버지의 엄한 시선을 의식하셨기 때문이었다.

40엎드렸던 곳에서 일어나사 제자들에게 오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다.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가장 중요한 시간에 예수께서 특별히 깨어 있으라는 부탁을 한 그 시간에 제자들은 자고 있었다. 그분은 심한 투쟁과 무서운 시험이 앞에 놓인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힘이 될까 하여 그들을 데리고 가셨던 것이다. 그 밤의 사건을 그들이 목도하고, 그들이 얻은 교훈이 그들의 기억 가운데서 생생하게 남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데리고 가셨다. 그들의 믿음이 실패하지 않고, 그들 앞에 있는 시험을 위해 강하게 되기 위해서 이 일은 필요한 것이었다.

41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깨어 있지 않고 그 대신에 슬픔에 빠져 잠들어 있었다. 그 열렬한 베드로, 몇 시간 전만 해도 주님을 위해서 죽기까지라도 고통을 당하겠다고 한 그도 자고 있었다. 가장 큰 위기의 시간에,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의 동정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가 필요한 때에 그들은 잠들어 있었다. 그들은 잠을 자므로 많은 것을 잃었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그들이 곧 닥칠 심한 믿음의 시험을 위해 그들을 강인하게 하려고 계획하셨다. 그들이 그 슬픈 시간에 사랑하는 구주와 함께 기도하며 깨어 있었더라면 베드로는 시련의 때에 구주를 부인하는 자신의 연약함 속에 그대로 머물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42하나님의 아들께서는 두번째 나아가사 기도하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다시 제자들에게 오시니 또 자고 있었다. 그들의 눈이 무거웠다. 이 잠자는 제자들은 하나님의 재림이 가까운 때에 잠자는 교회들을 나타낸다. 구름과 칠흑같은 흑암이 둘려 있는 때에 잠자는 것은 가장 위험한 것이다.

43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경고를 주셨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하나님의 교회는 아무리 위험하고, 그 기간이 길든지 짧든지 야경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슬프다고 해도 경계를 소홀히 할 구실이 되지는 못한다. 환난이 온다고 부주의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두배로 경성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모본을 통하여 궁핍과 고민과 위험의 때에 교회가 그 능력의 근원으로 나아가도록 하셨다. 경성하는 자세는 참으로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꼴 짓는 것이다. 이 모습으로 기다리는 자들은 세상과 구별됨을 나타내고 그들이 세상에서 순례자와 나그네임을 보여 준다.

44구주께서는 슬픈 마음으로 잠든 제자들을 등지고 세번째 같은 기도를 하셨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웠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그들의 거룩한 주님께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뇌를 겪고 있는 동안 제자들은 졸린다고 눈을 감고, 잠에 사로잡히다니 얼마나 매정한 일인가! 그들이 깨어 있었다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볼지라도 그들의 믿음을 상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중요한 밤 시간은 고상한 정신적 투쟁과 기도로 보내는 시간이어야 했다. 그런 시간은 하나님의 아들의 말할 수 없는 고뇌를 증거할 힘을 주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들이 십자가 위에서 그분이 고통당하는 것을 볼 때에 그분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겪어야 했던 그 힘겨운 고뇌의 본질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깨닫도록 준비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서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관해서 말씀하신 것을 더 잘 기억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 무섭고 고통스럽고 어두운 시간 속에서 희망의 빛줄기가 어두움을 환히 밝히고 그들의 믿음을 지탱하였을 것이다.

45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에 대하여 미리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분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분의 고난의 장면은 그 제자들에게는 불같은 시련이었으며, 경성과 기도가 필요한 곳이었다. 그들이 흑암의 세력이 승리하는 것을 그들이 경험하게 될 때 그들의 믿음은 보이지 아니하는 힘에 의해 지탱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 인간의 죄를 지신 결과로 아버지와 분리됨을 깨달으실때에 겪었던 말할 수 없는 고뇌에 관해서 너무 모른다. 그분께서는 타락한 인류를 위해서 죄가 되셨다. 아버지의 사랑이 떠나갔다는 생각은 그분을 내리 눌러서 그 고뇌에 찬 영혼은 다음과 같은 비탄의 말을 내었다.”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고 나서는 아버지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46하나님의 아들은 기진맥진하여 죽게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한 사자를 보내시어 고통을 겪는 거룩한 자에게 힘을 돋구어 주며, 피로 얼룩진 길을 가는데 부축하도록 하셨다. 고요한 슬픔 가운데 아버지께서 그 품속의 사랑하는 아들로부터 빛과 사랑과 영광을 거두어 가시는 모습을 천군들이 지켜보며 놀랜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비애를 금치 못한 것을 보았더라면 죄가 얼마나 그분께 거슬리는 것임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의의 검이 그분의 사랑받는 아들을 대적하여 깨었다. 그분은 입맞춤으로 원수의 손에 팔려갔고, 세상의 법정으로 바삐 끌려갔으며, 거기서 죄 많은 인간에 의하여 조롱받고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다.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스런 아들께서는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찔림을 받고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상하셨다.” 그분은 모욕과 조롱과 수치를 당하셔서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다.”

