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쟁투의 종막
제 42 장
거룩한 성이 내려옴
1그리스도께서는 일천년 끝에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신다. 그분은 구속받은 무리들과 수행하는 천사들과 함께 오신다. 놀라운 위엄으로 내려오실 때 그분께서는 죽은 악인들에게, 형벌을 받기 위하여 일어나라고 명령하신다. 그들은 바다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되어 일어난다. 첫째 부활 때 일어났던 자들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의인들은 죽지 않을 젊음과 아름다움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악인들은 사망과 질병의 흔적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2그 큰 무리에 속한 모든 사람의 눈은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주목하게 된다. 악인들은 목소리를 합하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고 부르짖는다. 그들이 이렇게 부르짖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서가 아니다. 진리의 힘이 본의 아니게 입술에서 그런 말이 나오게 한다. 그들은 무덤에 내려갈 때와 똑같이 그리스도께 대한 적의(適意)와 반역 정신을 가지고 일어난다. 그들은 과거의 생애에 있었던 오점을 제거할 수 있는 새로운 은혜의 시기를 얻는 것이 아니다. 그런 기회가 그들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할 것이다. 일생 동안의 생활은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지 못했다. 두 번째의 은혜의 시기가 그들에게 주어질지라도 그것은 첫 번째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요구를 기피하고 하나님께 반역을 일으키는 기회가 될 것이다.
3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 승천하신 곳이며, 천사들이 재림의 약속을 되풀이한 장소, 곧 감람산 위에 내려오신다.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하리라”, “그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 “,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슥 14:5, 4, 9)라. 화려 찬란한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그 성은 영접할 준비가 된 성결한 곳에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과 천사들과 함께 그 거룩한 성으로 들어가신다.
사단과 그의 부하들의 공격 준비
4이제 사단은 최상권을 위한 마지막 큰 싸움을 준비한다. 그의 세력을 빼앗기고 기만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 악의 왕은 비참해지고, 기가 꺾여 있었다. 그러나 악인들이 부활하여 그 수많은 무리들이 그의 편이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자 그의 희망은 되살아난다. 그는 대쟁투에 항복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한다. 그는 잃어버린 자들의 모든 군대를 그의 군기 아래 모으고 그들을 통하여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노력한다. 그 악인들은 사단의 포로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거절함으로써 반역의 두목의 지배를 받아왔다. 그들은 사단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의 명령에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사단은 그 초기의 간계(奸計)를 써서 자기 자신이 사단임을 부인한다. 그는 자기가 이 세계의 정당한 소유주인데 그의 상속권을 부당하게 잃어버렸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의 미혹당한 부하들에게 자신을 구주로 나타내고 자기의 능력으로 그들을 무덤에서 부활시켜 바야흐로 그들을 가장 잔인한 횡포에서 구해 내려 한다고 그들에게 보증해 준다.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게 되자 사단은 그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하여 기사를 행한다. 그는 약한 자들을 강하게 만들고 자기의 정신과 힘을 모든 자들에게 준다. 그는 그들을 지휘하여 성도들의 진을 공격하여 하나님의 성을 빼앗고자 계획한다. 악마같은 광희(狂喜)로 그는 사망에서 부활한 무수히 많은 무리를 가리키면서 자신을 그들의 지도자라고 주장하고 그가 그 성을 탈환하여 자기의 보좌와 나라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5그 큰 군중 가운데는 홍수 전에 존재했던 장수(長壽)한 족속들, 거대한 체격과 위대한 지능을 가지고서도 그 몸을 타락한 천사들의 지배에 맡겨, 그 모든 기능과 지능을 자신을 높이기 위하여 바친 자들이 있다. 그들은 놀라운 기능을 가지고 세상으로 하여금 그들의 천재적 재능을 우상시하게 하였으나, 그들의 잔인성과 사악한 발명이 세상을 더럽히고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피조물의 면전에서 쓸어 버리셨다. 거기에는 여러 나라를 정복한 왕과 장군들이 있고, 싸움터에서 결코 패배해 본 일이 없는 용사들이 있고, 접근해 올 때 여러 나라들이 전율할 수밖에 없었던 거만하고 야망적인 전사(戰士)들이 있다. 그들은 사망을 통하여서도 변화되지 않았다. 그들이 무덤에서 나올 때 그들의 생각은 죽을 때와 똑같은 정복욕에 의하여 행동한다.
6사단은 그의 부하들과 의논하고, 그다음에는 왕들과 정복자들과 강력한 사람들과 상의한다. 그들은 자기들 편에 속한 자들의 수효와 세력을 보고, 그들에 비하여 성 안에 있는 군대의 수가 적으므로 쉽게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새 예루살렘의 부와 영광을 빼앗기 위하여 계획을 세운다. 전원이 즉시 전투 준비를 개시한다. 숙련된 기술자들은 무기를 제작한다. 무훈이 혁혁한 군대의 지휘관들은 호전적인 무리들을 중대와 사단으로 나누어 배치한다.
7드디어 진군 명령이 내린다. 셀 수 없이 많은 대군이 행진을 시작한다. 그것은 일찍이 어떤 정복자도 소집한 일이 없는 대군, 이 지상에 전쟁이 있어 온 이래 각 시대의 모든 군대를 모두 합할지라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큰 군대이다. 가장 강한 전사인 사단이 그 군대를 진두 지휘하고, 악한 천사들이 그 마지막 전투에 힘을 합한다. 왕들과 전사들이 그를 좇고, 여러 군단으로 이루어진 큰 무리가 각 지휘관들의 명령 아래 그를 따른다. 그들은 군대식으로 질서 정연하게 우툴두툴한 지상을 행진하여 하나님의성으로 나아간다. 새 예루살렘의 문은 예수님의 명령으로 닫혀진다. 그러자 사단의 군대는 그 성을 둘러싸고 공격을 준비한다.
하나님의 아들의 대관식
8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원수들 앞에 다시 나타나신다. 그 성보다 훨씬 높은 곳, 찬란한 황금 기초 위에 높이 들린 보좌가 있다. 그 보좌에 하나님의 아들이 좌정하시고, 그분의 나라의 백성들이 그 주위를 둘러싼다. 그리스도의 권능과 위엄은 우리의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붓으로 묘사할 수 없다. 영원한 아버지의 영광이 그분의 아들을 둘러싼다. 하나님의 임재의 빛이 하나님의 성을 충만케 하고, 그 빛이 성문 밖으로 흘러나와 온 세상을 그 빛으로 넘치게 한다.
9보좌 가장 가까이에는 한 때 사단의 사업에 열렬했으나 지금은 마치 불에서 꺼낸 타다 남은 나무와 같은 처지에서 깊고 열렬한 헌신의 마음으로 구주를 따르는 자들이 있다. 그 다음에는 거짓과 불신 가운데서 그리스도인 품성을 완성한 사람들과, 그리스도교계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폐기되었다고 주장할 때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한 사람들과, 각 시대를 통하여 믿음을 위하여 순교당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외에도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계 7:9) 있다. 그들은 전쟁을 마치고 승리를 얻었다. 그들은 달려갈 길을 달려가고 상급을 받았다. 그들의 손에 있는 종려가지는 승리를 표상하고, 흰옷은 지금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흠없는 의를 상징한다.
10구속받은 자들이 일제히 다음과 같은 찬양의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는 하늘 공간에 메아리치고 또 메아리친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계 7:10). 천사들과 스랍들도 소리를 합하여 찬송한다. 구속받은 자들은 사단의 세력과 악의를 보아왔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권세 외에는 어떤 능력도 그들을 승리자가 되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을 과거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깨닫는다. 그 빛나는 무리들 가운데는 마치 자기 자신의 능력과 선행으로 승리한 것처럼 구원을 자기 공로에 돌리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 그들이 어떠한 일을 하고 어떤 고난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오직 모든 찬미의 내용과 모든 찬양의 주제는 구원하심이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다는 것이다.
11하나님의 아들의 마지막 대관식은 하늘과 땅의 모든 거민이 모인 가운데 행해진다. 이제 만왕의 왕께서는 최고의 위엄과 권세를 가지고 당신의 정부에 반역한 자들에게 선고를 내리시고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그분의 백성을 박해한 자들에게 판결을 집행하신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1, 12)라.
두려운 광경이 펼쳐짐
12기록책들이 펼쳐지자마자 예수님의 눈은 악인들을 주목하신다. 그때 그들은 그들이 지금껏 범한 모든 죄를 깨닫는다. 그들은 그들의 발이 어디에서부터 순결과 성결의 길에서 벗어났는지, 그들의 교만과 반역이 그들을 얼마나 심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게 하였는지 깨닫게 된다. 그들을 죄에 빠지게 한 매혹적인 시험을 받은 것, 축복을 무시한 것, 하나님의 사자들을 모욕한 것, 경고를 거절한 것, 완고하고 회개하지 않은 마음으로 자비의 물결을 물리쳐 버린 것,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불로 기록된 문자와 같이 나타난다.
13보좌 위에 십자가가 나타난다. 그리고 아담의 유혹과 타락, 그 후에 계속적으로 전개되는 위대한 구속의 경륜의 장면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구주의 비천한 탄생, 그분의 단순하고 양순한 초기 생애, 요단강에서의 침례, 광야에서의 금식과 시험, 하늘의 가장 귀중한 축복들을 사람들에게 알려 준 그분의 공생애, 사랑과 자비의 봉사로 피곤해진 낮과, 한적한 산에서 기도하며 깨어 있던 밤들, 그분의 은혜에 대하여 질투와 증오와 악의에서 나온 음모, 온 세상의 죄짐에 눌렸던 두렵고 신비한 겟세마네의 고민, 살기 등등한 폭도들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 배반, 가장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버림을 받고 예루살렘 거리를 난폭하게 끌려 다니신 저항없는 죄인, 의기 양양하게 그분을 안나스앞에 세운 것, 대제사장의 집에서 송사받고, 빌라도의 재판정에서, 또한 비겁하고 잔인한 헤롯 앞에서 조소와 모욕과 고문을 당하시고 마침내 사형 선고를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 이 모든 장면들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14이제는 크게 동요하는 무리들 앞에서 마지막 광경, 인내의 수난자가 갈바리로 가는 길을 따라가고, 하늘의 왕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교만한 제사장들과 조롱하는 폭도들이 죽어가는 그분의 고민을 조롱하고, 초자연적 흑암이 나타나고, 땅이 흔들려 바위가 깨어지며 무덤이 열리므로 세상의 구주께서 생명을 버리시는 순간을 알려 주는 광경들이 나타난다.
15이와 같이 전에 있었던 그대로의 무서운 광경들이 나타난다. 사단과 그의 사자들과 그의 백성들은 그들이 한일이 드러나지 못하도록 막을 힘이 없다. 각 일을 담당했던 자는 그가 한 역할을 회상한다. 이스라엘의 왕을 죽이기 위하여 무구(無垢)한 아이들을 살해한 헤롯, 가책받는 심령을 달래기 위하여 침례 요한의 피를 흘린 야비한 헤로디아, 지조없는 빌라도, 조롱하던 군인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고 외친 제사장들과 장로들과 광적인 무리, 그들 모두가 그들의 죄가 얼마나 가증함을 보게 된다. 구원받은 무리들이 그들의 면류관을 구주의 발 앞에 던지면서 “그분께서 나를 위하여 돌아가셨다!”고 부르짖을 때, 악한 자들은 구주의 얼굴에 나타난 거룩한 위엄과 찬란하게 빛나는 햇빛을 피하려고 애쓰지만 헛된 노력이 되고 만다.
부활한 악인들의 큰 무리
16속량함을 받은 무리들 중에는 그리스도의 사도들, 용감한 바울, 열심있는 베드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사랑을 받은 요한, 그리고 진실한 마음을 가진 형제들과 많은 순교자의 큰 무리가 있다. 그러나 성벽 밖에는 일찍이 그 사람들을 박해하고, 투옥시키고, 살해한 자들이 각종 비루하고 가증한 자들과 함께 있다. 거기는 한 때 그리스도인들을 고문하고, 그들의 극심한 고통을 보고 악마적 기쁨을 느끼던 잔인 무도한 네로도 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의기 양양하게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본다. 네로의 어머니도 거기서 자기가 한 일의 결과를 목격한다. 그는 자기의 아들에게 유전된 악한 품성 그리고 자기의 감화와 모본으로 말미암아 과격해지고 그릇되게 조장된 감정이 어떻게 세상을 떨게 한 범죄의 열매를 맺었는지를 알게 된다.
17거기는 또한 그리스도의 대사들이라고 공언하면서 하나님 백성들의 양심을 지배하기 위하여 고문대, 투옥, 화형주 등을 사용한 법왕교의 승려들과 주교들이 있다.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이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율법을 변개하고자 한 교만한 법왕들도 거기에 있다. 이 거짓된 교회의 교부들은 하나님 앞에 불가불 청산해야 할 일이 있다. 그들은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율법에 참으로 마음을 많이 쓰시고 그 율법을 범한 자를 결코 무죄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고난당하신 백성들과 마음을 같이 하신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사실임을 알게 된다.
18모든 악인들은 하늘 정부에 대한 대 반역이라는 죄목으로 하나님의 법정에서 심판을 받는다. 그들은 그들의 소송에 대하여 탄원할 것이 전혀 없고, 핑계할 것도 없다. 그들에게는 영원한 사망의 선고가 내려진다.
