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MESSAGE

성경 구절 찾기 › 마태복음 › 10장

마태복음 10장 34절

예언의 신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글 4곳입니다. 마태복음 10:34 · 엘렌 G. 화잇 저서

각 시대의 대쟁투 3

GC 3:20 · 제1세기의 핍박 그렇다면 복음이 어떻게 평화의 기별이라고 불리울 수 있을까? 이사야는 메시야의 출생을 예언할 때에 그분을 “평강의 왕”(사 9:6)이라고 불렀다. 천사들이 예수님의 출생을 목자들에게 선포할 때에 베들레헴 상공에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라고 노래하였다. 이 예언적 말씀과 그리스도께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고 하신 말씀은 서로 배치되는 듯하다. 그러나 올바르게 이해하게 되면, 그 둘은 완전히 일치된다. 복음은 평화의 소식이다. 그리스도교는, 세상이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순종하기만 하면 세상에 평안과 조화와 행복을 전해주게 된다. 그리스도의 종교는 그 교훈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친한 형제의 관계를 이루어 준다.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주고 상호간에 화목을 이루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대부분 그리스도의 대적인 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다. 복음은 그들의 습관과 욕망과는 전혀 반대되는 생활 원칙을 제시해 주기 때문에, 그들은 복음을 반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죄를 드러내어 그것을 죄라고 지적해주는 순결을 증오하며 공의롭고 성결한 복음의 요구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인다. 그러므로 복음이 가져다 주는 고상한 진리가 증오와 분쟁을 일으키는 일도 있다는 의미에서 복음은 검으로 불린다. GC 8:20 · 개혁의 큰 별이 나타남 그러나 암흑과 광명은 조화될 수 없다. 진리와 오류 사이에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있다. 그 중의 하나를 지지하고 옹호하기 위하여서는 다른 하나를 공격하고 넘어뜨려야 한다. 우리 구주께서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고 친히 말씀하셨다. 루터는 종교 개혁을 일으킨 지 얼마 후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인도하시지 아니하시고, 나를 앞으로 나가도록 떠미신다. 그분께서는 나로 하여금 넋을 잃게 하신다. 나는 나 자신의 주인이 아니다. 나는 평안히 살기를 갈망하지만 소동과 개혁의 와중에 던져져 있다.”* 그는 이 때 투쟁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도록 강요당하고 있었다. GC 9:44 · 의회 앞에 선 루터 본인이 지금 명백히 진술한 것은 본인 자신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위험에 대하여 조심성 있게 헤아려 보고 생각한 연후에 진술한 것임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본인은 오늘날 복음이 옛날과 마찬가지로 물의(物議)와 분쟁의 원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기쁘게 여기는 바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특성으로 볼 때 필연적인 일입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랍고도 두려운 권고를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분쟁을 멈추려고 함으로 도리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핍박하게 되고, 우리 자신에게 견딜 수 없는 위험과 현세의 불행과 영원한 멸망을 가져오는 결과를 초래할까 경계해야겠습니다. … 본인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많은 실례를 들 수 있습니다. 바로와 바벨론의 임금들과 이스라엘의 임금들이 그들의 나라를 외관상으로 가장 지혜롭고 강하게 만들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권면을 따라 노력하였을 때보다 더욱 그들 자신의 멸망을 효과적으로 초래했던 적은 없었다는 것을 나는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산들을 옮기실제라도 산들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본 브라우저에서 열었습니다

이 창은 닫으셔도 됩니다.
열리지 않았다면 아래를 눌러 주세요.

1message.kr