47여기 나타난 사랑을 그 누가 이해할 수 있으랴! 천군은 놀람과 슬픔 속에서 하늘의 왕이셨고, 과거에 영광의 면류관을 쓰셨으나 지금은 가시관을 쓰시고 사단의 분노에 의해 거의 미친 정도로 분노한 폭도들의 희생이 되어 피를 흘리는 분을 바라보았다. 인내하시며 고통을 견디시는 구주를 보라! 그분의 머리 위에 가시관이 놓여 있다. 그분의 피는 끊어진 핏줄에서부터 흘러나온다. 이 모든 것이 죄의 결과가 아닌가! 구속하시는 영원한 사랑이 없었더라면 그리스도께서 어찌 존귀와 위엄을 버리시고 세상에 오셔서, 바로 그분이 구원하시려 오신 그 사람들에 의해 소홀히 여김을 받으시고, 멸시 받으시고, 거절을 당하시고 급기야는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당하게 되었을까! 그 사랑은 영원히 신비로 남게 될 것이다.

48하늘아 경탄하라, 땅아 감탄하라. 보라 압제자와 압제당하는 자를! 큰 무리가 세상의 구주를 둘러싼다. 군중과 회중 속에 온갖 추잡한 욕설이 들린다. 악한들은 그분의 비천한 출생과 겸손한 생애를 말거리로 삼았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분의 주장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 의해 조롱을 당하고, 입에서 입으로 추잡하고 모욕적인 조롱의 언사들이 건너갔다. 사단은 그의 종들의 마음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이 일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그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로부터 시작해서 그들에게 종교적 열정을 불어넣었다. 그들은 가장 악하고 강퍅한 악한들을 움직이는 바로 그 사단의 영에 의해 움직였다. 위선적인 제사장들과 장로들로부터 가장 비열한 자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악한 일에 한가지로 잘 조화되었다. 하나님의 귀한 아들 그리스도는 끌려나가고 그 어깨 위에 십자가가 놓였다. 발자국마다 그 상처로부터 흘러내린 핏자국이 남았다. 독한 원수들과 무정한 관중에 둘러싸여 그분께서는 십자가의 형장으로 이끌려 가셨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49슬픔에 찬 그분의 제자들은 살인자들의 무리 뒤에 멀찍이 따라왔다.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리셨다. 그들의 사랑하는 주님이 범죄자 중 하나로 고난을 당하는 모습은 그들의 마음을 고뇌로 찢어지게 하셨다. 십자가 가까이에는 맹목적이고 완고하고 믿음없는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고함지르고. 조롱하고, 희롱하고 있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50이 모든 말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한마디 대꾸도 않으셨다. 그 손에 못이 박히고 고뇌의 땀방울이 스며 나갈 때에 창백하고 떨리는 입술로 무죄한 주님은 살인자들을 위한 사랑과 용서의 기도를 하셨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희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온 하늘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장면을 주시하였다. 상실된 세상의 영광스런 구속자가 아버지의 율법을 범한 형벌을 당하고 있었다. 그분은 당신의 피로 그분의 백성을 거의 속량하시게 되었다. 그분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요구를 정당히 치르고 계셨다. 이것을 통해서 죄와 사단의 운명을 끝내며, 그의 군대가 사라지게 할 것이었다.