19죄의 삯은 고상한 자립과 영원한 생명이 아니고 노예와 파멸과 사망임이 이제 모든 사람에게 입증된다. 악인들은 그들의 반역의 생애를 통하여 무엇을 잃어버리게 되었는지 깨닫는다. 영원한 영광의 심히 중한 것이 일찍이 그들에게 주어졌지만 그들은 그것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얼마나 부러워할 만한 것이 되어 있는가? 잃어버린 자들은 부르짖는다.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자진하여 그것들을 멀리하고자 했다. 아, 얼마나 이상한 것에 열중했던가! 우리는 평안과 행복과 영광을 불행과 수치와 절망과 바꾸었다.” 모든 사람은 그들이 하늘에서 쫓겨난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들의 생활로써 “우리는 이 예수로 왕 삼는 것을 원치않노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20악인들은 마치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아들의 대관식을 주목한다. 그들은 주님의 손에 그들이 멸시하고 범한 하나님의 율법의 돌비가 쥐어져 있는 것을 본다. 그들은 구원 받은 사람들이 경이와 환희와 찬송의 소리를 높이는 것을 본다. 그 음조의 물결이 성밖에 있는 무리들에게 퍼져나갈 때 모든 사람은 한 음성으로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계 15:3)고 외치면서 엎드려 생명의 왕께 경배한다.
21사단은 그리스도의 영광과 위엄을 보고 마비된 것처럼 보인다. 한 때 덮는 그룹이었던 그는 타락했던 당시를 생각한다. 빛나는 스랍,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 어찌하여 변화되고, 어찌하여 타락하였는가! 그는 일찍이 존경받던 회합에서 영원히 제외된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다른 천사가 그분 가까이에 서 있는 것을 본다. 그는 키가 크고 위엄 있는 한 천사가 그리스도의 머리에 면류관을 씌워 드리는 것을 본다. 그는 자기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 천사의 높은 지위가 그의 것이 되어 있을 것임을 깨닫는다.
악인들의 형벌
22추억은 허물없고 순결하던 옛날,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시기하지 않았을 때에 소유하였던 평안과 만족을 회상케 한다. 그의 비난과 반역, 천사들의 동정과 지지를 얻기 위한 그의 기만,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겠다고 하셨을 때 자신의 회복을 위하여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아니함으로 나타낸 그의 고집 등, 이 모든 일들이 마음 가운데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개한 자기의 사업과 그 결과, 곧 사람들 상호간의 원한, 무서운 생명의 파멸, 나라들의 흥망 성쇠, 왕위의 전복, 장기간 계속된 소란과 투쟁과 혁명 등을 되돌아본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업을 반대하고 인류를 타락시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애써 온 것을 생각한다. 그는 흉악한 자기의 간계가 예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멸망시키는 데에 아무런 힘이 없었음을 깨닫는다. 사단이 자기의 수고의 열매인 그의 나라를 바라볼 때, 그는 오직 실패와 파멸만을 깨닫게 된다. 그는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성을 쉽게 함락시킬 수 있는 것으로 믿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있다. 그는 그 대쟁투가 계속되는 동안 거듭거듭 실패하고 굴복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23그 큰 모반자의 목적은 언제나 자기를 정당화시키고 반역의 책임이 하나님의 정부에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의 탁월한 지력을 모두 기울여 왔다. 그는 신중하고 조직적으로 일을 하여 그 큰 무리들이 그처럼 오랫동안 계속해 온 대쟁투에 대한 그의 주장을 수락하도록 이끄는데 놀라운 성공을 거두어 왔다. 수천년 동안 이 반역의 괴수는 오류를 진리라고 속여 왔다. 그러나 이제 그 반역이 마침내 실패로 끝나고 사단의 경력과 품성이 드러날 때가 왔다. 큰 기만자 사단은 그리스도를 폐위시키고, 하나님의 백성을 멸망시키고, 거룩한 성을 탈취하기 위한 마지막 큰 싸움에서 그의 정체는 완전히 폭로되었다. 그와 연합해 온 자들은 마침내 그의 사업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간 것을 알게 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과 충성된 천사들도 하나님 정부에 대한 사단의 음모의 전모를 보게 된다. 사단은 온 우주의 증오의 대상이 된다.
24사단은 그의 고의적인 반역이 그로 하여금 하늘에 적합하지 못하게 만들었음을 안다. 그는 전력을 다하여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워왔다. 하늘의 순결과 평화와 조화는 그에게 극심한 고통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에 대한 그의 비난은 이제 잠잠해졌다. 그가 여호와께 돌리려고 노력해 온 비난이 자기에게로 남김없이 돌아온다. 이제 사단은 엎드려 자기에게 내리는 판결의 공의로움을 고백한다.
하나님의 공의를 찬송함
25“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계 15:4).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진리와 오류에 관련된 모든 문제는 이제 분명해졌다. 반역의 결과, 곧 하나님의 율법을 거역한 결과가 모든 지적 존재자의 눈앞에 분명해졌다. 하나님의 통치와 반대되는 사단의 법칙이 실천된 결과가 무엇임이 온 우주에 공개되었다. 사단 자신의 사업이 그를 정죄했다. 하나님의 지혜와 공의와 자비는 완전히 옹호되었다. 대쟁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취하신 처사가 오로지 당신의 백성들의 영원한 행복과 그분께서 창조하신 모든 세계의 유익을 위하여 하신 일임이 드러난다. “여호와여 주의 지으신 모든 것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가 주를 송축하리이다”(시 145:10). 죄의 역사는 하나님의 율법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만물의 행복을 위하여 있는 것임을 입증하기 위하여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충성된 자와 반역한 자들을 막론하고 온 우주는 대쟁투에 속한 모든 사실을 바라보면서 한 마음으로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고 선언한다.
26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베푸신 큰 희생이 분명히 제시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정당한 지위를 차지하고, 정사와 권세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영광을 받으실 때가 왔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굴욕을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신 것은 당신 앞에 있는 즐거움, 곧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인도하는 즐거움을 위해서였다. 그 슬픔과 치욕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컸지만 기쁨과 영광은 그보다 더 컸다. 그분은 구원받은 자들이 당신의 형상을 회복하고, 모든 마음에 하나님의 완전한 모습을 간직하고, 모든 얼굴에 그들의 왕의 형상을 반영하고 있음을 보신다. 그분은 당신의 수고의 결과가 그들 가운데 나타나 있는 것을 보시고 심히 만족해 하신다. 그때 그분께서는 의인의 무리와 악인의 무리가 다 같이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외치신다. “나의 피로 산 자들을 보라! 나는 그들을 위하여 고난을 받았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죽었다. 나는 그들이 영원토록 내 앞에서 살아가게 하고자 그런 일을 당하였다.” 그때 보좌를 둘러 있는 흰옷을 입은 무리들이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 5:12)라고 찬양의 노래를 부른다.
27비록 사단이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최상권에 대하여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지라도 그의 품성은 변화되지 않는다. 반역의 정신이 강한 급류와 같이 다시 밀려온다. 사단은 분노로 충만해져 대쟁투에 항복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하늘 왕에 대한 마지막 결사적 쟁투가 전개된다. 그는 부하들 가운데 뛰어들어가서, 분노에 사로잡혀 그들을 충동시켜 즉시 일대 결전을 하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그가 반역하도록 유혹한 무수한 무리 가운데 이제 그의 최상권을 인정하는 자는 하나도 없다. 그의 권세는 끝났다. 악인들은 사단이고 취하는 바와 똑같이 하나님께 대한 증오심으로 충만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처지가 절망적이라는 것과 그들이 여호와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들의 그 분노는 사단과, 기만에 있어서 그의 대리 역할을 해왔던 자들을 향하여 폭발된다. 그들은 악마와 같은 분노로 사단과 그 대리자들에게 달려든다.
여호와께서 보응하시는 날
28여호와께서는 말씀하신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하였으니 그런즉 내가 외인 곧 열국의 강포한 자를 거느리고 와서 너를 치리니 그들이 칼을 빼어 네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치며 네 영화를 더럽히며 또 너를 구덩이에 빠뜨”리리라.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 너를 목도하는 모든 자 앞에서 너로 땅 위에 재가되게 하였도다 … 너를 아는 자가 너로 인하여 다 놀랄 것임이여 네가 경계거리가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겔 28:6-8, 16-19).
29“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같이 살라지리니”, “여호와께서 만국을 향하여 진노하시며 그들의 만군을 향하여 분내사 그들을 진멸하시며 살육케 하셨”(사 9:5, 34:2)도다.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시 11:6). 불이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온다. 땅이 깨어진다. 땅의 깊은 곳에 감추었던 무기들이 터져 나온다. 땅의 깨어진 모든 틈에서 맹렬한 화염이 터져 나온다. 모든 바위가 불이 된다. 풀무불처럼 불타는 날이 마침내 왔다.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것들이 타 버린다(말 4:1; 벧후 3:10 참조). 땅의 표면은 마치 용해된 하나의 덩어리, 곧 하나의 거대한 끓는 큰 불못처럼 된다. 이 때는 경건치 않은 자들의 형벌과 멸망의 때이다. “이것은 여호와의 보수할 날이요 시온의 송사를 위하여 신원하실 해”(사 34:8) 이다.
30악인들은 땅에서 그들의 보응을 받는다(잠 11:31 참조).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말 4:1) 사를 것이다. 어떤 자들은 한 순간에 멸망당하지만 어떤 자들은 여러 날 동안 고통을 받는다. 모든 사람은 “그들의 행위대로” 형벌을 받는다. 의인들의 죄는 사단에게 옮겨진다. 그는 자기 자신의 반역의 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범하게 했던 모든 죄 때문에서도 고통을 받는다. 사단의 형벌은 그에게 속은 자들이 받는 형벌보다 훨씬 더 크다. 그의 기만으로 타락한 자들이 모두 멸망당한 후에도 그는 여전히 죽지 않고 계속하여 고통을 받는다. 정결케 하는 그 불로써 악인들은 뿌리와 가지, 곧 뿌리가 되는 사단과 가지가 되는 그를 따르는 자들이 마침내 완전히 멸망당한다. 율법의 형벌이 완전히 집행되고, 공의의 요구가 충족되면 하늘과 땅은 여호와의 의를 바라보고 찬송하게 된다.
승리의 노래
31사단의 파괴 행위는 영원히 끝난다. 육천년 동안 그는 제 마음대로 불행으로 땅을 충만케 하고 온 우주를 슬프게 하였다. 모든 피조물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당해 왔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피조물들은 사단의 존재와 유혹에서 영원히 벗어난다. “온 땅이 평안하고 정온하니 무리가 소리질러 노래하는도다”(사 14:7). 찬송과 승리의 함성이 충성된 온 우주에서 터져 나온다.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 소리로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계 19:6)고 노래한다.
32땅이 멸망의 불에 싸여 있는 동안 의인들은 거룩한 성 안에서 안전하게 있다. 둘째 사망은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을 다스릴 권세가 없다. 하나님이 악인에게는 태우는 불이 되지만 당신의 백성에게는 해와 방패가 되신다(계 20:6; 시 84:11 참조).
33“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 악인을 태우는 불은 땅을 정결케 한다. 모든 저주의 흔적은 일소된다.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죄의 무서운 결과를 언제나 생각나게 해줄 영원히 불타는 지옥은 없다.
34오직 한 가지 기념물은 남게 된다. 우리 구주께서는 십자가의 표를 영원히 언제나 간직하실 것이다. 그분의 상하신 머리와 옆구리와 손발에는 죄가 빚어놓은 잔인한 유일의 흔적이 남게 된다. 선지자 하박국은 영광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광선이 그 옆구리(영어 성경-방주)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합 3:4)고 말한다. 인류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하여 붉은 피를 흘린 그 옆구리는 구주의 영광이 나타나고, “권능이 그 속에 감”추인 곳이다. 속죄의 희생 제물이 되심으로 구원하기에 능하셨던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자비를 멸시한 자들에게 공의를 행하는 일에도 강하셨다. 그분의 굴욕의 표는 그분의 가장 큰 영광이다. 갈바리에서 상한 흔적은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주님께 대한 찬양을 불러일으키고 그분의 능력을 말해 줄 것이다.
35“너 양떼의 망대요 딸 시온의 산이여 이전 권능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미 4:8). 화염검이 에덴동산에서 최초의 부부를 내쫓은 이래 성도들이 “그 얻으신 것을 구속”(엡 1:14)할 시기를 열렬하게 사모해 온 그때가 왔다. 원래 사람에게 그의 나라로 주어졌으나 사단의 손으로 넘어가서 오랫동안 강한 원수에게 점령당해 있던 땅은 위대한 구속의 계획으로 말미암아 다시 사람에게로 돌아왔다.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모든 것이 회복되었다. “땅도 …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사 45:18)셨다. 땅이 구속받은 자들의 영원한 거처가 될 때 하나님께서 땅을 창조하신 본래의 목적이 성취된다.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시 37:29).
하늘 본향
36장래의 유업이 지나치게 물질적인 것처럼 생각되는 일을 염려하여 우리의 본향을 바라보게 해주는 바로 그 진리를 영적으로만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그들을 위하여 아버지 집에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보증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하늘 집에 관하여 전혀 무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고전 2:9)던 것들이다. 사람의 언어는 의인들이 받을 상급을 묘사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것은 오직 바라보는 사람들만이 깨닫게 될 것이다. 유한한 사람으로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낙원의 영광을 깨달을 수 없다.
37성경은 구원얻은 자의 유업을 본향이라고 부른다(히 11:14-16 참조). 그 곳에서 하늘의 목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양 무리를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다. 생명나무는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는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다. 흘러 다함이 없는 강은 수정같이 맑고, 그 가에 있는 나무들은 구속받은 주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준비된 길 위에 그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넓은 평원이 아름다운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하나님의 산들은 높은 봉우리들을 뻗고 있다. 이 평화로운 평원에서, 이 생명 강가에서, 오랫동안 순례자요 방랑자로 살아온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들은 그들이 거할 집을 발견한다.
38“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에 있으”리라.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경내에 다시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칭할 것이라.”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것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의 건축한 데 타인이 거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의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 나의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임이”(사 32:18, 60:18, 65:21, 22)라.
39“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 하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그 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사 35:1, 55:13, 11:6, 9)다.
40하늘의 분위기 속에는 고통이 존재할 수 없다. 그 곳에는 눈물이 없고, 장례 행렬이 없고, 슬픔의 흔적이 없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 거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라 거기 거하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계 21:4; 사 33:24).