51죽어가는 구주가 겪었던 것과 같은 고통과 슬픔을 당했던 사람이 어디 있었던가! 아버지의 불쾌함을 느꼈기 때문에 그분의 잔은 더 썼다.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그렇게 빨리 끝나게 한 것은 육체적 고통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의 죄의 무게였고, 아버지의 진노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아버지의 영광과 지탱하시는 임재가 떠났다. 어두움으로 마음이 무거워져서 그의 창백한, 떨리는 입술에서는 고뇌의 외침이 흘러나왔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52예수께서는 아버지와 연합하여 세상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고뇌와 고통당하는 중에 맹목적이고 속임을 당한 사람들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고뇌할 때에 그분을 조롱하였다. 그러나 생기 없는 천연계는 오히려 피흘리며 죽어가는 창조주와 함께 신음하였다. 땅은 흔들렸다. 태양은 그 광경을 보지 않으려고 빛을 내지 않았고 하늘은 구름으로 덮였다. 천사들은 더이상 차마 볼 수 없어서,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그리스도가 돌아가신다! 그분이 절망 가운데 계신다! 당신의 아버지의 인정하시는 미소는 사라졌다. 천사들은 그 무서운 시간의 어두움을 밝히는 것을 금지당했다. 그들은 단지 놀람 속에서 아버지의 율법을 범한 사람 대신 벌을 당하는 그들의 사랑하는 사령관, 하늘 임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53죽어가는 하나님의 아들에게 의심이 밀려왔다. 그분은 무덤 저편을 바라볼 수 없었다. 무덤을 뚫고 정복자로 나오는 것과 그분의 희생을 아버지께서 가납하시는 것에 대한 밝은 희망이 생기지 않았다. 세상의 죄는 가장 무섭게 하나님의 아들에게 느껴졌다. 그분이 놀라운 흑암속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버지께서 죄를 불쾌히 여기시며, 그 벌은 죽음이라는 사실이었다. 죄는 아버지께 매우 거스리는 것이므로 그분이 당신의 아들과 다시 화목하게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게 될 지경이었다. 아버지께서 그를 영원히 떠나셨다는 심한 시험이 십자가상에서 이런 외마디 소리를 지르게 하였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54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그들 위에 쏟아질 때 갖게 될 심정을 느끼셨다. 막막한 절망이 죽음의 장막처럼 그들의 죄 많은 영혼에 엄습해 올 때에 그들은 죄의 악함을 온전히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고통과 죽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은 그들을 위하여 이루어졌다. 그들이 기꺼이 그리고 반가이 구원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들이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도록 강요를 당하지는 않는다. 만일 그들이 하늘의 혜택을 거절하고 죄의 쾌락과 유혹을 택한다면, 그들 나름대로 선택권이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영멸의 삯을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영원히 분리될 것이다. 그들은 그분의 희생을 멸시하였다. 그들은 행복한 삶을 상실할 것이며 순간의 죄의 쾌락을 위해 영원한 영광을 희생하고 말 것이다.

55그리스도의 고뇌에 찬 숨 속에 믿음과 희망은 떨렸다. 이는 하나님께서 시인과 가납의 표로 그분의 사랑받는 아들에게 지금까지 주셨던 보증을 제거하셨기 때문이다. 세상의 구주는 그동안 그에게 힘을 주었던 증거 즉 아버지께서 그분의 일을 가납하셨고 그분의 사업을 기뻐하셨다는 증거들에 의지하였다. 그분의 죽음의 고뇌 속에서 그 귀한 생명을 버릴 때에 그분은 그가 지금까지 순종하기를 즐겨했던 분을 오직 믿음으로만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그분은 좌우를 물론하고 마음을 밝게 해주는 분명하고 환한 빛을 보지 못하셨다. 모든 것이 육중한 어둠 속에 싸여 있었다. 삼라 만상이 함께 겪는 두려운 암흑 속에서 구주께서는 그 신비한 잔을 다 비우셨다. 그분의 앞에 있을 승리에 대한 밝은 희망과 확신을 부정한 채 그분은 큰소리로 부르짖으셨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그분은 당신의 아버지의 품성과, 공의와 자비와. 그 위대한 사랑을 아셨고, 복종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손에 자신을 던졌다. 천연계의 동요 속에서 놀란 관중들은 갈바리의 사람이 죽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56천연계는 그 창조주의 고통 속에 참여하였다. 동요하는 대지, 깨어지는 바위들은 죽은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였다. 강한 지진이 있었다. 성소의 휘장이 둘로 찢어졌다. 관원들과 관중들은 해가 어두움속에 감추이고, 발밑에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깨어지는 소리를 듣자 공포에 사로잡혔다. 떠들고 조롱하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의탁할 때에 침묵 속에 돌아갔다. 놀란 무리는 어두움 속에서 도성으로 가기 위해 물러가며 길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들은 공포 속에서 길을 가며 가슴을 두드렸다. 그들은 겨우 들리게 서로 속삭였다. “우리가 무죄한 사람을 죽였도다. 만일 그가 주장하던 대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어찌할꼬?”