새 하늘과 새 땅
41그 곳에서 영화롭게 된 새 땅의 수도 새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사 62:3)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계 21:11).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계 21:24). 주님께서는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 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사 65:19)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계 21:3) 저희 하나님이 되리라.
42하나님의 성에는 “밤이 없”다. 아무도 휴식을 필요로 하거나 원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는데 피곤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신선하고 유쾌한 아침의 기분을 언제나 느낄 것이다.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계 22:5). 고통스러울 정도로 눈이 부실 정도는 아닌 찬란한 빛이 태양 광선을 대신할 것이다. 그러나 그 광도(光度)는 오늘날의 정오의 밝음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광이 거룩한 성을 끊임없이 비추어 준다. 구속받은 자들은 태양이 없을지라도 언제나 낮의 빛 가운데로 다닐 것이다.
43“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계 21:22). 하나님 백성들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으로 더불어 자유롭게 교통하는 특권을 얻는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고전 13:12)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마치 거울속에 비췬 것처럼 천연계 가운데서, 또한 그분께서 인류를 취급하시는 일을 통하여 바라본다. 그러나 그 때에는 사이를 가로막아 놓았던 희미한 휘장 없이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여 보게 될 것이다. … 우리는 그분 앞에 서서 그분의 얼굴의 영광을 직접 바라볼 것이다.
44거기서 구속받은 사람들은 주님께서 그들을 아심같이 그들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심령 속에 심어 주신 사랑과 동정은 거기서 가장 진실하고 부드럽게 활용될 것이다. 거룩한 자들과 나누는 순결한 교제, 축복받은 천사들과 그 옷을 어린양의 피로 씻어 희게 한 각 시대의 충성된자들과의 조화로운 생활,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을 함께 결합시키는 거룩한 유대 관계, 이것들은 구속받은 자들의 행복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대쟁투의 종결
45거기서 죽지 않을 특권을 얻은 사람들은 창조력의 경이, 속죄애(贖罪愛)의 오묘를 결코 사라지지 않을 기쁨으로 명상한다. 하나님을 등한히 하도록 유혹하던 잔인하고 기만적인 원수는 더 이상 없다. 모든 능력과 재간은 증가되고 발달된다. 지식을 얻는데 두뇌가 피로해지거나 정력이 소모되는 일이 없다. 가장 큰 기도(企圖)도 실행되고, 가장 고상한 포부도 성취되며, 가장 높은 희망도 실현될 것이다. 그럴지라도 거기에는 여전히 정복해야 할 새로운 높은 봉우리, 경탄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경이, 이해해야 할 새로운 진리, 마음과 몸과 영의 능력을 다 기울이게 하는 새로운 연구 대상들이 있게 된다.
46우주의 모든 보화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연구 대상으로 펼쳐진다. 죽음의 속박에서 벗어난 그들은 멀리 떨어진 다른 세계들, 곧 인간의 불행을 보고 슬프게 탄식하고, 한 영혼이 구원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기쁨의 노래를 부른, 다른 세계들을 향하여 피곤을 모르는 날개를 펴고 날아간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으로 땅 위의 자녀들은 타락하지 않은 다른 세계의 주민들의 지혜와 기쁨을 같이 나누게 된다. 그들은 여러 시대에 걸쳐 하나님의 솜씨를 명상함으로 얻은 지식과 지혜의 보화를 같이 나눈다. 그들은 흐려지지 않은 시력으로 창조의 영광, 곧 별들과 태양계들이 모두 그들에게 정해진 일정한 궤도를 따라 하나님의 보좌를 돌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가장 큰 것에 이르기까지 만물 위에는 창조주의 이름이 기록되고, 모든 것에는 창조주의 능력이 표현되어 있다.
47그리고 영원한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더욱 풍성하고 더욱 영광스러운 계시가 나타난다. 또한 지식이 발전되어 감에 따라 사랑과 존경과 행복도 증가될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배우면 배울수록 그분의 품성에 대한 그들의 감탄은 더욱 커질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속죄의 풍성한 부와 사단과의 대쟁투에 있어서의 놀라운 결과를 제시해 주실 때 구속받은 자들의 마음은 더욱 열렬한 헌신의 마음으로 감동되고, 그들은 더욱 충만한 기쁨으로 금거문고를 탄다. 그리하여 천천만만의 무리는 음성을 합하여 찬양의 대합창을 한다.
48“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 5:13).
49대쟁투는 끝났다. 죄와 죄인들은 없어졌다. 온 우주는 깨끗해졌다. 오직 조화와 기쁨의 맥박만이 온 우주의 만물을 통하여 고동(鼓動)한다. 생명과 빛과 환희가 만물을 창조하신 분에게서 끝없이 넓은 우주로 퍼져나간다. 가장 작은 원자(原子)로부터 가장 큰 세계에 이르기까지, 만물은 생물계와 무생물계를 막론하고 조금도 흠이 없는 아름다움과 완전한 기쁨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선포한다.
부 록
일반적인 주해
50부록 1 직함들―로마교회 교회법의 일부 조항에서 교화 인노센트 III세는, 로마 교황은 “지상에 있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 조항에 대한 해설에서, 이것은 그가 “바로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신” 그리스도의 대리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See Decretal. Gregor. Pap. IX, lib. 1. de translat. Episc. tit. 7, c. 3. Corp. Jur. Canon. ed. Paris, 1612; tom. II., Decretal. col. 205). 교황의 교서를 이루고 있는 문서들은 1140년경 볼로냐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던 그라티안이 수집하였다. 그의 저작은 1234년도 판에서 교화 그레고리우스 IX세에 의하여 첨가되고 재편집되었다. 그 후로도 다른 문서들이 이따금 출현하였는데, 15세기 말경에는 Extravagantes가 첨가되었다. 그라티안의 Decretum을 위시해서 이 모든 문서들은 1582년에 Corpus Juris Canonici로 출판되었다. 1904년 교화 피우스 X세는 교회법에서 법전 편찬을 허가하였으며 그 결과생긴 법전은 1918년에 효력을 발생하게 되었다.
51“주 하나님이신 교황”이란 직함을 보기 위해서는, the Extravagantes of Pope John XXII, tit. 14, ch. 4, Declaramus에 대한 주해를 참조하라. 1584년도 애트워프 판 Extravagantes에서는 도미눔 데움 노스트룸 파팜(Dominum Deum mostrum Papam―“우리의 주 하나님이신 교황”)이라는 말이 153난(欄)에 나타나며, 1612년도 파리 판에서는 140난에 나타난다. 1612년 이후 출판된 여러 판에서는 데움(하나님)이라는 말이 생략되었다.
52레오 VIII세는 1890년 1월 10일에 “그리스도 시민의 주요 임무에 관하여”라고 하는 회칙을 반포하였다. 교황은 이 회칙에 강조하기를 “교회내에서의 최고의 교사는 로마 교황이다. 따라서 모든 신자들은 교회와 교황에게 ‘하나님께 하듯’완전한 순종과 마음의 복종을 돌려야만 한다”고 하였다. 1894년 1월 20일에 반포한 “그리스도교국의 재연합”에 관한 회칙에서는 한술 더 떠서 “우리(즉 교황들)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지구를 붙들고 있다”고 하였다. 얼마나 대단한 주장들인가. 그러나 1512년의 제 5차 라테란 공의회(Lateran Council)가 교황 율리우스(Julius) II세에게 부여한 신분에 비하면 대단한 것이 아니다. 당시 크리스토퍼 마르켈루스(Christopher Marcellus)는 교황을 일러 “그대는 목사이시요 의원이시요 주권자이시요 농부이시요 마침내 그대는 이 땅에 계시는 또 한 분의 하나님이시다”(tu enim pastor…tu denigus alter Deus in terris)라고 하였다. J. D. Mansi, ed., Sacrorum conciliorun…Collectio, 32:761를 보라. 교황은 이렇게 떠드는 마르켈루스를 꾸짖지 않았다. 그 진술들은 그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더욱 그에게 적합치 않게 보인다. 왜냐하면, 역사책에 묘사된 율리우스 II세의 모습은 “주로 정치가요 군대 지도자”(Oxford Dictonary of the Christian Church(1957 ed.), art. “Julius II.”), “볼로냐(Bologna) 정복때 친히 군대를 지휘한…무장한 교황”(Roland H. Bainton, The Reformation of the Sixteenth Century(Boston : The Beacon Press, 1952), p. 18.), 그리고 “교황 군대의 거짓 맹세꾼 우두머리”(Thompson and Johnson, Medieval Europe, p. 1015)로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53부록 2 무류설―1870, 71년 바티칸 공의회에서 공표된 무류설에 대해서는, Philip Schaff, Creeds of Christendom, vol. II, Dogmatic Decrees of the Vatican Council, pp. 234-271을 참조하라. 여기에는 라틴어와 영어로 된 본문이 들어 있다. 로마 가톨릭의 견해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the Catholic Encyclopedia, vol. VII, art. Infallibility, by Patrick J. Toner, pp. 790 ff.; James Cardinal Gibbons, Faith of Our Fathers (Baltimore, Md.: John Murphy Co., 110th ed., 1917) 7장과 11장을 참조하라. 교황 무류설에 대한 로마 가톨릭의 반대를 보기 위해서는, Johann Joseph Ignaz von Dollinger (pseudonym “Janus”), The Pope and the Council,(New York: Chas. Scribner's Sons, 1869)와 W. J. Sparrow Simpson, Roman Catholic Opposition to Papal Infallibility (London: John Murray, 1909)를 참조하라. 비 로마 가톨릭의 견해를 알기 위해서는, George Salmon, Infallibility of the Church (London: John Murray, rev. ed., 1914)를 참조하라.
54로마교회의 명성과 영향력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교히는 다름아닌 그 교회의 무류설에 관한 교리이다. 교회는 전혀 잘못한 적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하였다. 그 교회는 성경상 아무 지지도 받지 못하는 다음과 같은 논증에 이 가르침의 기초를 두고 있다. 즉, 교회는 신적인 것으로서, 그 본래의 속성 중의 하나가 무오성이다. 부가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신적인 교회를 통하여 모든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하늘로 인도하도록 의도하셨기 때문에 그 교회는 신앙과 교훈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무오해야 한다[Peter Geiermann, The Convert's Catechism of Catholic Doctrine(St. Louis, Mo : B. Herder Book Co., 1957), pp. 27를 보라].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모든 오류로부터 교회를 보존시켜 주실 것이다.
55인간의 근본적인 타락성을 부인하는 이러한 논리는 교회의 지도자 또한 무오해야 한다는 논리적인 귀결을 낳는다. 후기에 교황 무오설의 교리는 다음의 가설에 기초되었다. ⑴ 신성한 교회의 한 속성으로서의 무오성은 그 교회의 수령에게서 필연적으로 완전히 발견된다. ⑵ 베드로는 신앙과 도덕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무오하였다. ⑶ 교황은 베드로로부터 신성한 교회의 속성들을 상속받았다. 엑스 카데드라(ex cathedra)로 말할 때 “교황은 신앙과 도덕에 있어서 무오한 교사이다”라는 결론이 내려졌다(Geiermann, p. 29). 라틴어 단어 ex cathedra의 문자적 의미는 “의자로부터”이다. 그 말이 교황과 관련하여 사용될 때 그것은 가톨릭 교회에 선포한 그의 공식 선언들을 지칭한다. 따라서, 가톨릭 문헌은 그 지도자가 신적인 대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교황권을 위해 말해진 주장들을 참조하려면 예컨대 (Source Book, p. 680)에 인용된 바, (Lucius Ferraris, “Papa,” art. 2, in Prompta Bibliotheca(Venice; Gasper storti, 1772), vol. 6, pp. 25-29f)를 참조하라. 교황권 자체의 주장을 참고하려면, 예컨대 (Pope Leo XIII, Encyclical Letter, Jan. 10, 1890 and June 20, 1894 in The Encyclical Letters of Pope Leo XIII(New York, NY : Benziger Brother, 1903), pp. 193, 304)를 참조하라.
56부록 3 우상숭배―“그리스도교를 타락케 한 것들 중 하나인 우상숭배는 거의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이와 같은 부패는 다른 이단 교리들처럼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단호한 비난과 질책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초부터 교묘한 가장(假裝) 하에 하나씩 점차적으로 들어왔다. 그리하여 교회는 효과적인 반대도 완강한 저항도 없이 실질적인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 버렸다. 마침내 그것을 뿌리뽑고자 하였을 때, 그같은 악은 너무도 갚이 부리 박혀 있어서 제거할 수가 없었다.…그것은 인간의 마음 가운데 있는 우상숭배의 경향과 피조물을 창조물보다 더 섬기고자 하는 성향에서 연유되었음에 틀림없다….
57아로새긴 형상과 그림들이 처음에 교회에 소개된 것은 예배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거나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신앙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러한 목적에 얼마나 부응하였는지는 의문이다. 이것은 한때 그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할지라도, 조만간 헛일이 되고 말았다. 그림이나 아로새긴 형상을 교회에 들여옴으로 무지한 자의 마음을 밝혀 주기보다는 오히려 더 어둡게 하였으며, 예배자의 신앙심을 일으켜 주기 보다는 오히려 더 타락시켰다. 그리하여 그 일이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이끌기 위하여 의도되었을지라도, 결과적으로는 그분에게서 돌아서서 피조물들을 경배하게 하는 일이 되었다.”―J. Mendham, The Seventh General Council, the Second of Nicaea, Introduction, pages iii-vi.
58우상숭배를 확립하기 위해서 소집된 기원후 787년의 제 2차 니스(Nice) 공의회의 진행 절차와 결정 사항에 대한 기록을 알기 위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Baronius, Ecclesiastical Annals, 1612 Antwerp ed., vol. 9, pp. 391-407; J. Mendham, the Seventh General council, the Second of Nicaea; Ed. Stillingfleet, Defence of the Discourse Concerning the Idolatry Practiced in the Church of Rome (London, 1686); A Select Library of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second series, New York, 1900, vol. 14, pp. 521-587; C. J. Hefele, History of the Councils of the Church, From the Original Documents, b. 18, ch. 1, secs. 332, 333; ch. 2, secs. 345-352 (T. and T. Clark ed., 1896, vol. 5, pp. 260-304, 342-372)
59부록 4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일요일 법령―기원후 321년 3월 7일,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반포된 휴업일(休業日)에 관한 법령은 다음과 같다.
60“모든 법관들과 도시의 주민들과 상인들은 존경할 만한 태양의 날에 쉴 것이다. 그러나 농촌의 주민들은 자유롭게 경작 활동에 종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씨를 뿌리고 포도나무를 심는 일이 다른 날에는 적합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므로 적절한 시기를 놓치게 되면 하늘이 주른 혜택을 잃어버릴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Joseph Cullen Ayer, A Source Book for Ancient Church History (New York: Chas. Scribner's Sons, 1913), period 1, div. 2, ch. 1, sec. 59 g pp. 284, 285.
61라틴어 원본은 the Codex Justiniani (Codex of Justinian), lib. 3, tit. 12, leg. 3. 가운데 들어 있다. 이 법령은 라틴어와 영어로 다음 책에 나타난다. Philip Schaff's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 III, period 3, ch. 7, sec. 75, p. 380, footnote 1, and in James A. Hessey's Bampton Lectures, Sunday, lecture 3, par. 1, 3d ed., Murray's printing of 1866, p. 58. See discussion in Schaff, as above referred to; in Albert Henry Newman, Manual of Church History, (Philadelphia, American Baptist Publishing Society, printing of 1933), rev. ed., vol. I, pp. 305-307; and in Froom, The Prophetic Faith of Our Fathers (Washington, D.C., 1950), vol. I, pp. 376-381.
62부록 5 예언상 연대들―시간에 대한 예언과 관련된 예언 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은 연-일(year-day) 원칙이다. 이 원칙 하에서 예언적 시간의 하루는 역사적 시간의 일년으로 간주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열 두 정탐꾼을 앞서 보내 탐사하도록 하였다. 정탐꾼들은 정탐하는 데 40일을 보냈으며, 그들이 돌아왔을 때 그들의 보고에 놀란 히브리인들은 올라가서 약속의 땅을 점령하기를 거절하였다. 그 결과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고하셨다.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수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환산하여 그 40년가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지니”(민 14:34). 미래의 시간을 계산하는 유사한 방법이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도 지적되고 있다. 죄악에 대한 40년간의 형벌이 유다 왕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그 수가 차거든 너는 우편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40일로 정하였나니 1일이 1년이니라”(겔 4:6). 이같은 연-일 원칙은 “2300주야”(단 8:14)와 1260일 및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한 때 두 때 반 때”(단 7:25), “마흔 두 달”(계 11:2; 13:5), “일천이백육십일”(계 11:3; 12:6) 그리고 “사흘 반”(계 11:9)과 같은 예언의 시간적 요소를 해석함에 있어서 중요하게 적용된다.
63부록 6 위조 문서들―오늘날 위조 문서라고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것들 가운데서는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서와 가짜 이시도리안 교령집이 제일 중요하다.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서’라는 이름은 중세 후기 이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교황 실베스터 I세에게 보낸 것으로 사료되는 서류에 전통적으로 적용되는데, 이것은 아마도 9세기 초의 것으로 생각되는 파리 원고(Codex lat. 2777)에서 최초로 발견되었다. 11세기 이후 이것은 교황의 주장을 지지하는 강력한 논증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결과 12세기 이후에는 열띤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동시에 이것은 교황권을 본래의 로마 제국과 중세의 로마 제국 사이의 중간 기간을 이어주는 것으로 간주하게 하므로 그것이 중세 시대에는 세속 역사에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 로마법을 계속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신학적인 기초를 형성할 수 있게 하였다.”―New Schaff-Herzog Encyclopedia of Religious Knowledge, vol. III, art. “Donation of Constantine,” pp. 484, 485.
64기증서를 통해 발전된 역사적인 이론은 Henry E. Cardinal Manning's The Temporal Powerof the Vicar of Jesus Christ (London, 1862)에서 충분히 논의되고 있다. 기증서의 논증들은 형식적이었다. 위조일 가능성에 대한 문제는 15세기에 역사 비평이 대두된 이후에야 언급되었다. 이 때 쿠사의 니콜라스가 최초로 콘스탄티누스는 결코 그같은 기증서를 만들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이탈리아의 로렌조(라우렌티우스) 발라는 1440년에 이 기증서의 위조성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크리스토퍼 B. 콜레망의 Treatise of Lorenzo Valla on the Donation of Constantine(New York, 1927)을 참조하라. 그러나 이 기증서와 가짜 교령집의 신빙성에 대한 믿음은 1세기 이상이나 존속되었다. 일례로, 마르틴 루터도 처음에는 이 교령집을 인정하였으나 곧 에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이 교령집을 배격한다.” 그리고 스팔라틴에게는 “그(교황)는 그의 교령집을 통해 부패를 저지르며 그리스도, 즉 진리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고 하였다.
65기정사실로 인정되는 바는 다음과 같다. ⑴기증서는 위조이다. ⑵한 사람이나 한 시대의 산물이다. ⑶위조자는 더 오래된 서류들을 사용하였다. ⑷이 위조 문서는 기원후 752년과 778년경에 유래되었다. 가톨릭 교회는 1592년에 Baronius, Ecclesiatical Annals와 함께 이 서류의 신빙성을 더 이상 옹호하지 않았다. 가장 훌륭한 원문으로는 K. Zeumer, in the Festgabe fur Rudlof von Gneist(Berlin, 1888)을 참고하라. 이것은 앞서 언급한 콜레망의 Treatise와 에르네스트 F. 헨델센의 Select Historical Documents of the Middle Ages (New York, 1892), p. 319; Briefwechsel, Weimar ed., pp. 141, 161에 번역되어 있다. 또한 the New Schaff-Herzog Encyclopedia of Religious Knowledge (1950), vol. III, p. 484; F. Gregorovius, Rome in the Middle Ages, vol. II, p. 329와 J. J. I. Dollinger, Fables Respecting the Popes in the Middle Ages (London, 1871)도 참조하라.
66본문에서 언급된 “거짓 저술들”에는 “가짜 이시도리안 교령집”을 비롯한 다른 위조 문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가짜 이시도리안 교령집은 클레멘스(기원후 88-97)로부터 이시도레 메르카토르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간주되는 9세기의 한 수집물과 관련이 있는, 대 그레고리(기원후 590-604)에 이르기까지 초기 교황들에게 바쳐진 가짜 편지들이다. “가짜 이시도리안 교령집”이란 말은 15세기에 원전 비평이 대두한 이후 사용되었다.
67가짜 이시도레는 Hispana Gallica Augustodunensis(히스파나 갈리카 아우구스토두넨시스)라고 불리워지는, 정당한 법규들의 모음집을 그의 위조 문서의 기초로 삼음으로써 발각될 위험성을 줄였다. 왜냐하면 법규들의 모음집은 일반적으로 옛 것에다 새 것을 더하는 식으로 만들어졌지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위조 문서는 진짜와 뒤섞인 까닭에 얼른 식별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이 가짜 이시도리안 위조 문서의 허구성은, 내적 증거와 출전에 대한 조사와 사용된 방법과 그 내용이 기원후 852년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해서 증명됨으로써 명백히 인정되고 있다. 역사가들은 그 모음집은 기원후 850년 또는 851년에 완성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그 문서는 기원후 857년에 the Admonitio of the capitulary of Quierzy에서 처음으로 인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68이 위조 문서의 저자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프랑스의 라임즈에서 9세기에 형성된 진취적인 새로운 교회로부터 퍼졌을 것이다. 라임즈의 주교였던 힝크마르가 이 교령집을 그의 Rothad of Soissons의 증서에 사용하였다는 사실이 인정되는데, 그는 기원후 864년에 이 교령집을 로마로 가져가 교황 니콜라스 I세 앞에 제출하였다.
69그것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 가운데는 쿠사의 니콜라스(1401-1464), 찰스 두모울린(1500-1566) 및 조오지 카산더(1523-1566)가 있었다. 그 허구성을 지적한 반박할 수 없는 증거는 1628년에 데이빗 블론델에 의해 전해졌다.
70Migne Patroltia Latina, CXXX에는 한 초기 판이 나타난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훌륭한 원고를 보기 위해서는, P. Hinschius, Decretales Pseudo-Isidorianae et capitula Angilramni (Leipzig, 1863)을 참조하라. the New Schaff-Herzog Encyclopedia of Religious Knowledge (1950), vol. IX, pp. 343-345를 찾아보자. 또한 H. H. Milman, History of Latin Christianity; including that of the Popes to the Pontificate of Nicholas V (9 vols.), vol. III; J. J. I. Dollinger, The Pope and the council (1863)과 K. S. Latourette, A History of the Expansion of Christianity (1938), vol. III; Catholic Encyclopedia. vol. V, art. “False Decretals” 및 Fournier, Etudes sur les Fausses Decretales, in Revue d'Historique Ecclesiastique (Louvain), vol. VII (1906) and vol. VIII (1907)을 참조하라.
71부록 7 힐데브란트(그레고리우스 VII)의 명령라틴어로 된 원본을 보기 위해서는, Baronius, Annales Ecclesiastici, An. 1076, vol. 17, pp. 405, 406, of the Paris printing of 1869와 the Monumenta Germaniae Historica Selecta, vol. III, p. 17을 참조하라. 영어 번역본을 보기 위해서는, Frederic A. Ogg, A Source Book for Medieval History (New York: American Book Co., 1907), ch. 16, sec. 45, pp. 262-264; and Oliver J. Thatcher와 Edgar H. McNeal, Source Book for Medieval History (New York: Chas. Scribner's Sons, 1905), sec. III, it. 65, pp. 136-139를 참조하라.
72칙령에 대해 논의한 내용을 보기 위해서는, James Bryce, The Holy Roman Empire, rev. ed., ch. 10과 James W. Thompson and Edgar N. Johnson, An Introduction to Medieval Europe, 300-1500, pp. 377-380을 참조하라.
73부록 8 연옥―조셉 화디 브루노 박사는 연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연옥이란 현실 생애가 끝난 다음에 고통받는 상태이다. 이 곳에서는 더러움과 죄에 대하여, 그리고 그들이 받아야 할 영원한 고통에 대하여 그들의 치명적인 죄를 용서받은 다음에 이 세상을 떠났으나 여전히 그러한 죄들 때문에 지불해야 할 일시적인 형벌의 빚을 지고 있는 영혼들이 한 동안 머무는 곳이다. 또한 가벼운 죄만을 지은 영혼들이 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가는 곳이다.”―Catholic Belief, p. 196 (ed. 1884; imprimatur Archbishop of New York).
74또한 K. R. Hagenbach, Compendium of the History of Doctrines, vol. I, pp. 234-237, 405, 408; vol. II, pp. 135-150, 308, 309 (T. and T. Clark ed.); Chas, Elliott, Delineation of Roman Catholicism, b. 2, ch. 12; Catholic Encyclopedia, art. “Purgatory”를 참조하라.
75부록 9 면죄부―면죄부의 교리에 대한 상세한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M. Creighton, A History of the Papacy From the Great Schism to the Sack of Rome (London, New York, Bombay, and Calcutta: Longmans, Green and Co., 1911), vol. V, pp. 56-64, 71; Catholic Encyclopedia, art. “Indulgences,” vol. VII, pp. 783-789; H. C. Lea, A History of Auricular Confession and Indulgences in the Latin Church (Philadelphia: Lea Brothers and Co., 1896); Thomas M. Lindsay, A History of the Reformation (New York: Chas. Scribner's Sons, 1917), vol, I, pp. 216-227; A. H. Newman, A Manual of Church History (Philadelphia: The American Baptist Publication Society, 1953), vol. II, pp. 53, 54, 62; L. von Ranke, History of the Reformation in Germany (2d London ed., 1845, tr. by S. Austin, vol. I, pp. 331, 335-337, 343-346); Preserved Smith, The Age of the Reformation (New York: Henry Holt and company, 1920), pp. 23-25, 26을 참조하라.
76종교 개혁 기간 중 면죄부 교히가 행한 실제적인 일에 대해서는, H. C. Lea 박사의 다음 논문을 참조하라. “Indulgences in Spain,”published in Papers of the American Society of Church History, vol. I, pp. 129-171. 이 역사적인 정보의 가치에 대하여, 리어 박사는 시작 절(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루터와 에크 박사와 실베스터 프리에리아스 사이에 있은 열띤 논쟁에도 냉정을 유지하는 가운데, 스페인은 계속해서 평온을 유지하며 옛 관례를 따랐다. 그리하여 역사의 순수한 빛 가운데서 이 문제를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공문서들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77부록 10 미사―트렌트 공회에서 발표된 미사의 교리를 알기 위해서는, the Canons and Decrees of the Council of Trent, in Philip Schaff, Creeds of Christendom, vol. II, pp. 126-139를 참조하라. 이 곳에는 본문이 라틴어와 영어로 나와 있다. 또한 H. G. Schroeder, Canons and Decrees of the Council of Trent(St. Louis, Missouri; B. Herder, 1941)도 참조하라.
78미사에 대한 논의 사항을 알기 위해서는, Catholic Encyclopedia, vol. V, art. “Eucharist” by Joseph Pohle, p. 57ff.; Nikolaus Gihr, Holy Sacrifice of the Mass, Dogmatically, Liturgically, Ascetically Explained, 12th ed.(St. Louis, Mo.: B. Herder, 1937); Josef Andreas Jungmann, The Mass of the Roman Rite, Its Origins and Development, tr. by Francis A. Brunner (New York: Benziger Bros., 1951)를 참조하라. 비 가톨릭교회의 견해를 알기 위해서는,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b. 4, chs. 17 and 18; and Edward Bouverie Pusey, The Doctrine of the Real Presence, as contained in the Fathers (Oxford, England: John H. Parker, 1855)를 참조하라.