57예수께서는 성취하시고자 목적하신 바를 이루기 전에 목숨을 버리지 않으셨다. 그분은 마지막 숨 속에 “다 이루었다”고 소리지르셨다. 사단은 그 때 패배하였다. 그는 자기의 세상이 끝난 줄을 알았다. 천사들은 “다 이루었다”는 말씀에 기뻐하였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존한 구속의 위대한 경륜은 그렇게 이룩되었다. 아담의 자손들이 순종의 생애를 통하여 결국 하나님의 보좌에 이를 수 있게 된 것으로 인해 하늘에는 기쁨이 있었다. 오, 얼마나 위대한 사랑인가! 오,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를 위해 대신 죄값을 치르게 하시다니.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영광의 처소에서 그분과 함께 살게 되다니. 오, 인간이 무엇이길래, 인간의 구원을 위해 그토록 큰 대가를 치러야 하였던가!

58사람이, 하늘 왕께서 인간 대신 죽음으로 이루어진 큰 희생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만 있다면 구원의 경륜은 광대하게 될 것이며, 갈바리를 회상하므로 그리스도인의 마음 속에 부드럽고, 거룩하며, 쾌활한 감정을 일깨울 것이다. 그들의 마음과 입술에는 하나님과 어린 양에 대한 찬송이 늘 있을 것이다. 갈바리의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마음 속에는 교만과 자긍의 정신이 번창하지 못할 것이다. 인류의 구속의 위대한 가치와 하나님의 귀한 아들의 보혈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은 별로 가치가 없게 보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재물도 한 사람의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기에 넉넉치 않다. 십자가에 달려서 죄지은 영혼들을 위해 고통당하신 그리스도가 가졌던 사랑을 그 누구가 측량할 수 있을까? 이 사랑은 측량할 수 없고 무한하다.

59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그분은 인간의 구원을 성취하고 계셨다. 비록 그분이 흑암의 세력으로 더불어 가장 격심한 투쟁을 겪으셨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서 오히려 그분의 사랑은 더욱 강해졌다. 그분은 아버지의 임재가 가려지는 것을 겪어내셨고, 심지어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영혼의 비탄의 외침을 쏟아 놓기까지 하였다. 그분의 팔이 구원을 이루셨다. 인간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대가가 치러졌다. 최후의 투쟁 속에서 “다 이루었다”는 축복의 말씀이 나왔는데 그 소리는 온 천연계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60그리스도인이라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 일에 흥분하며, 그들의 관심은 새롭고 신나는 오락에 가 있는 반면 그들의 마음은 냉랭하고 하나님의 사업에는 꽁꽁 얼어 붙은 것처럼 보인다. 가련한 형식주의자여, 그대를 흥분시키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로 중요한 주제가 있다. 영원한 관심이 이 속에 있다. 이 주제에 대하여 잠잠하고, 열성이 없는 것은 죄다. 갈바리의 장면은 가장 깊은 감동을 요구한다. 이 주제에 대하여 열심을 보이는 것은 무방하다. 탁월하고, 무리한 그분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죄의 막중한 짐을 지고 고통스런 죽음을 왜 당하셔야 했는지는 우리의 사상과 상상력으로 도무지 다 이해할 수 없다. 그 놀라운 사랑의 길이와 넓이와 높이와 깊이는 도무지 측량할 수 없다. 우리의 마음은 구주의 무한한 사랑의 깊이를 명상하는 것으로 채워져야 하며, 영혼은 감동되어 마음이 녹고 애정은 세련되고 고상하게 되며 모든 품성은 완전히 변화되어야 한다. 사도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61우리의 구원이 엄청난 값에 이루어진 것을 고려할 때에 이 큰 구원을 등한히 하는 자들에게 임할 운명은 무엇일까!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공언하면서 구주의 요구에 겸손히 순종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겸손한 제자로서 십자가를 지고 구유에서부터 갈바리까지 따르지 않는 사람에 대한 형벌은 어떤 것일까!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

62어떤 이들은 중보에 대해서 좁은 견해를 갖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율법의 형벌 중에 적은 부분만을 위해 고통을 당하셨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사랑하는 아들에 의해 감지되었을 때에 고통의 시간 동안에, 그분이 아버지의 사랑과 가납의 증거를 얻었다고 가정한다. 그분 앞에 있던 무덤의 입구가 밝은 희망으로 빛나고 있었으며, 앞날의 영광의 변함없는 증거를 갖고 있었다고 가정한다. 여기 큰 실수가 있다. 그리스도의 가장 고통스런 고뇌는 당신의 아버지의 불쾌히 여기심을 느낀 것이었다. 이로 인한 그분의 영적 고뇌는 너무 심한 것이어서 인간이 그것을 깨닫기는 어렵다.

63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구주의 자기 비하와 겸손과 희생의 역사는 예수님의 순교자들의 역사보다도 더 깊은 흥미를 일깨우지도 못하며, 영혼을 감동시키고 삶에 영향을 더 끼치지도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고문에 의해 서서히 죽어 갔으며, 다른 이들은 십자가에서 죽었다. 이런 죽음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이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그분이 십자가에서 가장 잔인하게 돌아가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신체적 고통으로 말하면 그분을 위하여 똑같이 고통하였다.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의 고통은, 그분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준 사람들의 고통보다 더 무서운 것이었는가? 만일 그리스도의 고통이 신체적인 것에 국한되었다면 그분의 죽음은 다른 순교자들의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64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고뇌 속에서는 신체적 고통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세상의 죄가 그분 위에 있었다. 그분이 위반된 법의 형벌을 당할 때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함을 느끼셨다. 이것이 바로 그분의 영혼을 압도한 것이었다. 절망을 준 것은 아버지의 얼굴이 감취어진 것 즉 당신의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그분을 버리셨다는 느낌이었다. 순결하신 갈바리의 사람이 고통을 당하실 때에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 놓은 그 아픔을 온전히 그리고 뼈저리게 느낄 수 있으셨다. 그분은 흑암의 세력에 의해 압박을 당하셨다. 미래를 비출 한 가닥의 희망의 빛도 없었다. 그리고 그분은 사단의 능력과 투쟁하고 계셨는데, 사단은 그분이 자기의 손아귀에 들어 있으며,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보다 더 강하며,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아들을 버리셨으며, 그분도 역시 자기와 다를 바 없이 하나님의 은총을 벗어났다고 선포하였다. 그가 참으로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있었다면 왜 죽어야만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에서 건져내실 수 있었다.

65그리스도께서는 그 혹심한 고뇌 속에서도 고문하는 원수에게 조금도 굴하지 않으셨다. 악한 천사들의 군대가 하나님의 아들을 둘러쌌다. 그러나 거룩한 천사들은 그 진을 뚫고 비웃고 조롱하는 원수들과 싸우지 않도록 명령을 받았다. 하늘 천사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고뇌하는 영을 돕지 못하도록 금지당하였다. 바로 이 무서운 흑암의 시간에 아버지의 얼굴은 감취어지고, 악한 천사들의 군대가 그분을 휩싸고 있고, 세상의 죄가 그분 위에 있을 때에 그분의 입술로부터 이런 말이 터져 나왔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66순교자들의 죽음은 하나님의 아들이 겪은 고뇌와 비견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삶과 고난과 죽음에 대하여 더 넓고 더 깊은 이해를 가져야 한다. 속죄를 바로 이해할 때에 영혼 구원의 무한한 가치를 느낄 것이다. 영생의 일과 비교할 때에 다른 모든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사랑의 구주의 권고는 얼마나 무시되었는가! 세상에 마음을 바쳐버리니, 이기적 관심이 하나님의 아들을 향한 문을 닫아버렸다. 위선과 교만, 이기심과 욕심, 시기, 악의, 욕망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가득 차서 그리스도께서 차지할 공간은 없다.

67그분은 영원히 부하셨다.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사, 그분의 가난함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셨다. 그분은 빛과 영광으로 싸여 계셨으며, 그분의 명령을 수행하려고 대기하고 있는 하늘 천사들에 의해 둘려 계셨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의 본성을 입으시고 죄지어 죽을 인생들 가운데 사시려고 오셨다. 여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이 있다. 이것은 지식을 초월한다. 경건의 비밀은 크다. 우리의 영혼은 인간에 대한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의 주제에 의해 생기를 얻고, 고양되며, 매료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감사와 존귀와 영광과 권세가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라고 찬양하는 일에 모든 구원받은 무리와 함께 동참하기 위한 준비로써 그 신비한 사랑을 이 땅에서 어느 정도 명상하기를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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