79부록 11 왈덴스인들 사이의 안식일―왈덴스인들이 일반적으로 제칠일 안식일을 준수했다고 주장하는 저자들이 있다. 이같은 개념은 왈덴스인들이 the dies dominicus 또는 주의 날(일요일)을 지키는 것으로 묘사하는 라틴어 원서로 된 자료에서 야기되었다. 그러나 이 자료에서는 종교 개혁 때부터 있어온 관례대로 “일요일”에 해당되는 말이 “안식일”로 번역되었다.
80그러나 왈덴스인들 가운데서도 다소 제칠일 안식일을 준수한 역사적인 증거가 있다. 15세기 중엽에 어떤 모라비아의 왈덴스인들을 심문한 종교 재판소의 기록은 왈덴스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유대인들과 더불어 진정으로 안식일을 기념하고 있”음을 밝혀준다.―Johann Joseph Ignaz von Dollinger, Beitrae zur Sektengeschichte des Mittelalters (Contributions to the History of the Sects ofthe Middle Ahes), Munich, 1890, part 2, p. 661. 이 자료가 제칠일 안식일 준수를 나타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81부록 12 왈덴스인 역 성경―최근에 발견된 왈덴스인들의 원고에 대해서는, M. Esposito, “Sur quelques manuscrits de l' ancienne litterature des Vaudosis du Piemont” in Revue d'Historique Ecclesiastique (Louvain, 1951), p. 130 ff.; F. Jostes, “Die Waldenserbibeln” in Historisches Jahrbuch, 1894; D. Lortsch, Histoire de la Bible en France (Paris, 1910), ch. 10을 참조하라.
82왈덴스인의 “바르바리”(왈덴스인 설교자들을 일컫는 칭호)들에 의해서 기록된 한 고전은 대박해의 때에 기록되었으며, 그림들과 더불어 직접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Jean Leger's Historie Generale des Eglises Evangeliques des Vallees de Piemont (Leyden, 1669)이다.
83왈덴스인 성경 본문의 문학성에 대해서는, A. deStefano, Civilta Medioevale (1944)와 Riformatori ed eretici nel medioeve (Palermo, 1938); J. D. Bounous, The Waldnesian Patois of Pramol (Nashville, 1936)와 A. Dondaine, Archivum Fratrum Praedicatorum (1946)을 참조하라.
84왈덴스인들의 역사에 대해서 보다 최근에 나온 것으로 믿을 만한 것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E. Comba, History of the Waldenses in Italy (see later Italian edition published in Torre Pellice, 1934); E. Gebhart, Mystics and Heretics (Boston, 1927); G. Gonnet, II Valdismo Medioevale, Prolegomeni (Torre Pellice, 1935): and Jalla, Histoire des Vaudois et leurs colonies (Torre Pellice, 1935).
85부록 13 반 왈덴스인 칙령―1847년 인노센트 VIII세에 의해 반포된 교황의 반(反)왈덴스인 교서(이 교서의 원본은 캠브리지 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Dowling's History of Romanis, b. 6, ch. 5, sec. 62 (1ed., 1871)에 영어로 번역되어 실려있다.
86부록 14 위클리프―위클리프의 이름은 다양하게 철자되고 있다. J. Dahmus, The Prosecution of John Wyclyf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52), p. 7을 참조하라.
87교황의 반 위클리프 교서의 원문과 영어로 번역된 내용을 보기 위해서는, J. Dahmus, The Prosecution of John Wyclyf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52), pp.35-49와 John Fox, Acts and Monuments of the Church (London: Pratt Townsend, 1870), vol. III, pp. 4-13을 참조하라.
88캔터베리의 대주교와 에드워드왕과 옥스포드 대학교 총장에게 보내진 이들 교서의 요약을 보기 위해서는, Merle D'Aubigne, The History of the Reformation in the Sixteenth Century (London: Blackie and Son, 1885), vol. IV, div. 7, p. 93; August Neander, General History of the Christian Religion and Chruch (Boston: Crocker and Brester, 1862), vol. IV, pp. 146, 147; George Sergeant,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Dallas: Frederick Publishing House, 1948), p. 323; Gotthard IV. Lechler, John Wycliffe and His English Precursors (London: The Religious Tract Society, 1878), pp. 162-164; 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New York: Chas. Scribner's Sons, 1915), vol. IV, part 2, p. 317을 참조하라.
부록 15 무류설―p. 52의 내용을 참조하라.
89부록 16 콘스탄스 공의회―콘스탄스 공의회에 대한 주요한 자료는 Ulrich von Richental, Das Cncilium so zu Constanz gehalten ist worden. Augsburg, 1483 (Incun.)이다. “Aulendorf Codex”에 기초한 이 원문에 대한 최근의 흥미있는 연구 결과는 the Spencer Collection of the New York Public Library, published by karl Kup, Ulrich von Richental's Chronicle of the Council of Constance (New York, 1936)에 나타나 있다. 또한 H. Finke (ed.) Acta Concilii Constanciensis, vol. VI, VII; L. Mirbt, Quellen zur Geschichte des Papsttums umd des Romischen Katholizismus (1934); Milman, History of Latin Christianity, vol. VII, pp. 426-524; Pastor, The History of the Popes (34 vols.), vol. I, p. 194 ff도 참조하라.
90콘스탄스 공의회에 관한 보다 최근의 출판물들은 K. Zahringer, Das Kardinal Kollegium auf dem Konstanzer Konzil (Munster, 1935); Th. F. Grogau, The Conciliar Theory as it manifested itself at the Council of Constance (Washington, 1949); Fred A. Kremple, Cultural Aspects of the Council of Constance and Basel (Ann Arbor, 1955); John Patrick McGowan, d'Ailly and the Council of Constance (Washington: Catholic University, 1936)이다.
91얀 후스에 대해서는, John Hus, Letters, 1904; E. J. Kitts, Pope John XXIII and Master John Hus (London, 1910); D. S. Schaff, John Hus (1915); Schwarze, John Hus (1915)와 Matthew Spinka, John Hus and the Czech Reform (1914)를 참조하라.
92부록 17 제수이트의 교의―이 결사 단체의 회원들이 개괄한 “제수이트”의 기원과 원칙과 목적을 알기 위해서는, Rev. John Gerard, S. J.가 편집하고, 1902년 런던에서 the Catholic Truth Society가 출판한 Concerning Jesuits를 참조하라. 이 책에 따르면, “전(全) 제수이트 조직의 주요 동기는 전적인 순종의 정신이다. 성(聖) 이그나티우스는 기록하기를, ‘각자는, 순종의 관계 하에 사는 자들은 어디로 운반되든지 어떤 식으로 취급되든지 자신을 내맡기는, 마치 죽은 몸인 것처럼 또는 그것을 손에 쥐고 어느 길로 내딛든 그가 원하는 대로 봉사하는 노인의 손에 들린 지팡이처럼 그들의 상급자를 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움직이고 지시를 받도록 자신을 내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확신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93이같은 절대적인 복종은 그 동기에 의하여 고상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신속하고 즐거우며 끈기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그 설립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순종하기를 좋아하는 경건한 자들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가운데, 일반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상급자들이 그에게 위탁한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성취한다.”―The Comtesse R. de Courson, in Concerning Jesuits, p. 6.
94또한 H. Boehmer, The Jesuits (translation from the German. Philadelphia: Castle Press, 1928); E. Goethein, Ignatius Loyola und die Gegenreformation, (Halle, 1895); T. Campbell, The Jesuits, 1534-1921 (New York, 1922); E. L. Taunton, The History of the Jesuits in England, 1580-1773 (London, 1901)을 참조하라.
95부록 18 종교 재판소―로마 가톨릭의 견해를 알기 위해서는, the Catholic Encyclopedia, vol. VIII, art. “Inquisition,”by Joseph Blotzer, p. 26 ff.와 E. Vacandard, The Inquisition: A Critical and Historical Study of the Coercive Power of the Church (New York: Longmans, Green, and Company, 1908)을 참조하라.
96영국 국교회―가톨릭 교도의 견해를 알기 위해서는, Hoffman Nickerson, The Inquisition: A Political and Military Study of Its Establishment를 참조하라. 비 가톨릭 교도들의 견해를 알기 위해서는, Philip van Limborch, History of the Inquisition; Henry C. Lea, History of the Inpuisition in the Middle Ages, 3 vols.; History of the Inpuisition in Spain, 4 vols.와 The Inpuisition in the Spanish Dependencies와 A. S. Turberville, Medieval Heresy and the Inquisition (London: C. Lockwood and Son, 1920, a mediating view)을 참조하라.
97가톨릭의 역사적인 국면 중에 개신교도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모으는 것은 아무래도 박해자로서의 모습일 것이다. 현대의 가톨릭 당국자들이 그들의 교회가 저지른 소름 끼치는 종교 탄압의 이미지를 완화시키려고 백방으로 애스고 있는 사실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 자신도 종교 탄압의 역사적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새 가톨릭 백과사전(New Catholic Encyclopedia)에서도 “현대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 종교 재판 특히 중세의 막바지에 스페인에서 자행했던 종교 재판은 교회 역사에 있어서 가장 어두운 기록의 하나로 분류될 수 있다”고 했다. 이 사전은, 네덜란드에서만 50년 동안에 2천명의 개신교도들이 살해되었으며, 1572년 8월 23일 밤에 개시되었던 성 바돌로매(Bartholomew)의 대학살에서 3-4천명의 프랑스 위그노(Huguenots) 교도들이 살해된 것을 인정하고 있다(New Catholic Encyclopedia, arts. “Inquisition,”“Autoda-Fa”and “St. Bartholomew's Day, Massacre of.”).
98이 숫자는 최소한의 숫자이다. 이 숫자에는 알비조 파 신도들(Albigenses)과 왈덴스인들을 근절키 위해 로마 가톨릭이 일으킨 십자군들의 만행이 간과되었다. 또 이 숫자에는 산발적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종교 박해의 행위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개신교도들과 가톨릭 모두를 합쳐 8백만명 이상의 군인 및 민간인 사상자들을 낸 것으로 추정되는 30년 전쟁(1618-1648)도 포함되지 않았다. 비 가톨릭계 인사들의 연구를 보면, 네덜란드의 개신교도 피살자가 2천명을 훨씬 초과하면, 프랑스 위그노의 피살자 수도 3-4천명을 훨씬 초과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약 5천명의 그리스도인을 살해한 로마 제국이 다니엘서 7장에서 “무섭고 놀라운” 짐승으로 기록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당시 로마 제국은 이교 제국이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수많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는 모습은 하나님께 얼마나 참혹하게 보였을 것인가! “단 한 마리의 참새도 그대의 하나님 몰래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마 10:29 필립 역). 하나님께서 세상을 돌보시고 계시는 것이다!
99통계야 어떠하든지, 숫자만으로는 개인적인 고뇌를 나타내지 못한다. 화형주에 묶이우기 전에 그의 발이 먼저 불에 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영국 사람 존 브라운(John Brown)의 고통이라든지, 젖먹이 어린 아기와 함께 자루 속에 묶여 익사해야 했던 헬렌 스타르크(Helen Stark)의 고뇌, 그리고 2주 동안이나 팔과 다리가 묶이운 채로 매달린 그의 아버지에게 동정을 나타내었다는 이유로 곤봉에 맞아 죽어야 했던 8살짜리 빌리 페티(Billy Fetty)의 고통 같은 것은 통계에 나타날 수가 없는 것이다(John Foxe, Book of Martyrs(New York: Charles K. Moore, 1847). chaps. on persecutions in Scotland under Henry VIII and in England under Mary).
100통계 숫자는 살을 태우고 말리는 듯한 고문의 고통을 전달해 줄 수 없다. 여러분은 손을 등 뒤로 묶은 후 그 손을 다시 밖으로 빼내어 위로 들어올려 어깨의 관절을 골절케 만드는 고문을 상상해 보았는가? 또 여러분은 손목에 체중을 싣고 물구나무를 서게 하여 종교 재판의 심문관이 예수 그리스도와 거룩한 교회의 이름으로 “이래도 신앙을 철회하지 않겠느냐?”하며 다그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가?
101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그처럼 잔인할 수 있었는가 하고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거듭났다는 복음주의의 신앙인들도 서로 “통렬한” 비난을 교환할 수 있고 근거 없는 뜬소문으로 사람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에 열을 낼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우리는 모두 하늘의 도움이 필요하다.
102우리는 또한 중세 시대에 인명이 천시되어 심지어는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그 아비가 교수형에 처해졌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우리는 합법적인 고문의 역사에서 무엇인가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103로마 제국의 사법 판사들은 로마법에 의거하여 피소된 사람을 으레 중죄인으로 보기 일쑤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죄를 고백하게 하기 위해서는 고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고문 자체를 피소인이 받아야 할 형벌의 일부로 간주하였다. 박해를 받아야 했던 그리스도인들은 실제적인 형 집행의 과정에서보다도 로마 법정에서의 심문 과정에서 더 큰 고통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104게르만 족들이 로마 제국을 점령함으로써, 법정 고문의 관습은 대부분 중지되었다. 850년경에, 고츠초크(Gottschalk)라는 한 수도승이 한 교회 법정에서 고문을 받게 되었다. 그가 예정설의 교리에 대해 비 가톨릭적 견해를 신봉한 까닭이었다. 이 때, 프랑스의 리용 주민들이 맹렬한 항의를 제기했다. 그들은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성한 너희들은 온유한 심정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고 한 사도 바울의 권면을 가지고 주교에게 항의하였다.―George E. McCeraken and Allen Cabaniss, eds., Early Medieval Theology, eds. John Baillie, John T. McNeill, and Henry p. Van Dusen, The Library of Christian Classics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57), vol. 9, pp. 168, 169를 보라.
105그런데 12세기에 와서 로마법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되었으며, 고대 로마의 법정 고문의 관습이 다시 유행하게 되었다. “새 가톨릭 백과사전”에 보면, “게르만 족들의 관습과 개념의 영향을 받아 9-12세기에 걸쳐 고문이 거의 폐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로마법의 부흥과 더불어 12세기에 와서 법정 고문의 관습이 다시 부활되었다…. 1252년에, 교황 인노센트 4세는 이단에 대한 시정(市政) 당국의 고문 행위를 인준하였으며, 이로써 고문은 종교 재판의 심리 과정에 있어 필수적인 절차의 하나로 인정받게 되었다”(New Catholic Encyclopedia. art.“Torture”를 보라).
106부록 19 프랑스 대혁명의 원인 ―프랑스 국민들이 성경과 성경을 신봉하는 종교를 거절한 그 광범위한 결과에 대해서는, H von Sybel, History of the French Revolution, b. 5, ch. 1, pars. 3-7; H. T. Buckle, History of Civilization in England chs. 8, 12 (New York ed, 1895, vol. I, 364-366, 369-371, 437, 540, 541, 550); Blackwood's amgazine, vol. 34 No. 215 (November, 1833, p. 739) J.G Lorimer, an Historical Sketch of the Protestant Chruch in France, ch. 8, Pars. 6,7을 참조하라.
107부록 20 성경을 금지하고 폐지하고 폐지시키려는 노력들―알비젠스들을 박멸하려던 운동이 일어날 무렵에 개최된 툴루스 공의회에서는 다음 사항을 결정하였다. “우리는 평신도들이 구약과 신약 성경을 복사해서 소유하는 것을 금지한다….” “성경을 소유한 것으로 입증된 사람들의 거주지는 가장 비천한 헛간일지라도, 심지어는 지하의 은신처일지라도 완저히 소탕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숲이나 동굴속에서라도 찾아낼 것이며, 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엄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Concil Tolosanum, Pepe Gregorius IX, Anno chr. 1229.Decrees 14, 2. 이 공의회는 알비젠스들을 박멸하려는 때에 개최되었음을 기억하라.
108“이 유해물(성경)은 그처럼 확대되었으므로 어떤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목사를 임명하기에 이르렀으며 심지어 어떤 전도자들은 복음의 진리를 왜곡시키고 파괴하기까지 하였다…성경으로 설교하고 설명하는 것이 평신도들에게는 전적으로 금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Acts of Inquisition, Philip van Limborch, History of the Inquisition, ch. 8.
1091234년에 개최된 타라고나 공의회에서는 다음 사항을 결정하였다. “…이교도로 고소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라도 로마어로 된 구약이나 신약성경을 읽거나 배포해서는 안 된다.”
1101415년에 있은 콘스탄스 공회에서, 위클리프는 사후(死後)에 캐터베리의 아룬델 대주교가 보낸 권고에 따라 “성경을 그의 모국어로 새롭게 번역한 유해하고 비열한 가증스러운 이교도” 라는 정죄를 받았다.
111로마 카톨릭 교회에 의해 가해진 성경에 대한 반대는 수세기 동안 계속되었으며, 특별히 그같은 반대가 증가된 것은 성서 공회의 성공 때문이었다. 1864년 12월 8일에 교황 피우스 IX세는 그의 회칙(回勅)인 콴타쿠라(Quanta cura)에서 각기 다른 열 개의 제목 하에 80가지의 오류를 밝힌 교서 요목을 발표 비밀 결사회, 성서공회…이같은 종류의 염병들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박멸해야 한다.”
112부록 21 공포 시대―프랑스 대혁명의 역사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신빙성 있는 입문서를 보기 위해서는, L. Gershoy, The French Revolution (1932)와 G. Lefebvre, The Coming of the French Revolution (Princeton, 1947)와 H. von Sybel, History of the French Revolution, 4 vols. (1869)를 참조하라.
113The Moniteur Officiel은 대혁명 당시의 정부 문서였다. 이것은 주요한 자료로서 의회가 취한 행동들에 대한 실제적인 설명과 서류들의 전문 (全文)을 담고 있다. 이것은 재발행되었다. 또한 A. Aulard, Christianity and the French Revolution (London, 1972)과 W. H. Jervis, The Gallican Church and the Revolution (London, 1882)을 참조하라.
114프랑스 대혁명 기간 동안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해서는, Henry H. Walsh, The Concordat of 1801; A study of nationalism in relation to Church and State (New Your, 1933)와 Charles Ledre, L’Eglise de France sous la Revolution (Paris, 1949)를 참조하라.
115프랑스 대혁명의 종교적인 의미에 대한 당대의 연구서로는 G. Chais de Sourcesol의 Le Livre des Manifestes (Avignon, 1800)가 있는데, 저자는 혁명의 원인과 그것의 종교적인 의미 등을 규명하고자 애썼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James Bicheno, The Signs of the Times (London, 1797); W. Linn, Discourses on the Signs of the Times (New York, 1794); James Winthrop, A Systematic Arrangement of Several Scripture Prophecies Relating to Antichrist; With Their Application to the course of History (Boston, 1795); and Lathrop, The Prophecy of Daniel Relating to the Time of the End (Springfield, Mass., 1811).
116대혁명 기간 동안의 교회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W. M. Sloan, The French Revolution and Religious Reform (1901); P. F. La Gorce, Historie Religeuse de la Revolution (Paris, 1909)을 참조하라.
117교황과 관계에 대해서는 바티칸의 비밀 서류철에 기초한 G. Bourgin, La France et Rome de 1788-1797(Prais, 1908)와 특별한 교황 피우스 VI세와 1775-1779년의 위기에 관심을 기울인 A. Latreille, L 'Eglise Catholique et la Revolution (pris, 1950)을 참조하라.
118대혁명 기간 동안의 프로테스탄트에 대해서는, Presense (ed), The Reign of Terror (Cincinnati, 1869)를 참조하라.
119부록 22 대중과 특권 계급―대혁명 전에 프랑스에 만연돠어 있던 사회 상태에 대해서는, H. von Holst, Lowell Lectures on the French Revolution, lecture 1과 Taine, Ancient Regime과 A. Young, Travels in the France를 참조하라.
120부록 23 보복―프랑스 대혁명의 응보적인 성겨에 관하여 구체적인 사항을 더 알기 위해서는, Thos. H. Gill The Papal Drama, b, 10과 E, de Pressense, The Church and the French Revolution, b.3, ch. 1을 참조하라.
121부록 24 공포 시대의 잔학 행위―M.A. Tjiers, History of the French Revolution, New York ed., 1890, tr by F. Shoberl, vol, 3, pp.42-44; 62-74, 106; F.A. Mignet, History of the French Revolution, Bohn ed., 1894, ch. 9 par. 1; Sir Archibald Alison, History of Europe, From the Commencement of the French Revolution to the Restoration of the Bourbons, vol. 1, ch. 14 (New York ed., 1872, vol 1, pp 293-312)를 참조하라
122부록 25 성경의 반포―영국 해외 성서 공회의 월리암 캔톤 씨에 따르면, 1804년에 “원고의 상태건 인쇄된 상태건, 모든 나라에서 번역되어 현존하고 있는 전 세계의 성경은 전부 4백만부 이상이 되지 않았다…이 4백만부가 기록된 각종 방언들은 이미 사어(死語)가 된 Moeso-Gothic of Ulfilas와 Anglo-Saxon of Bede어를 포함에서 약 50개 어로 산정된다.”―What Is the Bible Society? p.23(rev. ed.,1904).
123미국 성서 공회는 1816년부터 1955년까지 신구약 합본과 낱본 형태로 4억 8114만 9365부를 배포한 것으로 기록하였다. 같은 기간 동안 영국 해외 성서 공회는 성경 전서와 쪽복음 형태로 6억부 이사의 성경을 배포하였다. 미국 성서 공회는 1955년 한 해 동안에만 신구약 합본과 낱본을 합쳐 도합 2381만 9733부를 배포하였다.
124부록 26 해외 선교―초기 그리스도의 선교활동은 현대에 이르기까지는 배가 된지 않았다. 십자국 원정이 계속되던 1000년 경에는 사실상 그것마저도 사라지고 없었다. 종교 개혁 시대에는 초기 예수회의 활동을 제외하고는 해외 선교란 거의 없었다. 경건의 부흥은 약간의 선교사들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해외 선교 활동의 대대적인 부흥은 “마지막 때”(단 12:4)인 1800년 경에 시작된다. 1792년에는 침례교회 선교회가 조직되어 캐리가 인도로 파견되었다. 1795년에는 런던 선교회가 조직되었으며, 1799년에는 또 다늘 선교회가 조직되었는데, 그것은 1812년에 교회 선교회가 되었다. 그 직후에는 웨슬리 감기교 선교회가 조직되었다. 미국에서는 1810년에 미국 해외 선교 위원회가 결성되었으며, 그 해에 아도니람 저드슨이 캘커타로 파견되었다. 그는 그 다음 해에 미얀마르(버마)로 가서 개척하였다. 1814년에는 미국 침례 선교 연합회가 조직되었다. 장로교 해외 선교 위원회는 1837년에 결성되었다.
125“1800년에…생겨난 압도적인 수의 그리스도인들은 1500년 이전에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의 후손들이었다…. 이제 19세기에 이르러는 그리스도교가 더 크게 확장되었다. 앞선 3세기 동안에 복음이 최초로 들어간 주요한 나라들이나 대륙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 일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스트레일리아를 제외한 보다 큰 땅덩어리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과 놓은 문명을 이룩한 그 모든 지역에는 이미 1800년 이전에 그리스도교가 소개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이미 복음이 들어간 지역이나 사람들 가운데서 새로운 교두보를 획득하는 일이었다. 곧 새로운 교두보와 옛 교두보로 부터 전례없이 영역을 확대시켜 이전에 복음을 받은 적이 없었던 대다수의 나라와 섬들과 사람들과 종족들에게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도록 하는 것이다,,,,
12619세기에 있은 그리스도교의 전파는 주로 그리스도인의 충격에서 비롯된 경건한 생애의 새로운 폭팔력에 힘입었다.... 이에 상응하는 그 어떤 시간대에서도 그리스도인 충격이 그처럼 큰영향을 미친적도 결코 없었다. 19세기 동안에 있은, 그리스도교의 숫적인 힘과 영향력을 그처럼 증가시킨 선교 활동은 이같은 엄청난 활력에서 유래하였다.”―Kenneth Scott Latourette, A History of the Expansin of Christianity, vol. IV. The Great Century, A. D 1800-A.D. 1914 (New York: Harper and Bros., 1914, pp 2-4.
127부록 27 예언상 연대들―유대인들의 계산에 의하면, 아닥사스다 왕 통치 제7년 제5월(Ab)은 기원전 457년 7월 23일부터 8월 21일까지였다. 왕의 칙령은 에스라가 그 해 가을에 예루살렘에 도착한 이후에 발표되었다. 기원전 457년이 아닥사스다 왕 제7년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S. H. Horn and L. H. Wood, The Chronology of Ezra 7 (Washington, D. C.: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n., 1953); E. G. Kraeling, The Brooklyn Museum Aramaic Papyri (New Haven or London, 1953), pp. 191-193; The Seventh-day Adventist Bible Commentary (Washington, D. C.: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ociation, 1954), vol. 3, pp. 97-110.을 참조하라.
128다니엘 8장과 9장의 연결(Maxwell, C. Mervyn, God Cares, vol. 1(Ontario, Canada : Pacific Press Publishing Association, 1981), pp. 201-205). “다니엘서 9장은 다니엘서 8장 14절을 설명하고 있고, 다니엘서 8장과 9장이 합해서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기본적인 전제이다. 가브리엘이 나타났을 때, 다니엘은 그가 “이전에 이상 중에 본 그 사람”임을 알아차렸다. 가브리엘의 첫 마디는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다”였다.
129가브리엘은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고 치하를 한 다음에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으라”고 하였다.
130가브리엘은 다니엘 8장의 “이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할” 책임을 지고 있었다. 그는 8장 14절의 성소 정결과 2,300주야에 관한 사항을 제외한 모든 사정을 8장에서 설명했다. 다니엘은 성소의 정결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치 않았으나 2,300일 문제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문자 그대로 2,300일이란 뜻인가? (다니엘이 바라는 사항이기도 했다.) 아니면, 다니엘 8장 3-14절과 에스겔 4장 6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상징적인 것인가? 2,300년이란 뜻이라면 2,300년 동안에는 예루살렘 성전의 타밋봉사가 회복되지 못할 것이란 말인가? 그렇게 된다면, 예레미야의 70년 예언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다니엘은 시기의 계산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시기에 관한 진술로 그의 설명을 시작했다.
13170 이레(週)로 기한을 정하고. 가브리엘은 말하기를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고 하였다(단 9:24). 70이레(週)!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70년 예언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가브리엘은 그 기간의 7배에 이르는 기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가브리엘의 70이레는 490년(70×7)을 뜻하는 것이란 점에 있어서는 성경주석들 사이에 이의가 없다.
132490년을 “정했다”는 표현이 영어 개역표준역(譯)에서는 “구획했다”(marked out)로, 흠정역에서는 “결정했다”(determined)로 되어 있다.
133중요한 히브리 낱말로 카타크인데, 이것은 니츠다크와 마찬가지로 성경에 단 한번 나온다.
134그러나 카타크가 비록 성경에는 단 한번밖에 나오지 않지만 성경이외의 용례를 통해서 학자들은 이 단어를 익히 알고 있다. 겐세니우스(Genesenius)의 유명한 히브리-영어사전에 따르면 그 단어의 뜻은 “자르다” 또는 “나눈다”이다. 고대 랍비들은 “절단하다”의 뜻으로 이 단어를 사용했다.
135성서 번역자들도 카타크의 뜻이 자르다, 나누다, 절단하다라는 것을 알고 있으나 문자적인 번역으로 뜻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다른 표현을 사용해 본 것이다. 이를테면, “구획했다”, “결정했다”, “정했다”, “원근법으로 그리다”등의 표현들이다.
136가급적이면 그 단어를 옮기는 것이 제일 좋다. 가브리엘은 2,300일을 설명하기 위해 왔던 것이다. 그는 490년을 더 긴 기간에서 “잘라냈다” 또는 “절단했다”는 이야기로부터 그의 설명을 시작했다. 문제는 이처럼 단순한 것이다.
1372,300일의 길에 관한 다니엘의 지겨운 의문의 답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해(年)수로 따지면 7년 안팎에 불과한 2,300일에서 490년을 “잘라낼”도리는 없는 것이므로 그 해답은 간단해진다. 2,300일은 상징이며 2,300년을 뜻하는 것이다.
138다니엘은 2,300년이 언제 끝나는지를 계산해 내기 위하여 그 기산점이 어딘지를 알고자 했다. 이는 우리로서도 대단히 궁금한 사항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잠시 후면 가브리엘이 그 정보를 알려줄 것이다.
13970이레로 분할됨.우리는 먼저 가브리엘 천사가 다니엘 9장 25-27절에서 70이레의 기간을 7주(49년), 62주(434년), 1주 (7년)의 기간으로 세 토막내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또 마지막 1주를 둘로 나누었다(3년 반씩).
14070이레의 시작. 25절을 보면 “깨달아 알지니라(깨닫다([understand]란 중요한 동사가 또 나오고 있다. )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가 지날 것이요”하였다.
141다니엘은 언젠가 예루살렘의 이 회복을 명하는 칙령이 있을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크게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이 칙령에 대해 좀더 알아야 할 사항이 없을까?
142있다. 사실 우리는 세 개의 칙령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들은 모두 서기관 에스라에 의해 기록으로 보관되었다.
1431. 첫 번째 조서는 기원전 538년(또는 537년)에 고레스대왕이 반포한 것으로서, 유대인 유랑인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하나님을 위하여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도록 허락하였다(스 1:2-4). 고레스는 이 칙령에 맞추어 앞서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으로 가져온, 그리고 이 조서가 있기 1, 2년 전 고레스에게 패망하기 전날 밤에 벨사살이 불경스럽게 술 마시는 데 사용했던 성전 기명들을 예루살렘으로 송환토록 조치하였다. 그릇의 수는 5,469점에 달했다(스 1:7-11).
144그 해 안으로 약 5만명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그 땅에 살고 있던 비유태계 주민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친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의 기록을 읽노라면 마치 오늘날 중동 특파원의 뉴스 보도를 듣는 것 같다!
성전 재건은 이 같은 저항에 직면하여지지 부진하게 되었다(에스라 2-5장).
1452. 두 번째 조서는 기원전 519년 경 다리우스 1세 히스타스페스(Darius 1 Hystaspes : Darius the Mede와 혼돈해서는 안 된다)에 의해 반포되었다. 다리우스는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레스 대왕의 조서를 확인해 달라는 요청서를 받았다. 다리우스는 바벨론과 에크바타나(Ecbatana)에 있는 페르시아의 기록 보관소를 철저히 조사토록 명하고 드디어 이 조서의 공식 비망록이 발견되자(스 6:1-5) 그 조서의 확인서를 흔쾌히 발행하였다(스 6:6-12).
1463. 세 번째 조서는 아닥사스다(아르탁세륵세스) 1세 롱기마누스(Artaxerxes 1 Longimanus. 롱기마누스란 이름은 손이 길었다 해서 생긴 것이다)가 발표한 것이다. 이것은 질적인 면에서는 앞을 두 칙령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이 조서는 에스라에게 행정장관들(有司)과 재판관들의 임명권을 부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행정관들과 재판관들을 정치와 종교의 전권을 장악하여 유대법과 페르시아법에 따라 재판하고 중벌을 내릴 수 있었다. 아닥사스다왕은 명하기를:
147에스라여 너는 네 손을 있는 네 하나님의…율법을 아는 자로 유사와 재판관을 삼아 강 서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정배하거나(유배시키거나) 가산을 적몰하거나 옥에 가둘지니라 하였더라(스 7:25, 26).
148에스라는 그의 보고에서 말하기를 그가 지도 역량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했는데 아닥사스다왕 제7년에 팔레스타인에 도착하고 그 얼마 후에 “왕의 조서를 왕의 관원과 강 서편 총독들에게 부”쳤다고 하였다(스 8:36). 그는 또 말하기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성전 건축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하였다(스 6:14). 그가 세 문서를 언급하면서 조서라는 낱말을 단수로 쓴 것은 이 조서들의 통일성을 나타내려 한 것이며, 그가 특히 세 번째 조서에 주의를 환기시킨 것은 셋째 조서가 없으면 앞서 두 조서가 미진하기 때문이었다.
149예루살렘의 합법적인 제2의 탄생을 가능케 해 준 것은 아닥사스다왕 제7년에 반포된 세 번째 조서였다. 유사와 재판관의 임명권을 부여하고 특별히 지방 정부차원에서 옛 유대 율법의 재건을 허락함으로써 수도 예루살렘의 회복을 가능케 한 것은 이 세 번째 조서였다.
150따라서, 가브리엘이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조서)을 말할 때 그 마음에 두었던 것은 바로 이 세 번째 조서였다.
그렇다면 그 조서의 연대를 알 수 있는가? 물론이다.
151앞에서 보았듯이, 에스라는 아닥사스다왕 제7년 1월에 팔레스타인에 도착한 얼마 후에 왕의 조서를 이행하였다. 유대의 달력은 봄에서 봄까지를 계수하기 때문에, 고대 예루살렘에서의 5월은 우리가 사용하는 현대의 달력으로 7월 중순과 9월 중순 사이에 해당한다(특정한 해의 정월 초하루가 언제인가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난다). 아닥사스다 제7년 5월이면 기원전 457년 늦은 여름이나 초가을에 해당하며 얼마 후 왕의 조서가 이행되었다.
152상당수의 성경학자들이 70이레(週)의 시작을 기원 전 457년이 아니라 기원 전 444년으로 잡고 있는 데 대한 반박(Maxwell, C. Mervyn, God Cares, vol. 1(Ontario, Canada : Pacific Press Publishing Association, 1981), pp. 245-247). 기원 전 457년과 444년[성서 주석가들 중에는 예루살렘 중건령이 B. C. 458년과 445년에 반포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일 강의 엘레판틴(Elephantine) 섬에 있는 한 유대 수비대 촌에서 연대가 기록된 파피루스들, 그 중에서도 “크라일링 6”(Kraeling 6)이라고 알려진 연대가 이중으로 표시된 파피루스가 발견됨으로써 B.C. 457년과 444년 설의 정확성이 확인되었다(Horn과 Wood의 “The Chronology of Ezra 7”을 보라] 두 차례에 걸쳐 바사(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465-423 B.C.)는 예루살렘 중건을 위해 조서를 내렸다. 기원전 457년 조서는 왕의 재위 7년의 것으로서 권한 부여 범위가 대단히 광범위한 것이었다. 기원전 444년의 것은 왕의 재위 20년에 반포된 것으로서 예루살렘 재건에 따르는 권한 인정이 상대적으로 제한된 것이었다(에스라 7장, 느헤미야 2장 참조).
153우선 아닥사스다왕이 다소 변덕스러운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이 두 연대 중에 어느 것을 70이레의 시작으로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예컨대, 그는 언젠가 사나운 사자의 공격으로부터 그를 구출해 준 재치있는 친구를 상 주는 대신 추방했다. 또 한번은 그의 대리인이며 매부이기도 한 메가비주스(Megabyzus)가 이집트의 반란군 지휘자 이나루스(Inarus)에게, 항복하기만 한다면 목숨은 보장한다고 단단히 약속했다. 그런데 몇 년 후, 아닥사스다는 이나루스를 처형해 버렸다.
154바사(페르시아)의 조서는 다시 뒤집을 수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단 6:8; 에 8:8). 아닥사스다 1세의 줏대 없음과 변덕스러움은 메가비주스를 크게 실망시켰고, 결국 그와 그의 동료 페르시아인들이 아닥사스다에 대해 공개적인 반역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로서 바사 제국은 중대 파국에 직면했었다.
155바사 법에서는 한 번의 조서로서도 충분한데 아닥사스다가 예루살렘 중건을 허가하는 두 번째 조서까지 발행하게 된 것은 왕의 변덕과 메가비주스의 반란의 결과였다. 이와 관련된 중요한 사실은 대규모의 반란을 지도할 당시 메가비주스 강(江) 서편 지역의 총독이었다는 것이다.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이 그의 관할 구역이었고, 예루살렘도 그 구역에 포함되었다.
156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를 보면 유대인이 성전과 예루살렘을 중건하며 겪은 고생들이 잘 나타나 있다. 에스라 4장 4-6절에는 고레스(539-530 B.C.), 다리오(522-486), 아하수에로(486-465)의 재위 기간이 겪었던 어려움들이 소개되었다. 에스라 4장 7-23절에는 사마리아인들이 아닥사스다왕(465-423)의 예루살렘 중건 허가에 대해 불평했던 일들과 아닥사스다가 기원전 457년의 조서를 번복하여 성전 중건을 중지시켰던 사정을 보고하고 있다.
157사마리아인들의 이 항의 상소는 지방 관리들이 아닥사스다왕에게 직접 올린 상소였고, 왕은 이 상소를 받고 그 지방 관리들에게 직접 칙답을 보냈다(스 4:7, 8, 17).
158왕과 지방 관리들 모두 지방 총독을 통해 문서를 전달하는 관례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례적 현상은 당시 그 지역 총독이 국왕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항하고 있었다는 사정을 감안하면 이해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당시의 사건 전말을 알기 쉽게 재구성해 보자.
159538/537년에 고레스 왕이 성전 재건과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귀환을 명하는 조서를 내렸다(스 1장).
160520년 경, 강 서편 총독 닷드네(Tattenai : 이 이름이 설형문자 점토판에서 발견되었다)가 당시 16년째 계속되어 온 성전 중건 공사 현황을 직접 답사한 후 다리오(다리우스)왕에게 유대인들에 대한 고레스왕의 성소 중건 조서의 사실 유무를 확인해 달라는 상소를 올린다(스 5:3-17).
161519년 경, 다리오가 고레스의 조서를 확인하는 새 칙령을 반포했다(스 4:1-12). 예루살렘 성의 중건에 대한 고레스, 다리오, 닷드네의 언급은 없고 성전 중건에 대한 그들의 언급만이 있다.
162457년에 아닥사스다 1세가 세 번째 조서를 내렸는데, 이것은 수도로서의 예루살렘의 지위를 회복시키는 칙령이었다. 그는 동시에 유대 법과 바사 법을 시행할 행정관과 재판관들에 대한 임명권까지 부여했다(스 7:12-26). 물론, 이 칙령은 행정부 관리들의 주택, 관청 및 재판소, 성벽, 군인들을 수용할 성채의 건설을 허가하였다. 이러한 건물들과 방비 시설이 없이는 행정관과 사법관의 임명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163에스라는 팔레스틴으로 직행하여 예루살렘을 중건하는 긴 역사(役事)를 지휘한다(스 7:1-10).
164메가비주스가 10여 년 후인 기원 전 448년에 반역을 일으켰다. 이러한 사정은 사마리아인들이 아닥사스다왕으로 하여금 유대인들이 성을 견고히 쌓아 반역을 준비하고 있다고 오해하도록 유도하기에 좋은 배경을 제공했다. 아닥사스다왕은 이같은 상황에 영향을 받아 사마리아인들은 공사를 중단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동안 쌓아올린 성을 허물고 성문과 성전 문을 불살랐다.
165한편, 바사 제국의 여러 수도들의 하나였던 수사 성(1세기 전 다니엘일 다니엘 8장의 묵시를 볼 때 살았던)에서는 느헤미야가 또 고국의 재건 사업을 걱정하고 있었다. 느헤미야는 왕의 “술잔을 받들어 올리는” 사람이었다(느 1:11). 그는 팔레스타인에 큰 반란이 일어나고 있던 사정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왕이 예루살렘 중건을 중지시킨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사태의 추이를 대단히 걱정하였다.
166느헤미야에게는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 한 동생(에스라 7장 2절에 의하면 친동생)이 있었다. 만약, 하나니가 바사(페르시아)로 오기라도 한다면 그를 통해 그 곳 사정을 알아볼 수 있는 일이다.
167그러던 어느 날, 느헤미야의 동생인 하나니가 수사에 찾아왔다. 느헤미야는 이것저것 예루살렘에 대해 궁금한 사정을 물어보게 되었고, 그를 통해 들은 소식은 하나같이 낙담스러운 것뿐이었다.
168하나니에 의하면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는 것이다(느 1:3).
169느헤미야는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여러 날 동안 슬퍼하였다”(느 1:4). 느헤미야는 동생을 통해 들은 소식으로 너무나 마음에 충격을 받아 3, 4개월 동안 얼굴에 화색을 잃고 지냈다(느 1:1; 2:1을 비교). 왕 아닥사스다는 그때 업무 관계로 제국의 다른 지역을 순찰 중이었다. 왕이 얼마 후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에도 왕의 술잔을 받드는 사람인 느헤미야는 얼굴에 희색을 완전히 되찾지 못한 상태였다.
170요행히 그 때 심기가 나쁘지 않았던 아닥사스다가 그에게 무슨 걱정이 있느냐고 물었다. 느헤미야로부터 저간의 사정을 들은 왕은 즉각 일련의 효과적인 행정 지시를 문서화하고 느헤미야를 시켜 이 문서를 새로 부임한 강 서편 총독 산발랏에게 전달하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 중건 경비를 국고에서 지출케 하고 느헤미야로 직접 중건 공사를 지휘 감독케 하였다.
171일부 주석가들은 느헤미야가 동생 하나니로부터 근래 재건된 성전 이외의 전체 도시가 142년 전 즉 기원 전 586년에 느부갓네살의 손에 파괴된 그대로 남아 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곤란한 주장이다. 느헤미야는 이미 어릴 때 느부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를 익히 알고 있었다. 만약, 느헤미야가 이전에 그 동안 예루살렘 성의 중건 공사가 상당히 진척된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기원 전 444년에 그의 동생이 전한 “예루살렘 성이 훼파되었다”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렇게 놀랄 까닭이 없는 것이다.
172444년 전까지는 예루살렘 성 중건 허가가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는 성서학 자들은 우리가 여기서 논의하고 있는 여러 자료들을 간과했거나 모르고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수도로서의 지위 회복과 그에 따른 방위 및 통솔 장치의 재건을 허락한 457년의 조서가 444년의 조서보다 490년 예언기간의 출발점으로서 더 적합한 것이다.
173부록 28 오토만 제국의 멸망―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후 회교국인 터어키가 유럽에 끼친 영향은, 모하멧의 사후 1세기 반 동안 사라센인들의 파멸적인 침입이 동로마 제국에 끼쳤던 영향만큼이나 심각하였다. 종교 개혁시대를 통하여 터어키는 유럽의 그리스도교국들에게 계속적인 위협이 되었다. 개혁자들의 저술들은 오토만의 세력을 전적으로 정죄하였다. 그리스도인 저자들은 이후부터 미래의 사건들에 있어서 터어키의 세력과 그것이 쇠퇴할 것을 미리 내다보았다.
174뒷 장(章)에서, 조시아 릿치는 여섯째 나팔의 일부인 “연월일시”에 대한 예언이란 항목에서 이 시간에 대한 예언을 1840년 8월에 터어키의 독립이 끝난 일에 적용시켰다. 릿치의 견해는 그의 책 The Probability of the Second Coming of Christ About A. D. 1843 (published in June, 1838)과 성직자들에게 한 연설(1840년 봄에 출판됨; 오토만 제국의 몰락에까지 이어지는 예언적 기간에 대한 이전의 계산이 정확함을 입증하는 역사적인 자료를 곁들여서 만든 2판은 1841년에 출판됨.)과 1840년 8월 1일, Signs of the Times and Expositor of Prophecy에 실린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Signs of the Times and Expositor of Prophecy, Feb. 1, 1841에 실린 기사와 J. N. Loughborough, The Great Advent Movementpp. 129-132 (1905 ed.)를 참조하라. 우리아 스미스가 쓴 책, The Prophecies of Daniel and the Revelation, rev. ed. of 1944는 pp. 506-517에서 이 예언에 대한 예언적 타이밍을 논하고 있다.
175오토만 제국의 초기 역사와 터어키 세력의 몰락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William Miller, The Ottoman Empire and its successors, 1801-1927 (Cambridge, England: University Press, 1936); George G. S. L. Eversley, The Turkish Empire From 1288 to 1914 (London : T. Fisher Unwin, Ltd., 2d ed., 1923); Joseph von Hammer-Purgstall, Geschichte Des Osmannischen Reiches (Pesth: C. A. Hartleben, 2d ed., 1834-36), 4 vols.; Herbert A. Gibbons, Foundation of the Ottoman Empire, 1300-1403 (Oxford: University Press, 1916); Arnold J. Toynbee and Kenneth B. Kirkwood, Turkey (London, 1926)을 참조하라.
176부록 29 사람들이 성경을 가지지 못하게 함―평신도들에게 일반 대중의 말로된 성경이 배포되는 것에 대하여 로마 카톨릭교회가 취하는 태도에 관하여는 Catholic Encyclopedia, art. “Bible”: also G. P. Fisher, The Reformation, ch. 15, Par. 16 (1873 ed., pp. 530-532); J. Cardinal Gibbons, The Faith of Our Fathers, ch. 8 (49th ed., 1897), pp. 98-117; John Dowling, History of Romanism, b. 7, ch. 2, sec. 14; and b. 9, ch. 3, secs. 24-27 (1871 ed., pp. 491-496, 621-625); L. F. Bungener, History of the Council of Trent, pp. 101-110 (2d edinburgh ed., 1853, translated by D. D. Scott); G. H. Putnam, Books and Their Makers During the Middle Ages, vol. 1, pt. 2, ch. 2, pars. 49, 54-56을 참조하라.
177또한 William Muir, The Arrested Reformation (Morgan and Scott, 1912, pp. 37-43; Harold Grimm, The Reformation Era (Macmillan, 1954), p. 285; Index of Prohibited Books (Vatican Polyglot press, 1930), pp. IX, X; Timothy Hurley, A Commentary on the Present Index Legislation (New York: Benziger Brothers, 1908), p. 71; Translation of the Great Encyclical Letters of Leo XIII (New York: Benziger Brothers, 1903), p. 413을 참조하라.
178부록 30 승천예복―재림신도들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기 위하여 승천을 위한 옷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재림을 전파하는 사업을 비난하고자 하던 자들이 조작한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재빨리 유포되어 많은 사람들이 믿었지만 신중하게 조사해 본 결과 허망한 이야기임이 드러났다. 여러 해 동안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면 많은 현상금을 제공하겠다고 하였으나 그 증거는 나타나지 아니하였다. 구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던 자들 중에는 한 사람도 저희가 만든 옷이 그 경우에 필요할 것이라고 상상할 만큼 성경의 교훈에 무식하지 아니하였다.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하기에 필수적이요 유일한 옷은 그리스도의 의이다. 이사야 61장 10절과 요한계시록 19장 8절을 참조하라.
179승천을 위한 옷에 대한 이야기를 철저하게 논박한 내용을 보려면, Francis D. Nichol, Midnight Cry (Washington, D. C.: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n., 1944), chs. 25-27, and Appendices H-J. See also LeRoy Edwin Froom, Prophetic Faith of Our Fathers (Washington, D. C.: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n., 1954), vol. 4, pp. 822-826.
180부록 31 예언의 연표―뉴욕 시립 대학의 히브리 및 동양 문학 교수인 조지 부시 박사는 윌리암 밀러에게 보낸 편지(the Advent Herald and Signs of the Times Reporter, Boston, March 6 and 13, 1844에 게재됨)에서 그의 예언적 기간의 계산에 대하여 중요한 승인의 뜻을 표하였다. 부시 박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181“귀하가 예언의 연표 연구에 많은 시간과 주의를 바쳐서 예언적 대기간이 시작하는 시기를 결정짓기 위하여 크게 수고한 것에 대하여 나는 귀하나 귀하의 동료들에게 무슨 이의(異議)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예언서 가운데 나타난 이러한 기간이 실제로 성령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라면 이것들을 연구하여야 할 것이며 아마 종국에는 완전히 이해될 수 있을 것도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생각으로 이에 노력하는 자를 어리석은 자로 허물할 것이 아닙니다 …예언적 하루를 일년으로 계산함에 있어서 귀하는 가장 건전한 주해의 지지를 받았으니 이에 대하여는 메데, 아이작 뉴톤 경, 커비, 스코트, 케이드, 기타의 무수한 고명한 인사들로 말미암아 확증된 바입니다.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이 점에 관한 그대의 결론에 사실상 도달하였던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다니엘과 요한이 기록한 주요한 기간이 현대의 세상에서 끝을 맺을 것이라는 점에 있어서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명한 인사들과 동일한 견해를 주장하는 귀하를 이단이라고 책한다면, 그것은 이상한 논리가 될 것입니다.”“귀하의 연구분야에 있어서 약간의 착오가 있다 하더라도 중대한 진리나 의무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나는 확신합니다.”“내가 알기로 귀하의 잘못은 연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면에 있다고 봅니다.”“귀하는 이 기간들이 마치는 때에 일어날 사건들의 성격을 전연 틀리게 해석하였습니다. 이것이 귀하의 해석에 큰 지장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또한 LeRoy Edwin Froom, The Prophetic Faith of Our Fathers (Washington, D. C.: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ociation, 1950), vol. 1, chs. 1 and 2도 참조하라.
182부록 32 삼중기별―요한계시록 14장 6, 7절은 첫째천사의 기별의 선포를 예언하고 있다. 그리고 선지자는 “또 다른 천사…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세째가 그 뒤를 따”랐다고 계속해서 말한다. 여기에 쓰인 “뒤를 따라”라는 말을 “함께 가다”, “따르다”, “동행하다”는 의미이다. Henry George Liddell and Robert Scott, Greek English Lexicon (Oxford: Clarendon Press, 1940), vol. 1, p. 52를 참조하라. 그것은 또한 “동반하다”는 뜻이다. George Abbott-Smith, A Manual Greek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Edinburgh: T. and T. Clark, 1950), page 17을 참조하라. 이 말은 마가복음 5장 24절에 쓰인 “이에 그와 함께 가실 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는 말과 동일한 말이다. 이 말은 또한 구속함을 입은 십사만 사천명에 대하여도 쓰여졌는데, 거기에는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계 14:4)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두 곳을 보아 여기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은 곧 “같이 간다”, “함께 간다”는 뜻임이 분명하다.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따르는”이라는 말은 동일한 헬라어에서 번역된 것이다. 그 말의 방주(傍註)에는 “그들과 함께 갔다”로 되어 있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요한계시록 14장 8, 9절의 사상이 단순히 둘째와 셋째 천사가 시간의 여유를 두고 따라갔다고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와 함께 갔다고 하는 뜻임을 알게 된다. 세 천사의 기별은 하나의 삼중 기별인 것이다. 그들은 그 일어나 순서에서만 셋이다. 그러나 일어나자마자 그 기별들은 함께 가며 떨어지지 아니한다.
183부록 33 로마 주교의 지상권(至上權)―로마 주교가 외람되게 주장하는 지상권에 대한 주요한 실례들을 알기 위해서는, Robert Francis Cardinal Bellarmine, Power of the Popes in Temporal Affairs (there is an English translation in the Library of Congress, Washington, D. C.); Henry Edward Cardinal Manning, The Temporal Power of the Vicar of Jesus Christ (London: Burns and Lambert, 2d ed., 1862); and James Cardinal Gibbons, Faith of Our Fathers (Baltimore: John Murphy Co., 110th ed., 1917), chs. 5, 9, 10 and 12를 참조하라. 프로테스탄트의 저자들의 견해를 알기 위해서는, Trevor Gervase Jalland, The Church and the Papacy (London: Society for promoting Christian knowledge, 1944, a Bampton lecture); and Richard Frederick Littledale, Petrine Claims (London: Society for Promoting Christian knowledge, 1899)를 참조하라. 페트린 이론의 초기 수세기의 자료들을 알기 위해서는, James T. Shotwell and Louise Ropes Loomis, The See of Peter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27)을 참조하라. 콘스탄티누스의 가짜 기증서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Christopher B. Coleman, The Treatise of Lorenzo Valla on the Donation of Constantine (New York, 1914)를 참조하라.
184부록 34 이디오피아 교회와 안식일―오히려 최근에 이르기까지 이디오피아의 콥트 교회는 제칠일 안식일을 지켰다. 이디오피아인들은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의 역사를 통하여 주일 중 첫째날인 일요일을 지켰다. 이 날들은 교회에서 특별한 예배일로 특징지워졌다. 그러나 제칠일 안식일의 준수는 현대의 이디오피아에서는 사실상 중단되었다. 이디오피아의 종교일에 대한 목격담을 보기 위해서는, Pero Gomes de Teixeira, The Discovery of Abyssinia by the Portuguese in 1520 (Translated in English in London: British Museum, 1938), p. 79; father Francisco Alverez, Narrative of the Portuguese Embassy to Abyssinia During the Years 1520-1527, in the Records of the Hakluyt Society (London, 1881), vol. 64, pp. 22-49; Michael Russell, Nubia and Abyssinia (Quoting Father Lobo, Catholic missionary in Ethiopia in 1622) (New York: Harper & Brothers, 1837), pp. 226-229; S. Giacomo Baratti, Late Travels into the Remote Countries of Abyssinia (London: Benjamin Billingsley, 1670), pp. 134-137; Job Ludolphus, A New History for Ethiopia (London: S. Smith, 1682), pp. 234-357; Samuel Gobat, Journal of Three Years Residence in Abyssinia (New York: ed. Of 1850), pp. 55-58, 83-98을 참조하라. 이 문제를 다룬 다른 저서들을 보기 위해서는, Peter Heylyn, History of the Sabbath, 2d ed., 1636, vol. 2, pp. 198-200; Arthur P. Stanley, Lectures on the History of the Eastern Church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882), lecture 1, par. 1; C. F. Rey, Romance of the Portuguese in Abyssinia (London: F. H. and G. Witherley, 1929), pp. 59, 253-297을 참조하라.
- 1 머리말
- 2 예루살렘의 멸망
- 3 제1세기의 핍박
- 4 영적 암흑 시대
- 5 왈덴스
- 6 존 위클리프
- 7 후스와 제롬
- 8 개혁의 큰 별이 나타남
- 9 의회 앞에 선 루터
- 10 스위스에서의 개혁 운동
- 11 독일에서의 개혁 운동의 발전
- 12 제후들의 항의
- 13 프랑스에서의 종교 개혁
- 14 네덜란드와 스칸디나비아의 개혁 사업
- 15 후기 영국의 개혁자들
- 16 성경과 프랑스 혁명
- 17 청교도와 신교의 자유
- 18 여명을 알리는 사자(使者)
- 19 근대의 종교 개혁자
- 20 암흑을 뚫고 비치는 빛
- 21 종교적 대각성
- 22 경고의 거절
- 23 성취된 예언들
- 24 하나님의 성소
- 25 지성소에서의 봉사
- 26 하나님의 율법의 불변성
- 27 안식일 회복 운동
- 28 신앙 부흥과 참된 회개
- 29 하늘에서 행하는 조사 심판
- 30 죄악의 시작
- 31 인류와 사단 사이의 적의(適意)
- 32 악령의 정체
- 33 사단의 함정
- 34 최초의 큰 기만
- 35 죽은 사람들이 우리와 교통할 수 있는가?
- 36 위협당하고 있는 양심의 자유
- 37 절박한 최후의 위기
- 38 믿음의 기준이 되는 성경
- 39 최후의 경고
- 40 환난의 때
- 41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
- 42 지상의 황폐
- 43 대쟁투의 종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